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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13 (113/215)

  기계신과 함께 113

  "그럼 내가 먼저 질문하지. 네 녀석, 혹시 '선택받은 자'냐?"

  마왕 녀석이 먼저 물었다.

  선택받은 자?

  그런 것 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여기서

  "그게 뭔데?"

  라고 묻는다면 그건 바보 중의 바보다.

  내 아까운 질문이 하나 사용되는 동시에 저 녀석의 불완전한 질문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므로.

  "그게 뭔지 난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저 녀석은 알아서 '선택받은 자'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과연 녀석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함정에 걸려들지 않은 게 아쉬운 모양이다.

  "'선택받은 자'란 '그'에게서 선택 받은 자를 말한다. '그'란 더 높은 차원으로 간 신이고, 네가 만약 '선택받은 자'라면 '그'의 증표를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 명확해지려는 표층기억 하나를 재빨리 덮어버렸다.

  대신 애국가를 머릿속으로 흥얼거렸다.

  '동해~ 물과~'

  녀석이 얼굴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지도 모른다'야."

  "무슨 대답이냐, 그게!"

  마왕이 버럭 짜증을 내었다.

  "나는 내가 '선택받은 자'인지 아닌지 몰라. 그렇다고 네가 그 '증표' 란 게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알려준 것도 아니고. 네가 준 정보를 토대로 말하자면 '그럴지도 모른다'가 내가 줄 수 있는 정보의 한계야. 아니면 증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명확히 말해주든가."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고 해서 근질근질했지만, 그 또한 얼른 묻어두었다.

  머릿속으로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좋다. 그렇다면 네 자신이 만약 '그 징표'라고 추측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내게 보여다오."

  마왕이 말을 이었다.

  나는 씨익 웃었다.

  "그럴 수 없어."

  "뭐? 분명 서로의 질문에 대해 성실히 답해야 한다고 했을 텐데? 이렇게 나오면 나도 네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마왕이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들어봐, 일단 네 요구에는 두 가지가 잘못됐어."

  나는 검지를 들어 올려 녀석의 눈 앞에서 얄밉게 흔들어 보였다.

  "첫째, 너는 "

  네 자신이 만약 '그 징표'라고 추측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

  이라고 말했어. 여기에는 한가지 '질문'이 들어 있어. '내가 '그 징표'라고 추측하는 물건이 있느냐, 없느냐'. 이건 명백한 두 번째 질문이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아직 내 첫 번째 질문도 하지 못했지.

  따라서 네가 내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해 줄 때까진 이 질문에 대답할수 없어.

  "

  "……음."

  마왕이 신음을 흘렸다.

  내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우리는 서로에게 뭘 '보여달라'고 요구할 수 없어. 아니, 요구할 수 있지만 나한테 그에 응할 의무는 없지. 우리가진 의무는 서로의 '질문'에 대한 '대답'뿐이야. 그 '대답'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을 요구할 때는 네가 뭘 요구하든 내가 거기에 응할 의무는 없어."

  "……만만찮군."

  마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좋다. 그럼 네 질문에 대답한 다음 그에 대한 답을 듣도록 하지."

  "좋아."

  나는 만족스레 미소 지었다.

  한 고비 넘겼다.

  "그럼 내 질문은, 이 '던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목적이 뭐냐'다. 아, 물론 알고 있겠지만 '던전'이란 너희같이 원래는 지구상에 없던 존재들이 등장하는 곳을 뜻한다."

  드디어 가장 궁금하던 질문을 물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까 말한 '그'의 시련이다."

  "……."

  "……."

  "…….그게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미안하지만 이 이상은 '비밀'에 걸려서 말해줄 수 없군. 나도 유감이다."

  전혀 유감이 아닌 표정으로 마왕이 씨익 웃었다.

  얄미운 새끼.

  나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나는 얻었다. 답을.

  "좋아, 그럼 당신 다음 질문은? 아까 그걸로 그냥 가려나?"

  '내가 '그 징표'라고 추측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가 아까 그의 질문이었다.

  "그래, 그걸로 가겠다."

  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코스트가 큰 것 같지 않은 질문이라서.

  "응, 가지고 있어."

  "좋다."

  마왕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내 마지막 질문이군."

  나는 머릿속을 팽팽 굴렸다.

  뭘 질문할까?

  이걸로 할까나.

  "두 번째 질문이다. '당신같이 던전을 열 수 있는 존재'들은, 왜 이 세상에 개입하는 거지?"

  어차피 두 번째 질문은 저놈들, 가끔 이 세상에 흔적을 보였던 '초월적 존재'들에 대해 물으려 했다.

  그들의 '정체가 뭐냐', 혹은 그들의 '목적이 뭐냐'. 궁금했던 이 두 가지 중 후자를 골랐다.

  "유희다."

  이번에도 마왕의 대답은 짧았다.

  ……이번에도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들은 내 기분은 가히 좋지 않았다.

  "좋아, 이상으로 질의응답을 마치도록 하지."

  내가 일부러 선생님 같은 말투로 이 시간의 종료를 알렸다.

  "이제 네놈 아바타를 부술 시간이군."

  내가 마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엿 같은 기분을 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지 않은가.

  "……그게 내 아바타란 것도 알고 있다니, 대단하군. 역시 '선택받은 자'인가."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바타란 초월적 존재가 지상에 강림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실은 존재, 즉 '분신' 혹은 '지상에 드리운 그림자', '가짜 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존재였다.

  무엇보다 '초월자'들의 힘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유익한 시간이었다. 행운을 빌도록 하지. 크쿡."

  마왕 단탈리온이 큭,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세상이, 제 시간을 되찾았다.

  * * * [마왕 단탈리온은 이곳에서 자신의 영혼의 조각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마왕은 자신의 영혼의 조각을 자신의 육체가 아닌 타인의 육체에 숨겨 두었습니다. 숨겨진 마왕의 영혼의 조각을 찾아 파괴하십시오.]

  [마왕과 당신은 직접적으로 서로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모험가님의 건투를 법니다.]

  아까 들었던 메시지가 다시 한번 흘러 나왔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시작이라는 뜻 이겠지.

  "후후, 과연 네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저 멀리서 교황이후후 웃는다. 마왕 단탈리온.

  그의 모습이 교황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뭐, 뭐야?"

  "여기가 어디야!"

  "흐익!!"

  각성자들이 갑자기 변한 환경에 우왕좌왕한다.

  이곳은 마왕 단탈리온의 성역.

  세상이 온통 검고 붉은 불길한 세상이었다.

  지옥이 있다면 꼭 이곳처럼 생겼으리라.

  당연히 각성자들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 가라, 내 아이들이여."

  교황이 그런 각성자들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손바닥에서부터 죽은 자들의 얼굴인 데스마스크가 줄기줄기 뻗어나왔다.

  데스마스크들은 허공을 유령처럼 휘젓더니 하나둘 각성자들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흐악!"

  "저리 가!!"

  각성자들이 이리저리 도망다니기도, 때로는데스마스크에 공격을 퍼붓기도 했지만 무용지물.

  악령들에게는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교황의 존재 자체가 보이지도 않는지, 근처에 있는 교황에 대해서는 그 어떤 각성자도 의식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의식하지 못하는 걸 넘어 아예 교황이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원이 형성되어 그 어떤 각성자도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데스마스크를 집어삼킨 각성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모을 뒤틀었다.

  어떤 각성자는 온몸을 손톱으로 벅벅 긁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둑, 툭.

  그들이 입은 옷이 찢어지며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크르, 크르르……."

  각성자들이 모두 악마화되고 있었다.

  "후후, 성당기사단을 비롯한 십자 근위대의 몸에는 '씨앗'을 심어놓았지. 그동안 힘이 부족해서 부화시키진 못했는데, 성역에서라면 애기가 다르지."

  교황, 아니, 마왕 단탈리온이 후후 웃었다.

  "씨앗이 부화된 게 바로 악령이었나 보군."

  "악령? 아, 내 아이를 말하는구나. 그렇지. 씨앗은 씨앗일 뿐, 그게 발아해야 비로소 영혼을 갖게 되니까."

  "저절로 싹트는 일은 없나?"

  "그런 일은 없다. 씨앗은 나 또는 내 자식들이 손쓰지 않으면 그대로 잠들어 있을 뿐이다."

  "그건 참 다행이군."

  여기서 나가서 악령들을 정화한 후에 씨앗까지 제거할 필요는 없을 듯 했다.

  "글쎄, 다행일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단탈리온이후후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나의 적을 죽여라, 내 아이들아!"

  "으르르."

  "크르링!!"

  악마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후, 그럼!"

  나는 자리를 박차 올랐다.

  관건은 '단탈리온의 영혼의 조각 찾기'였다.

  저놈의 영혼의 조각은 여기 있는 생명체의 몸속에 있다고 한다.

  저 각성자들 또한 악마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엄연한 생명체이니 아마 저들 속에 들어있는 걸로 보는 게 맞을 듯했다.

  '근데…….'

  저기에서 '영혼의 조각'을 가진 놈을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그게 문제였다.

  "끄응."

  또 큰 문제가 있었다.

  내 뒤에는 엘리스가 끌어모아 놓은 14명의 추기경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 모두 정신을 잃은 상태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이 자리에서 비키게 된다면 추기경들은 모조리 죽게 될 것이다.

  "……젠장."

  나는 결국 추기경들의 앞을 막아서며 각오를 다졌다.

  "일단 안 죽이면서 해보자."

  나는 양손에 [펄스 너클]을 끼었다.

  그리고 달려드는 악마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파앙-- 악마 한 명이 비명도 못지르고 날아가 버렸다.

  그 직후 또한 마리의 악마가 달려들어서 역시 뒤로 날려 버렸다.

  악마화되었다고는 해도 각성자로서의 스킬조차 못 쓰는 게 다행이었다.

  급조된 악마들이니만큼 아예 이지가 없는 모양이었다.

  펑, 펑, 퍼펑, 퍼퍼퍼펑!

  갈수록 달려드는 악마의 양이 늘어 갔다.

  그도 그럴 게 여기 있는 각성자는 무려 50여 명.

  그들이 모두 악마가 되어 달려드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슈캉!!

  "크윽."

  성당기사단의 갑옷을 입은 악마들.

  '에드몬드와 로만이라 그랬나.'

  성당기사단장 미카엘이 부른 두 성당기사단원의 이름이었다.

  마법사들이 대거 포진한 성당기사단에서도 무협 계통 스킬을 익힌 기사들.

  그들은 방패와 검을 번갈아가며 내게 휘둘러오고 있었다.

  쾅! 콰쾅!!

  휘둘러오는 검과 방패를 레일 건으로 부숴 버렸다.

  하지만 검과 방패가 사라졌음에도 놈들은 계속해서 육탄돌격을 감행해 왔다.

  '젠장.'

  여기서 물러섰다간 추기경들이 피떡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성당기사단 둘의 다리를 조준해 사격했다.

  퍼펑!!

  그들의 다리가 찢겨 나가며, 달려 들던 그들이 주춤했다.

  하지만 곧 다리가 급속도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뭐 저런 재생력이……!'

  파앙 파아앙!

  계속해서 달려드는 각성자들을 [펄스 너클]로 날려 버리며, [디바이스 컨트롤]로 총기들을 머리 위로 떠올려 조종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이번에는 두 성당기사단원의 심장을 조준했다.

  아까 머리를 노리고 쐈음에도 안 죽은 것을 보면, 노릴 곳은 이제 심장밖에 없었다.

  저 녀석들은 사지를 노려 무력화하는 것도 불가능했으므로, 죽여야 했다.

  '잘 가십시오.'

  가능하면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이 없었다.

  콰광!!

  두 발의 레일 건 탄환이 4미터 남짓한 두 악마의 가슴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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