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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23 (123/215)

  기계신과 함께 123

  "저 녀석도 라미아 버전으로 나온 타이탄입니다만,스킬이 좀…… 실패했다고 해야 할까요? 다루기가 힘들게 뽑혔습니다. 거기다가 성격도 고약해서 계약도 잘 안 받아주고, 간신히 계약한 타이탄 조종사들도 그냥 안 타고 말겠다고 때려치우고 청색급을 타게 한 녀석입니다."

  우리를 안내해 준 군인이 '그래도 해볼 거냐?'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설명만 들어봐도 벌써부터 조금 골 머리가 아파왔지만,뭐 일단 도전은 해봐야지.

  나는 일단 [하늘의 눈]으로 녹색 오르토스를 살펴보았다.

  -이름 : 오르토스 -희귀도 : 레어 -상태 : 심술쟁이,고집쟁이,말썽쟁이 -고유 스킬 : [마력 폭주2] -설명 : 아카리프 왕국에서 제작된,성격이 못된 고급 타이탄. 자아 [ego]가 있으며 자아와 '계약'을 맺은 탑승자만이 조종할 수 있다. '계약' 조건은 오르토스가 결정한다.

  '[마력 폭주2]?'

  -[마력 폭주2] : 마력을 폭주시켜 일정 시간 동안 타이탄의 힘과 속도를 큰 폭으로 상승시깁니다. 다만 타이탄 자아의 개입이 강해져 조종에 애를 먹을 수 있습니다.

  전에 봤던 [마력 폭주]와는 달리 '큰 폭'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타이탄 자아의 개입이 강해져?'

  뭐 이런 개떡 같은 스킬이!

  "브록시아,녹색급 타이탄은 자아가 타이탄 조종에 개입하기도 하나요?"

  "대부분은 온전히 조종사의 몫으로 남기고 보조하는 정도입니다만,저 놈만은 좀 다르죠."

  브록시아도 저 기체에 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던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흠."

  나는 도대체 어느 성격이길래, 하는 마음으로 타이탄에 올라탔다.

  그리고 왼쪽의 마력석에 손을 얹었다.

  [아 놔,또 어떤 잡종 찌끄레기야?!]

  신경질적이고 심술적인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려왔다.

  이게 바로 오르토스의 목소리구나.

  "너랑 계약하고 싶은데."

  [그래? 그럼 일단 노래나 한 곡 뽑아봐! 들어보고 나서 한번 생각해 보지!]

  오르토스가 한껏 거드름을 피우는 태도로 말했다.

  "……."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녀석은 내가 노래 부르면 춤을 추게 하고, 춤까지 추면 엉덩이로 이름을 쓰게 할 녀석이란 것을!

  진지하게 나도 그냥 청색급을 탄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슈리가 말했다.

  [마스터,펜던트 한번 마력석에 대 보시겠습니까?]

  ……오호.

  나는 당장에 에메랄드 펜던트를 마력석에 가져다 대보았다.

  [뭐,뭐야 넌?! 이,이게……!]

  오르토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 오더니 곧 잠잠해졌다.

  그리고- [마스터.]

  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묻자 슈리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쫓아냈습니다.]

  푸하하하!

  꼴좋다,이 심술쟁이 자식!

  [정확히 말하자면 억눌러 뒀기 때문에,제가 나가면 다시 자아의 전면부를 차지할 겁니다.]

  "오케이. 어쨌든 말하자면 네가 당분간 이 타이탄의 자아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래,그럼 당분간 잘 부탁한다. 그런데 타이탄 계약은?"

  [할 필요 없습니다. 저와 마스터 사이에 계약이 필요한 관계도 아닌 걸요.]

  "오케이!"

  그렇게 나는 슈리 덕분에 굴욕을 면하고 녹색급의 타이탄을 손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

  * * * 무결의 퀘스트 시작 6일째.

  은벽산맥의 계곡 사이에 지어진 대장벽 위.

  전방의 탁 트인 시야로 지난 며칠 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티이케 제국군들이 새까맣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장벽 위에서 뒤돌아보면 저 멀리 '축복의 나무' 아래에서 여전히 평화로워 보이는 아카리프 왕국의 수도가 보였다.

  수도를 둘러싼 성벽이 타이탄이라 는 강철의 거인 앞에서 돌담장에 지나지 않게 된 지금,이곳이 바로 티이케 제국군에 대한 최후의 방어선 이었다.

  콰콰아앙!!

  저 멀리서 날아온 거대한 불덩이들이 성벽을 두드렸다.

  그 막대한 타격에 장벽이 흔들거렸다.

  "으악!"

  "에반!!"

  일부 마법은 성벽 위에서 마법을 캐스팅하던 마법사에게 그대로 직격 했다.

  당연히 마법사는 즉사하고 말았다.

  그 주위로는 뜨거운 불이 번졌다.

  "병사들! 불 끄고,타이탄들! 제대로 막아!!"

  적의 불덩이 세례에 대항해 마법을 캐스팅하는 마법사들의 앞으로 거대한 강철의 방패가 드리워졌다.

  콰쾅!!

  일부 불덩이가 강철방패에 날아와 부딪칠 때마다 타이탄이 조금씩 뒤로 밀려났으나,덕분에 그들이 막아 준 마법사들은 무사했다.

  "캐스팅 끝났습니다!"

  한 마법사가 소리치자마자 그의 앞 을 막고 있던 방패가 치워졌다.

  [마나캐논].

  푸른색의 입자가 그의 손앞에 모여들더니...

  퀴융- 전방의 제국군들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푸른 줄기가 그어졌다.

  콰콰콰쾅!

  푸른 광선이 지나는 곳이 전부 터져 나가며 방벽으로 몰려들고 있던 제국의 병사들이 몰살당했고,그들이 들고 오던 공성 장비 또한 한낱 장작개비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위치해 있던 검은 갑옷의 타이탄들은 그 광선을 직격하고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듯 쿵쿵거리며 장벽으로 들러붙고 있었다.

  대(對)마법 마법진이 생겨진 갑옷의 위력이었다.

  쿵! 쿵!

  장벽 밑에 들러붙은 검은색 타이탄 들이 가져온 망치들로 장벽을 두들겨 대었다.

  장벽에서 푸른색의 옅은 실드가 생겨나며 충격을 일부 흡수했지만,그 럼에도 불구하고 장벽은 조금씩 그 망치질로 인해 파여 나가고 있었다.

  "크옥! 여기 통나무 공격 준비해!"

  "돌덩이들 떨어뜨려!!"

  "으옥! 끓는 기름 계속 부어!!"

  성벽의 병력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돌과 나무,끓는 기름들을 퍼부었다.

  대부분이 군집을 이룬 타이탄들의 방패에 막혀 별 효과가 없었지만, 간혹 그 틈을 뚫고 타격을 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치이이익-

  "으아악!"

  이런 경우처럼.

  한 타이탄 조종사가 이음새 사이로 흘러내린 기름에 망치를 내던지고 후퇴하고 말았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금세 그 자리를 다른 검은색 타이탄이 와서 메웠다.

  쿵! 쿵!

  장벽이 계속해서 파여 나갔다.

  "안 되겠다!! 우회로로 출격한 타이탄들에게 지원 요청 해!!"

  성벽 위를 지키던 사령관이 결국 시꺼떻게 밀려드는 제국군의 공세에 못 이겨 지원 요청을 하고 말았다.

  "록우드 기사단은 지원이 불가하답니다!!"

  "스톤하트 기사단 역시 적 타이탄들에 발이 묶여 있다고 합니다!!"

  통신을 맡은 마법사들로부터 연이은 보고가 을라왔다.

  "이런 제길."

  사령관이 암담한 상황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라면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성벽이 함락될 것 같았다.

  수도에 왕궁근위대와 수도근위병단이 있다지만,이곳이 뚫린다면 결국 수도는 길어봐야 하루가 가지 않아 끝장날 터였다.

  어떻게든 이곳을 사수해야 했다.

  그때 한 마법사가 반색하며 외쳤다.

  "응답했습니다! 지원오겠다고 합니다!!"

  "어느 기사단인가!!"

  "그게…… 기사단은 아닙니다! 가르오네 만인대 소속 특별공격대라고 합니다!"

  "그 깐깐쟁이 가르오네가 특공대를 편성했나? 의외로군! 아무튼 빨리 오라고 해!!"

  "예!!"

  기사단도 아니고 일개 특공대라 해 봐야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

  가르오네는 제발 이번에 오는 녀석들이 쓸 만한 놈들이기를 바랐다.

  콰쾅!

  적 측의 마법사들이 캐스팅을 완료 했는지,또다시 적들의 마법대포에서 불덩이들이 발사되었다.

  적들은 오늘 저 마법대포라는 새로 운 병기를 처음 들고 나왔는데,사거리가 일반 마법 사거리보다 훨씬 길어서 이쪽에서는 저걸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저걸 막으려면 타이탄들이 출격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오는 자들이 저걸 부술 수 있을까? 저토록 많은 타이탄을 뚫고?'

  그가 암담한 눈으로 마법 대포를 둘러싼 수백여 기의 검은 타이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건 무리겠어. 일단 성벽 아래 타이탄들이라도 치워달라고 해야겠군.'

  쿵!

  우르르르 사령관은 불덩이에 맞아 흔들리는 장벽을 불안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장벽수호대가 고군분투를 하며 적들을 막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은벽산맥의 우측 한편으로부터 먼지가 피어올랐다.

  50여 기의 노란색과 파란색 타이탄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두 기의 녹 색 타이탄.

  아군 출현이었다.

  "왔는가!!"

  사령관이 반색을 하며 그들의 등장을 반겼다.

  그러나 그런 그의 웃음은 얼마 가지 못해 경악으로 바뀌었다.

  "저,저 미친것들이!!"

  그들이 질주하는 곳은 지원이 필요한 성벽이 아니라,새까맣게 군집해 있는 적진의 한복판이었다.

  "뭐 하는 거야!! 돌아와,이것들아!!"

  "통신도 먹통입니다!"

  "저 자식들이!"

  사령관이 분통을 터뜨리며 사지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군 타이탄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저들은 파도에 휩쓸린 설탕처럼 녹아내릴 일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곧 그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마침내 설탕과 파도가 부딪쳤다.

  그런데- 쾅! 콰과과- 설탕이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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