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12 (112/215)

  기계신과 함께 112

  "휴, 이쪽은 다 정리됐군."

  나는 전투불능이 된 각성자들에게 전부정화탄을 한 발씩 갈겨주었다.

  모두 기력이 굉장히 떨어져 있어서 꾸역꾸역 악령을 토해내었다.

  끝까지 안 토해내던 미카엘은 한 발 더 갈겨주었더니 제대로 정화가 이루어졌다.

  나는 다친 성당기사단원들에게 [유가선공]과 [천옥보주]로 응급치료를 해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도망간 교황과 베드로 대성당 안으로 나를 찾으러 들어간 성당기사 둘.

  그 셋만 정화하면 되었다.

  '일단 성당기사 두 녀석부터…….'

  그 녀석들을 다 처리하고 엘리스와 함께 교황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 무결 씨…… 도와주세요…….

  갑자기 힘에 겨운 엘리스의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들려왔다.

  "엘리스, 조금만 기다려요!"

  이제까지 엘리스로부터 신호가 없기에 여유롭게 버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응급치료해 주고 있던 성당기사의 치료를 재빨리 마무리하고 바로 바닥을 박찼다.

  쾅!!

  1 초…….

  2초.

  3초.

  성당기사단과 전투를 치른 곳은 엘리스가 있는 대성당 바로 앞.

  치료를 마무리하고 엘리스가 있는 곳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초 정도였다.

  파치치치치 - 그리고 그곳에 도달하자마자 본 것은, 악마화한 두 명의 성당기사였다.

  두 성당기사는 마치 트롤처럼 거대한 악마로 변해 있었다.

  근육질로 우락부락한 두 검은 악마가, 엘리스의 금이 간 방어막 틈새로 손을 욱여넣은 다음 양쪽으로 벌리고 있었다.

  파치치치- 방어막에서 계속해서 새하얀 스파크가 일며 악마들의 물리력 행사에 저항하고 있었지만, 방어막의 틈새는 점차 벌어지고 있었다.

  엘리스는 괴로운 표정으로 땀을 흘리며 자신의 앞에 떠올라 있는 새하얀 룬 문자에 양손을 대고 있었다.

  엘리스를 공격하던 각성자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악마들에 놀라 저 마다 멀리 거리를 벌린 채 그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 새끼들이."

  나는 악마들의 머리에 대고 레일 건을 한 방씩 먹여주었다.

  콰쾅!!

  4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악마들이 레일 건을 맞아 뒷걸음질 치며 방어막으로부터 멀어졌다.

  쿵.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와 동시에 엘리스의 방어막이 사라지며 엘리스가 쓰러져 버렸다.

  지금까지 억지로 버티다가 힘이 다한 모양이었다.

  나는 재빨리 엘리스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엘리스, 엘리스!"

  엘리스가 땀에 젖은 몸으로 추욱 처져 내 품에서 흔들거렸다.

  "무, 무결 씨……."

  "이제 괜찮아요, 엘리스. 제가 거의 다 처리했어요. 이제 좀 쉬고 있어요."

  "네……."

  엘리스가 엷은 미소를 짓더니 정신을 잃었다.

  "쿠룩, 쿠룩."

  그사이 뒤에서 두 악마들이 머리를 흔들며 주춤주춤 일어났다.

  악마화해서 탄탄해진 육신 덕인지 머리에 레일 건을 맞았음에도 죽지 않았고, 오히려 괴물 같은 회복력으로 인해 움푹 파인 머리가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엘리스를 둥에 업어 들었다.

  블랙미슈릴 슈트가 확장하여 엘리스를 덮어씀으로써 그녀를 내 등에 단단히 고정했다.

  '어떻게 된 거지? 인간들 사이에서 정체를 드러내다니.'

  저 악마들은 비록 모습이 변형되며 크기가 커졌다지만 성당기사단임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었다.

  가령 팔에 아직 끼워져 있는, 성당 기사단의 문양이 새겨진 방패라든지, 몸통에 걸려 있는 성당기사단의 갑옷 파츠라든지.

  즉 저들은 정체를 완전히 들킨 거라 봐도 좋았다.

  그때 내 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후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짜증을 내며 횐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는 그는, 교황 알렉산데르 11세였다.

  "자칭 인간들 최강이라는 성당기사단이 열 명이나 모여서 인간 한 명 한테 저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나. 이름값이 아까운 놈들."

  그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러더니 나를 노려보며 눈을 희번덕 거렸다.

  "네놈 때문에 내 위대한 계획이 모두 어그러진 건 아느냐?"

  "그것참 미안하군."

  내가 피식 웃으며 녀석에게 이죽거렸다.

  그의 입에서 마치 사자 같은 그르렁거림이 새어나왔다.

  맹수가 독기를 품고 나를 바라보는느낌.

  "미안하면 지금이라도 죽어주면 좋겠군."

  "그 정도까지 미안하진 않아서."

  "그렇다고 이 두 녀석으로는 죽이는 것도 힘들 것 같고, 하는 수 없군."

  일순간 그의 몸으로부터 강렬한 검은 마력, 마기(魔氣)가 스멀스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모아둔 힘을 다 써서라도 너 만큼은 잡아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교황은 땅에 손가락을 톡 대었다.

  "권능 발휘."

  그가 손을 댄 지점에서부터 엄청난 속도로 세상의 색(色)이 반전되어 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하얀 대리석은 검고 미끌거리는 살덩이로,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은 피를 흘리는 시체들의 그림으로, 그리고 성당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던 각종 조각품들은 악마의 형상을 본뜬 조각들로 바뀌어갔다.

  그것은 마치 다른 세상으로의 전이 (轉移) 같았다.

  불과 0.1 초도 안 되어 검고 붉게 물든 세상.

  그리고.

  쨍-

  "한잔하지."

  와인글라스에 핏빛 액체를 담아 입에 가져다 대는 중년인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이게……?'

  나는 어느새 보라색 부드러운 벨벳 재질의 식탁보가 드리워진 라운드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의 내 앞에는 저 악마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와인잔이 놓여있었고, 우리 테이블 가운데에는 어울리지 않게 고풍스러운 촛대 위에서 양초가 부드러운 빛을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놀랍게도 테이블과 그 양쪽에 앉은 나와 중년인은 허공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수라장이었던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

  모든 각성자가 석상처럼 멈춘 상태였다.

  몸이 굳은 것이 아니었다.

  떨어지는 머리카락, 날아가던 마법 모두가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이다.

  모든 것이 멈춘 세상 속.

  오직 나와 눈앞의 이 중년인만이 제 시간을 갖고 움직이고 있었다.

  [마왕 단탈리온이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여 주변 일대를 성역화(聖域 化)하였습니다.]

  [시스템에 의해 성역이 던전으로 그 속성을 변화합니다.]

  [시스템에 의해 권능의 일부가 제한됩니다.]

  [시스템에 의해 던전에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이벤트 던전 '단탈리온의 성역'에 입장하셨습니다.]

  [스테이지 설명을 시작합니다.]

  [이곳은 지상에 선포된 마왕 단탈리온의 성역입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막대한 페널티가 적용되어 마왕의 권능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는 제한된 권한 속에서 당신을 죽일 계책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 계책에 맞서 마왕을 쓰러뜨리고 이곳을 탈출하십시오.]

  [마왕 단탈리온은 이곳에서 자신의 영혼의 조각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마왕은 자신의 영혼의 조각을 자신의 육체가 아닌 타인의 육체에 숨겨 두었습니다. 숨겨진 마왕의 영혼의 조각을 찾아 파괴하십시오.]

  [마왕과 당신은 직접적으로 서로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모험가님의 건투를 법니다.]

  나는 놀라고 말았다.

  ……눈앞의 저 악마가 제자리에서 '던전'을 발생시켜 버렸다.

  "참 재미있는 세상이지 않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그가 콕콕 웃으며 말했다.

  그는 외눈안경을 쓴 부드러운 인상의 중년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올백으로 넘긴 그는 얼핏 보면 병자처럼 보이는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강렬하고 흉악한 기운으로 인해 연약하다는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다.

  "아, 마셔라. 피 따위가 아니라 진짜 와인이니까."

  그가 내 앞에 놓인 와인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그게 와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늘의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와인잔을 들지 않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수작이지?"

  "수작이라니, 섭섭하군. 인간계에서 예상치 못한 적수를 만나는 바람에 대화라도 할까 싶어 마련한 자리이건만."

  그가 와인을 홀짝이며 빙긋 웃었다.

  그에게서 나를 관찰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대화라…….'

  생각지도 못한 자리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이것이 그동안 품고 있던 의문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저 마왕이 제대로 진실을 말해준다는 전제하겠지만.

  "아, 걱정할 필요 없다. 이곳에서 내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말은 '진실'이니까. 그 페널티인가 보정인가 하는 망할 것이 씌워져서 말이야."

  나는 흠칫 놀랐다.

  저 녀석, 내 마음올 읽고 있다.

  "이래 봬도 그게 내 특기라서 말이야.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네 사생활을 마계에 가서 까발릴 생각은 없으니까. 후후."

  "여기에서는 까발릴 수도 있겠군?"

  "그야 뭐, 협박용으로 쓸 수도 있지 않나?"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 사생활은 읽지도 못했으면서 어떻게 까발리려고?"

  "……뭐?"

  마왕이 흠칫했다.

  "읽었으면 말해보시지? 내 사생활 이라는 거. 뭐든지."

  마왕이 신음을 흘렸다.

  '역시 저 녀석, 슈리처럼 표층기억 밖에 못 읽는군.'

  전생에서 봤던 '생각을 읽는 각성자'들 대부분의 한계가 그 정도였다.

  저 녀석이 각종 페널티를 짊어지고 있다고 해서 능력 또한 그 정도로 제한되지 않았을까 찍어보았는데 역시 저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후, 제법이군."

  마왕이 순순히 인정했다.

  저 녀석, 거짓말은 못 해도 뻥카는 잘 친다.

  그대로 휘말렸다간 이리저리 유도 심문 당하며 머릿속의 기억을 타 털릴 뻔했다.

  조심해야겠어.

  "당신, 뭔가 나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 이런 곳을 만들있겠지? 뭐지, 그 궁금한 거라는 게?"

  나는 그가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들어낸 이유가 궁금했다.

  그가 원하는 정보에서 역으로 정보를 얻어낼 수도 있고.

  "음……."

  .

  마왕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볼을 톡톡 두드렸다.

  곤란하다는 태도였다.

  아무래도 자신 쪽 정보의 유출을 막고 내게서만 정보를 캐내기를 원하는 모양.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아무것도 못 알려줘.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서로 궁금한 걸 번갈아가며 한 가지씩 주고받도록 하지."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우리는 지켜야 할 비밀이 많거든."

  "그럼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는 다른 질문으로 대신하는 걸로."

  사실 나로서도 내 정보를 저 녀석에게 넘겨주는 것은 도박이었다.

  추후 그것이 내게 어떻게 불리하게 작용할지 모르는 이상, 나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숨기는 게 옳았다.

  왜, 개인 정보 함부로 뿌리고 다니다가 사기당하고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좋다. 대신 질문은 서로 단 두 개 만 하도록 하지. 그리고 상대방이 만족할 때까지 명확하게 대답해 주는 걸로."

  마왕 녀석이 승낙했다.

  "오케이, 콜."

  사실 이건 저 녀석에게 더 유리한 조건이었다.

  저 녀석은 질문만으로 내 표층기억을 유도해 원하는 정보를 더 많이 빼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저 녀석도 모르는 사실이 있다면, 나는 이미 수개월간 '슈리' 와의 대화를 통해 표층기억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집중만 한다면 녀석에게 충분히 정보를 안 넘겨줄 자신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