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16 나는 '검은 수도회'의 비밀 연구실 한편에 있는 엘리스의 연구공방에 들어와 있었다. (116/215)

  기계신과 함께 116 나는 '검은 수도회'의 비밀 연구실 한편에 있는 엘리스의 연구공방에 들어와 있었다.

  검은 수도회의 비밀 연구실은 바티칸 도서관의 비밀 공간에 자리해 있었다.

  "이겁니다."

  엘리스가 커다란 목곽에서 사람의 상체만한 금속의 정육면체 큐브를 꺼냈다.

  큐보의 표면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이 가득 쓰여 있었다.

  "생긴 대로 그냥 '큐브'라고 부르고 있는 물건이죠. 제가 신기한 걸 보여 드릴게요."

  엘리스가 큐브롤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러자 큐브가 1cm가량 뜬 상태로 탁자 위에 자리했다.

  "마법을 쓰거나 그런 건, 당연히 아니랍니다."

  "이게 큐브 스스로 계속 이렇게 뜬 상태인 거예요?"

  "예, 발견했을 당시부터 이렇게 땅 위로 떠 있더라고요."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네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큐브를 요리 조리 살펴보았다.

  적혀 있는 글씨는 나로서는 못 알아보겠다.

  대신 나는 이 큐브에서 다른 걸 읽을 수 있지.

  -이름 : 테베르크의 동력석 -희귀도 : 유니크 -상태 : 봉인 -설명 : 막대한 힘이 봉인되어 있는 고대병기의 동력석.

  '……고대 병기?'

  "엘리스, 이거 던전에서 얻은 거예요?"

  "아니요, 던전시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거예요."

  "……정말요?"

  "예, 입수 경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꽤 오랜 시간 이전부터 이 검은수도회에 보관되어져 왔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굳은 얼굴로 이 동력석을 바라보았다.

  던전시대 이전, 즉 지구역사 속에서 존재해 왔던 아이템.

  즉 지구에서의 '고대문명'의 산물.

  엘리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구에도 신비한 힘을 가진 고대문명이 있었던 듯하다.

  '연구해 보면 고대문명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이 동력석에 얼마나 대단한 힘이 깃들어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몬스터들과 싸우는데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큐브는 던전시대가 발생한 이래로 계속해서 주변 마나를 조금씩 흡수해 가고 있어요. 저희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래로 이 큐브 속에 담긴 에너지를 측정해 봤는데…… 그때 여기 연구원들 사이에 난리가 났었죠. 여기 담긴 에너지가 세어나오면 핵폭발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폭발이 일 테니까요."

  엘리스가 큐브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걸 무결 씨에게 보여드리는 이유는, 이게 마법적인 힘의 산물은 아닌 것 같아서예요. 무결 씨는 기계과학의 힘에 정통하니까 혹시 여기에 대해 뭔가 좀 알아낼 수 있을까 싶어서요."

  아마 은하그룹이나 내 [디바이스 컨트롤]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만약 이 힘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게 아니더라도 이게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란 보장이 필요해요. 어떤 방식으로든 이걸 연구해야 하는데, 마침 도움을 구할 사람이 나타나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엘리스가 날 보며 빙긋 웃었다.

  "그 말은 지금 연구협력을 구하시는 것 맞죠?"

  "네, 맞아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불감청 고소원.

  나야말로 이들과 협력하기를 바라 마지않으며 바티칸으로 날아온 것 아니겠는가.

  이쪽에서 먼저 연구 협력 관련해서 손을 내민다면,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한국으로 가져가서 한 번 조사해 보죠. 아, 그쪽으로 가져가려는 이유는 굳이 설명 안 드려도 되겠죠?"

  "물론이죠. 저도 은하그룹의 연구 시설을 두 눈으로 본 장본인인데요. 이미 교황 성하께 허락도 받아놨어요."

  엘리스가 은하그룹의 엄청난 시설들을 떠올리는지 혀를 내둘렀다.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요, 연구 협력에 대한 얘기를 더……."

  "좋아요, 저도……."

  * * * 나는 엘리스에 이어 교황에게도 연구 협력 건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애초에 내 바티칸행의 목적은 '바티칸 도와주고 협력관계를 맺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바티칸의 도움을 얻어내고자 적극적으로 교황을 설득했다.

  교황은 이미 내게 받은 도움이 컸기 때문인지 내 요구를 꽤나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내가 어떤 보상이나 물질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인적 자원의 파견만을 요청한 것도 크게 한몫했다.

  덕분에 나는 검은수도회를 비롯한 일부 이론마법사들을 은하그룹에 초빙할 수 있게 되었다.

  파견되는 이들은 은하그룹에서 우리의 요청에 따른 마법 연구를 진행 할 예정이었다.

  또한 바티칸 자체에서도 계속해서 마법과 관련된 연구들을 진행할 것이니만큼 파견 마법사들이 바티칸과 은하그룹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대신 우리는 바티칸에 기술적 장비들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런 고로 함께 가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무결 씨."

  엘리스가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야말로 계속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엘리스."

  나는 엘리스의 손을 반갑게 맞잡아 악수를 했다.

  엘리스는 내가 교황에게 최우선적으로 파견해 주길 부탁한 인재였다.

  지금 나는 은하그룹에 파견되는 바티칸의 파견단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파견단과 하나하나 손을 맞잡으며 진심을 다해 인사했다.

  그리고 파견단의 마지막에서 있는 세 명에게 다가갔다.

  "에드가 씨, 마르셀라 씨, 클로틸데 씨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성당기사단, 아니, 전(前) 성당기사단의 각성자들이었다.

  이들은 얼마 전 나와의 싸움으로 한쪽 팔을 잃은 비운의 마법사들이기도 했다.

  나는 얼마 전, 성당기사단의 본부로 이들을 찾아갔다.

  내가 이들을 찾아갔을 당시 이들은 후임자들을 고르고 있었는데, 상당히 의기소침한 표정이었다.

  팔을 잃은데 이어 명예로운 성당기사단의 자리에서 부상으로 내려오게 되었으니, 사실 당장 주저앉아 엉엉 운다고 해도 이상하게 볼 사람이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찾아온 줄도 모른 채 나를 보며 잠깐 원망의 표정을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의 팔을 앗아간 것은 나였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도 곧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표정을 수습했다.

  팔을 빼앗긴 했지만 사실상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 또한 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악령에 잠식된 자들의 말로가 악마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 바였기 때문에 내게 정화된 이들을 포함한, 사건 당시 악령에 씌었던 자들이 내게 갖는 고마움은 구명(救命)의 은혜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또한 곧 내게 다가와 감사 인사를 했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한 말은 이것 이었다.

  "절 따라 한국으로 가시겠어요? 그럼 팔을 치료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은 이들은 곧 말뜻을 알아듣고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로서는 당연히 수락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물론 이 제안 속에는 한 가지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들은 뭐니 뭐니 해도 바티칸 최고의 전투원 중 하나라는 성당기사단의 전투마법사들.

  나는 그런 이들을 한국에 데려다놓고 치료 과정에서 여러모로 작은(?) 도움들을 받는다면서로 윈-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주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유가선공]과 [천옥보주]만으로 없어진 이들의 팔을 재생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은하그룹과 힘을 합친다면 사라진 팔을 재생하는 것도 가능할 확률이 높았다.

  다른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은하그룹의 생체의학 분야 또한 진화라 해도 좋을 만큼 빠른 성과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바티칸에서 이뤄낸 눈앞의 성과를 보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과학 쪽으로만 치우친 연구에 대한 우려는, 한시름 덜었다.

  '여러분 모두 제게 고마워하게 될 겁니다.'

  내가 눈앞의 이들을 보며 속으로 웃음 지었다.

  이들의 가세로,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세계 최고의 마법국가인 바티칸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아닌 바로 '은하그룹'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점차.

  나 '신무결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었다.

  '온다.'

  저 하늘 멀리, 기다리던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은 내 눈에만 보이는 아주 작은 점.

  그러나 그 점은 점차 커지더니, 파견단의 눈에까지 보일 정도로 커졌다.

  "어……!"

  "저, 저거!!"

  바티칸 파견단이 놀라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에는 커다란 배[船] 한 척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오고 있었다.

  대형 화물선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강철의 배.

  은하그룹의 새로운 발명품, 비공정 (飛空艇)이었다.

  비공정은 우리 머리 위 상공 5미 터가량의 높이에서 멈추더니, 하단부의 해치가 열렸다.

  그리고 그 해치에서 계단이 스르르 내려왔다.

  내려오는 계단에는 여러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그 가장 앞에 익숙한 소년이 보였다.

  은하그룹의 젊은 천재 후계자, 은하수였다.

  그는 계단이 지상에 닿자, 계단에서 폴짝 내려섰다.

  그리고 아직까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파견단 사람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안전한 여정을 책임질 은하그룹의 은하수라고 합니다. 이것은 저희 그룹에서 개발한 비공정으로, 여러분을 모시기 위해 특별히 파견된 것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내원이 여러분께 객실을 배정해 줄 테니, 부디 사양치 마시고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은하수가 능숙하게 파견단 사람들을 비공정 내부로 안내했다.

  은하그룹 직원들의 인솔 아래 파견단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비공정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은하수는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 하자 내 옷깃을 잡고 옆으로 빠져나왔다.

  "후후, 고생했으."

  은하수가 내게 주먹을 내밀었고, 나도 그 주먹을 마주 쳐주었다.

  "어때, 결과가 마음에 좀 들어?"

  "마음에 들 뿐이냐? 흥분돼 미치겠다."

  은하수가 몸을 부르르 떨며 지금 느끼는 흥분과 설렘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전부 다 최고들로 파견해 준 거랬어. 거기 소속돼 있던 엘리스의 증언이니 믿어도 될 거야."

  "좋아 좋아."

  "그러니까 최고로 대접해 주면서 아예 은하그룹을 떠나기 싫도록 만들어 버려. 파견단이지만 어느 정도 거취에 대한 의사결정권이 있으니까 저들이 가기 싫다고 하면 계속 우리 쪽에 머무를 수도 있을 거야."

  "걱정 마라. 아주 뼈를 흐물흐물하게 녹여 버릴 테니까."

  은하수가 큭큭 웃었다.

  "그건 그렇고 비공정, 용케 벌써 저 정도까지 완성했네?"

  "계획을 세운 게 언젠데 지금쯤 당연히 완성해야지. 후후, 아직 프로토 타입이긴 하지만."

  은하수가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비공정은 전생에서도 2년 후에나 하늘에서 볼 수 있게 되는 무기였다.

  물론 그때는 하늘이 지금처럼 몬스터 청정구역이 아니라서 띄우는데 오래 걸린 것이었지만.

  "이게 다 내 천재적인 머리 덕분이지. 으하하하하!"

  나는 자화자찬에 빠진 은하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사실 은하수 덕분이긴 했다.

  그가 천재가 아니었더라면 은하그룹이 결코 이 정도까지 오진 못했을 것이다.

  "그래, 다 형 덕분이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내가 그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을 은하수의 노고를 인정해 주었다.

  "야,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부끄럽지. 사실 거의가 네 공이고 나는 숟가락만 얹은 건데."

  그러자 은하수가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한발 뻤다.

  공을 기술 발전에 필요한 거의 모든 아이템을 가져다준 내게로 돌리며.

  "무슨 소리. 형 공 맞아. 앞으로도 더 많이 가져다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지치지 말고 만들어내라고."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은하수를 칭찬해 주었다.

  칭찬할수록 고래처럼 춤추며 일에 매진하는 은하수의 성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케이. 나만 믿으라고."

  나와 은하수는 다시 주먹을 툭 부딪치고는 비공정을 향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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