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05 -Museo Pio- Clementino. (105/215)

  기계신과 함께 105 -Museo Pio- Clementino.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

  바티칸에서 소장한 가장 훌륭한 조각상들만이 모여 있다는 곳.

  이곳에 전시된 조각상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예술품이었다.

  "여, 여기 있는 거 아무거나 담아도 아우구스투스상 정도는 됩니다!!"

  엘리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좋았어!"

  "으흑흑."

  사방에서 우리를 에워싸 바라보고 있는 그리스의 신들.

  하나하나가 정교한 전신상으로 과연 아우구스투스상에 못지않은 걸작 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나라 잃은 표정의 엘리스를 뒤에 둔 채 나는 열심히 그 유물들을 집어 [공간주머니] 속에 처넣었기 시작했다.

  [여기 완전 노다지군요.]

  내가 금광을 캐는 광부처럼 신나게 유물들을 때려넣는 사이, 엘리스는 우리가 들어온 입구 공간에 마법 문자를 새겨 넣었다.

  그녀가 마법 문자를 새겨 넣은 직 후, 입구에 새하얀 빛이 났다가 사라졌다.

  그곳엔 반투명하고 강력한 방어막이 생성되어 있었다.

  "크르륵, 크르륵!! 고기!! 인간 놈들의 고기!!"

  "마침내 허락받은 고기!!"

  [반중력 디바이스]에서 풀려난 악령들이 침을 줄줄 흘리며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러다 엘리스가 생성한 방어막에 충돌했다.

  콰콱!

  "크아악! 비열한 인간 놈들!!"

  "크륵! 왜 눈앞에 고기가 있는데 먹질 못하나!!"

  녀석들이 미친 듯이 방어막을 두들겨 대었다.

  그들이 방어막을 두드릴 때마다 새까만 악기(惡氣)가 피어올랐다.

  보통 사람은 저기에 닿기만 해도 살이 녹아내리지만, 엘리스의 방어막은 녀석들의 몸이 부딪칠 때마다 새하얀 스파크를 튀기며 그들의 공격을 잘 막아내었다.

  "엘리스, 여긴 끝났어요!"

  "그럼 가…… 헉."

  엘리스가 뒤를 돌아 내게 '가자'고 하려다가 기함했다.

  "여갔는 걸 다 집어넣었어요?!"

  "네, 근데 온 김에 조금 더 넣어 갈게요."

  "네, 네?"

  "혹시 모르니까 좀 넉넉히 옆방도 털게요!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무, 무결 씨!"

  참고로 지금 내가 턴 곳은 '피오 클레멘티노'의 여러 구역 중 한 곳 일 뿐이었다.

  나는 악령들이 있는 반대쪽 출구로 뛰어나갔다.

  "터, 털다니…… 게다가 거긴 '벨 베데레의 뜰'…… 진짜 좋은 작품만 있는 덴데……."

  엘리스가 뭐라 중얼거리는 듯했지만 못 들은 척 다시 작품들을 쓸어 담았다.

  "여긴 진짜 딱 봐도 작품들이 어마어마하구만, 어마어마해!"

  나는 쓸어담는 와중에도 연신 감탄 한 눈으로 작품들을 살펴봤다.

  방금 전의 방도 그렇고 지금 이곳도 그렇고 굉장한 노다지였다.

  작품이 아름답다고 정교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선기(普氣)가 담겨 있다는 것.

  "혹시라도 안 쓰게 되면 다시 돌려 놓겠습니다."

  나는 생명도 없는 조각품들에게 괜스레 미안함을 표시하며 신속하게 작품들을 털었다.

  "흥흥흥~ 조각상~ 조각상~ 조각 조각 조각상~ 영력탄이 한 개~ 두 개~♪"

  막대한 선기가 담겨 있을 작품을 이토록 손쉽게 많이 얻게 되자 왠지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그동안 엘리스 눈치가 보여서 많이 훔치는 것을 자제해 왔지만 지금은 '비상시'가 아닌가?

  '비상시면 어쩔 수 없지. 암.'

  그렇게 콧노래를 부른다고 작업 속도가 늦춰지거나 하진 않았다.

  이곳 자체가 워낙 좁은데다 조각 상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무결! 저놈들이 이제는 벽을 때려부수려 그래요! 그쪽으로도 방어막을 확장하긴 했지만 얼마 못 버틸 것 같아요!"

  엘리스의 다급한 외침 소리.

  하지만 이쪽도 다 끝났다.

  "다 됐습니다! 가죠!"

  나는 엘리스에게 다가가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었다.

  "저쪽에 밖으로 빠져나갈 만한 공간이 있더군요. 그리로 나갈 테니 점프하면 방어막을 푸셔도 됩니다. 꽉 잡으세요."

  "네, 알았어요."

  엘리스가 내 목을 단단히 끌어안으며 말했다.

  좋은 샴푸 향기가 났다.

  "자……"

  펑!

  내가 발을 박차자 대리석 바닥에 살짝 금이 가며, 내 몸은 저 높이 위치한 창문으로 점프했다.

  "크라아아!!"

  악령들이 내가 있던 곳으로 와서 처박히는 게 발아래로 보였다.

  "안돼!! 고기!!!"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악령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렸지만, 그 소리를 뒤로하고 나와 엘리스는 창문 밖을 빠져나왔다.

  * * * 우리는 거의 날다시피 하는 속도로 바티칸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엘리스가 어제 걸었던 투명화 마법을 아예 미술과는 빠져나오는 순간 부터 펼쳐준 덕분에 어제보다 손쉽게 바티칸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미리 손을 써뒀기 때문에 어제처럼 경보가 울린 것도 아니었고.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엘리스의 투명화 마법이 해제되었다.

  나는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시각은 이탈리아 로마시각으로 새벽 7시.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흠…… 뭔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해요?"

  엘리스가 내 혼잣말에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내 품에 공주님 자세로 안겨 있었다.

  아주 편안해 보인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달리던 그대로 멈춰 서서 엘리스를 딱 놔버렸다.

  "이잇!"

  엘리스가 바닥에 떨어지며 몸을 뒤틀어 제대로 착지했다.

  "생각에 잠겨 있느라 깜빡하고 있었네요, 하하."

  "와, 그렇다고 그냥 놔버리시네요. 너무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안 다칠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엘리스가 얄밉다는 듯이 한차례 나를 노려볼 때,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골목 속으로 들어왔다.

  "그나저나 뭔가 이상하다니요? 뭐가요?"

  "바티칸의 각성자가 몇이지요?"

  "음…… 바티칸을 지키는 각성자는 성당기사단을 제외하고 대략 100명 정도 돼요. 그들을 '성당근위병'이라 부르죠."

  "근데 오늘 미술관 근처에서 각성자들, 본 적 있어요? 어제 유물 탈취 사건 때도 있었는데."

  "확실히 미술관 주변에 근위병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게 이상하군요.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하나도 없는 건 좀 많이 이상한데. 어제 유물 탈취 사건이 있었음을 감안해서 성당 기사단도 한두 명은 있을 줄 알았는데."

  미술관을 제외한 곳에서는 종종 순찰을 도는 각성자들도 보이긴 했다.

  하지만 미술관 주변에서는 분명 단 한 명의 각성자도 볼 수 없었다.

  엘리스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마 그 악령들이 각성자들 대신 온 것 아닐까요? 아까 그 악령들이 웬만한 근위병들보다 세긴 했으니까요. 성당기사단이 와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던데."

  "그 악령이 깃든 성직자들, 각성자를 움직일 정도의 신분인가요?"

  "그렇죠. 추기경님들이었으니까요. 그들이 각성자들을 미술관 주변으로 부터 멀어지게 한 것 같아요."

  "왜 직접 움직인 걸까요?"

  "네?"

  "엘리스 말대로 그 사람들 주교들이잖아요. 그냥 각성자들 시켜서 우리를 잡으면 되는데, 어째서 자기들이 직접 나선 걸까요?"

  "그…… 자기들이 더 강하니까..?"

  엘리스도 말문이 막히는지 말꼬리를 흐렸다.

  100명의 각성자보다 그들 5명이 강할 리가 없었다.

  "아."

  나는 머릿속이 번쩍했다.

  '음…… 그렇군.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건가?'

  이제야 아까 악령들이 했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마침내 허락받은 고기!!"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이 악령들, 엘리스의 말대로 각성자들 대신 우리를 잡기 위해 온 거다.

  우리를 죽이고, 인간을 먹고 싶어 하는 녀석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행동으로 보아 아마 이 녀석들은 평소 인간 고기를 못 먹게 누군가로 부터 제약을 받고 있을 것 같았다.

  폭식을 한다든가, 인간을 군침 흘리며 바라보기만 한다든가, 혹은 자신의 팔을 입으로 무는 등의 행동이 이런 추측을 뒷받침했다.

  그냥 인간을 잡아먹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상함을 느끼는 사람이 나올 테니까 이들을 통제하는 자가 그런 금지령을 내린 것일 터.

  그러나 예술품 도둑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

  인간 고기에 미친 악령들은 근위병 들조차 모두 물린 채,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우리를 잡기 위해 매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본모습을 들킬 순 없었으니 각성자들은 멀리 물러나게 했고.

  그렇다면 각성자들은 지금 이 순간 뭘 하고 있을까.

  나는 [디바이스 컨트롤]의 응용기인 [오버클럭]을 스마트 워치에 탑재된 기능인 '생체 신호감지' 어플에 사용했다.

  베히모스 던전에서 [디바이스 컨트롤]의 성능이 향상되며 내 [오버클럭]의 성능 또한 향상되었다.

  덕분에 내 반경 500m까지의 인간의 신호가 동시에 잡혔다.

  수천 개의 파란 점들이 3D 맵을 가득 메웠다.

  '역시 포위망인가.'

  나는 그중에 내 주변을 향해 다가오는 백여 개의 파란 점들에 주목했다.

  아침을 준비하는 평범한 로마의 시민들 때문에 포위망을 구성하는 자들의 정확한 수는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커다란 포위망이 우리를 좁혀온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어플에 떠오른 인간들의 생체 신호를 머릿속에 잘 입력해 두었다.

  "엘리스, 저 하늘로 점프할 건데, 남들 눈에 안 띄게 잘 좀 감춰주세요."

  "알았어요. 근데 뭐 하려고요?"

  "정찰이요."

  나는 숨을 고르고, 마력을 다리에 집중해서 건물 벽을 지그재그로 박차고 올라가다가, 마지막에는 강하게 힘을 주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뛰어오르는 순간 내 몸을 마력의 장막이 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엘리스의 '투명화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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