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03 다음 날. (103/215)

  기계신과 함께 103 다음 날.

  "음……."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어젯밤 바티칸을 다급하게 빠져나오던 나와 그녀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WANTED'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음…… 현상금은 대략 한 사람당 5만 유로군."

  5만 유로라면 한국 돈으로 대략 6, 500만 원정도 하는 금액이었다.

  현상금을 건 곳은 역시 바티칸.

  나는 바티칸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지만…… 어찌 된 게 성당기사단원인 그녀에게까지 현상금이 걸려 버린 것이다.

  나는 이걸 엘리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무결 씨……."

  마침 저기 엘리스가 온다.

  그녀는 다크서클이 잔뜩 드리운 채 종이 한 장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여기 리스트입니다……."

  오늘 밤 훔칠 성물리스트를 작성 하느라 밤을 꼴딱 새운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에게서 종이를 받아 들며 노트북 화면을 슬쩍 닫았다.

  "근데 뭐 보고 있었습니까……?"

  그녀가 괜스레 노트북 화면에 관심을 가진다.

  내 태도에서 수상함을 느낀 걸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시치미를 떼며 리스트를 받아 읽어보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으흠."

  엘리스가 잠시 수상쩍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기지개를 켜며 뒤로 돌아섰다.

  "저는 그럼 나갈 때까지 잠시 눈 좀 붙이겠습니다."

  "네, 이따 나갈 때 되면 깨워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아아아아……!!"

  깊고 깊은 탄식이 그녀의 방에서 흘러나왔다.

  "봐버렸나 보네."

  나는 볼을 긁적거리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무결 씨, 무결 씨……!"

  "네, 엘리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바티칸 홈페이지에 게시된 그녀와 나의 현상금 사진을 가리켰다.

  "현상금이 걸린 거죠."

  "아니, 안 들킬 거라면서요? 괜찮을 거라면서요?"

  "어쩌다 보니 들켜 버렸네요. 하하……."

  내가 그녀의 눈을 피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거 자세히 보니까…… 무결 씨 얼굴이 아닙니다만?"

  그녀가 현상금 사진에 찍힌 내 얼굴을 가리켰다.

  확실히, 저건 내 얼굴이 아니었다.

  "그야 들킨 그 순간부터 얼굴을 바꿨으니까요."

  혹시나 사진 같은데 찍힐까 봐 [유가선공]으로 변용을 한 보람이 있었다.

  "치사하게 혼자서……."

  엘리스가 기가 막히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지만, 역시 모른 체했다.

  난 몰라, 아 몰라.

  "그런데 엘리스는 어쩌다가 현상금이 걸렸대요? 그 유명한 성당기사단원이 이 정도에 현상금이 걸리기도 해요?"

  성당기사단원이라면 웬만한 면책 특권, 불체포 특권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경우에 따라 살인에 대한 권한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고작(?) 이런 유물 하나 훔쳤다고 이렇게 대대적으로 수배될 리가 없는 것이다.

  "……제가 무결 씨를 찾아온 게 윗 사람들의 뜻이었겠어요?"

  "아."

  그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

  그녀는, 성당기사단에서 무단으로 이탈한 이탈자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탈주기사?'

  하긴, 교황을 비롯한 추기경들을 장악하고 있는 몬스터들이 자신들의 이상함을 밝히려는 엘리스를 순순히 보내주려 했을 리 없다.

  그녀로서는 누구를 믿을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마당이라 조용히 바 티칸을 빠져나와 나를 찾아오는 방법밖에 없었겠지.

  이미 성당기사단에서 제적되어 있을 확률도 높았다.

  나는 측은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근데 그럼…….

  "엘리스, 근데 당신이 쫓기는 처지에…… 바보가 아니라면 본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요?"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녀 같은 고위의 마법사라면, 분명 본모습을 감출 방법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천재령으로 분장한 신지혜처럼.

  내 말에 엘리스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그녀가 땀을 삐질 흘리며 웃었다.

  "하하……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그럼 뭐 수배돼도 괜찮은 거 아닌가요? 이제부터라도 모습을 바꾸고 다니면 되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충격받은 건 그 때문이 아닙니다."

  엘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결 씨가 만약 고아고, 그 고아원을 집으로 여기는데……."

  나는 움찔했다.

  엘리스가 의도치 않게 내 정곡을 찔렀다.

  "그 고아원이 무결 씨한테 현상금을 걸면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세상에 공개적으로요."

  "아……."

  그녀가 침울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그냥 집 나온 어린아이였다.

  그다지 큰 죄는 짓지 않았고, 돌아가면 따끔하게 혼나는 정도로 끝날 수 있는.

  하지만 이제는 집에 중요하게 보관 되어온 보물을, 타지인과 함께 훔쳐 나간 도둑이 되었다.

  그것도 세상에 대대적으로 그렇게 알려졌다.

  물론 나중에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제대로 밝혀져 참작이 된다면 상관없겠지만…… 지금 이 시점의 심정의 참담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걱정 마세요. 꼭 결백을 밝혀드릴 게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웃어주었다.

  집 나온 이 어린아이는 갈 곳을 잃고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잠시간은 그녀의 갈 곳이 되어줘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

  엘리스가 살짝 볼을 붉혔다.

  "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잘해냈잖아요. 앞으로도 걱정 마세요."

  엘리스는 '신무결'이라는 정답을 찾아내고, 여기까지 인도한 것만으로 충분히 성당기사단으로서의 의무를 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그것을 증명할 차례였다.

  "조금 이르지만 자기에는 그른 것 같네요. 지금 갈까요?"

  "그래요, 아, 그 전에 잠깐."

  그녀가 마력으로 허공에 몇 가지 문자를 써 넣더니, 그녀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머리는 조금 더 갈색으로, 키는 좀 더 커지고, 얼굴은 조금 더 성숙한 20대 중반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게 당신의 본모습인가요?"

  "글쎄요."

  엘리스가 후후 웃었다.

  "그럼 가죠."

  "네."

  나와 엘리스는 안가를 빠져나왔다.

  이번에 우리가 벌일 일은, 납치였다.

  * * * 새벽 5시.

  나는 엘리스의 뒤를 따라 로마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시국이 하수상한지라 로마 거리 내 곳곳에는 야간 근무를 서고 있는 경비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이른 새벽에 거리를 지나가는 나와 엘리스를 자세히 바라봤지만, 이미 모습을 바꾼 우리의 모습에서 수배 전단지에서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바티칸에 상주하는 대부분의 추기경은 거처가 바티칸이 아닌 로마시내에 있었다.

  이탈리아는 교황청을 위해 수도인 로마의 부지를 내어주고 치안을 관리하는 등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저곳이 안토니오 추기경의 집이에요."

  안토니오 추기경은 어제 우리가 바티칸에서 미사드리는 모습을 보았던 추기경의 이름이었다.

  "성당기사단은 아니지만 추기경을 호위하는 각성자가 한두 명은 있을 거예요."

  그녀가 덧붙여 말하길 성당기사단은 평소 교황과 추기경을 호위하거나 위험도 높은 로마시내의 던전을 클리어하러 다닌다고 했다.

  "저기 각성자가 한 명 있군요."

  나는 2층으로 된 추기경의 집 아래층의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엘리스가 의아한 눈으로 말했다.

  "마력을 느끼면 돼요. 각성자는 특유의 마력 파장이 있습니다."

  "마력 파장이요?"

  아직 각성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긴 하다.

  아마 한 한 달쯤 더 지나면 이 개념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마력에 민감한 사람은 지금 이미 마력 파장을 은연중에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네, 그런 게 있습니다. 저 사람은 건들지 말고 2층의 추기경만 납치하죠

  "네."

  나와 엘리스는 옆집의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추기경이 머무는 2층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추기경은 예상대로 이미 깨 있었다.

  7시 아침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원래 이 안토니오 추기경의 스케줄 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전혀 예상에 없던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와구와구.

  추기경은 식탁 위에 갖은 음식들을 올려두고 그것을 미친 듯이 먹어치 우고 있었다.

  '걸신 들렸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모습.

  "잠깐 보고 있죠."

  나는 바로 그를 납치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그를 관찰하기로 했다.

  빵과 고기, 술이 그의 목구멍을 타고 폭풍처럼 넘어갔다.

  바닥에는 그가 흘리는 음식물 찌꺼기들로 더러워지고 있었다.

  한창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던 그

  "우에엑!"

  화장실로 달려가 먹던 것을 토하고는, 다시 음식물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

  "끔찍하군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엘리스는 말문이 막혀 그런 추기경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내 말에 엘리스가 나를 바라보았다.

  "뭐가 말인가요?"

  "저 정도 상태면 아직 완전히 몬스터에게 잠식된 건 아닙니다. 욕망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아직 몬스터가 숙주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다는 증거예요. 비교적 쉽게 떼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당장 구하러 가도 될까요?"

  엘리스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있는 저 추기경이 안타까운지 내게 재촉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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