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06 슈웅- 하늘을 오르며 아까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생체신호위치에서 있는 인간들을 하나하나 [하늘의 눈]으로 확인했다.
'저 사람은 각성자, 일반인, 일반인.'
내 생각을 읽은 슈리가 생체신호 어플에 각성자를 빨간색 점으로 바꿔 표시했다.
확인이 끝난 일반인은 초록색으로.
"저 사람은……."
나는 그 와중에 두 명의 강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름 : 팬크라지오 마리오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창의 달인], [유연한 몸]
-이름 : 루카 만프린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고속 연산], [마력 응집]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창을 들고 있는 남자.
그리고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작은 로드 (rod)를 들고 있는 남자.
두 사람이 내 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새하얀 갑옷에 새겨진 두 개의 열 쇠와 한 개의 왕관.
바티칸의 문양이었다.
그리고 갑옷에 저 문양을 새기도록 허락받은 자들은 한 부류뿐이었다.
'성당기사단…….'
평소 추기경 호위나 네임드 몬스터 섬멸 등의 임무만 맡는다는 정예 중의 정예.
과연 그들이 풍기는 마력의 파장이 내가 있는 곳까지 닿고 있었다.
'음, 곤란한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위치를 들킨 것 같다.
모든 각성자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다시 엘리스의 옆에 사뿐히 내려섰다.
[반중력 장치]를 이용했기 때문에 착지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엘리스,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네, 안가로 가야죠. 곧 안토니오 추기경님 깨어나실……."
"아니, 그쪽 말고요. 이쪽으로 갈 겁니다."
"예? 갑자기 왜……."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잠시 실례 하겠습니다!"
"꺄악!"
나는 아까처럼 엘리스를 공주님 안기처럼 안아 들었다.
달리면서 엘리스에게 상황을 설명 했다.
"엘리스, 아무래도 포위망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포위망'이라고 표현한 것 보면 각성자들인가 보군요. 일반인들이라면 포위의 의미가 없을 테니."
"네, 맞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성당 기사단도 둘 보였습니다."
"……둘이나요?"
"네, 혹시 그들을 설득하실수는 없겠습니까?"
"……안돼요."
"같은 성당기사단인데 엘리스의 말을 믿어주지는 않을까요?"
"그들은 저를 몰라요."
엘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알려지지 않은 성당기사예요."
"아……. 그런 것도 있나요?"
"네, 다른 성당기사들은 제 얼굴조차 몰라요. 어차피 말해봤자 이상한 사람 취급만 받을 겁니다."
"그렇군요."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수백 미터나 다시 이동해 있었다.
나는 재빨리 3D 매핑 어플을 켜봤다.
"역시 쫓아오고 있어."
"쫓아오다니요?"
"포위망이 저희의 위치를 추적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 그걸 확인하기 위해 위치를 이동해 본 겁니다."
"아니, 모습도 완벽히 감추고 무결 씨 덕분에 엄청 빨리 도망 나왔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까 제가 혹시나 해서 추적장치 같은 게 붙어 있나 감지해 봤지만,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어느새 포위망이 가까워졌다.
특히 나를 쫓아오던 성당기사 둘은 그 빠른 속도만큼 내게 가까이 다가 와 있었다.
그들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찾았다!"
그때 엘리스가 외쳤다.
"무결 씨, 양쪽 손바닥 내밀어봐요!"
나는 엘리스가 시키는 대로 양 손바닥을 다 엘리스에게 내밀었다.
엘리스는 품에서 시약병 같은 것을 꺼내며 말했다.
"추종향이에요."
"아……!"
그제야 어떤 식으로 이들이 나를 추적해 왔는지를 깨달았다.
"조각상들에 묻혀놨던 것 같아요."
무림 장르의 던전에서 나오는 추종향(追縱香)은 다른 사람을 추적하기 위해 발라놓는 특수한 향기였다.
"바티칸에서는 이 향을 마법으로 추적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죠. 추종향을 없애진 못하겠지만 이 시약을 바르면 그 마법 술식을 교란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품에서 꺼낸 파란 색 투명한 시약으로 내 손을 씻어냈다.
시약은 내 손을 타고 떨어져 내리더니 자동으로 날아서 다시 시약병 속으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옷깃을 스쳐 간 시약은 전혀 옷을 적시지 않았다.
그녀는 손에 이어 머리, 몸, 팔, 다리, 신발까지 모두 꼼꼼하게 한 번 씩 씻어냈다.
시약은 한 방울도 흘림 없이 다시 시약병 속으로 회수되었기 때문에 온몸을 씻어내고도 그 양이 그대로였다.
다만 그 색깔만이 살짝 탁하게 변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내 몸에 이어 자신의 몸도 시약으로 꼼꼼하게 씻어냈다.
"이걸로 추적은 못 할 거예요."
"하지만 한바탕하는 건 피할 수가 없겠군요."
나는 어느새 우리의 앞을 막아선 두 각성자를 보며 자세를 잡았다.
"자네들이 바로 그 도둑들인가 보군?"
40대로 보이는 각성자, 창을 쥔 팬크라지오 마리오라는 각성자가 말했다.
그는 하얀 경갑을 입고 있었음에도 결코 둔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경갑 사이사이로 드러난 그의 날렵한 근육으로 보았을 때, 그가 빠른 움직임을 위주로 한 전사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얌전히 내놓으면 목숨은 빼앗지 말라는 추기경 전하의 말씀이 있었다. 지금까지 훔쳐간 것 다 내놓으면 얌전히 보내주도록 하마."
꽤나 자비로운 제안이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작은 범죄에는 연연하지 않겠다는 태도인 것 같았다.
옆에는 루카 만프린이라는 마법사가 조용히 서 있었다.
문답무용.
나는 [유가선공]을 끌어올리며 직선으로 치고 나갔다.
더 많은 각성자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들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어딜!"
팬크라지오가 창을 강하게 내려쳐 왔다.
그러자 창이 환상처럼 수십 개로 불어나 내 앞을 가득 메웠다.
엄청난 속도로 변칙을 주는 창술.
하지만 보랏빛 잔상이 창들 사이로 지나갔다.
서격.
그의 창 중단이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플라스마 링]의 작품.
모든 허초는 [배틀 센스] 앞에 무력 했다.
"이, 이럴 수가……."
팬크라지오가 경악하며 물러서자 이번에는 캐스팅을 마친 루카였다.
캐스팅을 마친 마법사는 과연 무인 이상으로 위험했다.
"[아이스 스톰]."
뾰족한 얼음들이 공중에 송송 생겨 나더니, 나와 엘리스에게 휘몰아쳐 왔다.
이번에 반응한 건 내가 아닌 엘리스였다.
그녀가 허공에 글자를 슥슥 긋더니 점을 찍었다.
그러자 나와 엘리스를 덮는 탄탄한 방어막이 우리를 둘러쌌다.
티티티티틱- 얼음들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역시 방어 마법에 있어서만큼은 엘리스가 최고였다.
"응?"
그런데 마법사 루카가 눈을 오므려 뜨더니 아직까지 공중에서 빛나고 있는 마법 문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저…… 저건 빛의 룬 문자?"
루카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빛의 마법!!"
"뭐? 빛의 마법이라고?"
루카의 외침에 팬크라지오가 경악하며 루카를 돌아보았다.
"말도 안돼! 빛의 마법은 우리 성당기사단에서도 오직 세 명밖에 못 익힌 초고난도의 마법이지 않은가?"
"하지만 틀림없습니다!! 저도 성당 기사단의 일원으로서 빛의 마법서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록 재능이 모자라 익히지는 못했지만, 저건 분명 그 마법서에서 본 룬 문자입니다!"
'호오.'
엘리스가 그 유명한 빛의 마법을 익힌 마법사일 줄이야.
'빛의 마법서'는 던전 [라비우스의 악마]에서 보상으로 성당기사단이 가지고 나온 마법서로, 바티칸의 마법은 그 마법서로 인해 진일보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룬 문자'라는 새로운 마법의 패러다임이 그 마법서로 인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설마 엘리스가 쓴 게 룬 문자였을 줄이야.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더니.'
그냥 마법 문자라고만 생각했지 그걸 한 번도 못 본 룬 문자와 연결 시킬 생각을 못했다.
룬 문자는 바티칸의 멸망과 함께 그대로 사라졌기 때문에 볼 기회가 없었다.
조금 더 듣고 싶었지만 저 뒤에서 각성자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나는 시간 끌지 않고 바로 주머니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꺼냈다.
[펄스 너클].
이번에 은하수가 새로 준 아이템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그것 손에 끼웠다.
그리고 잘린 단창으로 나를 공격해 오는 팬크라지오를 너클로 마주 공격해 갔다.
그러나 펜크라지오가 내 공격을 피하며 빈틈을 노리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 빈틈은 일부러 열어준 것.
나는 너클을 끼지 않은 손으로 팬 크라지오가 창을 든 손을 잡아채고 팬크라지오를 발로 차려 했다.
그 순간 단창이 마치 여의봉처럼 쑤욱 늘어나며 내 갈비뼈를 찔러왔다.
"엇."
난 깜짝 놀라며 뒤로 피하려 했지만, 단창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팟- 피가 튀었다.
옆구리가 살짝 스친 것이다.
"제법이군."
팬크라지오가 말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쪽도."
"컥."
그 순간 팬크라지오가 창을 놓치며 팔을 움켜잡았다.
내가 움켜쥔 부위가 마비되어 못 움직이는 것이다.
'손을 쥔 순간 [유가선공]으로 팔의 온 혈도를 막아버렸거든.'
"그럼 마무리다."
나는 후음, 힘을 모아 [펄스 너클] 로 녀석을 후려쳤다.
팡-
"크아아악-"
팬크라지오가 저 멀리 구름을 뚫고 날아가 버렸다.
"……."
"……."
서로 대치하던 엘리스와 루크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날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나도 아이템의 위력에 어이가 없었다.
그 순간을 노리고 루크가 나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엄청나게 빠른 마법 캐스팅.
"리버스 아이시클!"
땅바닥에서 뾰족한 고드름이 숭숭 솟아올랐다.
하지만 나는 쾅!!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 땅째로 얼음들을 모조리 깨버리고 루카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방금 전의 팬크라지오와 마찬가지로 루카를 후려쳤다.
"컥"
팡---
"으아아아악!"
루카 또한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
엘리스가 멀리 날아가는 루카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나는 다시 한번 [펄스 너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펄스 너클]은 내가 가하는 충격량을 분산시켜서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아이템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상대의 몸통을 '뚫어 버릴' 공격을 상대를 '밀어내는' 공격으로 바꿔버리는 아이템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내 공격력이 무지막지하다 해도 이 위력은 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이해가 안돼서 방금의 상황을 곰곰이 복기해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반중력 디바이스]. 이게 함께 작동한 거구나.'
[디바이스 컨트롤]이 무의식중에 [펄스 너클]과 궁합이 잘 맞는 [반중력 디바이스]를 함께 작동시켜 버린 것이다.
그래서 저들이 자신의 중력을 잃고 저렇게 투포환 선수가 던진 포환처럼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린 것.
'거참…… 신기하군.'
[앞으로 그 기술은 '로켓단 펀치'로 하죠, 마스터.]
'로켓단 펀치?'
[예, 그 이름이 가장 적절합니다.]
'로켓을 단 펀치 뭐 이런 뜻인가?'
나름 적절하군, 이라고 끄덕거리며 3D 매핑 앱을 켰다.
'이런.'
얼마 안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이미 우리를 잡으려는 많은 각성자가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충돌은 피할 수 없겠군.'
나는 이번에는 엘리스에게 등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