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19 '미친 건가……?'
순간 처음 든 생각은 그거였다.
머리에 꽃을 단 사람과 저 타이탄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겹쳐 보였다.
미친 나머지 무기를 들고 상대를 죽이려는 살의로 충만한 자들에게 맨몸으로 뛰어드는 미친 사람.
그게 저 타이탄을 보고 생각난 이미지였다.
쿠세이는 저 타이탄이 금세 검은 색 타이탄들에 의해 꼬치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기적적인 형태로 배반당했다.
툭.
그 푸른 타이탄은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적들 사이를 교묘하게 헤집었다.
그러면서 그가 한 일은 간단했다.
톡톡. 콰직.
아카리프의 타이탄들과 대치하고 있는 타이탄들의 다리를 툭툭 발로 건드리거나, 때로는 발로 밟고 지나가며 그들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나 신속하여 마치 그냥 타이탄들 사이를 달려서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찌나 교묘하게 무게중심을 건드렸던지 대치 중인 검은 파이톤들은 속수무책으로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그리고 타이탄이 적과의 대치 중에 넘어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 했다.
엎드려서 버둥거리는 검은 타이탄들에게 죽음의 칼날들이 내려앉았다.
죽음을 선사한 왕국군의 타이탄들이 재빨리 뒤로 빠졌다.
순식간에 스무기 중 다섯 기의 타이탄이 사라졌다.
이제는 15 대 6.
'저 이상한 타이탄까지 포함하면 15 대 7.'
쿠세이는 옆쪽을 흘긋 돌아보았다.
팔 없는 타이탄은 다섯 기의 검은 파이톤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검은 타이탄들과 함께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된 이상 저 타이탄이 버텨줄 때까지 10 대 6인가?'
15 대 6에서 10 대 6으로 순식간에 상황이 달라졌지만, 불리한 상황인 건 여전했다.
다시 검은 파이톤들과 아군 타이탄들이 맞붙었다.
캉! 카가가각!!
그래도 수 차이가 줄어들어서 아까보다는 훨씬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제국 측 타이탄들은 한꺼번에 모두 달려드는 대신 직접 맞 붙지 않는 타이탄들이 은근슬쩍 측면을 경계하고 있었다.
방금과 같은 공격이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한결 더 여유가 생겼다.
'시간을 더 벌 수 있게 되었군.'
쿠세이는 방금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팔 없는 타이탄에게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는 아직까지 자신들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캉캉캉!
타이탄들과 자신의 싸움이 다시 재개되었다.
숫자 차이가 꽤 났지만 자신들은 부대의 정예 중 정예들인데다 '20 대 10'과 '10 대 6'은 은근히 다른 법.
불리한 와중에도 사망하는 사람 없이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버렸을까? 파사삭.
근처 나무 사이에서 다시 그 팔 없는 타이탄이 튀어나오더니- 검은 파이톤들 사이로 다시 달려들었다.
"……오, 왔군."
쿠세이는 깜짝 놀라면서도 은근 저 타이탄이 반가웠다.
뭐니 뭐니 해도 지금의 기회는 저 타이탄이 만들어준 거였으니까. 그보다 궁금했다.
그를 쫓던 다섯 기의 검은 타이탄은 어찌 되었단 말인가?
티이케 제국 측도 이번에는 그냥 당하지 않았다.
검은 파이톤들 중 측면을 경계 중이던 네 기의 타이탄이 바로 반응했다.
그들은 검을 들고 팔 없는 타이탄이 다가오면 공격할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팔 없는 타이탄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가들다 말고, 뒤로 가볍게 점프해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검은 타이탄들을…… 도발 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가까워져서 긴장하게 했다가, 다시 멀어져서 허탈하게 하는가 하면, 바닥에 주저앉기도 하고, 혹은 한다리를 검은 파이톤들을 쪽으로 내밀어 발을 까딱까 딱하기도 했다.
덤비라는 뜻처럼 보였다.
"허허……."
백인대장 쿠세이는 그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혀서 허허 웃었다.
"저…… 저 새끼가!!"
"대장님, 저희가 저놈 죽이고 오겠습니다!"
팔 없는 타이탄의 도발은 제대로 먹혀들고 있었다.
제국 쪽 타이탄들 사이에서 분노에 찬 고함이 오갔다.
"그래, 죽여 버리고 오자! 듀세, 크랑프, 그리고 내가 간디-! 나머진 우리 올 동안 다 죽여놓고 있어! 알겠나?"
"알겠습니다! 흐흐."
세 명의 검은 파이톤이 팔 없는 타이탄을 죽이러 무리를 이탈했다.
팔 없는 타이탄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숲속으로 도망쳤고, 세 검은 파이톤이 그 뒤를 쫓아 들어갔다.
"이번에도 돌아오길."
그것이 백인대장 쿠세이를 비롯한 다섯 왕국군의 소망이었다.
* * * 숲속을 네 기의 타이탄이 달리고 있었다.
검은색 셋, 그리고 팔 없는 파란 색 하나.
"으아!! 저 새끼 왜 이렇게 빨라!!"
검은 파이톤을 탄 제국군 기사 크랑프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무래도 양팔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번에는 듀세라는 이름의 기사였다.
"이 멍청이들아, 그게 아니야. 저 조종사 새끼, 실력이 엄청나."
한껏 굳은 목소리로, 티이케 제국의 백인대장 칼스가 말했다.
"잘 봐봐. 저놈 움직임, 특히 상체를."
칼스의 말에 듀세라와 크랑프가 팔 없는 타이탄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려 했다.
그런데.
"안 보입니다!"
"너무 멀어져서 이 제안 보이는데요?"
"젠장."
칼스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부하들의 말대로 이미 팔 없는 녀석이 눈에 보일락 말락 할 정도 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놈, 타이탄으로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갈 때의 상체 방향 전환이 거의 사람 같아.'
보통 타이탄들은 방향을 전환할때 그 방향으로 몸통까지 함께 튼다.
발의 페달로 다리를 조종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이 딱딱해 지는 것이다.
하지만 저놈은 마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필요할 때마다 상체의 방향을 부드럽게 바꿔주며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팔까지 있었더라면 더욱 사람처럼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타이탄의 균형이 더욱 안정적으로 변하면서 속도도 더 빨라졌다.
보통 조종 실력이 아니었다.
'아까 쫓아간 다섯 기는 근데 어떻게 된 거지?'
아마 저놈에게 속아 숲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함정을 경계하면서 간다!"
그는 이렇게 외치면서 전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쫓아가던 그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헛!"
쫓아가던 세 사람은 더욱더 속력을 올려 그 녀석을 잡으려 쫓아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쾅!
달리는 경로의 나무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리에 크랑프의 타이탄이 다리를 걸려 넘어졌다.
"크억!"
크랑프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듀세, 놈을 잡아!"
"예!"
칼스가 뒤로 돌아서며 상황을 알아채고 듀세에게 명령을 내렸다.
듀세는 바로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발을 건 팔 없는 타이탄을 쫓아갔다.
그런데.
탁, 탁탁!
그 팔 없는 타이탄이 마주 달려 오는 것이 아닌가?
"이 새끼가?"
팔도 없는 놈에게 얕보였다는 생각에, 듀세가 분노에 찼다.
그래서 놈이 간격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타이탄의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턱!
검이 뭔가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이런!"
옆에 있던 나무였다.
분노에 시야가 좁아지는 바람에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던 장애물을 놓친 것이다.
듀세는 즉시 칼을 놓았지만 이미 타이밍이 늦어 있었다.
듀세는 화면으로 다가오는 녀석의 커다란 발을 확인했다.
"발차기……?"
그것이 듀세가 본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쾅!!
듀세가 탄 타이탄이 가슴이 움푹 파이며 쓰러졌다.
"듀세!!!"
쓰러진 프랑크를 도와주러 가다가 그 모습을 봐버린 칼스가 절규를 내질렀다.
팔 없는 타이탄은 발차기 후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칼스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타이탄은, 팔과는 달리 결코 발을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팔은 동기화 장치가 존재해서 팔을 움직이는 대로 어느 정도 그 움직임을 타이탄을 통해 구현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타이탄의 발 부분은 동기화 장치를 도입할 수가 없었다.
물론 발도 처음에는 동기화 장치를 도입했었다.
그런데 그러자 타이탄이 계속해서 넘어지며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평지에서는 괜찮았다.
하지만 고저 차가 있는 지형이나, 장애물이 있는 곳에서는 10명중 9명 정도가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연구자들은 그 원인을 곧 밝혀내었다.
원인은 간단했디-.
바로 '촉각의 부재'였다.
사람은 사물을 밟음으로써 그 압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 압력을 통해 내 몸의 균형을 잡을 수가 있다.
'내가 계단을 이 정도 밟았으니, 더 밟으면 상체가 뒤로 넘어가겠구나' 하는 것을 신체가 컨트롤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타이탄을 조종하는 자들은 그런 타이탄의 발의 압력을 느낄 수가 없다.
타이탄이 무엇을 밟든 간에 그냥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하는 느낌 인 것이다.
때문에 다리를 얼마만큼 움직여야 하고, 어느 순간에 다리를 멈추 어야 할지, 이런 세세한 컨트롤이 가늠이 안 되었다.
게다가 발은 팔과는 달리 눈으로 보면서 컨트롤할 수도 없는 부위였다.
전투 중에는 상대방을 바라봐야 하는데, 발을 보며 발이 언제 땅에 닿나, 장애물에 부딪치지는 않나하며 세세히 살펴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발은 '매뉴얼화' 혹은 '프로그램화'되어 '이 페달을 밟으면 전방으로 달린다', '이 페달을 밟으면 점프를 한다' 따위의 간단한 동작만으로 그 기능이 한정되었던 것이다.
물론 발을 자유롭게 조작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기는 했다.
조종사가 발과 더불어 '손으로도' 직접 발의 움직임을 조작하면 되는 것이다.
팔 없는 타이탄이 한 것같이 발차기를 하려면, 달리기 페달을 밟다가 점프 페달을 밟은 다음, 동시에 왼발을 당기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뻗는 조작을 손으로 해주면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저렇게 타이탄의 '명치' 부근에 발로 정확한 명존쎄를 날리려면 발을 움직이는 각도와 다리를 뻗는 속도 등까지 전부 다 손으로 조작하면 된다.
그것도 점프한 후 허공에 잠깐 떠 있는 그 짧은 순간에.
'참 쉽죠?'
무결이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버튼과 레버들을 조작했다.
그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반인은 양손으로 세모와 네모 그리는 것도 어려워 하는데, 이쯤 되면 양손으로서로 다른 악기를 즉흥연주하며 발로는 드럼을 치는 정도의 난이도라 할 수 있겠다.
'뭐, 그래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긴 하네.'
기간테스의 경우에는 AI의 도움과 훨씬 잘 프로그램화된 동작명령 버튼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타이탄보다는 조종하기 쉬운 점도 있었다.
이 타이탄은 조종장치들이 너무 원시적이라 일일이 하나하나 다 만져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번거롭기는 했지만, 솔직히 아직까지 '힘들다'의 영역은 아니었다.
그는 이번 사냥의 하이라이트, 적의 대장이 다가오는 것을 디스플레이를 통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