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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10 차차차착. (110/215)

  기계신과 함께 110 차차차착.

  대리석 밟는 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대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찾아라!!"

  그 말과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

  '이런.'

  기척을 살펴보니 모두 각성자였다.

  "대장님! 찾았습니다!!"

  한 각성자가 소리쳤다.

  나와 엘리스, 그리고 추기경들이 모여 있는 강당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추기경들을 보며 경악했다.

  그 각성자 무리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유일하게 의식을 잃지 않고 있는 나와 엘리스를 보며 자신의 무기, 핼버드를 겨누었다.

  "거기 두 사람, 머리 위에 손 올려!"

  하지만 나와 엘리스는 그들의 말에 따르지 않고 슬금슬금 추기경들의 한가운데로 움직였다.

  "설명할 기회를 먼저주시죠."

  물론 제대로 설명이 어려울 일이란 건 안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끌다 기회를 엿봐서 탈출해야 했다.

  추기경들이야 모두 구했으니 우리만 빠져나면 된다.

  하지만…….

  "나를 사칭해서 추기경들을 끌어들인 시점에서 자네들의 말에는 무게가 실릴 수가 없네."

  늙수그레하고 인자한 목소리.

  나는 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내 목으로 흉내 내었던 목소리였으니까.

  뚜벅뚜벅.

  앞으로 나선 것은 새하얀 법복을 두른 노인이었다.

  그가 바로 이 교황청의 주인.

  교황 알렉산데르 11세였다.

  "쯧쯧,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그레고리 추기경에게 볼일이 없었다면 이 사달을 까맣게 모르고 있있겠군."

  교황이 쯧쯧 혀를 찼다.

  나는 교황이 말하는 동안 그를 [하늘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이름 : 로베르또 리안솔 데 보르자 -상태 : 각성자, 기생숙주 -고유 스킬 : [어디에든 닿는 진심], [선견지명]

  예상대로 교황 또한 악령에 감염되어 있었다.

  '……그런데, 각성자?'

  그가 각성자일 거란 사실을 생각도 못한 나는 깜짝 놀랐다.

  스킬도 궁금해서 살펴보았다.

  [어디에든 닿는 진심]

  :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원하는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다.

  [선견지명]

  : 일정확률로 미래에 매우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전투 계열 각성자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려나.'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가 각성자란 사실보다 더욱 문제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바로 '교황'이란 사실이었다.

  "십자근위대!"

  "예!!"

  아까 누군가에게 '대장님'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대답했다.

  평범하게 생긴 40대 남성으로, 십자근위대의 근위대장이었다.

  "저자들을 체포하게!"

  "예!!"

  그는 직속 호위인 각성자 집단 '십자근위대'를 부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50여 명가량 되는 십자근위대가 신중히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엘리스."

  "예, 무결 씨."

  "혹시 방어막으로 이 각성자들의 공격, 버틸 수 있나요?"

  혹시나 가능할까, 하는 마음에 엘리스에게 물었다.

  사실 50명이 넘는 각성자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엘리스니까 어쩌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물어봤다.

  엘리스의 대답은 놀라웠다.

  "……몇 분 동안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몇 분 동안'이라는 조건이 붙긴했지만 가능하단다.

  덕분에 작전을 짜는 게 한결 쉬워졌다.

  "그럼 이곳에서 버티고 있어주십시오. 그동안 교황에 깃든 악령을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저 사람들을 뚫고요?"

  이번엔 엘리스가 놀라며 말했다.

  마찬가지로 50명이 넘는 각성자의 방어를 뚫고 교황을 공격한다는 게, 보통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물론 나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네, 부탁드립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고글을 꺼내 엘리스에게 던져 건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런, 막아!!"

  근위대장이 소리쳤다.

  하지만 아직 내 근처에 추기경들이 있어서 쉽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다시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바닥을 향해 떨어뜨렸다.

  푸숙!

  순식간에 하얀 연기가 퍼져 나가며 주위의 이목을 흩뜨렸다.

  "아앗?"

  "이 연기, 뭔가 이상합니다!!"

  각성자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이 연기는 각성자가 탐지마법이나 마력탐색 등으로 다른 누군가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을 막는 특수 연막탄으로, 이 연기 안에 있으면 한 치 앞조차 제대로 못 보게 하는 지독한 연막탄이었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인간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엘리스에게 준 것 과 똑같은 고글을 꺼내 썼다.

  '아주 잘 보이는군.'

  연기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고글 너머로 똑똑히 보였다.

  '자, 그럼.'

  나는 연기 속을 달려 교황에게 향했다.

  사람들의 모습에 가려 교황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내 교황을 찾아낼 수 있었다.

  교황은…… 놀랍게도 이 특수한 연기 속에서도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 악령의 능력인 듯했다.

  그는 나를 바라만 보다가 사람들을 방패삼아 스르르 뒤로 빠졌다.

  나는 총으로 그를 겨냥했지만, 교황이 교묘하게 사람들을 방패삼아 내 사선을 피했기 때문에 녀석을 제대로 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옆에서 치이는 각성자들도 문제였다.

  나는 녀석들을 [펄스 너클]로 날려 버리며 교황이 사라진 쪽을 향해 달려 갔다.

  "으아악"

  사람들이 날려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연막탄 속을 헤집으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연기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되었다.

  저 멀리서 교황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 성 베드로 대성당을 빠져나가고 있는 게 보였다.

  늙은 사람의 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라 기괴하기까지 했다.

  역시 그를 조준할 수가 없어서 나는 빠르게 달려 그를 쫓아갔다. 그리고 대성당을 빠져나오자마자. 쾅!!

  발을 강하게 박차 다시 성당 내부로 튀어 들어갔다.

  츠즈즈즈- 내 신발까지 두른 블랙미슈릴 슈트 와의 마찰로 인해 대리석 바닥에 불꽃이 튀었다.

  "제법이군, 그 순간 포위되는 걸 막다니."

  낯선 사내가 성당 입구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잿빛의 머리. 그리고 새하얀 갑옷을 입은 사내였다.

  방금 성당 밖에는 저자처럼 새하얀 갑옷을 입은 자들이 성당 입구를 포위하고 있었다.

  성당기사단.

  그리고 저자는 내가 성당 입구를 빠져나가자마자 위에서 뛰어내려 내가 빠져나온 통로를 막으려 했다.

  한마디로 나는 방금 전 포위당할 뻔했던 것이다.

  비슷한 전력이라면 포위를 당한 쪽이 열에 아홉은 패배한다.

  그만큼 전술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점할 뻔한 것이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저 사람은 성당기사단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름 : 살바토레 밀라노 -상태 : 각성자, 기생숙주 -스킬 : [마력폭발], [전투영창]

  '성당기사단도…… 감염됐어?'

  상황이 심각해졌다.

  바티칸 각성자 중 최강 전력이라는 성당기사단이 감염되었다.

  지금은 한 명밖에 못 발견했지만, 몇 명이 감염되었을지 모른다.

  '다행히 모두 감염된 건 아니야. 전에 보았던 두 명은 감염자가 아니었어.'

  그렇다면 저 밖에서 나를 포위하려 한 자들 중 감염자가 아닌 자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었다.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이다.'

  혹시나 싶었다.

  전에 안토니오 추기경을 정화했을 때 나온 악령은 이런 상태창을 갖고 있었다.

  -이름 : 단탈리온의 18번째 악령 -상태 : 인간 안토니오 드러셀의 기생체 -설명 : 라비우스의 악마 단탈리온이 만들어낸 악령.

  이것을 보고 나는 이 악령들이 [라비우스의 악마] 던전에서 나온 놈들이란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거기에서나는 한 가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인이라 할 수 있는 안토니오 추기경도 악령에 감염되어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 던전에 직접 들어갔다 온 성당기사단은, 악령들로부터 무사할 것인가?

  내가 알기로 전생에서로마에 있었던 악령 재해의 경우 각성자들 또한 악령에게서 자유롭지 못했다.

  성당기사단의 감염 상태를 걱정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전에 만났던 팬크라지오와 루카라는 성당기사단원들은 감염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었건만 역시나 성당기사단 중에도 감염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각성자 감염자라…….'

  일반인 감염자도 정화시키는데 그렇게 생고생을 했는데, 각성자라니.

  "후우……."

  갈등이 되었다.

  그냥 다 죽여 버릴까?

  저 밖에 있는 성당기사단 중 감염자가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살려서 정화시키려면 정말이지 개고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차라리 악령째로 죽여 버리는 편이 내 입장에서는 그냥 쉽고 빨랐다.

  레일 건만 몇 발 정도 먹여줘도 푹푹 터져 나갈 테니까.

  사실 헌터는 언제나 목숨을 칼 끝에 달고 자니는 자들이고, 또한 저들이 저렇게 감염된 것도 일정 부분 자기 탓이 있을 테니 죽어도 억울해 할 부분은 아니라 생각됐다.

  아니, 더 이상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빨리 자신들을 처리해 주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할 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 연구 협력을 얻으러 왔지. 후우, 될 수 있는 대로 살려보자.'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최대한 많은 성당기사단을 살려보리라 결심 했다.

  '남아 있는 정화탄은 13발. 제길, 좀 더 만들어둘 걸 그랬네.'

  어쩌면 개체마다 한 발로 안 끝날 지도 모른다.

  한 발에 끝내려면 아마 기운을 많이 빼놓고 급소에 대고 박아야 될지도 모르겠다.

  '각성자니까 죽지는 않겠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전투를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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