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20 검은 키클롭스. (120/215)

  기계신과 함께 120 검은 키클롭스.

  그것이 대장기의 이름이었다.

  검은 키클롭스는 양팔 없는 타이탄을 상대로, 자신의 비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오러소드.'

  검의 날 부분에 살짝 오러가 맺혔다.

  아까 아카리프 왕국 측 백인대장 쿠세이가 썼던 것과 같은 기술로, 오러를 팔과 검날에 둘러 팔의 움직임을 빠르게 하고, 검의 절삭력을 높이는 기술이었다.

  '간다!'

  쿵쿵쿵쿵.

  검은 키클롭스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가뜩이나 다른 타이탄들보다 한 뼘이나 더 큰 타이탄이라 마치 작은 산이 움직이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존재감.

  반대쪽에서 그의 적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 없는 타이탄이 가볍게 뜀박질을 시작하더니, 이내 달리기 선수처럼 검은 키클롭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 했다.

  서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서 출발했기 때문의 둘의 거리는 불과 수 초가 지나기 전에 좁혀졌다.

  그리고 먼저 선공을 취한 건, 공격 범위가 긴 검은 키클롭스였다.

  검은 키클롭스가 그 자신만큼이나 거대한 장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툭, 투투투투툭.

  그의 검이 지나는 경로에 걸리는 모든 나무가 걸리며 베어져 나갔다. 주위의 나무들이 칼질에 방해가 된다면, 아예 나무째로 적을 베어버리겠다는 요량!

  팔 없는 타이탄의 대응은 단순했다.

  하체가 텅 비는 횡 공격에, 아까처럼 태클을 하며 검은 키클롭스의 하단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흐으읍!!"

  커다란 기합 소리와 함께 검은 키클롭스가 휘두르던 검의 경로가 순식간에 횡에서 종방향으로 바뀌어 버렸다.

  마나를 이용해 억지로 힘의 방향을 비튼 것이다.

  크그그극.

  타이탄의 관절부가 비명을 질렀지만, 칼스는 환희와 광기가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죽어!!"

  무결의 팔 없는 타이탄은 그대로 몸통으로 떨어지는 공격에 노출되고 말았다.

  태클이 들어가던 타이밍이라 꼼짝 없이 그의 검을 몸으로 맞이할 상황!

  하지만 그때 무결의 타이탄이 어깨 부위를 격하게 틀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상체가 뒤틀리며 땅을 박차고 올랐다.

  스카가가!

  검이 무결의 타이탄의 오른쪽 몸통 일부를 베며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쾅!!

  그 직후 팔 없는 타이탄의 니킥이 검은 키클롭스의 가슴 부위에 작렬 했다.

  검은 키클롭스는 가슴 부위가 움푹 파이며, 그 움직임을 정지했다.

  그리고 뒤로 스르르 넘어갔다.

  쿵!

  "휴우……."

  무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갑자기 검로를 그렇게 바꾸다니.

  뭔가 횡베기가 끝이 아닐 거 같은 예감이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예상을 벗어난 공격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온 신경을 끌어모아 [배틀센스]를 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경로 변경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임기응변으로 어떻게든 사태를 마무리했다.

  "이제……."

  무결은 남은 한 기의 검은 파이톤을 바라보았다.

  "저것만 처리하면 되겠군."

  양팔이 없는데다 오른쪽 어깨 부위가 베여나가 만신창이나 다름없는 타이탄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쥔 검은 파이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것은, 오히려 멀쩡해 보이는 검은 타이탄이었다.

  "붙어보자구."

  무결의 타이탄이 먹이를 덮치는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 * * 나는 아까 제국군과 왕국군이 대치 중이던 곳으로 향했다.

  어느새 전투는 소강상태였다. 쓰러져 있는 타이탄들은 검은색.

  서 있는 타이탄들은 황색과 청색. 예상외로 승자 쪽은 왕국군이었다.

  "오! 저기 온다!"

  "휘익-! 우리의 영웅! 어서 오시게!!"

  "하하하하! 저 타이탄은 다시 봐도 우습네. 어떻게 저런 걸로 저 개자식들을 저렇게 헤집은 거지?"

  "그러게 말이야. 저 두 다리로만 우리를 구했다니 이게 말이 돼?"

  공터 한편에 내려앉아 있던 사람들이 나의 귀환을 보며 소란스러워졌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6명이 아닌 12명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의아해하다가 환하게 웃으며 날 올려다보고 있는 알렉스의 얼굴을 보고 사정을 깨달았다.

  나를 따라온 스피릿 기사단의 기사 알렉스가 근처의 지원군을 데려온 것이다.

  푸식- 나는 머리뚜껑을 열고 거기서 뛰어 내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투리마을의 농사꾼 무이켈이라고 합니다."

  "뭐?"

  "농사꾼?"

  "으응?"

  내 말을 숨죽이고 듣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디 유명한 기사 아니었소?"

  "아닌데요."

  나는 그렇게 그들의 말에 하나하나 대답해 주며 태연하게 한곳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저벅.

  "그럼 타이탄 조종은 어디서 배웠소?"

  "배운 적 없습니다. 그냥 잠시 타보니까 쓸 수 있겠더라고요."

  "말도 안돼!"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적들을 누비고 다닌 조종 실력이 타이탄 조종 초보의 실력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사실인 거 어쩌나.

  억울하면 당신들도 [디바이스 컨트롤] 익히든가.

  "그럼 무허가로 타이탄을 탔단 말 이오?"

  사람들의 시선이 약간 미심쩍어졌다.

  타이탄은 허가받은 자만이 탈 수 있는 병기.

  영주에게 허가받지 않은 자가 탄다면 즉결처분될 수도 있는 중대범죄였다.

  "그거 중범죄인데……."

  "그래도 굉장히 활약했잖아. 저 정도면 충분히 참작되는 거 아니야?"

  "그래, 우리도 저 사람 덕분에 살았잖아."

  쿠세이를 비롯한 아까 내 활약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변호가 이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흠, 이 정도 공을 보여줬으면 참작이 될 줄 알았는데.'

  사실 아까 알렉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무면허 타이탄 운전이 문제가 될 줄 알았기 때문이지 않은가.

  이 정도 공을 세웠으면 바로 참작이 되고도 계급 상승이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 부족했나 보다.

  '뭐, 상관없어. 곧 또 기회가 올 테니까.'

  나는 홀끗 알렉스를 바라보며, 그가 있는 방향으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때 한 사람이 의문을 제기했다.

  "가만, 근데 좀…… 말이 안 되지 않아?"

  또 다른 사람이 입을 열었다.

  "뭐가 말인가?"

  "처음 타이탄을 탄 사람이 저렇게 조종을 잘한다고?"

  "음……. 그렇긴 하지."

  "혹시……."

  의문을 제기한 자가 나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저 사람, 첩자 아니야?"

  "응?"

  "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그게 그렇잖아. 타이탄 조종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어? 심한 사람은 반년을 연습해서야 저걸 탈 수 있었어."

  "맞아, "

  "그렇지."

  "내가 반년이 걸렸어."

  사람들이 저마다 동조했다.

  의문을 제기했던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근데 그걸 타자마자 조종했다고? 일단 이것부터가 도무지 믿기지 않아. 하지만 저 사람이 오래전부터 타이탄을 타왔던 자라면 그 실력을 이해할 수가 있지! 그런데 오래전부터 타이탄을 저토록 잘 조종했던 자가 있다면 우리나라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래……."

  "듣고 보니……."

  의심에 열기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저 사람이 저 제국에서 우리나라에 파견된 첩자라면, 그것이 오히려 믿을 법한 말이지 않을까?"

  사람들이 의심의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시간을, 끌어야 했다.

  "어제."

  나는 말한 마디 한 마디에 강렬한 악센트를 심어 말하기 시작했다.

  "제국 개자식들이 저희 마을을 유린했습니다. 그놈들의 손에 마을의 형제자매들, 어르신들, 그리고 아이들이 죽고 납치당해 끌려갔습니다. 근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는 줄 아십니까? 바라만 보는 거였습니다."

  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뭐라도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놈들은 타이탄을 타고 있었거든요!"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마치 '너희가 범인이다!' 라는 것처럼.

  "죽을 것 같았습니다. 어제도 검은 타이탄들이 마을을 쳐들어와 건물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납치해 갔습니다. 근데 이 개새끼들이 제 이웃이 납치하려 그러지 않습니까!"

  나는 마치 피눈물이 날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피눈물은 안 났지만 눈이 아파서 눈물은 찔끔 났다.

  그 눈물을 보고 살짝 표정이 풀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데 맙소사, 근처에 마침 기사 님이 버리고 도망간 저 타이탄이 보이더군요. 비록 양팔이 잘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타이탄이었지만, 저는 이웃을 지키기 위해 탔습니다. 이게 제가 타이탄을 타게 된 경위입니다. 저 양팔이 잘리고 아무도 안 탈 것 같은 타이탄을요!"

  내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다들 조금 표정이 풀어지며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저는 평소에 병사와 기사님들을 존경하고 국가에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제가 타이탄을 다룰 수 있다는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나라에 도움이 되고자 싸운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이렇게 취급하시다니……."

  내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나와라, 좀.'

  속으로는 투덜거리며.

  "제 이름과 신분 등은 투리마을에 가서 확인……."

  그때였다.

  "죽여!!"

  "으하하하하!!"

  "돌격이다! 이 참새 자식들아!!"

  왔다. 기다리던 것이.

  제국군 타이탄이 다시금 쳐들어온 것이다.

  나는 아까 이곳으로 오기 전에 제국군 타이탄 십수 기가 숲을 헤집으며 다가오는 것을 보고 스리슬쩍 도망을 쳤다.

  이곳에 위치한 왕국군 주둔지는 전술적 요충지이긴 했지만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길을 헤매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운 만큼 주둔지가 곧 발견될 거라 보였다.

  나는 그 사실을 아군에게 알리지 않았다.

  왜 알리겠는가?

  지금 아군의 위기는 곧 나의 기회!

  나는 기회를 잡기 위해 바로 움직였다.

  "알렉스!!"

  "네?"

  알렉스가 얼떨떨하게 물었다.

  "저도 같이 태워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 아 예. 물론입니다. 어서 타시지요."

  알텍스가 웃는 낯으로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렉스라면 날 태워줄 줄 알았다.

  아까부터 통신으로 내 조종 실력에 감탄하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으면서 왔으니까.

  그 말든 마지막에는 숫제 찬양처럼 바뀌어 있었고, 아까 사람들이 날 의심할 때도 한 점 의심 없이 내게 '믿는다!' 는 눈빛을 보내왔다.

  심지어 나를 자신의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는 이 순수한 사람이 나를 안 태워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알렉스, 실례인 줄은 알겠지만, 잠시만 제가 조종하겠습니다."

  "헉."

  알텍스가 헛바람을 토했다.

  역시 안 되나?

  "영광입니다! 마스터의 조종 실력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다니!"

  반대였다.

  알텍스는 기대감으로 눈이 초롱초롱 해진 상태였다.

  "그럼."

  나는 조종석에 앉아 빠르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출격 준비를 마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갖추었다.

  양팔과 양다리가 온전한 타이탄을.

  "다 죽었어."

  아카리프 왕국의 전설이 될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봇처럼 규칙적인 발걸음을 반복 하는 다른 타이탄들과 달리, '그' 푸른 라돈만은 마치 육상 선수를 방불케 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적들을 향해 튀어나갔다.

  혼자 무리에서 튀어나와 선두에서 버린 푸른 라돈.

  "으하하! 쟤 뭐냐!"

  "영웅놀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직 먼 곳에서 제국의 타이탄 탑승자들이 그런 푸른 라돈을 비웃어 댔다.

  마치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은 금세 이변을 알아챘다.

  "야, 저 자식 심상치 않다."

  "모두 조심해! 저 타이탄, 뭔가 이상해!"

  무결의 움직임에서 그의 심상찮은 실력은 이들이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어딜 가든 꼭 말을 안 듣는 놈들이 있었다.

  "뭔가 이상해 봐야 혼자인데 뭐."

  그렇게 말하며 검은 파이톤 한 기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어느새 정면까지 다가온 푸른 라돈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이 자식아!"

  그리고 그것이 그의 유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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