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35 몇 분 전. (135/215)

  기계신과 함께 135 몇 분 전.

  헌터 협회 상황통제실.

  이곳으로 한 헌터의 메시지가 왔다.

  -실장님, 지금 몬스터들 쫓고 있는 헌터들 전부 안전선까지 물려주세요. 지금 즉시 부탁드립니다.

  '부탁'이란 형식을 띠고 있다뿐이지, 어찌 보면 오만하게까지 들리는 메시지.

  그에 대한 상황통제실의 실장이자 총지휘관인 서동재의 대답은 간단했다.

  "알겠습니다."

  부지휘관 조재호는 지휘관 서동재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실장님, 헌터 한 명의 말만 듣고 여기서 다른 헌터들을 모두 빼다니요! 몬스터들이 후퇴하는 지금이야 말로 절호의 기회……!"

  "괜찮아, 내 말대로 해."

  "하지만……!"

  서동재가 여전히 불만을 표하는 자신의 부지휘관을 조용히 돌아보았다.

  "조 부장, 미안하지만 여기서 다른 선택은 없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시키는 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결국 부지휘관 조재호는 서동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저 사람, 감을 잃은 건가.'

  그는 흘깃 자신의 상관을 바라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상황통제실의 지휘관인 서동재는 현역 헌터이던 시절, 그 적확 하고 빠른 판단력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그가 지휘하던 헌터 팀은 지닌 실력에 비해 한 단계 높은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이제는 그 감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후퇴하는 몬스터들에 대한 추격을 멈춘 것까지는 어떻게 생각하면 이해가 되긴 했다.

  몬스터들의 함정일 수도 있었으니.

  하지만 굳이 헌터들과 군 병력의 방어선을 안전선 지역까지 후퇴시킨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몬스터들이 다시 뒤를 돌아 습격하면 도리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이쪽이 될 터였다.

  조재호는 지휘관 서동재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게 한 헌터를 떠올렸다.

  '신무결 헌터, 당신 때문에 원주시가 파괴된다면 가만있지 않겠어.'

  조재호는 이를 악물며 지시를 내렸다.

  "모든 헌터들에게 전달해 주세요. 지금 당장 자리를 이탈해 설정된 안전선까지 후퇴하라고."

  안전선은 헌터들과 몬스터의 전투 여파로부터 안전한 거리에 설정된 임시기준선이었고.

  "지휘관님의 긴급명령입니다."

  긴급명령은 이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들어달라는 헌터들에 대한 요청이었다.

  명령이 전달되었다.

  상황통제실의 모든 직원이 통제실 전면부에 있는 화면 한편을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헌터들과 몬스터들의 이동 현황이 표시되어 있었다.

  몬스터들은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었고, 헌터들은 모두 후방을 향해 빠지고 있었다.

  단 한 명만 빼고.

  "옵저버 (Observer)들, 신무결 헌터에게 집중해요!"

  조재호의 명령에 따라 원주시 곳곳의 관측용 드론들이 한곳으로 집중 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치직- 치지직-- 모든 드론들에서 노이즈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드, 드론들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통제가 안 됩니다!"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드론의 화면.

  특히 신무결이 있는 위치에 가까이 간 드론일수록 그 현상은 심각했다.

  "드론 14호 신호 두절! 17호 신호 두절!"

  "8호도 신호 두절!"

  "한쪽으로 끌려가다가 신호가 끊겼습니다!"

  그러던 와중.

  "드, 드론 15호 화면에 이상 현상관측! 화면 공유하겠습니다!"

  15호 드론은 이상 현상을 보이는 드론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던 드론이었다.

  상황통제실 전면부의 화면이 드론 15호의 카메라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화면을 본 상황통제실 전체가 술렁 거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화면을 가득 채운 몬스터들.

  몬스터들은 민족 대이동이라도 하는 양 한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질릴 정도로 많은 수의 몬스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통제실 직원들은 그토록 많은 몬스터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사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과연 저것들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저것들을 막지 못했을 때의 끔찍한 참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곧 몬스터에 눈이 적응되니 곧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의 위로, 국지성 스콜(Squall)을 연상시키는 거뭇거뭇한 구름 덩어리가 떠 있었다.

  "화면 확대합니다!"

  하지만 화면이 확대되어서야, 그들은 그것이 구름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저거 철근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아니, 웬 철근들이 저렇게 구름처럼 껴 있어?"

  상황통제실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그리고.

  그 수군거림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쿠궁.

  몇 개의 철근이 처음 내리는 비처럼 땅에 떨어져 내리더니.

  셸 수도 없이 떠 있던 철근들이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쿠과과과과- 땅이 울고, 대기가 울었다.

  그리고 몬스터들도 울었다.

  "꾸에에에엑!"

  사람들이 너도나도 놀란 얼굴로의 문을 토해내는 가운데.

  연이어 경악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파츠츠츠츠- 갑자기 새하얀 빛무리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크윽"

  상황통제실의 직원들이 갑자기 밝아진 화면에 적응하지 못하고 눈을 가렸다.

  파츠츠츠- 빛은 한동안 화면을 채우다가 사라졌다.

  조심스럽게 한두 명씩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치웠다.

  그리고 드러난 참상.

  "세상에……."

  한 사람의 신음소리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대변했다.

  화면 속에 펼쳐져 있는 것은 까만 잿더미로 가득한 폐허.

  철근 세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엄청나게 많은 몬스터가 남아 있었다.

  그 많던 몬스터가 일시에 전부 죽어버린 것이다.

  '이 사태를 예견했다고?'

  부지휘관 조재호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지휘관 서동재를 바라보았다. 아까 신무결의 요청에 따라 헌터들을 모두 물릴 때는 천하에 다시없을 졸장(卒將)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그가 천하의 용장(龍將)처럼 보였다.

  '분명 실장님이 그토록 믿은 신무결이, 이 현상을 만들어냈어.'

  너무 작아서 다른 사람들은 봤는지 모르겠지만, 헌터로서 경이적인 시력을 가진 그는 분명 보았다.

  이 모든 현상을 일으킨 것은, 신무결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그는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던 서동재와, 이 모든 이적(異績)을 일으킨 신무결에게 아까의 결례(缺 禮)에 대해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그때 조재호가 바라보고 있는 서동재는 심각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모든 몬스터가 죽은 가운데, 살아남은 몬스터가 있었다.

  20미터라는 거대한 체고를 가진 몬스터, 거구귀였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지휘관 서동재가 떨리는 눈으로 그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저놈은 아까 당철민을 죽였던 말 몬스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놈이었다.

  '저 녀석이 바로 몬스터들을 이끌던 놈이다.'

  화면 너머로도 놈의 무시무시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 주위의 공기가 기이하게 휘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막대한 마력으로 인해 대기가 굴곡 되는 현상이었다.

  '저놈을…… 과연 잡을 수 있을까?'

  신무결에 대한 모종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조차도, 저 녀석 앞에서는 그 믿음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믿음의 대가를 보게 되었다.

  한 줄기 거대한 빛이.

  콰아아아- 하늘에서 그대로 내리꽂혔다.

  그토록 선명한 일직선의 빛을, 서동재는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아니, 그것은 상황통제실에 있는 누구나가 마찬가지였다.

  빛은 곧 보잘것없이 사그라들며 사라졌다.

  하지만 빛이 남긴 흔적은 보잘것 없지 않았다.

  딱 빛이 내리꽂힌 모양 그대로의 거대한 구멍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 몬스터의 흔적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소멸 (痛減).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완전한 파괴의 현상.

  그것이 도저히 없어질 것 같지 않던 몬스터에게 실현되었다.

  "아……."

  서동재를 포함해, 상황통제실의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화면을 바라보았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초대규모의 몬스터 침공 사태…….

  그중 한국 원주시의 침공은.

  단 한 사람의 헌터에 의해 끝이 났다.

  * * * [갑작스러운 '몬스터 웨이브'에 전세계 '초비상 사태']

  [미국, 몬스터 웨이브에 5개 도시 파괴. 보스는 '리치 (Lich)'인 걸로 밝혀져]

  "쯧쯧."

  기사를 읽던 은하수는 혀를 찼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 사태에 전 세계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몬스터들의 침공에 대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던 나라는, 도시 5개 정도의 '작은' 피해에 그쳤으나.

  [인도네시아, 몬스터 웨이브에 '15 개 도시' 지도에서 사라지다]

  대비가 덜 된 나라는 엄청난 물적/ 인적 손실을 입었다.

  이걸로 잠시 주춤했던 몬스터에 대한 공포가 다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웨이브 정리까지 단 하루.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한국, 헌터 최강국임을 입증]

  대한민국은 원주시 외곽 일부가 파괴되긴 했지만, 다른 웨이브 피해를 입은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는 거의 없다시피 한 피해로 웨이브를 저지한 유일한 국가였다.

  웨이브에 희생된 자들을 추모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는데 대한 자부심이 한국 국민들을 들뜨게 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이 사태가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 사태의 마지막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았다.

  현장에 참여했던 헌터들마저도 막 판에 가서는 헌터 협회의 요청에 의해 전선을 뒤로 물렸을 뿐이라는 증언이 이어지면서, 시선은 그 요청을 내렸던 헌터 협회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헌터 협회, '정보 비공개 요청으로 웨이브 사태 밝힐 수 없다']

  이와 같은 입장 표명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밀이라고 하면 할수록 그것을 더 알고 싶어 하는 희한한 속성이 있었다.

  온 국민이 궁금함에 아우성을 쳤다.

  그러자 헌터 협회는 마지못해서 내 놓는다는 듯이 한 가지 기사를 더 내놓았다.

  [몬스터 웨이브 물리친 것, 단 한 명의 헌터.]

  당연히 한국은 난리가 났다.

  이 심각한 사태를 단 하루 만에 해결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것이 단 일인에 의해 일어난 업적이었다니.

  사람들은 더욱 헌터 협회를 긁어대었지만 이번만큼은 헌터 협회도 꼼짝하지 않았다.

  그 정도 정보를 알려준 것도 사실 그들로서는 조금 무리한 거였으니까.

  "이 사람들 안 되겠어, 이거. 내가 그렇게 비밀로 해달라고 그랬는데."

  은하수가 못마땅한 듯 기사 속 '헌터 협회'라는 글자를 노려보았다.

  그는 헌터 협회에 압력을 넣어서 무결의 신상 정보 공개를 최소화하고 있었다.

  은하그룹은 헌터 협회에 막대한 자원을 지원해 주는 '큰손'이었기 때문에, 헌터 협회로서도 그의 요청은 충실히 들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협회로서도 국민 분위기를 호의적으로 돌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지, 능구렁이처럼 스리슬쩍 한마디를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한마디로 인해 한국에서 '영웅' 이 탄생했다.

  비록 그것이 얼굴 없는 영웅일지라도, 사람들은 그 영웅의 이미지에서 '희망'을 읽었다.

  그것이 이번 웨이브 사태로 다치고 놀란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국민들은 이번에는 신이 나서 '영웅 찾기' 놀이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실상에 근접 해 있었다.

  최상위 랭커 중, 유일하게 비공개 처리 된 인물.

  랭킹 7위의 ???에게 많은 이목이 쏠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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