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24 (124/215)

  기계신과 함께 124

  "저것 봐!!"

  "저, 저게 뭐야!"

  성벽 위에서 자국 타이탄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2백 기가 넘는 검은색 타이탄이 급하게 방어망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채 방어망이 형성되기도 전에 50기의 푸른 타이탄이 송곳처럼 그들의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그 선두에는 두 기의 녹색 타이탄, 아니, 그중에서도 특별히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한 기의 타이탄이 있었다.

  그 타이탄은 타이탄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는 엄청난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모든 타이탄들의 균형을 흩어 버리고 있었다.

  한번 균형이 무너진 타이탄은 뒤이어 몰려드는 타이탄들의 칼날에 고철덩이가 되어 나뒹굴었다.

  쾅!!

  장벽 위의 병력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던 마법 대포가 선두에서 돌파하던 녹색 타이탄의 검에 두 동강이 나버렸다.

  그리고 뒤이어 마법 대포들이 차례 차례 푸른 물결에 휩쓸려 사라지고 있었다.

  장벽 위에서 적의 마법 대포를 손가락 빨며 지켜보기만 했던 병력들은, 앓던 이가 뽑혀 나가는 기분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와!!"

  "잘한다 우리기사단!!"

  "죽여 버려!!!"

  그들의 환호성 아래 푸른 물결은 거침없이 적진을 휘저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본 병사들의 환호성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저 새끼들…… 백색급 타이탄을 다섯 기나……."

  질주하던 푸른 물결의 앞을 다섯 기나 되는 백색급 타이탄이 가로막았다.

  제국의 백색급 타이탄은 왕국의 녹색급과 비교했을 때 한 티어 위의 타이탄.

  제국의 지휘관과 타이탄마스터들이 타는 타이탄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혼자서 청색 타이탄 열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초강자들.

  하나하나가 아군 타이탄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공포로 군림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등장에도 선두에 선 녹색 타이탄들은 그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뒤에서 따라오는 푸른 타이탄들 또한 녹색 타이탄들을 철저히 믿는다는 듯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앞으로 돌격했다.

  병사들은 숨을 죽이며 아군 타이탄 들과 백색의 타이탄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충돌했다.

  충돌의 순간.

  다섯 기의 백색 타이탄이 각각 둘 셋으로 흩어지며 두 기의 녹색 타이탄을 하나씩 맡았다.

  두 기의 백색 타이탄에 둘러싸인 녹색 타이탄이 정신없이 쏟아지는 공격에 연신 물러났다.

  하지만 그사이 다른 한 기의 녹색 타이탄은- 카캉!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각도로 관절을 꺾어 세 타이탄의 공격을 피해내는 동시에, 한 대의 타이탄에 카운터 어택을 먹였다.

  공격받은 하얀 타이탄이 몇 발자국 앞으로 전진하다가 무릎을 꿇었다.

  그 타이탄의 겨드랑이 부분에서 붉은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조종석이 직격당한 것이다.

  한 기를 격파한 녹색 타이탄이 다른 두 기의 하얀 타이탄을 해치우기 까지는 채 30초가 걸리지 않았다.

  다른 녹색 타이탄을 상대하던 하얀 타이탄 두 기는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우와아아아!"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병력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처럼 환호성을 질러대었다.

  녹색 타이탄은 검을 들어 어깨 부근에 찍찍 줄 세 개를 그었다.

  그제서야 병사들은 그의 어깨에 그 어져 있던 수십 개의 줄무늬가 킬 마크(Kill mark)라는 것을 알아챘다.

  "저…… 저거 설마 전부 백색 타이탄을 쓰러뜨리고 새긴 건 아니겠지?"

  "에이, 서, 설마."

  이미 그의 어깨에는 그어져 있는 킬 마크의 수는 30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녹색 타이탄은 검을 털더니 이미 저만치 앞에서 돌격하고 있는 청색의 타이탄을 따라잡으러 달려나갔다.

  점차 기세가 죽던 푸른 타이탄들이 다시 녹색 타이탄들이 합류함으로써 기세가 살아났다.

  그들은 모든 마법대포를 파괴한 후, 방향을 틀었다.

  아군 타이탄들의 놀라운 활약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던 장벽수호대의 사령관은, 이번에야말로 저들이 아군 장벽 쪽으로 와서 합류할 줄 알았다.

  하지만 푸른 물결의 목표는 합류가 아니었다.

  그들이 튼 방향은 적 측 사령관본부였다.

  "허허……."

  사령관은 이제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그들이 어디까지 갈 것 인가를 지켜보기로 했다.

  쿠쿠쿠쿠.

  지축이 흔들리며 돌가루들이 튀어 올랐다.

  그새 검은 타이탄들 또한 대열을 정비하고 본격적으로 그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제국군의 대열이 정비되었기 때문 인지 푸른 물결의 움직임이 조금씩 굼떠지고 있었다.

  '저대로 속도가 늦춰지면 전멸할 텐데.'

  사령관은 이를 지그시 물며 전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저들의 실력이 뛰어나도 돌파력이 사라진다면 적진 한복판에 고립되어 개떼처럼 달려드는 제국군에 의해 스러질 게 분명했다.

  그때 선두의 녹색 타이탄으로부터 이변이 발생했다.

  녹색 타이탄의 주위로 푸르른 기류가 돋아나며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대열을 이룬 채 그들의 돌진을 기다리고 있던 검은 타이탄들이, 녹색 기류에 의해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푸른 물결은 다시 제 속도를 되찾았다.

  '[마력 폭주]인가?'

  사령관은 녹색 타이탄들이 사용하는 기술 [마력 폭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신도 녹색 타이탄의 조종사였으니까.

  하지만 저 타이탄의 [마력 폭주]는 어딘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더 빠르고, 더 묵직한 느낌.

  '아, 얼마 전에 북쪽에 있던 마지막 녹색 타이탄이 주인을 찾았다더니, 저자였나 보군.'

  성능은 더 뛰어났지만 아무도 사용 하지 못했던 녹색기.

  그게 눈앞에 보이는 바로 저 타이탄이라, 대장벽의 사령관은 확신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그들의 돌격은 제국 측 사령관 막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설마 진짜 제국의 사령관을 잡아 오나?'

  제국에서 사령관이 갖는 의미가 큰 만큼, 그렇게만 된다면 오늘 하루 정도는 어떻게 넘긴다고 봐도 좋으리라.

  당장 대장벽 자체가 오늘내일 하고 있었으니 오늘을 넘긴다는 것조차 그에게는 굉장한 안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제국 측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쿵, 쿵.

  사령관 막사로 보이던 높디높은 막사에서 걸어나온 타이탄이 있었으니.

  그 색은…….

  "……적색!!"

  사령관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적색 등급의 타이탄은 제국과 왕국을 통틀어 최고 등급의 타이탄이었다.

  타이탄 마스터 중에서도 '최고'라는 뜻을 가진 '아르페제'의 칭호를 받은 자들만이 탈 자격이 주어진다는 타이탄.

  아카리프 왕국에도 적색 등급은 왕을 수호하는 근위기사단에 단 한 대가 있을 뿐이었다.

  그와 동급의 타이탄이 눈앞에 출현 한 것이다.

  "적색이 와 있었다니……."

  무슨 신호가 있었는지 돌진하던 푸른 물결의 타이탄들이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 선두에 있던 녹색 타이탄이 앞으로 나섰다.

  킬 마크를 30개 넘게 단 바로 그 타이탄.

  적색 또한 주변의 흑색 타이탄들에게 명령을 내렸는지, 흑색 타이탄들 또한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대기했다.

  분위기로 보아 녹색과 적색의 일기토가 벌어지려는 듯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둘이 맞붙었다.

  첫 공격은 적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탐색전은 필요 없다는 듯 거침없는 일도양단( 一刀兩斷)!

  그러나 녹색의 타이탄이 그 공격을 피하며 적색의 품으로 파고들려는 순간.

  적색 타이탄이 반대쪽 주먹을 날려왔다.

  녹색 타이탄이 부드럽게 그 주먹을 우회하며 칼을 적색 타이탄에게 찔러 넣었다.

  그러나.

  캉!

  칼날은 허무한 불꽃을 내며 적색 타이탄의 갑옷에서 튕겨 나왔다.

  ……!

  사령관은 저것이 적색 타이탄의 스킬에서 나오는 능력임을 알아챘다.

  아무리 단단한 금속이라도 저 정도의 강도를 가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적색 타이탄의 일방적인 공세.

  녹색 타이탄은 적색 타이탄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피해 다니기만 할 뿐 그 어떤 공세도 취하지 못했다.

  '하긴, 찔러 넣을 구석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지.'

  대장벽 사령관이 안타깝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적색 타이탄이 단단하기도 단단했지만, 적색 타이탄을 조종하는 조종사의 실력도 예사 실력이 아니었다.

  타이탄이 발휘하는 물 흐르듯 유연한 검술도 주목할 만했지만, 하체까지 유기적으로 이용하는 체술 또한 그가 왜 적색 타이탄의 주인인지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일방적인 우세를 유지했음에도 적색 타이탄은 짜증이 났는지 큰 한 방을 터뜨려 버렸다.

  그가 들고 있던 대검이 녹색 타이탄에게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당연히 녹색 타이탄은 그 공격을 쉽게 피해냈다.

  하지만 적색 타이탄이 노리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꽝--!!

  적색 타이탄의 검이 그대로 땅에 내리꽂히며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저 또한 타이탄의 스킬이 분명했다.

  주위의 땅이 온통 터져 나가며 분진이 피어올랐다.

  분명 폭발의 범위안에 있었던 녹색 타이탄은 그 분진에 가려져 어떤 모습이 됐는지 보이지조차 않았다.

  스킬을 사용한 적색 타이탄 또한 마찬가지.

  "꿀꺽."

  양측의 군병들은 침을 삼키며 결과의 귀추에 주목했다.

  분진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결과가 드러났다.

  "……!"

  적색 타이탄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녹색 타이탄.

  그리고 머리가 사라진 적색 타이탄.

  녹색의 타이탄은 온몸에서 푸른색 귀화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타이탄의 손에는 한 사람이 들려 있었다.

  "……맙소사, 정말로 해냈어."

  대장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령관이, 희열에 차 중얼거렸다.

  녹색의 타이탄이 들고 있는 것은, 적색 타이탄의 주인 아르페제이자 현재 대장벽을 공략 중인 제국 측의 전투사령관이었던 것이다.

  그가 사령관이란 사실은 분명했다.

  모든 검은 타이탄의 움직임이 얼어 버린 것이다.

  그는 녹색 타이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다 이내 굴욕적인 표정을 지으며 잠잠해졌다.

  녹색 타이탄이 한 손으로 그 사령관을 높이 들어올린 채 대장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른 황, 청색의 타이탄들의 그 뒤를 따랐다.

  최고지휘관이 잡혀버린 제국의 병사들은 꼼짝도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게 보였다.

  '제국군의 상하관계는 절대적이니까.'

  조금은 낡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제국군의 상하관계 문화는 철저했다.

  저렇게 상관이 납치된 상황에서 공격을 가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처벌의 대상.

  따라서 제국군은 최고지휘관이 인질로 잡힌 저 상황에서 두 눈 멀뚱히 뜨고 적들을 돌려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적의 사령관을 납치한 청색의 물결이 유유히 대장벽의 아래에 다다랐다.

  쿠그그그- 장벽의 문이 열렸다.

  검은 타이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운 영웅들이 대장벽 속으로 사라졌다.

  그그그- 문이 닫히고.

  "와아아---"

  대장벽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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