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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27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을 수 십 줄기의 빛이 갈랐다. (12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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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신과 함께 127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을 수 십 줄기의 빛이 갈랐다.

  하나하나가 새하얗게 빛나는 한 줄 기의 아름다운 선(線).

  그 빛들은 모두가 보라는 듯이 하늘을 한 바퀴 선회하더니,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마치 유성우처럼.

  …….

  빛이 내리꽂혔음에도 그 어떤 소리도 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끄럽던전장의 소음이 일시에 죽어버렸다.

  전장의 모두가 갑작스러운 이변을 보고 움직임을 멈추었으니까.

  빛이 내려앉은 자리.

  그곳은 소리 없는 학살의 현장이었다.

  직격당한 것은 오직 수도 성벽을 넘거나 성벽 가까이에 있던 검은색 타이탄들이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빈 구멍이 나 있었다.

  정확히 조종석이 있던 자리들.

  타이탄 조종사들만을 노린 깔끔하고 정확한 일격.

  30여 대의 검은 타이탄이 일시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국군 병사들은 움직임이 얼어버렸고, 왕국의 군사들 또한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라서로를 살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못 보고 여전히 싸우는 자들이나, 다시 싸움을 일으키려는 자들이 있었다.

  "죽어!!"

  "뭣들 하느냐!! 지금이 멈춰 있을 땐가! 바로 공격하라!!"

  다시금 시작되려는 검은색의 공격.

  하지만 그때, 움직임을 멈춘 30여기의 타이탄으로부터 빛이 일었다.

  지지지징 - 하늘에서 보았던 30여 줄기의 빛이 타이탄들로부터 뿜어져 나와, 다른 검은색 타이탄들을 가르고 지나갔다.

  특히 싸움을 멈추지 않은 검은 타이탄들과 다시 싸움을 일으키려는 하얀 타이탄들은 반드시 그 조종사를 잃었다.

  빛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빛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여 근처에 있는 검은색 타이탄들을 타고 전장을 '흘러' 지나갔다.

  쿵, 쿵쿵쿵.

  백수십 기의 타이탄이 일제히 조종사를 잃고 쓰러졌다.

  빛들은 흐르고 흘러 다시 처음에 빛이 시작되었던 하늘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빛이 모여 드는 자리를 향했다.

  그곳에는, 한 기의 새하얀 타이탄이 하늘에 떠서 전장을 굽어보고 있었다.

  유려하게 굴곡진 몸체.

  머리 위에는 동그란 앤젤 링(Angel ring).

  등 뒤에는 방금 쏘아진 빛들이 모여 만들어진 하늘거리는 날개.

  고귀하고 성스러워 보이는 그 자태는 전설 속의 천사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 천사가 다름 아닌 죽음의 신[死神]의 단면임을, 이미 방금 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왕국군과 제국군을 포함해,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하늘에 임한 인외(人外)의 존재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모두 전쟁을 멈추십시오.

  그 천사로부터 모든 전장을 아우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티이케 제국의 군사들이여, 당신 들은 패했습니다. 당신들의 총사령관은 제 손에 죽었고, 당신들의 총사령부는 불타고 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양측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제 그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 누구의 편인지가 명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카리프 왕국의 기사, 무이켈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왕국민들의 등 줄기에 전율이 홀렸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렸다.

  천사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므로, 제국군들이여.

  반면 제국군들에게는 절망 어린 침묵이 내려앉았다.

  -당신들의 제국으로 꺼지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새하얀 타이탄이 선고했다.

  -죽여 버리겠습니다.

  이 순간.

  전쟁은 끝이 났다.

  * * * 한 시간여 전, 티이케 제국 총사령부

  "헉, 헉……."

  녹색의 타이탄이 왼쪽 팔이 잘려나간 채로 걷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종석이 있는 가슴을 제외한 다른 부분들 모두 큰 타격을 받은 듯 어딘가 그올리고 부서져 있었다.

  '역시 적색 두 기를 녹색으로 상대 하는 건 무리였나…….'

  나는 그 속에서 헐떡거리고 있었다.

  내 뒤로는 두 기의 적색 타이탄이 조종사를 잃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

  대혈투였다.

  두에르페제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은 나로서도 무모한 일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혈투를 치르다, 녹색 오르토스의 한 팔을 미끼로 내주고서야 간신히 한 기를 잡을 수 있었다.

  남은 한 기를, 한 팔이 없는 상태로 상대하는 것 또한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승리했다.

  꿰뚫린 복부와 금방이라도 움직임을 멈출 것 같은 오른쪽 다리를 최대한 티 안 나게 조종하며, 나는 '태초의 타이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혈투의 과정에서 이 주위를 지키던 검은 타이탄과 병사들이 휘말려드는 바람에, 이곳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1황자도 2황자도, 모두 끝장 났다.

  그 둘은 모두 내 타깃 1순위였으니까.

  세 기의 타이탄이 대혈투를 벌이며 주위가 초토화되는 것을 본다른 제국군들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곳이 적진 한가운데인 이상, 어찌 되었든 간에 곧 적들이 들이닥칠 터였다.

  '그렇게 되기 전에, 끝내자.'

  나는 조용히 타이탄의 조종석에서 나와 '태초의 타이탄'에 다가갔다.

  이미 천막은 전투의 과정에서 완전히 날아가 있었고, '태초의 타이탄'을 감싸고 있던 천 또한 흘러내려 있었다.

  -이름 : 아크 앤젤 -희귀도 :에픽 -상태 : 봉인 -고유 스킬 : [앤젤 링], [빛의 날개]

  -설명 : 멸종한 마법의 종족이 모든 기술을 집약해 만들어낸 수호병 기. 그 강력함을 우려해 동력원을 분리 보관했다.

  나는 순백의 타이탄을 보며 생각했다.

  '아름답다.'

  제국의 백색 타이탄은 분명 이 타이탄의 모습을 본뜨려 했음이 틀림 없다.

  그러나 그 백색급들은 이 타이탄이 간직한 미적 요소의 10%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실패작들이었다. 하지만 조금 걱정이 일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순백색 타이탄이 미려함만을 내세운 나머지 조금 장갑을 부실하게 설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몸체가 가늘고 장갑이 얇아 보였다.

  대신 날렵해 보이기는 했다.

  '여기 있군.'

  머리 옆에 있는 장치를 조작하자 머리뚜껑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곳으로 들어가 조종석에 앉았고, 다시 뚜껑을 닫아 잠갔다.

  태초의 타이탄의 내부 구조는 여느 타이탄들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조금 더 자리가 편안하고, 조금 더 버튼 등의 조작부가 많을 뿐.

  [디바이스 컨트롤].

  순식간에 버튼들의 용도가 파악되었다.

  나는 품속에서 '블루드래곤의 하트'를 꺼내 왼쪽의 마력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올려놓았다.

  '블루드래곤의 하트'의 깊은 곳에서부터 자그마한 푸른빛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푸른빛은 점점 '블루드래곤의 하트'의 전체를 걸쳐 퍼졌다.

  그리고 - 파직파직!

  '블루드래곤의 하트'와 그것의 접합 부위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뭐지?'

  안 그래도 시간이 없어 죽겠는데, 의외의 일이 발생하니 초조함이 일었다.

  때마침 타이탄의 머리뚜껑 부분에서 들려온 소음이 내 초조함을 부채질했다.

  깡! 깡!

  무언가가 머리뚜껑의 개폐 부분을 두들겼다.

  내가 이곳으로 들어왔음을 적들이 눈치챈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저들에게 끌려나가게 되면,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푸른 보석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이 보석과 타이탄이 내는 불협화음을.

  '드래곤 하트, 결코 여기에 코어로 쓰이기 위해 적합한 물건은 아니야. 가공이 필요해.'

  하지만 지금은 드래곤 하트를 가공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대신, 내가 타고 있는 이 '기계' 자체를 가공하기로 했다.

  [디바이스 컨트롤].

  [마스터 피스].

  내게 남아 있는 두 가지 고유 스킬이 동시에 발현되었다.

  그리고 두 가지 스킬을 응용한 핵심 스킬.

  [기계 변환].

  스킬의 힘이 타이탄 전체를 휘돌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누구냐.]

  이 타이탄의 자아가 눈을 떴다.

  [감히 누가 내 봉인을 깨우려는 거냐!!]

  웅대한 영혼의 외침이 내 머릿속을 직격했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충격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 했다.

  지금 정신을 놓으면 끝이었다.

  나는 타이탄의 자아에 맞서는 대신 구원군을 불렀다.

  '슈리.'

  [네, 마스터.]

  내 뜻을 알아들은 슈리가 펜던트를 타고, 타이탄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넌 뭐냐!]

  [좀 나가주지 그래?]

  하지만 이 타이탄의 자아는 쉽사리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크윽……. 제법 대단한 영혼의 힘이군. 하지……만 날 만만하게 보지 마라!!]

  강력한 타이탄의 자아다운 기백이 울려 퍼졌다.

  타이탄 밖에서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깡! 깡!

  아까보다 강력한 소음이 타이탄 머리 부위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태초의 타이탄'이 조금 손상되는 것을 각오하고, 머리뚜껑을 강제로 열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에도 내 정신은 명경지수처럼 고요했다.

  고요해진 정신을 송곳처럼 모아, [기계변환]으로 타이탄의 변형을 시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파지직…….

  점차 '블루드래곤의 하트'가 뿜어 내는 스파크가 줄어들며, 드래곤 하트의 힘이 타이탄을 타고 흡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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