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40 -이름 : 위청천 -상태 : 세뇌(洗腦)됨, 각성자 -고유 스킬 : [나한기공(羅漢氣功)]
-습득 스킬 : [반야대능력(般苦大能方)], [백련신권(白運神拳)]
예전에 TV 속에서 보았던 정보 그대로였다.
위청천이 무림 최고의 정도문파인 '소림사'의 스킬을 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상태 표시에 적힌 한 가지 정보였다.
-세뇌됨.
중국 제일의 헌터 위청천은, 현재 누군가에게 세뇌되어 있는 상태였다.
"반갑군요, 이한철 씨. 당신이 요즘 떠오르는 새로운 영웅이라지요?"
위청천이 피를 닦은 손을 무결에게 내밀었다.
무결이 그 손을 서슴없이 맞잡았다.
"영웅이라니, 과찬이십니다. 진짜 영웅은 제 눈앞에 있는데요."
무결이 선망에 찬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열렬히 손을 흔들었다.
"이것 참, 면전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건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군요."
위청천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전혀 세뇌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순박한 미소였다.
이 모습은 옆에 있는 방송국 기자에게 낱낱이 촬영되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는 중국 국민들이 열광하는 훌륭한 스토리가 완성되는 현장이었다.
오직 위청천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날아온 유망한 한국 헌터.
헌터들이 고전하던 괴수를 홀로 박살 내고 고고한 학처럼 그런 헌터를 반갑게 맞는 중국의 스타 헌터.
중국 국민의 자부심을 고취시킬 만한 훌륭한 그림이었다.
무결은 위청천과의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며 슬쩍슬쩍 전장 곳곳의 헌터들을 [하늘의 눈]으로 훑어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전장 곳곳에는 위청천과 마찬가지로 상태 표시에 '세뇌됨'을 달고 다니는 헌터들이 종종 있었다.
주로 지닌 마력량이 높아 보이는 강력한 헌터들.
혹은 특별한 스킬로 말미암아 지위가 높아 보이는 헌터들이었다.
강력한 헌터와 지휘관급 헌터들이 모두 '어떤 존재'에 의해 세뇌되어 있었다.
'중국에 온 보람이 있군.'
무결은 마침내 심증에 담아두고 있던 한 가지를 확신했다.
각각 흩어져 있던 여러가지 독립 사건들.
이를테면…….
지금 보이는 것처럼 세뇌된 중국의 헌터들.
몬스터 처벌에 있어 완벽한 체계하에 움직이는 중국 당국.
전생에만 있었던 '카이 토벌 사건'.
전생과는 너무도 다른 중국의 국제적 위상.
이 모든 사건에, 한 가지 열쇠를 끼워 맞춘다면, 모든 것이 연결된다.
[광뇌조작(狂腦造作)]이라는 정신 지배 스킬을 가진 각성자.
빌런왕이라고도 불린 희대의 악당. 대악마 카이.
그가 중국내에서 이 모든 일들을 벌이는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카이, 중국에 있었군.'
전생의 카이 토벌 사건은 워낙 극비리에 진행된 사건이었다 보니 무결은 카이가 어디 웅크리고 있었는 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서야 꼬리를 밟을 수 있었다.
"이럴 게 아니라 어디 가서 차라도 한잔할까요?"
위청천이 웃으며 무결에게 제안해 왔다.
무결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좋습니다."
그와 둘이 오래 있을수록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늘어나므로, 무결로서도 바라던 바였다.
무결은 위청천을 통해, 아마도 카이로 예상되는 배후를 파고들어 갈 생각이었다.
'카이, 꼭꼭 숨어 있었군. 덕분에 찾아내는 게 어렵긴 했어.'
찾아다닌 시간에 비해 놈을 찾아내는데 오래 걸리긴 했다.
워낙 꼭꼭 숨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전생에는 없던 크나큰 변수 때문이었다.
그 변수는 바로.
'신무결. 나 자신이지.'
전에 무결 자신과 빌런왕이 조우했던 게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 분명했다.
말하자면 나비효과였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높이기 위해 가능한 한 무결 자신으로부터 파생되는 나비효과를 줄이고자 했지만, 결국 이런 크나큰 변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뭐,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지금에 와서 나비효과를 줄이고자 한 무결의 노력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안 그래도 수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그 위에 '카이' 하나 얹는다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아니었다.
'흠…….그나저나 어떻게 추적한다.'
무결이 위청천을 통해 카이를 찾아 낼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커다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악!!"
"으악!!"
아직 일선 현장에서 물러나지 않고 뒷정리를 하고 있던 헌터들이었다.
모두의 이목이 비명 소리가 들린 곳으로 쏠렸다.
"뭐야, 저거……."
"저런 게 왜 또 나와……."
"아까 '후'가 끝이 아니었어?"
헌터들 사이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무결은 심각한 눈으로 그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저건…….'
-이름 : 가국(假國) -상태 : 분노, 흥분 -설명 : 원숭이를 닮은 생김새로, 엄청난 신체적 능력을 가진 8급 몬스터. 막강한 스킬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에 3미터가 넘는 몸.
등에는 기둥이라고 불러도 좋을 커다란 곤(提)을 이고 여유롭게 걸어 오는 그놈은, 제천대성 손오공의 종족이라 전해지는 전설 속의 요괴였다.
8급이라면, 전에 네 명의 한국 랭커를 한꺼번에 상대했던 강길과 같은 급이었다.
놈이 곤을 한번 휘둘렀다.
놈의 앞을 가로막던 바리케이드가 단번에 부서졌다.
놈이 다시 한 번 곤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놈에게 날아가던 모든 스킬과 포탄 공격들이 터져 버렸다. 놈이 세 번째로 곤을 휘둘렀다.
그를 둘러싸고 다가가던 헌터들의 몸이, 곤봉에 부딪쳐 터져 나갔다.
아무리 위청천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s급 헌터들은 오지 않았다지만, 놈의 앞을 잠시라도 막아서는 헌터가 없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뒤에서 한 마리의 가국이 더 걸어오고 있다는 거였다.
'혼자 상대할 수 있으려나?'
무결이 위청천을 흘깃 바라볼 때, 위청천이 사자후를 내뱉었다.
"모두 물러나!!"
위청천 또한 저 두 마리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힘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모든 헌터가 황급히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 위청천이 당당히 걸어두 가국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온몸에서 금빛 아우라가 넘실 거리기 시작했다.
위청천의 고유 스킬인 [나한기공] 과 습득 스킬인 [반야대능력]이 발휘되는 것이었다.
두 가국의 눈이 위청천에게로 향했다.
이 인간들 무리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가 누구인지 한눈에 파악한 것이다.
두 가국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위청천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끼긱, 끼긱!"
원숭이를 연상시키는 경박한 울음 소리.
하지만 그 띔박질 걸음걸음에는 땅 거죽이 폭발하듯 뒤집어지는 힘이 담겨 있었다.
위청천이 경시하지 못하고 온몸을 바짝 긴장시키며 기수식을 취했다.
그의 온몸이 황금빛 서기로 뒤덮이는 순간.
가국의 거대한 곤봉이 무려 5미터 크기로 커지며, 그를 내려쳐 왔다.
'여의봉?'
무결의 머릿속에 중국의 가장 강력한 요괴 손오공의 상징인 여의봉(如意棒)이 스쳐 지나갔다.
마보와 비슷한 기수식을 취한 위청천의 위로, 가국의 곤봉이 떨어져 내리는 그 순간.
기수식 상태로 움직이지 않고 있던 위청천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콰아아앙!!
순수한 힘과 힘이 부딪치며 퍼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충격파.
그 충격파만으로 주변에 있던 모든 먼지가 밀려났고, 나무가 흔들거리며 나뭇잎이 떨어져 나갔다.
위청천은 주먹을 위로 올려쳐 가국의 곤봉을 막아낸 채로, 서로 대치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발아래의 땅이 움푹 파여 형성된 작은 크레이터 (crater)가 격돌한 힘의 크기를 알려주고 있었다.
한데 위청천을 향한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가국은 한 마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옆구리 부분을, 뒤에서 달려 오던 또 다른 가국의 곤봉이 후려쳤다.
콰아아앙!!
위청천이 다른 한 손을 움직여 그 공격을 막아내었지만, 그 어마어마한 힘에 밀려 대포에서 쏘아진 포탄 처럼 옆으로 튕겨 날아갔다.
퍼어영!
위청천의 옆에 있던 건물 1층에서 요란한 소음과 함께 먼지가 일었다.
쿠구구구.
건물이 약간 기울어 내렸다.
두 가국이 먹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위청천을 따라 건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쾅, 과쾅!
건물 1층에서 연속적으로 폭음이 일며 검은 먼지들이 피어올랐다.
건물에 가려져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위청천과 두 가국이 격돌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잘 알 수 있었다.
쿠구구구궁.
건물이 마침내 그 충격들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위청천과 두 가국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위청천의 한 팔이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던 것이다.
그가…… 밀리고 있었다.
가국 두 마리 중 한 마리의 곤봉이 반으로 꺾여 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누가 봐도 위청천이 손해를 본 격돌이었다.
"지, 지원해야 돼!"
다른 헌터들이 그 모습을 보고 위청천을 돕기 위해 달려들었다.
"크윽!"
위청천이 그런 그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국에게 달려드는 그들의 운명이, 위청천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헌터들이 곤봉이 멀쩡한 가국에게 달려들었다.
주의를 끌기 위해 크게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죽어, 이 개자식아!"
모든 헌터들의 스킬이 그 가국 한 마리에 집중되었다.
특히 적극적인 것이 바로 세뇌되어 있던 지휘관급 헌터들과 상급 헌터들이었다.
상급 헌터들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가국의 움직임을 단 1초라도 묶으려 애썼고, 지휘관들은 목이 터져라 필사적으로 헌터들을 지휘하며 효율적인 방어선을 구축하려 애썼다.
지휘관의 지휘를 받아 꽤나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인 스킬 사격이 이어졌다.
과콰콰쾅!!
가국이 스킬 세례에 파묻혔다.
그러나.
"크르르륵."
그 스킬들은 가국에게 그 어떠한 타격도 주지 못하고, 놈의 분노만 북돋웠을 뿐이었다.
"끼에에엑!"
놈이 분노에 찬 외침을 내뱉으며 헌터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것은, 말 그대로 학살이었다.
"아아악!"
"저 자식, 스, 스킬이 안 통해!"
무식하리만치 높은 신체 스펙과 엄청난 스킬 저항력.
그 두 가지만으로 두 마리의 가국은 이 자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쾅!!
"흡!!"
콰콰쾅!
왼팔이 부러진 위청천과 곤봉이 부러진 가국이 막상막하로 서로의 몸을 부딪쳐 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사이 다른 한 마리의가 국은 말 그대로 다른 헌터들을 상대로 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콰콰콰쾅!!
놈의 단 한 번의 곤봉질에 10명에 가까운 헌터가 온몸이 터져 나갔다.
"1조는 저쪽으로, 3조 뒤로 와서 스킬 준비!"
그럼에도 중국의 헌터들은 기죽지 않고 계속해서 가국을 몰아쳐 갔다.
무결은 조금 감탄한 눈으로 그런 그들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효율적으로 움직이는군.'
그들은 공포 따위는 집에 넣어두고 온 건지, 한 몸처럼 움직이며 가국을 상대해 나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섬뜩했다.
그들은, 같은 헌터의 목숨을 철저하게 '도구'로 보고 있었다.
가국이라는 강력한 몬스터의 발걸음을 단 1초 묶어두기 위해 한 명의 헌터를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모든 움직임이 모두 세뇌된 헌터들로부터 일어난다는 점을 볼 때, 중국의 단결력이 어디서 오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아악!!"
죽고.
"주, 죽어!!"
쾅!
또 죽고.
"으아악!"
또 죽었다.
중국의 헌터들이 마치 개미처럼 쓸려나가고 있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헌터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았음에도 살아 있는 헌터의 수가 1/3가량 줄어 버렸다.
"젠장, 역부족인가!"
중국의 헌터들과 그들을 촬영하고 있던 기자들, 지켜보며 응원하던 시민들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어나갔다.
그때.
무결이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