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08
"추기경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나는 핸드폰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내 목에서는 늙수그레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예,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모여주세요."
나는 인자한 목소리로 전화를 마무리 했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교황의 목소리를, [유가선공]으로 성대를 비롯한 발음기관을 바꿔 흉내 낸 것이다.
'슈리, 다음 추기경.'
[네, 마스터.]
또 다른 추기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신자 표시는 아마 교황 관저로 뜰 것이다.
"예, 비요른 추기경. 예, 지금 안토니오 추기경의 실종과 관련해서 추기경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와주세요."
나는 그렇게 바티칸에 상주한 14 명의 추기경 모두와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흉내를 ……."
내 뒤에서 추기경회의 소집 절차에 대해 도움을 준 안토니오 추기경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는 일전에 내가 납치해서 그의 영육에 깃들어 있던 악령을 퇴치해 준 다음 날, 안가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자문이 되어 다른 추기경들에 깃들 악령 퇴치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안토니오 추기경 전하, 전하는 악령에 지배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나는 악령들과 싸울 때 참고하기 위해서 그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딱히 악령이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뭔가 제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못 느꼈죠. 그냥 어느 순간 인간을 보면 군침을 흘리고, 다른 음식을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것도 다 자연스러운 제 자신처럼 느껴졌습니다."
"음, 그렇군요."
"아, 한 가지…… 굉장히 충동적으로 변할 때가 있긴 있었습니다."
어떤 충동 말입니까?'
"그게……."
안토니오 추기경이 잠시 망설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죄를…… 범하고 싶은 충동이 강렬하게 일었습니다."
"어떤 죄를요?"
"휴, 입에 담기도 끔찍한 말씀입니다만 살인충동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색욕이 엄청나게 일어 곤란했던 때도 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참은 게 용할 정도로 강렬한 충동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했습니다."
"정말 잘 참으셨습니다."
나는 솔직히 이 추기경을 보며 '과연 성직자구나'라며 감탄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안토니오 추기경이 느낀 충동은, 일반인이었더라면 정말 참기 힘든 충동이었을 것이다.
"무결 씨, 늦기 전에 저희도 가봐야 합니다."
엘리스가 준비를 갖추고 내게 말했다.
그녀는 수녀복을 입고 있었다.
"네, 가죠. 다녀오겠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길."
안토니오 추기경이 나와 엘리스를 위해 축언을 읊었다.
우리는 안가를 나섰다.
* * * 바티칸의 분위기는 굉장히 경직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티칸 박물관의 중요한 유물들이 어떤 도둑들에 의해 상당수 유실된 데다가 추기경까지 한 명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드러 났다.
그 때문에 각성자로 구성된 십자근위대가 두세 명씩 조를 이뤄 바티칸을 삼엄하게 순찰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각성자들의 이목을 피해 성 베드로 대성당 안으로 잠입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오늘은 관람 객관광마저 불가능했기 때문에, 성당 안은 매우 고요했다.
나는 성당 한구석에 숨어 성당의 입구를 관찰했다.
'누군가 오는군.'
그때 성 베드로 대성당을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들이 들렸다.
입구에는 수녀로 변장한 채로 대기 하고 있던 엘리스가 그들을 맞았다.
그녀는 교황을 보좌하는 수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비요른 추기경 전하. 나이트 캐더락."
엘리스의 예의 바른 인사에 비요른 추기경이 인자한 얼굴로 답례했다.
"고맙네."
"날씨도 추운데 얼른 들어가시지요. 나이트 캐더락께서는 대성당 입구를 호위해 주시길 바랍니다. 비공 개회의입니다."
"알겠습니다."
안토니오 추기경이 조언해 준 대로 하자 호위들은 성당 밖에 따로 떼어 둘 수 있었다.
'좋아.'
나는 첫 추기경이 성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하늘의 눈]으로 확인해 봤다.
-이름 : 비요른 보르자 -상태 : 기생숙주 -특기 : 공감, 고해성사, 불어, 영어 '음, 역시 이 사람도 감염자. 엘리스의 말대로라면 3명은 감염자가 아닐 텐데…….'
비요른 추기경은 대성당 내 회의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먼저 회의실로 쓰일 경당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물론 의자에 앉은 것은 아니었고, 천장의 어느 조각상 뒤에 숨어 회의석을 내려다보았다.
비요른 추기경이 회의실 한쪽 의자에 앉았다.
나는 당장에라도 저자를 저격해 악령을 정화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참자.'
하지만 지금 저자를 저격하게 된다면, 악령이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 성당기사단과 각성자들이 몰려들지도 몰랐다.
더욱 큰 문제는 다른 악령들이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것.
추기경들에게 숨어든 악령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모든 악령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는 회의실 구석에 숨죽이고 다른 추기경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추기경들이 하나둘 회의실로 들어 왔다.
이미 들어선 추기경들은 입을 열어 저마다 수다를 떨었다.
"크하! 해방이군. 이놈의 성직자의 몸에 있으면서 얼마나 갑갑했는지!"
입에서 나오는 것은 분명 늙은 할아버지의 목소리였지만, 그 내용은 악령이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케 하는 것이었다.
"이보게, 교황께서 입조심하라고 한 말 못 들었나? 쯧쯧."
그의 옆에 있던 노란 머리의 추기경이 쯧쯧 혀를 차며 경솔하게 본모습을 드러낸 악령을 나무랐다.
그러자 그의 반대편에 앉은 다른 추기경이 짜증난다는 듯이 그를 쏘아보았다.
"크아아! 너는 운 좋게 타락한 성직자를 만나서 금방 영혼을 장악했잖아!! 네놈은 진짜 성직자의 몸이 얼마나 갑갑한지도 모르면서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
"이게 다 평소 죄악을 많이 쌓은 덕분이지 않소? 후후."
노란 머리의 추기경이 거들먹거리며 다른 추기경들을 비웃었다.
"그러게 평소에 살생 좀 열심히 하지 그랬소? 귀찮다고 약한 것들 괴롭히기를 게을리 해서 그런 성직자의 몸에나 들어가게 되지 않았난 말이오."
점잖은 말투로 타이르듯 다른 추기경들을 비웃는 노란 머리의 추기경. 그에 다른 추기경들이 한탄했다.
"에휴, 평소에 죄업 좀 많이 저지를걸."
"내가 어쩌자고 이렇게 성실한 성직자의 몸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어."
"누가 아니래?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일하고 먹고. 또 일하다가 먹고 기도하고. 하루 일과가 이게 끝이야! 이건 뭐 어떻게 찌르고 들어갈 데가 있어야 타락시키든 말든 하지!"
마지막 추기경의 말에 다른 추기경들이 동조했다.
"맞아!"
"옳소! 너같이 운좋은 새끼는 우리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참 나, 그렇게 실패하고 핑계대는 건 누군들 못 해? 저기 저 3번째도 그렇고, 5번째 악마도 타락한 성직자가 아니었음에도 벌써 완전히 영혼을 장악했잖아."
노란 머리의 추기경 말고 또 다른 추기경이 아직 영혼을 장악하지 못한 다른 추기경들을 비웃었다.
"저 녀석들은 일찍 시작했으니까 그렇지!"
"그럼 너네도 곧 장악하면 되지."
"이게 다 너희가 자꾸 약 올려서 그런 거 아니야 이 새끼들아!"
악령들이 서로 편을 갈라 싸웠다.
대충 들어보니 4명 정도가 타락한 성직자에 들어간 악령인 듯했다.
'14명중 4명이면 1/3 이상이 타락 한 거네. 어휴, 세상 참…….'
어떻게, 어느 정도로 타락한 건지는 몰랐지만 악령들에게 틈을 줬다는 점에서 그들은 진정한 성직자라 할 수 없으리라.
그들이 떠드는 동안에도 추기경들은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나는 추기경들이 회의실로 들어설 때마다 그들의 감염 여부를 하나씩 확인했다.
열 번째, 열한 번째의 추기경까지 모두가 감염자였다.
"그런데 여덟 번째, 네가 들어간 성직자는 어떻게 타락해 있었냐?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아, 이놈이 자기 관할 교구의 재정에 조금씩 손을 댄 전력이 있더라고. 그 훔친 돈을 모아 집을 샀지 뭐야."
"와, 그런 새끼가 어떻게 계속 안 들키고 있었지? 그래도 요즘 나름 교회 개혁한다고 해서 그런 놈들 잘 잡아들이지 않았나?"
"내 숙주처럼 아직 꽉 막힌 꼰대가 있어서 안 들킨 거겠지. 내 숙주는 성직자가 절대 그런 범죄를 저지를 리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야. 젠장, 이 시끼는 타락하진 않았지만 쓸데 없이 너무 FM이라서 오히려 더 짜증나."
"여덟 번째, 그래서 그 횡령했다는 네놈 숙주는 어떻게 장악했어?"
"어떻게긴 어떻게야, 탐욕으로 장악했지. 교구 재정을 대량으로 착복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줬거든, 흐흐. 그다음은 뭐 일사천리 였지!"
악령들이 그렇게 신나게 노가리를 까는 사이 마침내 열두 번째 추기경이 들어섰다.
-이름 : 베네딕트 레이박 -상태 : 기생숙주 -특기 : 유창한 말솜씨, 말씀의 전례, 에스파냐어, 영어 '이런.'
열두 번째 추기경 역시 악령에 의해 감염된 자였다.
이로써 엘리스가 11명이라고 했던 감염자의 수에 대한 신뢰도가 사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 들어오는 열 세 번째, 열네 번째 마지막 추기경 까지 모두 감염자였다.
'이렇게 된 이상 여기 있는 추기경들 말고도 감염자가 있을 확률이 높군.'
나는 블랙미슈릴 슈트를 착용했다.
그리고 손목의 스마트 워치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회의실 전체에 걸쳐 설치해 두었던 장치를 작동시켰다.
분자의 움직임을 절대영도에 가깝게 제한하는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 수십 개가 한꺼번에 가동했다.
"억!"
"컥?!
수다를 떨던 추기경들이 일제히 입을 닫고 행동을 멈췄다.
온몸이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나는 이어서 엘리스가 준 단추 모양의 아티팩트를 꾸욱 눌렀다. 그러자.
위잉~ 회의실 전체를 반투명한 막이 둘러 쌌다.
엘리스가 사전에 회의실을 방문해 바닥에 몰래 설치해 준 마법 방어막이었다.
귀중한 문화재인 바티칸 대성당의 벽을 보호할 겸 이곳을 새어나가는 악령들의 비명 소리를 막고자 설치한 방어막.
나는 천장 부근에 있던 동상 뒤에서 기어나와 동상 옆에 손을 짚고 섰다.
그리고 [공간주머니]를 열었다.
안에서 마력탄피를 장전한 총 14 개가 빠져나와 내 머리 위에 자리 잡았다.
총들은 총구를 움직여 한 정당 추기경 한 명씩을 겨누었다.
나는 정확히 집중했다.
그리고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를 해제했다.
그와 동시에- '발사.'
14개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커, 컥!"
"크아아칵!"
"끼에에엑!!"
허벅지에 총을 맞은 추기경들이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렸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다가 곧 땅바닥에 구토를 해댔다.
"꾸엑!!"
그러자 검은색 두꺼비, 검은색 지네, 검은색 쥐 등 혐오스러운 동물들이 추기경들의 입에서 밖으로 토해내졌다.
그 동물들을 괴로운 듯 온몸을 꿈틀꿈틀 움직여 댔다.
"이런 인간새끼가!!"
하지만 아쉽게도 총탄을 맞고도 검은 동물, 즉 악령들의 실체를 토해 내지 않은 놈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까의 대화에서 숙주의 영혼을 '완전히' 지배했다고 떠들어대던 녀석들이었다.
"크으으…… 인간, 인간이!!"
그 숫자는 다섯.
놈들은 총탄이 박힌 부위가 검게 변하며 기괴하게 뒤틀렸다.
전에 박물관에서 보았던 놈들과 같이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총알을 쏘는 대신 곧바로 다시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를 작동시켰다.
아까운 정화총탄이 먹힐지 안 먹힐 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움직임부터 막아두고자 한 것.
그러나 녀석들이 내뿜은 검은 기운이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를 곧장 파괴해 버렸다.
"끄윽,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
그놈들은 엄청난 속도로 회의실 출입구로 달려가 검은 기운을 내뿜는 손으로 엘리스가 쳐둔 방어막을 손으로 후려쳤다.
깡!!
방어막에 금이 갔다.
이렇게 된 이상 정화고 뭐고 악령들을 죽여 버리려고 '레일 건'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저들 대부분이 타락해 있거나 악령의 유혹에 넘어간 추기경.
정화의 총탄에 정화가 되지 않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다.
하지만 난 당기려던 방아쇠를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