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04 추기경을 납치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기척을 죽이고 2층의 빈방 창문으로 침입해 그를 기절시키고 데리고 나오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추기경을 지키던 각성자의 실력이 높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했던 것과 달리 들키지 않았다.
우리는 추기경을 안가로 데려다놓고 거미줄로 묶어놓았다.
얼마 후 추기경이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좀 드나?"
그는 내 말에 눈을 번쩍 치켜뜨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 여기가 어디요? 지,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는 거요!"
그가 당황한 티를 한껏 내며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정말 사람인 것만 같은 반응.
당연히 악마에 씐 사람이 '나 악마요'라고 순순히 말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의뭉 떨기는."
하지만 나는 준비해 둔 나뭇가지로 추기경의 머리를 툭툭 쳤다.
"윽, 윽."
머리에 툭툭 나뭇가지가 닿을 때마다 추기경이 짤막짤막하게 신음을 흘렸다.
"아프네, 그만하게."
추기경이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마치 누가 보면 장난치는 것처럼 그의 머리를 툭툭 건들기만 할 뿐이었다.
이 나뭇가지로 말할 것 같으면 그 효력이 다한 [니케의 나뭇가지]였다.
'베히모스의 꿈'에서 구했던 아이템으로, 그나마 내게 신의 힘이 깃든 물건이 있다면 이것뿐이라 나름 시험을 해보고 있는 거였다.
"제발, 제발 그만하게! 오, 하느님 아버지!"
그가 하느님을 찾으며 괴롭게 중얼 거렸다.
"무결……."
엘리스가 차마 못 보겠다는 듯, 내 팔을 잡았다.
"엘리스, 안돼요. 지켜보세요."
"그치만……."
"두고 보세요. 곧 실체를 드러낼 거예요."
"오, 거기 아가씨. 나 좀 도와주게.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 이 청년 좀 막아주게."
추기경이 엘리스를 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나는 아무 죄가 없어. 배가, 배가 너무 고파서 음식을 많이 먹은 것밖에 없단 말이네. 제발 살려주게."
추기경이 계속해서 나와 엘리스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뭇가지를 그에게 두드렸다.
'효과가 없나……?'
그렇게 의문을 가질 무렵.
"크으……."
그가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나는 그의 모습을 주시하며 쉬지 않고 나뭇가지로 그의 머리를 두들겼다.
갈수록 괴로운 신음을 흘리던 그가 돌연 눈을 번쩍 뜨고 충혈된 눈으로 우리를 째려보며 말했다.
"내가 그만하랬잖아."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
드디어 녀석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꺄아아악!]
머릿속에서 울리는 슈리의 비명을 들으며 나는 쉬지 않고 녀석의 머리를 두들겨댔다.
툭! 툭! 툭! 툭!
"그만하라니까아-"
악령이 입을 기괴하게 비틀며 목을 빼며 입을 딱딱거렸다.
나뭇가지를 물어뜯기 위해서.
나는 그의 입을 요리조리 피해 그의 머리를 계속해서 툭툭 쳤다.
놈은 신경질이 나는지 나를 올려다 보며 강렬한 증오를 내뿜었다.
"그르르……."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
"아프잖아, 낄낄."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나를 올려다 본다.
입이 양끝으로 확 째지며 더할 수 없을 만큼 비열한 웃음이 입에 걸렸다.
[으, 마스터, 장르가 마음에 안 듭니다.]
여전히 공포영화는 진저리를 치는 슈리였다.
"네가 그런다고 내가 이 몸에서 나갈 것 같으냐?"
악령종 몬스터가 비열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추기경님……."
엘리스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악마의 모습에 내 팔을 잡고 휘청거렸다.
끔찍한 악령종 몬스터의 실체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하늘의 눈]으로 이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이름 : 단탈리온의 18번째 악령 -상태 : 인간 안토니오 드러셀의 기생체 -설명 : 라비우스의 악마 단탈리온이 만들어낸 악령.
실체가 표면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그의 진정한 이름이 확인된다.
나는 설명을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그쪽에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그러자 설명이 늘어났다.
-설명 : 라비우스의 악마 단탈리온이 만들어낸 악령. 아직 성체에 이르지 못했으며, 성체에 이르면 다른 악령을 생성해 다른 생명체의 몸 속에 주입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그 수가 그렇게 불어난 거였군.'
전생에서 로마는 수많은 악령에 의해 지배되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아직까지 멸망하지 않은 다른 나라의 수도로 도망을 갔던 것이 전생에서의 결말.
그런데…….
'18 번째?'
어째 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엘리스, 엘리스가 목격했던 이상 행동자가 정확히 몇 명입니까?"
"아마 11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흠……. 이렇게 되면 악령이 7마리 이상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나는 악령에게 총을 겨눴다.
"크크크…… 크르륵…… 그 총을 쏘면 나뿐만 아니라 이 늙은 인간도 죽을 텐데? 그래도 상관없나, 아가씨?"
악령은 총을 겨눈 내가 아닌 엘리스를 돌아보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마음이 약해진 그녀의 상태를 대번에 알아보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엘리스는 말없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어디 한번 쏴보겠어? 나는 이 인간이 죽을 때까지 절대로 안 나올 건데? 응? 응?"
악마의 고개가 모로 90도까지 꺾였다.
나를 약 올리는 것이다.
겁주려는 것도 있고.
'귀여운 녀석.'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유가선공]을 끌어 올렸다.
"그렇게 이 인간을 죽이고 싶어? 이 살인마야-"
악령이 필사적으로 나를 도발했다. 하지만.
"응, 안 죽어."
나는 녀석에게 대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이 추기경의 허벅지를 뚫고 들어갔다.
뼈는 건들지 않고 근육만을 꿰뚫은 총탄.
관통력을 약하게 조정한 총알이었기 때문에 근육을 뚫고 나가지 않고 안에 그대로 박혀 버렸다.
"크, 크아아! 뭐냐, 이건!!"
악령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어 대기 시작했다.
"우억, 우엑!!"
그리고 오늘 먹은 것을 모조리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까 식당에서 보았던 고기와 빵들이 추기경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추기경의 입에서…….
투욱.
검은 뱀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뱀은 기다란 몸체에 지네처럼 수많은 다리를 달고 있었다.
[으엑!]
"엘리스, 부탁합니다."
"네!"
사전에 얘기된 대로 엘리스가 마력의 불꽃을 일으켰다.
"끼에에에엑-"
뱀이 불꽃에 타들어가며 비명을 내 질렀다.
저 뱀은 영체인 악령이 인간의 영육에서 떨어져 나오며 실체화된 것이었다.
실체화된 악령은 인간의 몸과 영혼에 기생해 있을 때와는 달리 인간에게서 떨어져 나오면 일반적인 마력의 불꽃만으로 간단하게 태워 버릴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유가선공]으로 추기경의 몸에서 탄알을 빼내고, 그의 몸을 치유해 나갔다.
"휴우……. 이제 추기경님은 무사한 거죠?"
"네, 무사히 정화 끝났으니 기력만 회복하면 깨어나실 겁니다."
"휴우."
엘리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험은 성공이었다.
총탄의 마력량도 딱 적절했다.
총탄에 깃든 마력이 더 적었으면 정화가 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보단 정화 과정이 쉽군요."
엘리스가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어떤 걸 생각하셨는데요?"
"막 악령이 좀 더 날뛰면서 행패 부리고 무섭게 막 얼굴 들이밀고 그럴 줄 알았거든요. 깜짝깜짝 놀라게."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엘리스의 말에 슈리가 진저리를 쳤다.
"으음…… 안타깝지만 곧 기대에 부응해 드릴지도 모르겠군요."
"……네?"
[뭐라고요?]
슈리와 엘리스가 동시에 경직된 목소리로 반문했다.
"이 악령은 사실 제가 생포한 직후 마력을 억제해 두었기 때문에 별다른 반항을 못한 겁니다. 계속 악령을 사냥하러 다니면 결국 우리의 존재를 들킬 수밖에 없고, 그럼 언젠가 대비하고 있는 악령들과 말씀하신 양상의 전투를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
엘리스가 잠깐 굳었다가 한숨을 내 쉬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엘리스가 성호를 그리며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불과 몇십 분 후.
"하느님! 아버지! 살려주세요!"
[마스터! 마스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다섯 명의 악령이 미술관에 숨어 있다가 우리를 덮쳤다.
우리는 방금 전, 미술관의 당초 계획대로 유물을 훔치려 미술관으로 숨어들었다.
아직 청소부도 오기 전의 이른 시각이라 미술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저 앞에서 홀로 미술품을 관람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잠시 몸을 숨겼다.
그 사람은 잠시 미술품을 관람하는가 싶더니 그 미술품을 지나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조심조심 그가 있던 곳을 지나쳐 첫 번째 목표물을 향해 다가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엘리스는 어느 순간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미술품 사이에서…….
방금 미술품 사이로 사라졌던 사람이 숨어,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엘리스를 노려보다가 일순간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엘리스가 반사적으로 뒤로 점프하며, 슈리와 함께 비명을 지른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느님! 아버지! 살려주세요!"
[마스터! 마스터!!]
그 시점을 기점으로 다른 네 명의 악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몸을 숨기고 있던 천장에서, 벽에서 기어나왔다.
벽을 네 다리로, 마치 거미처럼 기어서, 그로테스크하게.
분명 모두 악령이 스며든 인간이었지만 몸체가 마치 거미처럼 뒤틀려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가 없는 생김새였다.
'매복이군.'
우리가 또 다시 미술관에 찾아올 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스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쳐온 놈들에 의해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사이 다가오던 악령들이 엘리스를 노리고 곱등이처럼 땅을 박차 올랐다.
나는 몸이 굳어 반응하지 못한 엘리스를 잡아채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반중력 디바이스]
작동.
최근에 은하수가 개발해 블랙미슈릴 슈트에 추가해 준 기능이 발동되었다.
두웅- 콰악!
녀석들이 공중에 뜬 그대로 우리의 머리를 지나쳐 저들끼리 부딪혔다.
그렇게 부딪치고도 그들은 공중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팔다리를 버둥 거렸다.
"엘리스, 빨리 가죠!"
저렇게 반 악령 상태가 된 이상 생포하기도 힘들다.
내가 알기로 저 상태에서는 거의 준보스급 몬스터의 육체 능력을 낸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이지 않을 거라면 그냥 도망가는 게 지금으로서는 상책.
'이런 젠장. 아직 총알을 준비 못했는데.'
본체를 죽이지 않고 저 악령들을 성직자들의 영혼에서 분리해 내기 위해서는 유물과 성물의 힘을 빌려야 했다.
그런데 아직 필요한 유물을 훔치지도 못했다.
나는 엘리스를 돌아보며 빠르게 물었다.
"엘리스, 혹시 유물을 한꺼번에 구할 수 있는데가 있어요?"
당초 계획은 미술관 곳곳에 퍼져 있는, 엘리스가 그 역사문화적 가치를 고려해 엄선한 11개의 유물을 입수할 계획이었으나 이렇게 들켜 버린 이상 더 많은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미술관을 빠져나가 자니, 다음 잠입 시에는 유물 입수난이도가 개같이 어려워져 있을 것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지금은 악령뿐이었지만, 다음에는 성당기사단 외에 각성자들이 지키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한 군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곳의 유물만은 지켜주고 싶다는 빛이 눈망울에 가득했다.
하지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당장 그곳으로 가죠!"
"으앙!"
엘리스가 우는소리를 하면서도 열심히 달려 나를 안내했다.
"이곳이에요!"
다행히 우리의 목적지는 가까운 곳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