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29 은하수의 연구실.
단 세 명만이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 신무결.
은하그룹 후계자이자 과학부문장 은하수.
그리고 현 은하그룹 마법부문장 엘리스.
"두 사람에게 줄 선물을 가져왔어."
"뭔데? 빨리 꺼내봐."
은하수가 나를 재촉했다.
엘리스는 말은 안 했지만 은근히 재촉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갔다 온 던전에서, 이걸 얻었어."
두 사람의 뜨거운 눈길 속에서나는 [아크 앤젤 설계도]의 도면을 펼쳤다.
"이, 이건……?"
은하수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뭐야, 하나도 모르겠잖아."
실망했다.
반면 엘리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도면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이건…… 마법 병기예요."
그녀의 눈이 정신없이 설계도를 훑었다.
"세상에…… 이렇게 고차원적인 마법이……!"
그녀가 설계도에서 눈을 돌리지 않은 채로 경악했다.
그러다 조금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제 수준에서는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이에요."
"그래도…… 어느 정도 해석할 수는 있죠?"
나는 약간 조바심을 내며 말했다.
내가 아는 한 최고의 마법이론가인 엘리스가 여기 있는 설계도의 마법을 이해할 수 없다면, 지금은 이 설계도를 이해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전생에서는 이 '타이탄의 설계도'를 시작으로 마도과학병기 [기간테스]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 하는데, 만약 엘리스가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연구 자체의 출발은 더 늦어진다고 볼 수 있었다.
"으음…… 어렵겠지만 한번 해석해 볼게요. 여기 이쪽 마법진은 그나마 실마리가 보이니 조금씩 풀어가다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공교롭게도 '빛의 마법서'에서 보았던 술식들이 눈에 띄네요. 하나하나 차근 차근 대조하며 연구해 봐야겠어요."
엘리스가 의욕을 불태웠다.
신중한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한테도 선물이라 한 이유는 뭐야?"
은하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듣고 놀라지 마, 큭큭."
내가 은하수의 표정을 보며 뜸을 들였다.
"아, 뭔데 빨리 말해."
은하수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그러나 그 눈에는 조금씩 기대심이 차올랐다.
내가 허튼소리 하는 성격이 아닌 것을 아니까.
"놀랍게도 이 타이탄을 타고 '공간'과 관련된 마법을 경험했어."
"……!"
은하수가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하수에게 던전에서의 경험을 일부 들려주었다.
주로 [아크 앤젤]의 공간 관련 스킬을 위주로.
은하수에게 있어 지금 최고의 난제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이었다.
현대물리학에서 아인슈타인이 정립한 상대성이론이 지금까지의 은하수를 구성하는 한계였다.
그리고 지금, 은하수는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하지 않고는, 즉 '깨달음'을 얻지 않고는 특정 분야의 다음 연구가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비록 과학과 다른 마법 분야라고는 하지만, 그 실증적인 현상을 관찰할 도구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은하수는 새로운 실마리를 하나를 거머쥔 셈이었다.
은하수가 뜨거운 눈길로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엘리스."
"네?"
엘리스가 느끼한 은하수의 눈빛에 화들짝 놀랐다.
"필요한 지원은 아끼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은하수가 다다닥 다가와 엘리스의 손을 양손으로 감쌌다.
"제발, 제발 이거 좀 빨리 해석해 주세요."
그가 간절한 눈으로 엘리스를 올려 다보았다.
저러니까 꼭 이모한테 장난감 사달라고 매달리는 초딩 같다.
체격도 그렇고, 태도도 그렇고.
"여,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엘리스가 벌써부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수 옆에 있으면 엘리스도 한가 할 새가 없을 듯하다.
뭐, 원래부터 성실한 성격이긴 했지만.
"그건 그렇고, 비공정 건조는 잘돼 가?"
"으음, 솔직히 아직 많이 손봐야 돼. 필요한 기술력이 많이 부족하기도 하고. 저번에는 진짜 그냥 '날아가는' 기능만 실험한 거였으니까. 네가 좀 더 힘써줘."
"오케이."
은하수의 '힘써달라'는 것이 좀 더 던전을 돌며 기술력을 모아달라는 부탁임을 안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베히모스 월드, 정말 좋더라. 안에 들어가면 위험할 일도 없고, 거기 있는 자원들은 또……."
은하수와 나, 엘리스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사람들은 순위 매기기를 좋아한다.
특히 중요한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누가 수능시험 1등을 했는지.
누가 올림픽 어느 종목에서 1등을 했는지.
어느 기업의 순이익이 1등을 찍었는지.
순위가 곧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항상 무엇이 더욱 가치있는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가치를 증명해낸 대상에게 더욱 마음을 주고, 응원을 보낸다.
순위를 매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런 마음은, 물론 던전시대가 열리고서도 변함이 없었다.
던전시대가 열리고,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안전을 책임지게 된 '헌터'들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들은 항상 궁금해했다.
[가장 몬스터를 많이 잡은 헌터는?]
[가장 많은 던전을 클리어한 헌터는?]
[가장 강력한 몬스터를 처치한 헌터는?]
이런 것들은 지표로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헌터 협회가 헌터들의 관리를 위해 충실히 이런 지표들을 기록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장 많은 몬스터를 잡아 준 헌터에게 감사했고, 가장 많은 던전을 클리어한 헌터에게 열광했으며, 가장 강력한 몬스터를 처치한 헌터를 존경했다.
그들은 스타였다.
하지만 몇 가지 지표에서는 최고의 헌터를 알 수가 없었다.
-???
1등의 이름이 이와 같이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헌터 협회는 개인 정보 비공개 신청을 한 자에 한해서 순위 표시에서 이름을 ???로 표시했다.
그렇게 ???로 표시된 지표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지표도 있었다.
[A급 이상의 헌터 중, 던전 클리어 율이 가장 높은 헌터는?]
-1위 100% ???
-2위 84% 박대수 -3위 82% 강진석 1위 옆에는 이름이 없었지만 비고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62개 중 62개의 던전 클리어.
이 기록은 때때로 헌터들 사이에서도 거론되고는 했다.
"이 물음표 이 사람, 일부러 쉬운 던전만 찾아서 도는 걸까?"
"그러지 않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60개가 넘는 던전 중에 한 개를 실패를 안 해?"
"아마 남들이 실패하고 나온 던전을, 실패자들의 경험담을 들은 다음 철저해서 준비해 가는 거겠지."
세 명의 헌터가 스마트 워치에 표시된 헌터 협회의 지표를 보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여기 [현대 장르던전을 가장 많이 클리어한 헌터는?]의 1위도 물음표네. 다른 두 장르는 이름이 있는데."
"그 외에도 몇 개가 물음표네. 설마 다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
"설마."
그들이 그렇게 시시덕거리고 있을 때, 다른 헌터가 다가왔다.
"야, 너네 경계 똑바로 안 설래? 몬스터한테 뒤져봐야 정신 차릴 거야?"
"아, 대장님, 거 너무 빡빡한 거 아니에요? 벌써 여기서 4시간 근무서고 있다고요."
"4시간이고 40시간이고 몬스터가 너 피곤한 거 사정 봐주며 나타나 디? 그건 그렇고, 뭐 보고 있었냐?"
그들의 대장 격인 헌터도 말로만 적당히 핀잔을 주고는 이들과 어울렸다.
그도 경계 서는 헌터들의 고되고 힘든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공개된 헌터 협회 지표별 순위입니다. 심심해서 보고 있었죠."
"참 협회도 별걸 다 발표하고."
"사람들이 원하니까요."
"하긴 힘든 시기인데 이런 거라도 보면서 위안 삼고 싶어 하지, 사람들은."
"저희도 마찬가지죠. 이 사람들 보면 그래도 좀 안심되잖아요?"
"그건 그래. 이 사람들 아니면 지금 우리 한국이 무사했을까?"
특히나 순위권에 있는 헌터들은 최근 빈번하게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해낸 영웅들이었다.
여기 지표에 보이는 헌터들은, 꼭1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개개인이 수 백에서 수천의 목숨은 구한 자들.
헌터들로서도 동경하고 우러를 수 밖에 없는 유명 인사들이었다.
"여기서 물음표 표시된 사람들 말 이에요.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하지. 근데 나는 이 사람이 제일 궁금하다."
그가 한 자료를 가리켜 보였다.
[헌터 협회 선정 대한민국 탱커 30 인]
그중 대부분이 이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유독 비어 있는 자리가 눈에 띄었다.
-7위 ???
"안 그래도 지금 7위가 비공개된 걸로 다들이 사람 누군지 추측하는 걸로 난리예요. 근데 신기한 게 뭔 줄 아세요?"
"뭔데?"
"7위쯤 되면 우리나라에서 짐작가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누군지 도무지 다들 감을 못 잡고 있다는 거예요. 7위쯤 될 만한 사람들은 이미 랭킹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
그가 그렇게 말을 이어가려 할 때였다.
"잠깐."
대장이 그의 말을 끊었다.
"……?"
"뭔가 못 들었어?"
지금 그들은 경기도 외곽, 몬스터 경계지 부근에서 경계를 서던 중이었다.
경계를 서는 헌터라 함은, '감지'와 '탐색'에 있어서 수위에 이른 자들.
그들은 즉시 자신들의 감지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그 즉시 몬스터들의 이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흔한 일이었다.
으레 던전에서는 몬스터들이 수십 마리 단위로 빠져나와 무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끔가다 수십 마리 규모의 침습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럴…… 수가."
이번에는, 그 규모가 달랐다.
"빨리 상부에 알려. 최대한 조용하고, 빠르게."
대장이 속삭이는 어조로, 그러나 뚜렷하게 명령을 전달했다.
"예."
헌터 한 명이 떨리는 손을 다잡고 손목의 스마트워치에 대고 말했다.
"몬스터 인베이전 발생, 몬스터 인베이전 발생."
-카피했습니다. 보고 바랍니다.
"추정 최소…… 3천 마리 이상의 침공이 예상됩니다."
-치직, 고블린류의 1급 종입니까? 아니면 오크류의 2급 종?
보고를 받는 헌터 협회 상황통제실 직원도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블린이나 오크라 해도 3천 마리 이상의 규모라면, 큰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모두……."
보고하는 헌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모두 4급 종 이상. 그리고 종류는 특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 종이 섞여 있고, 아마도……."
말을 잇던 헌터의 목소리가 얼어붙었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 있던 다른 세 명의 헌터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싸늘한 한기가 그들의 등골을 감쌌다.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몬스터 가, 어둠 속에서 샛노란 눈으로 그들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하던 헌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보고를 마저 마쳤다.
"한 마리의 몬스터에 의해 지배된것 같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헌터들이 있는 자리를, 지옥불같이 뜨거운 화염이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