기계신과 함께 143 더욱 악질적인 점은 '내 부하가 될 테냐'라는 저놈의 질문은, 그냥 흥미 본위의 형식적인 물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어차피 저놈은 상대를 세뇌시켜서 부하 내지는 노예 내지는 장난감으로 만들 생각일 테니까.
그걸 위해서 위 청천에게 헌터 '이한철'을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시킨 거였다.
'너…… 근데 생각보다 동요하는 것 같지가 않다?
"
카이가 웃음기를 지우고 무결을 바라보았다.
'아차.'
무션이 놈에 대해 치솟는 분노에 잠시 연기하는 걸 잇은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그는 무결의 연기를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력이 너무 안정적이야."
그가 조금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가족이고 친구고 다 잡아와서 가지고 노는데, 쩝. 네 녀석의 집이 한국이라서 내가 미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용서 해라."
그가 진한 아쉬움을 담은 눈빛으로 무결을 응시했다.
'미친놈.'
저놈은 미쳐도 적어도 곱게 미친 놈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결은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카이를 그냥 두려운 눈빛으로만 바라보았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고 쭈그러져 있는 태도로.
카이가 그런 무결을 유심히 바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무슨 스킬을 익혔는지는 몰라도 동요하는 태도에 비해 역시 마력이 너무 안정적이야. 이래서 좋은 스킬 익힌 놈들은 짜증 난다니까. 멀리서는 생각도 안 읽히고……."
카이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무결에게 손을 쭉 뻗었다.
"손이 꼭 많이 가게 해요."
사방의 마력이 무결의 몸을 옭죄어 왔다.
무결은 그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저 많은 헌터들과 힘을 합친 카이 죽이는 것은 불가능해. 아니, 가능할 수도 있지만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
무결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어차피 곧 놈과 둘이 있는 시간은 와. 그때까지……'
쑤욱- 무결의 몸이 허공에 둥실 떠서 카이에게 날아갔다.
고도의 경지에 이른 허공섭물(虛 空攝物)이었다.
무결은 카이에게 끌려 날아가며 의식을 침잠시켰다.
'기다……린다.'
무결의 의식이 기저의식으로 가라앉았다.
이윽고 무결의 몸이 카이에게 붙 들렸다.
"에이, 남자 놈들은 손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지."
카이가 투덜대며 무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무결의 몸이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그뿐.
카이의 막대한 마력에 둘러싸여 있는 무결은,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착하지. 그래, 그렇게 가만히 있어라."
카이가 막대한 마력으로 무결의 온몸을 단단히 옭죄고 중얼거렸다.
"[광뇌조작]."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빛이, 무결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드디어 발동되었다.
그의 세뇌 스킬이.
곧 그의 손에서 빛나던 빛이 사라졌다.
무결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카이를 바라보았다.
"어디, 새로운 장난감을 한번 만져볼까?"
카이가 무결의 몸 곳곳을 한번 눌러보기도 하고,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호오?"
무결의 몸 이곳저곳을 눌러보던 카이가 굉장히 놀란 눈을 했다.
"최고의 신체를, 극한까지 수련한 몸이야. 나 말고도 이런 몸을 가진 자가 있을 줄이야."
카이가 굉장히 놀란 눈으로 무결을 바라보았다.
"유연성, 탄력, 근력이 완벽하게 조화되어 있어. 이런 신체가 그냥 나올리가 없는데…… 이 녀석도 나처럼 스킬로 신체를 단련한 유형인가?"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좋아."
카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카이는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과연 세뇌가 완벽하게 먹혔는가. 그 첫 번째 테스트.
"이한철."
"네."
"앞으로 날 마스터라고 부르도록,
"네, 마스터."
"넌 어디 출신이지?"
"한국의 북두그룹 출신입니다."
"아, 북두그룹. 최근에 도망만 다니다 망했다지. 그래, 거기 출신이었으니 그렇게 조사해도 제대로 신분이 안 나오는 거였어. 그럼……."
카이는 그 외에도 무결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무결은 충실한 하인처럼 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읊었다.
"좋아."
카이는 그의 손에 세뇌되었던 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앞에서 약간 기계적인 태도를 보이는 무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도에서만으로 이미 무결이 완벽하게 세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카이는 철저하게 치밀한 남자였다.
두 번째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이한철."
"네, 마스터."
"네 왼팔을 잘라봐."
그는 만약 상대가 세뇌되지 않았다면 절대 들을 리 없는 명령을 내렸다.
그 말에 무결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팟! 푸직.
망설임 없이 왼팔을 중간에서부터 끊어냈다.
잘린 팔에서 피가 흐르다 멈추었다.
"음, 좋아. 제대로 됐군."
카이가 비로소 만족했다.
"그래도 새 장난감인데 제대로 아껴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가 피식 웃으며 아직까지 그의 무릎에 앉아 있던 장유이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유이야."
"네…… 네, 마스터."
장유이가 카이의 손으로부터 전달되는 짜릿짜릿한 느낌에 파들파들 떨며 대답했다.
"고쳐주렴."
"네…… 마스터."
장유이가 카이의 무릎에서 내려서, 무결의 잘린 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무결에게 다가가, 스킬을 사용했다.
[응급치료].
일단 그녀는 스킬로 무결의 양쪽 팔에서 아직 조금씩 흐르는 피를 완전히 지혈했다.
피가 멎은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잘린 팔의 절단면을 서로 잘 갖다 대었다.
그녀는 품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주머니를 열어, 오늘 아침에 딴 싱싱한 꽃들을 꺼냈다.
그리고 그 꽃의 꽃잎들을 따서 잘린 무결의 팔에 대었다.
[꽃의 기도].
꽃잎들이 무결의 팔에 스며들며, 자신이 품고 있던 생명력을 무결의 팔에 전달했다.
무결의 팔이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정성스레 꽃잎을 하나하나 무결의 팔 이음매에 붙였다.
그럴 때마다 무결의 팔이 눈에 띄는 속도로 아물어갔다.
과연 '용유곡' 최상층을 이용할 만한 강력한 치유 능력자다웠다.
마무리는 그녀의 고유 스킬이었다.
[생명의 수신호]
그녀의 양손이 부드럽게 무결의 팔을 쓰다듬었다.
그럴 때마다 무결에 팔에 담긴 생명력이 절단면을 오가며 아직 조금 어색하게 이어져 있던 무결의 팔을, 완전히 원래의 상태로 되돌렸다.
심지어 그녀 자신의 마력을 빼내어 피를 흘려 쇠해진 무결의 기력을 보충해 주기까지 했다.
'대단하군.'
세뇌된 척 연기하고 있던 무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이런 스킬을 가진 여인이라면, 필시 헌터가 되기 이전에도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던 마음씨 착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낱 누군가의 노예가 되어 자신이 평생을 갈고 닦은 인격을 빼앗긴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무결은 팔을 끊으라는 카이의 말을 들었을 때, 그냥 팔을 끊는 척하며 카이에게 달려들까 조금 고민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여인을 위해서라도 인내심을 가지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무결이 만약 여기서 날뛰었다면 이 여인은 백 프로 죽었을 테니까.
무결은 카이의 [광뇌조작]에 세뇌되지 않았다.
[광뇌조작]이 발동하는 순간, 그가 가진 한 가지 스킬이 그 발동을 방어해 내었으니까.
[스킬 '하늘의 눈'이 '광뇌조작'의 정신지배를 막아내었습니다.]
이게 그가 [광뇌조작] 발동 당시 들은 메시지였다.
[하늘의 눈]에는 상대의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 말고도 한 가지 능력이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능 방어'.
[광뇌조작]처럼 무결의 신체와 정신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이능은 [하늘의 눈]이 모조리 막아낼 수 있었다.
이것이 무결이 자신을 숨기고 카이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카이를 속이는데에는 [하늘의 눈]의 도움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무결이 만약 다른 세뇌된 자들과 동일한 행동양식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카이의 첫 번째 시험에서 세뇌되지 않은 것이 들통났을 터.
여기에서는 [배틀 센스]의 도움을 받았다.
무결은 이미 어제부터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카이에게 세뇌된 많은 자들을 유심히 관찰 했다.
여기에서는 주변 정보를 직감적으로 받아들이게 해주는 스킬 [배틀 센스]가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두 가지 스킬로, 무결은 카이의 모든 세뇌 확인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대답한 것은 전부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었다.
"좋아, 이한철, 넌 잠시 옆에서 있어."
카이가 무결에게 명령했다.
"네, 마스터."
"장유이, 넌 다시 와서 내 무릎에 앉고."
"네, 마스터."
장유이가 파들파들 떨면서도 카이의 무릎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너희들도 다시 시작하거라."
"네, 주인님."
'마스터'가 아닌 '주인님'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카이의 발치에 앉아 있던 거의 반라에 가까운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은 무릎걸음으로 카이에게 다가가 손으로 그의 몸 여기저기를 쓰다듬으며 깔깔 웃었다.
"으, 으음……."
장유이는 온몸을 희롱하는 카이의 손길에 애달픈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자, 그럼 새로운 식구도 생겼으니 시작하자고."
카이가 여인들에 둘러싸인 상태로, 장내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다.
"네, 마스터."
장내에 있던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카이에게 인사했다.
"먼저 미국 상황부터 듣기로 하지."
"예, 마스터. 미국에 파견 나간 상황 보고하겠습니다."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카이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는 세뇌된 고위 인사들이 카이에게 정무를 보고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현재 300개의 우선 토벌권을 사용할 던전을 물색 중에 있습니다. 그중에 최상의 던전들을 찾기 위해 '탐색자'들을……."
"영국에서는 150개의 우선 토벌권을 획득했습니다. 미국에서의 던전 탐색이 끝나는 대로 '탐색자'들을 불러들여……."
무결은 바로 옆에서 지금까지 중국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는지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강력한 헌터 국가였던 중국의 모든 비밀이 바로 이곳에 모여 있었다.
"으음, 듣자하니 '탐색자'들이 많이 모자라나 보군."
카이가 곰곰이 고민했다.
'탐색자'란 '던전의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계 스킬을 높이 올린 자들을 뜻했다.
"'탐색자'는 세뇌가 안 통하는 녀석들이 많아서 더 늘리는데 비용이 많이 든단 말이지……. 그래도."
카이가 결정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능력자 탐색은 '탐색자'들 위주로 하도록. 보이는 족족 나에게 끌고 와라. 세뇌가 안 먹히면 죽여 버리면 되니까."
카이가 명령을 내리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네, 마스터."
"아, 다른 나라에서도 최대한 많이 납치해 와봐. 거기에 필요하거나 방해되는 고위 인사가 있으면 내게 말하고. 미국 대통령처럼 납치해 와서 세뇌시켜 버리면 되니까."
"네, 마스터. 그런데 한국은 어떡 할까요?"
어떤 헌터가 조심스럽게 카이에게 물었다.
"음, 한국은……."
카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른 나라를 생각할 때와는 달리 골치가 아픈 듯했다.
"아직 건들지 마. 거기에는 괴물이 있으니까."
카이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