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07
"업히세요."
"업……히라고요?"
망설이는 엘리스에게 말했다.
"아까처럼 공주님 안기를 해드리고 싶지만 제가 양손을 써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가 뛰는 걸 쫓아 오실 자신이 있다면 안 업히셔도 됩니다."
"……."
엘리스가 말없이 내 등에 부드럽게 상체를 기대 왔다.
나는 그녀를 업어 블랙미슈릴 슈트로 감쌌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골목길로 들어 섰다.
그리고 마주친 각성자 한 명을 '로켓단 펀치'로 날려 버렸다.
-으아아악-!
각성자 한 명이 골목 위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종종 3D 매핍 앱의 파란 점 들을 보며, 가장 각성자가 적은 경로를 선택해 안가로 향했다.
-으아아! 어머니!!
달리면서 또한 사람의 각성자가 날려 보내고, 나는 엘리스에게 물었다.
"엘리스, 방금 만났던 성당기사들, 성당기사단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나요? 무력상으로요."
성당기사단의 전체적인 수준을 알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보였다.
"음, 가장 하위권에 있는 기사들이에요. 그들은 로마에서 상대적으로 위세가 적은 추기경의 호위를 맡고 있죠."
"그렇군요…… 그리고 성당기사단은 50명 정도 되는 걸로 아는데, 정확히 몇 명이죠?"
"저를 포함하면 50명, 포함하지 않는다면 49명이요."
-크아악!!
"네? 엘리스를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게……."
엘리스는 조금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성당기사단은 로마의 추기경 48 명과 교황 1명당 한 명씩 배속되도록 선발했어요."
"그럼 딱 49명이 되는군요."
"네, 그리고 마지막 1명은 교황 성하께서 직접 임명하셨죠. 하지만 그 정체는 밝히지 않으셨어요. 시크릿 나이트 (Secret Knight) 로 임명 하신 거죠. 그게 바로 저고요."
"왜 안 밝힌 거예요?"
-크억!!
"제가 원해서예요. 저는…… 사실 가톨릭교를 싫어했거든요."
"……예?"
교황과 추기경을 지키는 성당기사 단원이면서 가톨릭을 싫어했다?
"사연이 좀 있어서요. 아무튼 전 남들 앞에 얼굴이 알려지기도 싫었고, 그냥 조용히 하던 일만하며 살려 그랬어요. 교황 성하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성당기사단도 안 했겠죠."
"아니, 그럼 정말 아무도 엘리스가 성당기사단이라는 걸 몰라요? 교황 성하 빼고?"
"여기선 아무도 몰라요. 한국에선 좀 알겠죠?"
나는 은하수와 송애니를 떠올렸다.
그들은 엘리스가 성당기사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저희와 만났을 때는 왜 바로 성당기사단이라고 밝힌 거예요?"
"그 편이 더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뭐, 밝혀져도 별 상관없기도 하고요. 얼마 전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거든요."
엘리스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어딘지 밝은 기운이 깃든 미소였다.
"그렇군요……."
그렇게 얘기를 하며 몇몇 각성자를 날려 보내는 사이,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그럼 이제 작업 시작해 볼까요?"
나는 다시 총알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유물이 하나둘 내 주머니에서 나올 때마다 엘리스가 사색이 되어갔다.
"이, 이걸 다……."
내 [공간주머니]에서는 그리스의 여신들인 아테네상과 헤라상, 그리고 청동으로 된 야생미 넘치는 헤라 클레스상 등 그리스신화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정교하고 섬세한 솜씨로 옷깃 하나하나마저 완벽하게 표현된 인류의 보물이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원형의 방'에서 훔친…… 아니, 협찬받은 것.
그리고 이번에는 몸통만남은 우락 부락한 근육질 남자의 조각상이 나왔다.
미켈란젤로는 머리와 팔다리가 유실되고 몸통만이 남은 이 조각상의 복원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 자체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하며 그 의뢰를 거절했다고 한다.
등과 배, 허벅지만 남았음에도 바위처럼 탄탄한 남성미가 느껴지는 이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당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던 전설적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작품을 부수기 위해 몸을 풀었다.
"자, 간다!"
퍽, 푸석.
토르소의 등짝이 반으로 갈라졌다.
깡!
헤라클레스의 팔이 부러졌다.
퍽퍽퍽.
아테네가, 헤라가 사라져 간다.
십여 개의 작품을 모두 부수어 가루로 만드는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미 인간의 근력은 옛날 옛적에 초월해 있었기에 땀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그 가루들을 모아 커다란 솥에 넣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속에 한꺼번에 마법진이 그려진 총알 열 개를 넣고, 마정석 가루를 뿌려주었다.
서로 그 크기가 다른 열 개의 총 알이 빛나며 마력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다음 작품 열 점을 꺼내, 다시 작업을 시작하려던 그때 유심히 내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엘리스가 말했다.
"제가 솥 밑에 마법진 하나 그려봐도 될까요?"
"마법진이요?"
내가 의아한 얼굴로 엘리스를 쳐다 봤다.
"네, 기운을 모으는 효율을 높여줄 지도 모릅니다."
"오, 그런 거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나는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스는 솥의 옆에서서 막대기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흠~"
가끔가다 멈춰서 술식을 계산하는 지 옆에다가 잠깐 뭔가를 끄적거리다가, 다시 마법진 그리기를 이어나갔다.
'정체가 뭘까?'
성당기사단에 교황이 들어와 달라고 부탁한 사람.
애니를 데리고 무려 3일이나 A급 각성자 다섯에게 도망다녔던 실력.
그리고 내가 유물을 협찬받는(?) 동안 웬만한 각성자도 능가하는 악령 다섯의 공격을 하품하며 막아낸 방어 마법의 대가.
그 익히기 어렵다는 '빛의 마법'을 익힌 천재 마법사.
내가 아는 그녀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나열해 봤다.
사실 한국에서부터 그녀와는 그다지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내가 너무 바쁘게 활동했던 것도 있었고, 그녀가 자기 과거와 능력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은 유독 꺼려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얻을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녀에게 들은 것은 대강의 바티칸의 사정과 그녀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정도.
'심지어 그녀의 진짜 얼굴조차 제대로 모르잖아?'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길 바라는 이유가 뭘까?
유명인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얼굴에 흉터라도 있어서?
별의별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어쩌면 남자가 아닐까 하는 끔찍한 상상마저 스쳐 지나갔다.
'에헤이, 설마.'
나는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날려 버렸다.
그새 그녀는 마법진을 다 그렸다.
마침 솥도 끓는 것이 열 개의 총알에 모든 마력이 다 스며든 듯했다.
나는 총알을 회수하고, 솥의 물을 버린 다음 다시 물을 채워 왔다.
"이 마법진 위에 올리면 되죠?"
"네."
솥을 마법진 위에 올려놓고 다시 불을 피웠다.
그러자 마법진이 빛을 발하기 시작 했다.
"오."
룬 문자들이 여기저기에 새겨진 마법진이 빛을 내자 솥에서 느껴지던 마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응?'
나는 깜짝 놀랐다.
유물의 마력이 모두 날아가 버린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아 챘다.
'마력이 오로지 총알에만 집중되고 있어!'
솥 밖으로 쓸데없이 방출되던 마력 마저 한 올 남김없이 모조리 총알의 마법진을 향해 빨려들고 있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 진짜 뭐야?'
"오, 됐군요."
엘리스가 날 올려다보며 기쁨의 미소 지었다.
순수히 성공해서 기쁘다는 미소였다.
자신의 학문적인 시도가 성공했음에 순수히 기뻐하는 웃음.
'이 사람…… 천생이 과학자 혹은 연구자다.'
엘리스는 마법사이므로 아마 마법 연구분야에 몸을 담고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엘리스, 연구자였죠?"
나도 모르게 그런 물음이 불쑥 흘러나왔다.
그러자 엘리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역시 맞았다.
"그럴 것 같았어요."
내가 씨익 웃었다.
"바티칸의 마법 연구 시설에서라도 일했나 보죠?"
그냥 떠오르는 대로 지껄여 봤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엘리스가 입을 벌리며 놀랐다. 이번엔 내 쪽에서도 놀랐다.
"아니, 그게 진짜라고요?"
"뭐…… 알고 말씀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아닌데요, 찍은 건데요."
"나 참……."
엘리스가 흘러내린 옆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뭐,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 같은 거니 굳이 숨길 필요도 없겠군요. 맞습니다. 바티칸에서는 마법 연구를 해왔습니다."
……바티칸이 마법 연구를 해왔다는 게 비밀 같은 거였나?
분명 해외 토픽에서도 봤던 것 같은데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라는 듯이 꽤나 비밀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엘리스는 그것을 말한 게 아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요. 던전 시대 이전부터."
"……?!"
이어지는 엘리스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던전 시대 이전부터 마법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엘리스가 나에게 이런 사실을 얘기 했다는 것에 대해서.
사실 고대로부터 이어져 오던 무술과 마법의 명맥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연구들은 던전시대 이전까지는 망상, 미신 등으로 치부되며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다가, 던전시대를 맞이하고서야 마침내 그 결실을 꽃 피웠다.
말하자면 마법, 무공, 그리고 초능력.
그것은 아무것도 없던 무(無)에서 나온 능력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엘리스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조금 놀라며 말했다.
"무결 씨는 알고 계셨군요? 우리가 이전부터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다는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바티칸의 교황청이야말로 세계에 존재하던 수많은 신비를 '이단'이란 명목 아래 가장 많이 접한 집단이었다.
그들의 바티칸 박물관도 이집트 문명과 그리스신화, 그리고 다른 이교도들의 문물로 가득했지 않은가?
그중 가장 세계의 이치에 근접한 학문, 그것이 바로 그들이 박해했던 마법사들이 '마법'이었던 것이다.
"교황청…… 이곳은 부끄러운 과거를 간직한 곳이죠. '우리만이 옳다' 는 아집에 빠져 진짜 신비를 연구하던 자들을 박해했으니."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
가톨릭교의 뼈아픈 역사였다.
"그리고 제가 바로 그 '이단'에 관한 걸 연구했던 바티칸의 비밀 기관 '검은 수도회'의 정식 계승자입니다."
엘리스가 나를 보며 스산하게 웃었다.
"그 '이단'에서 마법을 사역한 '마녀'들의 자료들도 많이 연구했으니, 어찌 보면 가톨릭이 그토록 멸시하던 '마녀'의 후예인 셈이죠. 후후."
"……?"
"……?"
"안 무서우십니까?"
엘리스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이게 왜 무서운데요?"
"보통 제가 마녀라 그러면 무서워 하던데."
그녀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근데 정말 마녀예요?"
"여자 마법사니까 마녀죠. 음, 근데 사실 마법사랑 똑같습니다. 고대의 마녀들이 남겼던 술식도 지금의 마법 체계와 상당 부분 비슷하고요."
이렇게 말하니까 엘리스가 상당히 대단해 보인다.
'고대의 마녀'라니.
뭔가 살짝 세계의 비밀에 다가서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나름 교황청의 비밀이었다 보니 못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라도 말할 수 있어서 속이 시원 합니다."
엘리스가 빙긋 웃었다.
"근데 이제 와서 말하는 이유가 뭔 데요?"
"그건……."
엘리스가 살짝 볼을 붉혔다.
"실은 연구에 있어서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어서 말할까 말까 하던 차에, 조금 분위기를 타서 말하게 돼버렸습니다."
"보여주고 싶으신 거요? 연구하시는 거에서요?"
내가 의아한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예, 나중에 상황 다 정리되면 제 연구 공방(工房)을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오오~ 마법사의 공방이라니, 꽤나 궁금했다.
엘리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드디어 10개의 총알에 기운이 모두 스며들었다.
나는 총알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감탄하며 검지와 엄지로 집어 든 총알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총알에 들어간 기운의 밀도 자체가 달라요."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군요."
"이 총알들은 아까의 총알들과는 아예 따로 구분해 놔야겠네요."
의외의 전력 상승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엘리스, 다음 총알들 만들 때도 부탁드립니다."
"문제없습니다."
나는 엘리스의 도움을 받아 총 30 개의 총알을 완성해 냈다.
"이제 작전을 좀 짜볼까요? 어떻게 해야 추기경들을 안전하게 정화할 지."
"그러죠."
"근데 안토니오 추기경님이 깨어나 셔야 할 텐데……"
"안토니오 추기경님은 왜요?"
엘리스가 안토니오 추기경을 찾는 내 말에 의아하게 고개를 까닥했다.
안토니오 추기경은 얼마 전에 우리가 가장 먼저 붙잡아 정화시킨 추기경이었다.
"작전 수립상 좀 도움받을 것이 있거든요."
"깨어나시면 연락하시겠죠. 쪽지랑 연락처도 남겨뒀으니……."
그때 마침 내 스마트워치로 신호가 왔다.
씨익.
나는 스마트워치를 보고는 웃었다.
"그분도 양반은 못 되시네요. 지금 마침 깨어나셨나 봐요."
스마트워치에는 '안가 2층, 안토니오 추기경의 방'이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