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33 통상적으로 헌터들은 협동 사냥에 익숙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보다 여럿이 파티를 이루어 함께 사냥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그렇듯, 예외는 존재했다.
한국 랭킹 6위의 헌터 현수길이 바로 그 예외의 경우에 속했다.
아니, 사실 어쩌면 현수길이야말로 협동 사냥의 대가라고 할 수 있었다.
협동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 특별하긴 했지만.
헌터가 되기 전장의사였던 그가 헌터가 되어 얻은 스킬은 [죽음의 친구]란 스킬이었다.
시체가 제 모습을 찾게 염습(務裝) 해 주면 헌터든 몬스터든 가리지 않고 시체를 부릴 수 있게 되는 스킬.
염습이 얼마나 완벽하게 되었느냐에 따라 심지어 이들은 생전의 능력을 어느 선까지 재현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전장은 보물창고였다.
부릴 수 있는 시체가 지천에 널려 있었으니, 시체를 염해 부리기만 하면 된다.
사지만 대충 갖춰주면 죽어 있던 헌터가, 몬스터들이 자신만을 위해 싸워준다.
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 능력인가?
하지만 이 능력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비열하다느니, 죽은 자의 영면을 방해한다느니 하는 개소리가 너무 많았다.
특히 시체의 지인이라도 나타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세상 욕이란 욕은 다 먹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혼자 움직이는 게 편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혼자 움직인 게 후회되었다.
살아 있는 헌터들이 곁에 있었더라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주변을 지키고 있던 시체들이 모조리 쓰러져 있는 지금, 그를 지켜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으, 으아!"
현수길이 뒷걸음질 치며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어둠이 덮쳐들었다.
* * *
"푸르릉-"
거대한 말이 오만한 눈으로 지상의 인간들을 내려다봤다.
지상에는 네 명의 헌터가 헐떡거리고 있었다.
네 헌터는 지금 죽을 맛이었다.
"덩치는 큰데…… 헉헉, 왜 저렇게 빨라."
"피부도 너무 단단해, 헉헉. 암기 하나하나에 전력을 안 실으면 박히지가, 후, 않아."
당효민과 당철민이 심각하게 말했다.
"저 몬스터, 마법을 알고 있는지 제 캐스팅을 방해하고 있어요. 이거 어쩌지."
서소아가 입술을 질끈 물며 중얼거렸다.
그때 김소유가 소리쳤다.
"다시 와요!"
거대한 말이 앞발을 들었다가 강하게 지상을 내려쳤다.
그러자.
지잉─── 땅속을 거대한 파동이 달리더니…….
일행의 발밑을 지나쳤다.
"……?"
당효민과 당철민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서소아는 사색이 되었다.
"모두 일단 후퇴……!"
그러나 그녀의 외침은 한발 늦었다.
쿠구구구!
그들의 뒤로 두꺼운 흙의 벽이 솟아올랐다.
퇴로 전체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명백한 마법이었다.
그리고 말이 입을 쩌억 벌렸다.
"이건……! 이번 브레스는 느낌이 이상해요! 제 뒤로 오세요!!"
서소아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안돼! 너무 멀어!"
"일단 우리끼리 막는다!"
당철민과 당효민이 이를 악물었다.
서소아는 불안한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김소유에게 소리쳤다.
"소유 씨, 버프 최대한으로 부탁해요!!"
"네!"
김소유가 스킬을 최대한으로 발휘 하는 바로 그때.
거대한 말의 아가리에서 브레스가 발사되었다.
두 줄기의.
하얗고 노란 초고온의 브레스가.
네 헌터를 뒤덮었다.
"아… 아악!!"
"형??!!!"
"꺄아아아아악!"
당철민과 당효민, 서소아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당철민 헌터, 브레스에 직격했습니다! 당효민 헌터의 앞을 막아서며 대신 당한 것 같습니다!"
헌터 협회 상황통제실은 브레스에 직격당한 네 랭커의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했다.
"아앗! 당철민 헌터, 생명 반응이 급속도로 사라지는 중입니다!"
"젠장, 서소아 씨는?"
상황통제실의 지휘관인 서동재 헌터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초조하게 물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정신을 잃었습니다!"
"미치겠네."
지휘관 서동재가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지금 그곳으로 지원 가고 있는 랭커는?"
"현수길과 신무결, 두 헌터입니다!"
"최대한 빨리 가달라고 부탁해!"
"넵!"
"젠장, 둘 다 액션 캠 장착을 허락하지 않는 헌터라 뭐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진작 중앙으로 가줬으면 좀 좋아?"
상황통제실의 누군가가 투덜거렸다.
"헌터들의 프라이버시와 작전권은 존중해야지. 지금이라도 가주는 게 어디야? 근데 다른 지역에서 출발한 랭커들은 몇이나 돼?"
서동재가 그런 직원을 토닥이며 원주를 지원하러 출발한 다른 헌터들의 현황을 물었다.
"두 명이 아까 각각 인천과 일산에서 출발했습니다만 아직 도착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젠장, 역시 믿을 건 신무결 헌터 밖에 없나."
서동재가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들은 부지휘관이 살짝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실장님, 전부터 신무결 헌터를 너무 고평가하시는 것 아닌가요? 지금 저게 랭커 한 명이 개입한다고 달라 질 상황 같진 않습니다만……. 예전부터 신무결 헌터의 팬을 자처하신 건 알지만, 업무에까지 팬심이 너무 들어가면 좀 곤란합니다?"
그 말에 되려 서동재가 피식 웃었다.
"그래, 계속 너처럼 보아주는 사람 뿐이면 얼마나 좋을까."
"예?"
"아니, 뭐, 너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야 우리 클랜에도 기회가 올까 싶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일 것 같고."
서동재가 입맛을 쩝 다셨다.
"한번 지켜보자고. 그가 이번에도 끝까지 그 날개를 감출 수 있을지."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아니면 마침내 그 숨겨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지."
* * *
"형, 형."
당효민이 전신이 새까맣게 익어버린 형 당철민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당철민은 브레스에 휩싸이기 직전, 당효민을 껴안고 온몸의 내공을 끌어올려 브레스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냈다.
"정신 차려, 형……. 일어나……."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 당효민은 어릴 적 떼쓰던 것처럼 당철민을 안고 칭얼거리고 있었다.
과도한 스트레스 속에서 잠시 유아 퇴행 현상을 겪는 것이다.
그때 당철민의 손가락이 잠깐 꿈틀 했다.
"형? 형!"
당효민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계속해서 형을 불렀다.
당철민은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려 당효민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새…… 끼 울기는……."
개미 기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
하지만 당효민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일어나, 형……. 형이 일어나면 안 울게. 일어나라, 응?"
"효민……아."
"말해, 형. 다 들을게. 무슨 말이든다 들어줄 테니까 일어나기만 해주라."
"우리…… 당문…… 살리기로 했잖아."
"응, 맞아. 형이랑 내가 같이 일으켜 보자고 했잖아. 둘이서."
"미안……하다."
"뭐가?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미안할 거면 하지 마, 하지 마라고!!"
당효민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마! 말하지 말고 기운 아껴! 아끼란 말이야!"
"당문…… 잊고 네 삶을 찾아 가……. 사랑한……다 동……생……."
툭.
결국 당철민의 마지막 호흡이 다했다.
"으어, 으어! 으아!!!!"
당효민이 당철민을 끌어안고 오열 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혈육마저 죽어 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아!!"
처절한 오열.
그러나 저승의 강을 건넌 당철민의 영혼이 다시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김소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암울한 눈으로 그런 당효민과 죽은 당철민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신소아의 몸에 치유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쿨럭……."
신소아가 기침을 하며 깨어났다.
"아…… 소유 씨?"
그녀가 자신에게 무릎베개를 하고 있는 김소유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김소유는 그저 침잠된 눈으로 신소아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보스 몬스터……는요?"
그 말에 김소유가 흘깃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소아의 눈도 그런 그녀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소아의 입에서도 절망 섞인 탄식이 토해졌다.
말 모양의 보스 몬스터가, 그런 네 헌터를 흥미로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신소아가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 했다.
그때.
치익.
-들리십니까? 당효민, 신소아, 김소유 헌터님! 그쪽으로 곧 지원군이 갈 겁니다! 조금만 버텨요!!
상황통제실로부터 무전이 들려왔다.
-현수길 헌터님과 신무결 헌터님이 곧 다다를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신소아와 김소유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들었어요, 소유 씨? 우리 조금만 더 눈치 보며 버티면 돼요."
신소유가 아직 당장은 공격할 기미가 없어 보이는 보스 몬스터의 눈치를 흘깃 살피며 말했다.
"네, 무결 오빠가……!"
"현수길 헌터가 오신대요!"
둘이 거의 동시에 소리쳤지만 김소유의 말은 신소아의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둘은 서로 다른 구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이 누구든 간에, 절망이 잠식했던 둘의 마음속에는 공통적으로 다시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통제실의 말대로, 곧 구원군이 도착했다.
콰앙.
말 몬스터가 형성해 놓은 흙의 벽 한쪽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곳으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저벅저벅.
먼저 도착한 것은…….
개량한복을 입고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헌터.
현수길이었다.
그런데 그의 뒤에는 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대부분이 성인이었지만 아이도 둘 섞여 있었다.
"현수길 헌터님!"
신소아가 반색하며 일어나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는 현수길에게 달려갔다.
현수길이 신소아에게 고개를 들었다.
한데 그는 이상한 빨간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아, 신소아 씨."
현수길이 금세 지척에 다다른 신소아에게 미소 지었다.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오실 줄 믿고 있었어요. 근데…… 철민 씨가 당했어요."
그녀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제가 한발 늦었군요. 하지만 걱정마십시오."
현수길이 빙긋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 제가 먹어드릴 테니까요."
"아, 막아주신다고요? 네, 현수길 헌터님만 믿을게요. 그런데 저 놈……."
신소아가 아직도 이쪽을 흥미롭게 내려다보고 있는 말 모양의 보스 몬스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신소아의 뒤에서 있던 현수길의 입이 갑자기 거대하게 커지더니.
꿀꺽.
신소아를 한입에 삼켜 버렸다.
"아니, 먹어드린다니까요."
현수길이 입맛을 스윽 다시며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상황통제실의 사람들도, 김소유도 한순간에 얼어 붙어 버렸다.
그의 눈이 이번에는 김소유를 향했다.
현수길이 등장한 순간부터 신소아와 현수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소유가 얼어붙어 버렸다.
김소유가 고개를 돌려 당효민을 바라보았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여전히 당효민은 당철민을 끌어안은 채 오열하며 이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다.
저벅저벅.
김소유가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현수길을 바라 보았다.
"아, 아아……."
그녀가 뒷걸음질 치다가 말 몬스터가 만들어놓은 흙의 장벽에 막혀 주저 앉았다.
"흐흐……."
현수길의 입이 아까 신소아를 집어 삼킬 때처럼 커다랗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소유가 덜덜 떨며 망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무결 오빠……."
그녀가 결국 마지막까지 오지 않은 구원군을 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왜 불러?"
그녀의 앞을 한 남자가 가로막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