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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15 (115/215)

  기계신과 함께 115

  "으음…… 무결 씨?"

  엘리스가 정신을 차렸다.

  "무결…… 아……."

  내 이름을 부르던 엘리스가 주위의 풍경에 넋을 잃었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등골을 찌르르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 낯선 풍경을 본 데 대한 의아함이 아닌, 경탄이 담겨 있었다.

  "이 풍경……."

  그녀가 중얼거렸다.

  "꿈속의…… 계시의 광경과 똑같군요. 마침내……."

  엘리스가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물이 내 어깨를 적시는 것을 느꼈다.

  "엘리스, 뭘 해야 할지 알겠어요?"

  "네, 무결 씨.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두 손을 내 목 앞으로 한 데 모아, 아름답고 고운 목소리를 발하기 시작했다.

  "아아~"

  아기의 손처럼 부드럽고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음색이 경당 내부를 고요히 흐르기 시작했다.

  천사가 부르는 노래가 이러할까?

  깊고 풍부한 그녀의 음색이 아름다운 멜로디와 합쳐져 지옥 같은 성당 내부에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아~"

  엘리스가 찬트(chant)를 부르는 동안 그녀로부터 하얀 빛이 너울지며 퍼져 나왔다.

  그녀의 주위로는 새하얀 룬 문자들이 동그랗게 그녀를 둘러싸며 날아 다녔다.

  이 역시 빛의 마법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하늘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름 : 엘리스 이브레아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마법적성 A], [전투 적성 B], [찬가의 성녀]

  평소 [???]이던 엘리스의 고유 스킬 칸이 [찬가의 성녀]로 바뀌어 있었다.

  "크에에엑!!"

  악마들이 엘리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에 괴로워하며 빛으로부터 눈을 가렸다.

  "으, 아, 안돼!! 설마했던 '엘릭사의 찬트'를 익혔다니!!"

  교황의 탈을 쓴 단탈리온만이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마침내 그의 영혼의 조각이 드러났다.

  손톱만큼 작은 구슬이, 악마의 몸에서 몸으로, 그리고 추기경들의 몸으로 빠르게 옮겨 다니고 있었다.

  '저 거였군.'

  그 어떤 기척도 없이 날아다니는 작은 구슬.

  저것이 바로 마왕 단탈리온의 영혼의 조각이었다.

  '네 소갈머리만큼이나 작은 조각이구나, 이 개새끼야.'

  ……이렇게 작은 게 추기경들에게 까지 옮겨 다니니까 깨지질 않지.

  내가 몬스터들을 난사할 때는 추기경들에게 들어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나는 빠르게 날아다니는 그 조각을 향해 마력을 모아, 총탄을 날렸다.

  마지막 3개가 남았던 정화의 총탄 중 하나였다.

  "안돼애애애--!!!"

  핑!

  영혼의 조각이 총알에 맞아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그 순간.

  "끕, 끄읍, 끄으으아가가가아아악!!"

  교황이 미친 듯이 몸을 떨더니 제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몸속에서 거대하고 검은 악령이 흘러나왔다.

  실체화된 단탈리온의 본체였다.

  "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단탈리온은 스르르 허공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성역이, 다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벤트 던전 '단탈리온의 성역'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클리어에 공헌한 자에게 공헌도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집니다.]

  [카르마 포인트 20, 000개가 주어집니다.]

  '오, 카르마 포인트 2만 개라니.'

  이벤트 던전치고 굉장히 많은 양이었다.

  내게는 웬만한 스킬북과 아이템보다 훨씬 유용한 보상이라 할 수 있었다.

  "어, 어라……. 찬트 스킬북이라니."

  내 등 위에서 엘리스는 자신의 손에 놓인 스킬북을 읽어보며 황당하게 말했다.

  "할 줄 아는 노래라고는 그거 하나 였는데……."

  어떤 의미에서든 간에 엘리스도 대단하다.

  그렇게 아름답게 노래를 불러놓고, 그게 할 줄 아는 유일한 노래였단다.

  그리고 그거 하나 불러서 찬트에 관련된 스킬북을 얻고.

  -이름 : 엘리스 이브레아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마법적성 A], [전투 적성 B]

  고유 스킬의 마지막 칸, [찬가의 성녀]가 있던 자리가 점차 희미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신기한 스킬이군.'

  나는 그녀를 등 뒤에서 내려주었다.

  "으음……."

  제 모습으로 되돌아온 '십자근위대' 소속 각성자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들은 벌떡 일어서서, 내게 다가왔다.

  "당신의 활약,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영웅입니다!!"

  "오, 하느님! 당신은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인가요?"

  그들은 열렬하게 나에게 다가와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어떤 이는 눈물 콧물을 달며 정말 정말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어?"

  나는 얼떨떨하게 그런 그들을 바라 보았다.

  [마스터,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방금 전의 기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슈리의 말처럼 방금 전 악마화되었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한 거라고 이 사람들 때리고 죽이고 때리고 날리고 한 것밖에 없는데…….'

  추기경들 보호하랴, '영혼의 조각' 을 찾으랴 하면서 정신없이 때리고 날리고 죽인 기억밖에 없는데 이렇게 고마워하다니…….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악마로부터 구해준 것이 된 거니까요. 마스터 덕분에 이들 모두가 산 건 맞잖습니까.]

  '그, 그렇긴 하지.'

  슈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계속되는 열렬한 환호와 감사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그런 그들 사이로 흰 옷을 입은 할아버지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인자한 얼굴의 교황, 알렉산데르 11세였다.

  "교황 성하!"

  모두가 교황의 모습에 환호를 멈추고 예를 갖추어 고개를 숙였다.

  교황은 고개를 끄덕여 모두에게 태도를 편안히 할 것을 지시했다.

  "성하."

  엘리스가 살짝 눈물을 보이며 교황의 손을 잡았다.

  "엘리스."

  교황이 따뜻하게 엘리스의 손을 잡아주었다.

  "고생이 많았구나."

  "성하께서 더 고생이 많으셨죠."

  엘리스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훔쳤다.

  교황은 이번에는 날 보며 말했다.

  "당신이 바로 엘리스가 선택한 '열쇠'였나 보군요."

  그가 흐뭇하게 웃었다.

  "열쇠…… 말입니까?"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 이야기는 내 궁으로 가면서 하기로 하지요."

  나는 궁으로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엘리스는 한 가톨릭 추기경의 음모에 목숨을 잃은 고고학자 부부의 딸이었다.

  교황은 그 추기경을 처벌하고 어린 엘리스를 거두어 생활을 돌봐주었던, 엘리스의 은인이자 대부라고 할 수 있었다.

  엘리스는 어려서부터 이미 명석한 두뇌로 유물과 신비에 대한 연구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인재였고, 교황은 몰래 그런 엘리스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엘리스는 교황 덕분에 교회의 비밀 연구 단체였던 '검은 수도회'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을 걸었는데 '검은 수도회'에 들어간 이상 평생 바티칸의 감시하에 살 것을 맹세하는 것이었다.

  ……검은수도회는 '이단'에 관해 연구하는 곳이었다.

  바티칸에서 모은 수많은 이단 문물들, 그들이 과거 박해했던 마녀와 마법사, 그리고 다른 신비한 문물이 총망라된 곳이 바로 바티칸의 비밀 연구 단체 '검은 수도회'였다.

  그곳에는 물론, '마법'에 관한 연구 기록들도 상당히 많았다.

  엘리스는 한동안 '검은 수도회'에 갇혀 살았다.

  물론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은거였다.

  그렇게 몇 년을 '검은 수도회'에서 '망상'이나 '이단'으로 치부되는 학문들을 익혀온 엘리스는 어느새 이론 마법의 대가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도 엘리스는 또 한 명의 몽상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던전시대에 이르러 '마나' 라는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그녀는 거기서 쌓은 마법 실력을 바탕으로 던전시대에 이르러 바티칸 최고의 마법 연구가이자 뛰어난 마법사가 되었다.

  ……바티칸은 던전시대에 이르러 풍전등화에 휩싸였다.

  [라비우스의 악마]라는 초위험 던전이 바티칸 한가운데 떡하니 생겨난 것이다.

  많은 헌터가 들어갔으나 [라비우스의 악마]는 오히려 그들의 목숨을 집어삼키고 많은 몬스터를 내뱉었다.

  바티칸은 전장의 한복판이 되었다.

  때문에 이곳에 거주하는 교황과 추기경은 항시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때 교황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항상 지하 연구실에서 마법 연구에만 몰두하는 소녀, 엘리스였다.

  그녀는 이미 교황청의 막대한 지원으로 많은 마법 이론들을 정립해 나가고 있었다.

  교황은 그녀를 끌어들일 계획을 세웠다.

  그는 평소 엘리스가 특히 '방어 마법'에 관한 뛰어난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엘리스에게 교황 자신과 추기경들을 수호하는 성당기사가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것을 거절했지만, 교황은 성당기사단이 되었을 때의 온갖 특권들에 대해 설명해 주며 엘리스를 설득했다.

  특히 유물과 마법 서적에 대한 차원이 다른 접근 권한은 엘리스의 마음을 상당히 기울게 했고, 다른 성당기사와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비밀 기사'가 되게 해주겠다는 교황의 약속이 엘리스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그다음은 [라비우스의 악마] 던전에 대한 공략이었다.

  교황은 또 다시 막대한 연구 권한 과, 특히 던전 내부에 있는 '빛의 마법서'의 존재로 엘리스를 꼬셨다.

  은근슬쩍 성당기사단의 의무에 대해서도 들먹이며, 그녀를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엘리스는 처음에는 그 위험한 던전에 참여하는 것을 매우 망설였으나, 결국 교황의 꾐에 넘어가 던전 공략을 동참하고 말았다.

  그녀는 교황의 도움으로 신분을 숨기고 [라비우스의 악마] 던전을 공략하는데 큰 활약을 했다.

  [라비우스의 악마]

  던전이 공략되고, 바티칸은 잠시 평화에 빠졌다.

  교황은 '빛의 마법서'에 대한 연구를 엘리스에게 맡겼다.

  그는 가끔 엘리스가 연구하는 곳으로 찾아가 그녀를 보곤 했는데, 그 날따라 이상하게 더욱 엘리스가 보고 싶었다.

  결국 교황은 엘리스의 비밀 공방으로 찾아가 '빛의 마법서'를 연구하고 있던 그녀를 보았다.

  그때 당시 교황은 빛의 마법서에서 두 개의 그림을 보고 강렬한 직감을 받았다.

  "내가 본 것은 각각 열쇠와 노래하는 천사의 그림이었다네. 물론 그 그림들은 다 마법에 관련된 것이었어. 난 그것을 본 순간 강하게 예감 했지. 이 마법들은 꼭 익혀야 한다! 물론 내가 아닌 엘리스가."

  나는 교황이 말한 '예감'이 [선견지명]이라는 그의 스킬에서 나온 것이란 걸 깨달았다.

  "아마 그 두 가지 마법은 제가 '빛의 마법서'에 수록된 마법 중에 가장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두 개였을 거예요. 마법을 발동하는 방법이 각각 '기도'와 '노래'였거든요."

  엘리스는 예전부모님을 잃은 일로 가톨릭 신앙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도'라는 형식의 마법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있었다.

  '노래'는 평소에 전혀 해보지도 않은 분야였고.

  하지만 엘리스는 이제 교황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런 강한 직감을 호소하는데는 항상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그래서 엘리스는 교황의 말대로 열쇠와 날개에 관한 두 마법을 익혔다.

  ……그 두 마법은 엘리스가 익히자 마자 '빛의 마법서'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다른 마법을 익혔을 때와는 다른 반응이라 엘리스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쨌든 저는 그 마법들을 익히고 한동안 다른 던전을 클리어하러 출장을 갔다 왔어요. 거기 귀중한 마법서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었거든요."

  그리고 그동안 교황을 비롯한 추기경들은, [라비우스의 악마] 던전에서 빠져나온 악마들에 의해 영혼을 잠식당했다.

  "그 녀석들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지만, 어쨌든 출장에서 돌아온 저는 교황과 주교님들을 보는 순간 이상함을 확신했죠."

  엘리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평소에 사귀어둔 사람이라고는 같은 '검은 수도회'에서 마법과 유물을 연구한 자들뿐이었는데 그들에게 교황과 추기경의 이상을 말하고 도움을 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전에 익혀두었던 '천국의 열쇠'였다.

  "제가 그것을 사용했던 것은…….'천국의 열쇠'의 의미가 가톨릭교에서는 '하늘로 통하는 문', 즉 '기적'을 상징했기 때문이었어요.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한번 해보았던 것이었는데……."

  그녀는 처음으로 성당에서 그 마법을 사용하며 '기도'라는 것을 해봤다.

  그리고 그녀는 기도 속에서 '길'을 보았다.

  "사실 그때 제가 사용한 그 '열쇠' 마법, 그게 어떤 원리인지는 지금까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익히는 방법이 써 있어서 익힌 마법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그때 제가 보았던 것이 정말 '마법'인지, 아니면 '기도에 대한 응답'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게, 제가 살면서 경험한 가장 신비한 현상이었을 거예요……."

  그날 꿈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보았다.

  바티칸을 떠나는 엘리스.

  한국에서 '신무결'이라는 헌터를 찾는 엘리스.

  그와 함께 악마와 맞서 싸우는 엘리스.

  그리고 마지막에 이상하게 변한 바티칸 대성당에서, 악마들에 둘러싸여 노래를 부르는 엘리스.

  꿈에서 깨어난 그녀는 곧장 꿈의 내용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꿈의 내용을 따라갈수록 그 내용이 진짜란 것을 알아갔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고, 신무결을 믿고 따라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기적이 실현되었죠."

  엘리스가 따스한 눈빛으로 신무결을 바라보았다.

  신무결은 머쓱한 기분이 되어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이럴 게 아니라 내 관저로 들어가지. 자네들에게 묻고 싶은 게 아주 많단 말이야."

  꽤나 호탕한 성격의 이 교황은, 그 날 밤새도록 나와 엘리스를 붙잡고 포도주를 들이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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