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32 군인들은 요괴종 몬스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갔다.
고블린과 오크 같은 최하급 몬스터가 아닌 이상, 총칼로 무장한 병사들이 몬스터를 당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나 신출귀몰한 요괴종들은 사람의 이목을 속이며 접근하는데 능통해, 병사들은 두 눈 뜨고 뒤에서 그림자처럼 나타난 요괴들에게 신체 일부를 먹이로 내어주며 비명에 갔다.
위험한 것은 탱크 속에 있는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요괴종 몬스터들은 두꺼운 철판으로 사방을 감싼다고 막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머, 재미있는 장난감에 타고 있네요?"
"주, 죽……."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와 뒤를 돌아 보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탱크 속에서 포격을 가하고 있던 병사들은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자신들의 몸속 장기가 사라져 있다는 것을.
그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 헐떡이며 죽어갔다.
그중 한 명이 총을 빼들어,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총을 겨누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장기가 사라졌지만, 분명 누군가가 자신들의 장기를 빼 갔지만, 탱크 속에는 자신들 외에는 그 어떤 존재도 보이지 않았다.
"어…… 엄마……."
털썩.
결국 전차병들은 자신들을 죽인 존재를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타고 있던 탱크 속에 얼굴을 박으며 쓰러졌다.
곳곳에서 동료들이 죽어간다.
군인들은 언제 자신의 차례일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방어선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켰다.
어찌 무섭지 않고, 어찌 도망가고 싶지 않겠는가.
국가에 대한 의무라는 이름만으로 목숨을 걸기에, 그들은 너무나 젊고 창창한 청춘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은 국가에 대한 의무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물러선다면 다음 타깃은 그들보다도 힘없는 일반인들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저지선에 버티고 선 것이었다.
그들마저 물러선다면 뒤에는 사람들의 절규 속에서 벌어지는 몬스터들의 잔치가 열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언제 멱줄이 따일 줄 모르는 극심한 공포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죽어, 이 개새끼들아!!"
군인들은 공포를 악으로 견뎌내며 전방을 향해 총알을 갈겨댔다.
다행히도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하나가 더 있었다.
"이 새끼들 비물질 상태로 이동하는 것 같아! 물리 공격 말고 스킬로 타격해!!"
"[파이어 스트라이크]!"
끼이엑-!
혼령 상태로 이동하던 몬스터 하나가 헌터의 스킬에 맞아 소멸했다.
"효과 있다! 속성 스킬 있는 사람들, 마법사들! 전방 말고 후방에 침투한 녀석들부터 정리해!"
"오케이!"
군부대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헌터들이 적극적으로 몬스터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군인 여러분은 전방 포격에 집중 해 주세요! 여러분의 안전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헌터들이 유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사람들 사이에 침투한 몬스터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요괴종답게 혼령 상태의 몬스터들이 너무나 많았다.
귀신처럼 낄낄거리며 들러붙는 요괴들 때문에, 아직 외기 발현이 불가능한 무인들은 대부분 속수무책으로 도망 다닐 수밖에 없었다.
"제에에기랄, 이 코 묻은 손수건 같은 새끼들이!!"
무인 계열 헌터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그들에게도 방법이 생겼다.
"은하그룹제 총 가진 사람!"
"나!"
"나! 왜 그래?"
"총에 마총(魔銃) 모드 있는데, 그거 켜면 이 비물질 새끼들 타격할 수 있어!"
"아, 진짜?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도망만 쳤네, 젠장. 이 개애애자식들 다 죽었어!!"
두두두두- 끼엑!
"이야, 역시 은하그룹제가 좋긴 좋아? 평소엔 이런 기능을 총마다 꼭 넣었어야 했나 싶었는데, 선견지명이 있었던 거군."
"그 그룹 예전부터 이상한 거 만드는 걸로 유명했잖아? 근데 신기한게 지금 와서 보면 다 쓸모가 있는 거더라고. 도대체 어떻게 알고 만드는 건지, 원."
"아무튼 조져 버려!"
두두두두두- 무인 계열 헌터들은 특기인 기동성을 살려 후방에 침투한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다.
"누가 우리 아가들을 이렇게 죽이는 거죠?"
나른한 여자의 목소리.
"으악!!"
여우 귀의 여자가 홀연히 나타나 신나게 요괴들을 쏘아대던 한 헌터의 가슴을 손으로 꿰뚫었다.
그녀의 희고 고운 손과 그녀의 손에 들려 펄떡거리는 새빨간 심장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젠장, 백여우다!"
"7급종이야! 모두 도망쳐!!"
"어머, 그렇게 가시면 소녀가 섭해요."
백여우라 불린 요괴가 싱그립게 미소 지으며, 새빨간 피로 물든 손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저는 백여우가 아니라 불여우랍니다."
화르륵-!
헌터들이 도망치던 곳에서부터 새파란 불길이 솟아올랐다.
"이깟 불길!"
헌터들은 코웃음 치며 그 불길을 뛰어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화륵- 불길 속에서 불의 공들이 솟구쳐 불길을 뛰어넘으려던 헌터들의 몸에 붙었다.
"뭐, 뭐야, 이거!"
"제 이름이 괜히 불여우겠어요? 여우불이라고 부르는 것이랍니다."
"으아악! 불이 안 떨어져!!"
불길은 불을 끄려는 헌터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꺼지지 않고 야금야금 헌터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불여우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헌터들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불여우의 불은 '붉다'는 의미 아니었어?"
한 헌터가 괜한 딴지를 걸며 주변을 필사적으로 모색했다.
하지만 탈출로가 보이지 않았다.
"아닌데요~ 불을 잘 써서 불여우 인데요~?"
불여우가 손가락을 까딱해 여우불 속에서 불씨들을 무수히 많이 띄워 올렸다.
"자, 노릇노릇하게 익어주세요! 생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익힌 것도 싫지는 않거든요~"
"뭐래! 미친 변태요괴인가?"
"젠장, 이렇게 죽느니 다 같이 덤벼들어!"
"죽여!!"
헌터들이 죽음올 각오하고 불여우에게 달려들었다.
"어머, 좋아요. 나는 정력 넘치는 남자들이 더 맛있더라."
불여우가 뒤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넘더니, 그대로 여우불이 되어 다른 불길들 속으로 녹아들었다.
헌터들의 공격은 허무하게 불길을 통과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젠장……."
목표를 잃은데다 사방을 둘러싼 불길에 도망칠 수도 없던 무인들은 총을 들어 불길을 향해 내갈겼다.
눈먼 총알에 불여우가 맞길 바라며.
하지만 으아악!!
"
"아아아악!"
결국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싸며 좁혀온 불길에 갇혀, 도망치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타올라 버리고 말았다.
"음~ 역시 마법사보다는 이쪽이 내 취향이란 말이지?"
불길 속에서 나타난 불여우가 행복에 겨워하며 무인들을 먹어치웠다.
그때.
피피피핑- 갑자기 어디선가 바늘 무더기가 불여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어멋! 뭐야, 이 공격은!"
작디작은 바늘에 담긴 막대한 기운을 느낀 불여우가 깜짝 놀라 여우불로 변해 그 공격을 피해 도망쳐 버렸다.
타다다닥.
바늘은 그대로 불여우가 있던 자리에 내리꽂혔다.
"젠장, 늦었나."
자리에 다다른 무인 하나가 주위에 타죽어 있는 헌터들을 보며 착잡해 했다.
"역시 요괴 아니랄까 봐 귀신같이 빠르군. 이쪽에 7급 종이 있단 연락을 받고 급히 왔건만."
"계속 사냥하다 보면 또 나타날 거야, 형."
그를 뒤따라온 다른 무인 하나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헌터협회로부터 랭킹 8위와 19위로 랭크된 당철민과 당효민 형제였다.
"으아악!"
"저쪽도 위험해, 형, 가자."
"그래."
두 형제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천화우].
촤악- 형 당철민이 품속에서 무수히 많은 암기를 꺼내 흩뿌렸다.
강한 힘을 담은 암기들이 소나기처럼 하늘을 물들였다.
투두두둑.
암기들은 빗살처럼 날아가 날뛰고 있는 몬스터들의 몸속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작은 녀석은 마리당 하나씩.
큰 녀석은 마리당 서너 개씩.
하지만 그 작디작은 암기에 몬스터가 쉬이 죽을 리가 없다.
여기서 동생 당효민의 특기가 발휘 됐다.
[맹독증폭].
그가 스킬을 사용하자 암기가 박힌 몬스터들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경련하기 시작했다.
암기에 발라져 있던 극독이 그 위력이 증폭되며 몬스터들을 급속히 중독시켰다.
털썩털썩.
일시에 백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쓰러져 버렸다.
형제의 협공의 결과였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랭커들도 분전하고 있었다.
"좋아요! 버프 그대로 유지하세요!!"
"네, 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단연 서소아와 김소유였다.
둘은 서로 정반대인 성격과는 달리 꽤나 잘 맞는 콤비였다.
"갑니닷!"
서소아가 [블링크]를 사용해 몬스터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크르르륵!"
그녀의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나타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프로스트 노바].
땅!
서소아가 땅바닥에 지팡이를 내려 쳤다.
그리고- 파치직!
그녀가 지팡이를 내려친 땅에서부터 반경 30미터 공간이 새하얀 얼음으로 뒤덮여 버렸다.
그녀를 향해 달려들던 몬스터들을 비롯한 모든 몬스터가 새하얀 얼음의 조각상이 되어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블링크].
서소아가 다시 자신이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당신, 버프 정말 대단해요! 평소였다면 제 마법은 저런 위력이 안 났을 텐데!"
서소아가 감탄하며 김소유를 칭찬했다.
"저, 저런 걸 해내신 소아 씨야말로 대단해요. 마법은 계산이 어려워서 무척 어렵다고 들었는데……."
김소유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제가 좀 똑똑하긴 하죠. 호호호!"
서소아가 김소유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호호 웃었다.
얼어붙은 몬스터들은 군의 포격이 금세 정리해 버렸다.
원주의 중앙 전선은 랭커들의 활약에 의해 큰 무리 없이 정리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성가셨던 여우인간은 당씨 형제의 협공에 어디론가 사라졌고, 다른 몬스터들 또한 서소아와 김소유의 활약 덕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지나친 낙관이었다.
갑자기 전장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전장 일부의 햇빛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몬스터의 출현.
"어, 어……?"
"뭐야, 이 기운은?"
당철민과 당효민, 서소아, 김소유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대한 존재감의 몬스터에 당황했다.
"아무래도……."
"저놈이 바로 정찰대가 말했던 보스인 것 같지?"
당철민과 당효민이 갑자기 지상에서 입어난 10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몬스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까지 그 어떤 전조도 없다가, 갑자기 지상에서 우뚝 솟아난 그 녀석은, 그 크기와 존재감을 생각하면 미스터리 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잘 숨기고 있었다.
그 몬스터는 사족보행형 몬스터였는데,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몸에 말의 머리, 그리고 땅에까지 늘어지는 긴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말과 비슷해 보였으나 그보다 더욱 세고 날렵해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놈은 위아래가 쭉 째진 노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저 눈, 보고받은 노란 눈이 저 녀석이군요. 보스예요."
서소아가 중얼거렸다.
그때 갑자기 그 보스 몬스터가 입을 벌렸다.
"설마 저렇게 말처럼 생겨서 브레스 같은 걸 쏘려는 건 아니겠지?"
서소아가 기가 막혀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보스 말 몬스터는 그녀의 기대를 배신했다.
화르륵- 빨갛고 노란 불길이 그 거대한 입의 목구멍에서부터 시작되어 뿜어져 나왔다.
"제길."
서소아가 황급히 마법을 펼쳐 주변 지역을 둘러싸는 보호막을 발현했다.
화르륵- 악마처럼 날름거리는 지옥의 불길이 군부대 전체를 휩싸 버렸다.
"으악!"
"사, 살려줘!!"
그 불길 속에서 군인들은 몸이 녹으며 죽어갔다.
당씨 형제는 황급히 경공을 발휘해 놈으로부터 멀어지며 몸을 내공으로 감쌌다.
"크윽."
"이 불길, 그 불여시보다 더해."
당씨 형제가 치를 떨었다.
그들은 내공을 발휘해 도망간 덕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지나온 자리에는 불길에 휩싸여 죽어간 군인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순식간에 수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크악!"
"살려줘!!"
온몸이 불타며 죽어가는 군인과 헌터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 천지를 울려 퍼졌다.
-안 되겠다. 소아 씨, 소유 씨! 저놈 잡으러 우리가 들어가죠!
서소아의 무전에 당효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헌터들 지원을 조금 기다리는 게……."
-그들은 와봤자 소용없어요! 저 브레스는 랭커가 아니면 못 버틸 것 같아요. 저 녀석…… 추정 8급 몬스터입니다.
"……알았어요. 그 수밖에 없겠네요."
서소아가 이를 악물었다.
"소유 씨, 저쪽으로 들어가려는데 괜찮겠어요?"
"저도 헌터니까요."
서소아의 물음에 김소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소유 씨는 제가 목숨 걸고 보호할게요. 그럼 가죠."
"네."
네 사람의 헌터는 보스 몬스터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 * * 전장을 이동하고 있던 무결이 갑자기 느껴지는 막대한 힘의 파동에 고개를 돌렸다.
'……저쪽인가. 으음, 조금 이상한데.'
무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저 정도면…… 조금 위험 하군. 어쩔 수 없지. 가봐야겠어.'
그가 달리던 방향을 바꾸어 달리기 시작했다.
김소유 외의 랭커들이 있는 방어선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