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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41 (141/215)

  기계신과 함께 141

  "아아악!"

  양떼 속에 뛰어든 늑대처럼 가국이 날뛰고 있었다.

  놈의 곤봉에 곳곳에서 녀석을 공격 해 들어가던 헌터들이 박살 나고 있었다.

  갓 20살을 넘긴, 상당히 앳되어 보이는 여자 헌터가 겁에 질린 얼굴로 동료들이 학살되는 장면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치유계 헌터로서 다친 동료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 파견 나온 헌터였다.

  그런 그녀의 눈앞으로.

  쑤욱.

  가국이 불쑥 나타났다.

  마치 순간이동하듯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 가국이, 손에 들고 있던 곤봉을 그녀에게 무자비하게 내려쳤다.

  그녀는 죽음의 공포가 깃든 눈으로 자신에게 떨어져 내려오는 곤봉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불쑥.

  그녀의 눈앞을 한 남자가 가로막고 섰다.

  팡-- 충격파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헌터들에게 무자비하게 휘둘러지던가국의 곤봉이, 처음으로 멈추었다.

  "뒤로 빠져 계세요."

  소녀는 눈앞에서 가국의 곤봉을 막고 서 있는 사내의 등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방금까지만 해도 선망의 눈으로 위청천을 바라보며 악수했던 남자.

  그리고 위청천의 몇 마디에 기쁨의 미소를 짓던 남자였다.

  '이름이…….'

  그녀가 그의 이름을 기억해 내려 애썼다.

  곧 이름이 떠올랐다.

  '이한철.'

  멀리 한국에서부터 위청천을 보기 위해 날아왔다던 한국의 젊은 헌터였다.

  그가 타고 온 비행기의 탑승객들이 모두 그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뿐.

  그녀에게 그는 위청천의 후광에 가려져 이 전장에서 존재감을 띄지 못했던 많고 많은 헌터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그 많고 많은 헌터 중 한 명이었던 그가, 이제는 그녀에게 크나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콰아아앙!

  전장을 공포로 가득 채웠던 가국의 검을 유려한 몸놀림으로 피해내며, 도리어 반격을 가하는 저 헌터의 존재가, 이제는 단순히 '많은 헌터 중의 하나'가 될 수는 없었다.

  갑자기 전장에 난입한 한국의 헌터 이한철은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가국의 모든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헌터들의 입이 벌어졌다.

  그중 무공을 배운 한 A급 헌터가 생각했다.

  '아름다움 움직임이다.'

  한국 헌터의 몸놀림에 어떤 현묘한 묘리가 깃들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직선거리와 곡선의 이점을 최대 효율로 뽑아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모든 가국의 공격을 종이 한 장의 차이로 피해내며 그 어떤 힘의 낭비가 없는 기적과 같은 몸놀림.

  거기에서 그 헌터는 극치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게다가.

  '저 검은 또 뭐란 말인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저 검.

  오로지 빛으로 이루어진 듯한 밝게 빛나는 한 자루의 검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아티팩트였다.

  아니, 본 적이 있기는 했다.

  그것이 SF영화에서이긴 했지만.

  전장에는 두 개의 거대한 교착점이 만들어졌다.

  위청천과 곤봉이 부러진 가국.

  그리고 무결과 곤봉이 멀쩡한 가국.

  두 헌터와 두 몬스터의 폭풍과 같은 대결에 주변의 모든 헌터들이 뒤로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둘 중 어느 한쪽이라도, 먼저 상대를 물리치는 쪽이 승리였다.

  위청천은 어느새 부러진 한 팔을 제대로 끼워 맞춘 다음 곤봉이 부러진 가국을 압도하고 있었다.

  반면 무결과 가국은 팽팽한 접전을 이루고 있었다.

  주로 무결을 으깨버리려는 가국의 난폭한 움직임에, 무결이 산들바람 처럼 가국의 공격을 흘려내는 것이었다.

  간간이 손에 든 빛의 검으로 가국의 공격을 튕겨내며.

  그러나 극소수의 고수들은 무결이 단순히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수읽기를 통해, 피하는 것만으로 가국의 행동을 한곳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팟- 환한 빛이 가국의 몸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콰앙!!

  위청천 쪽에서도 폭음이 터져 나왔다.

  양쪽의 전투가 거의 동시에 종료되었다.

  드러난 결과는…….

  "와아아아!!"

  인간들의 승리였다.

  무결과 맞붙었던 가국은 목이 떨어진 채로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위청천과 맞붙었던 가국은 건물 한 쪽에 처박혀 머리가 박살 나 있었다.

  "휴우……."

  무결은 몰려드는 헌터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타이밍 맞추느라 힘들었네.'

  자칫 위청천보다 먼저 가국을 잡아 버릴 뻔했다.

  연신 환호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무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청천에게, 빙긋 웃으며 마주 걸어갔다.

  * * * 중국은 베이징 근처에서 상당히 급 작스럽게 등장한 두 마리의 8급 몬스터가 별 피해 없이 정리된 것에 대해 크게 안도 했다.

  요즘 들어 몬스터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가뜩이나 헌터 인력이 공백 상태였는데, 만약 무결이 없었더라면 베이징이 그 직격타를 맞을 뻔했던 것이다.

  물론, 이 사건 덕분에 무결, 아니, 이한철은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한국에서 온 헌터, 그 정체는?]

  [천하제일인과 듀오를 이룬 헌터]

  [오직 위왕(魏王)만이 상대할 수 있었던 가국(假國). 놈을 무찌른 자, 누구인가!]

  [한국에서 온 이한철 '위왕 만나게 되어 너무 감격스럽다']

  무결이 비행기를 구하는 동영상의 한 장면과 가국과 싸우는 장면들이 기사와 함께 여러 개가 붙어 있었다.

  중국 사람들답게 다소 많은 과장이 들어가 있었지만, 어쨌든 자신에 대해 연일 증폭되는 관심에 무결이 쓴 웃음을 지었다.

  의도한 바긴 했지만 영 익숙하질 않았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효과도 있었다.

  중국내에서의 그의 붐과 함께 한국에 '헌터 이한철'에 대해 문의하는 중국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궁금증은 한국 사람들에게까지 옮겨 붙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이한철이라는 헌터가 있는데, 요즘 중국에서 그렇게 난리라며?

  -이한철이 누구야? 들어본 사람 있어?

  -8급 종을 혼자서 잡았대!

  -랭커 5명이 덤벼들어 당했다는 그 8급 종을?

  -나 앞으로 그 사람 팬 될 거임.

  -그 사람 싸우는 장면 봤음? 완전 개사이다. 개잘싸워.

  -대체 주 무기가 뭐야? 총도 쓰고 라이트 세이버도 쓰던데.

  -무협 계열 헌터에 현대화기도 잘 쓰는 것 같던데. 스타일이 독특 하긴 하더라.

  -근데 대체 이한철이 누구냐고? 난 처음 들어본다고!

  이렇듯 한국에서도 이한철이란 존재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한 상태였다.

  물론 한국에 문의했던 중국 측에서는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흐음…… 언제쯤 입질이 오려나.'

  무결이 인터넷 기사를 끄며 다시 온천물에 푸욱 몸을 담갔다.

  약재(藥材)가 들어간 온천물이 무결의 몸을 따스하게 감싸왔다.

  "이게…… 중국 자본의 힘인가."

  무결은 따끈한 온천 속에 몸을 푹 담그고 베이징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며 옆에 놓인 최고급 와인을 홀짝였다.

  칸막이로 개별 룸이 설정된 온천 부스.

  무결이 있는 부스 외에도 십여 개의 부스가 있었지만, 좋은 시설에 비해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지금 무결이 머물고 있는 빌딩은 '용유곡(龍留谷)'이라는 이름이 붙은 마천루(摩天樓)였다.

  '용유곡'은 '용들이 머무르는 곳'이 란 뜻으로, 중국 헌터 협회에서 헌터들의 숙식을 위해 제공하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이곳 스카이라운지는 중국의 최고위 헌터들에게만 개방되는 VVIP 시설이었다.

  무결은 어제 가국을 물리친 공로로 중국에서도 오직 100여 명 정도만이 이용할 수 있다는 이 시설을 이용할 자격을 얻었다.

  무결이 앉아 있는 온천물 바깥으로는 최고의 셰프들이 구성한 뷔페가 마련되어 있었다.

  한쪽 코너에는 전문 마사지사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며, 무결에게는 개인 매니저가 붙어서 와인이고 음식이고 무결이 필요한 것을 무한정으로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매니저는 미모와 몸매가 출중한 일반인이었는데, 그녀가 야릇한 눈빛으로 무결을 바라보는 것이 아마도 무결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 이상의 서비스도 제공할 의향이 충분한 것 같았다.

  물론 무결은 그녀에게서 신경을 끄고 도시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런 독사과를 덥석 물면 바보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무결은 이 자리가 불편했다.

  대우와 서비스는 몸이 녹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최상급이었지만, 그를 감시하는 눈이 사방에 있었다.

  당장 이 매니저라는 여인만 봐도 상태 표시에 이렇게 쓰여 있지 않은 가.

  -상태 : 세뇌, 감시 중 이 여인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그를 지켜보는 모두가 일종의 인간 감시 카메라였다.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 감시카메라와 도청장치까지 감안하면 여기서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에게 넘겨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누군가라기에는 짐작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래서야 어디 마음 편하게 쉬겠나.

  "에휴."

  무결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걱정이 있으신가요?"

  매니저가 무결의 한숨에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왔다.

  사근사근하고 고혹적인 목소리.

  물론, 무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뇨, 걱정 없습니다. 신경 끄십시오."

  "아…… 예."

  딱 잘라 끊는 무결의 말에 그녀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누군가가 무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 한번 살펴봐 드릴까요?"

  무결이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을 확인했다.

  무결과 마찬가지로 수영복을 입고 와인 잔을 들고 있는 여인이 호감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의 이용객인 것을 보니 그녀 또한 중국내의 최고위 헌터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무결은 그녀가 왠지 좀 낯이 익었다.

  무결은 자신도 모르게 [하늘의 눈]을 사용했다.

  -이름 : 장유이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생명의 수신호]

  -습득 스킬 : [응급치료], [꽃의 기도]

  "저 혹시 모르시겠어요?"

  그녀가 무결의 눈치를 보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조마조마한 그 모습에서, '당신이 꼭 나를 알아봤으면 좋겠다' 하는 티가 팍팍 났다.

  옆에서 매니저가 살짝 뾰로통한 눈으로 그녀를 째려보는 것이 보였다.

  "아, 당신은……."

  무결은 그녀를 [하늘의 눈]으로 살펴보자마자 어디서 그녀를 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제가 그때 구해드린 헌터분, 맞나요? 가국과 싸울 때."

  무결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분명했다.

  그때 자신이 난입함으로써 목숨을 건진 앳된 치유계 헌터.

  "네, 맞아요!"

  무결이 자신을 알아보자 그녀가 기뻐하며 손뼉을 치려 했다.

  손에 와인 잔을 든 것도 까먹고.

  "어머!"

  그러다가 그만 와인 잔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예쁘게 생긴 것에 비해 상당히 덤벙거리는 성격이군.'

  그렇게 생각한 무결이 떨어지는 와인 잔을 향해 재빨리 손을 내뻗으며 내공을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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