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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01 2주일 후. (101/215)

  기계신과 함께 101 2주일 후.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위치한 경복궁 1.3배 크기의 나라, 바티칸.

  그 크기는 나라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작았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강력한 나라였다.

  "바티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엘리스가 바티칸의 입구, 성 피에트로 광장에 들어서는 나를 보며 웃음 지었다.

  아마 그녀로서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느낌이겠지.

  "사람들이 꽤 많군요?"

  나는 광장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살짝 놀라며 말했다.

  "예, 던전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비해서는 사람이 상당히 줄었지만, 그래도 아직 꽤 많은 사람이 찾는 편이죠. 그래도 이탈리아 로마 내에서는 여기가 제일 안전하거든요."

  "성당기사단 때문이겠군요?"

  "네, 맞습니다."

  엘리스가 볼을 붉히며 뺨을 긁적였다.

  나는 광장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탑에 다가갔다.

  "이게 바로……."

  "예, 이게 바로 [라비우스의 악마] 던전이 열렸던 건축물, 오벨리스크 (Obeliskos) 입니다."

  나는 광장 한가운데 수 미터 높이로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 오벨리스크는 고대로마시대에 이집트로부터 옮겨 온 것으로, 원래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건물입니다. 하필 여기에서 그 끔찍한 던전이 열리는 바람에 모두가 다 죽을 뻔했지만요."

  엘리스가 그때를 떠올리는지 잠시 고개를 젓고는 다시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가시죠."

  그녀는 현대 가톨릭의 성역이라 할 수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안내 했다.

  대성당 내부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이라 하면, 그 유명한 조각상, 피에타 (Pieta)였다.

  "여러분도 이름은 들어보셨죠? 이게 바로 천재 미켈란젤로가 24살 때 조각한 피에타 상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을 무릎 위에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를 조각한 것이죠."

  "대단하네요."

  나는 위대한 천재가 빚어낸 조각상의 자태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정말 살아 있는 인간이 조각이된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섬세한 예수의 근육 묘사.

  그리고 금방이라도 나풀거릴 것 같은 성모 마리아의 치마 묘사. 조각상은 현대인인 내가 봐도 이게 왜 보물, 혹은 성물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왜 사상 최강의 근육 덕후라 불리는지도.'

  엘리스는 감탄하는 내 반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뿌듯해했다.

  "이쪽으로 오시면…… "

  평소에는 예절 바르며 조금은 조용한 성격이던 엘리스는 시종일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바티칸의 그림과 조각, 그리고 유물들에 대해 안내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바티칸의 예술품과 유물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열정 어린 안내 덕분에 나는 관광하는 기분으로 바티칸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저분이 바로 안토니오 추기경이세요."

  엘리스가 성 베드로 성당 안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한 추기경을 가리켰다.

  70대가 넘은 그 성직자는 조곤조 곤하게 미사를 드리러 온 신도들을 향해 축언을 읊고 있었다.

  "저분도 이상 행동을 보이신 분입니까?"

  내가 조용하게 엘리스에게 물었다.

  "네, 맞아요."

  엘리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하늘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름 : 안토니오 드러셀 -상태 : 기생숙주 심상찮은 상태창에 얼굴이 굳어졌다.

  '기생숙주?'

  나는 그 항목을 더 자세히 떠올려 보았다.

  -[기생숙주]

  : 악령종 몬스터에 의해 감염된 상태입니다. 숙주는 갈수록 기생체에 의해 몸과 정신이 오염 되어 갈 것입니다.

  '음…… 설마…….'

  나는 과거에 있던 악몽의 단편을 떠올렸다.

  분명 나는 전생에서 저런 유형의 몬스터를 본 적이 있었다.

  로마시를 집어삼킨 몬스터 재해.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똑똑히 기억 하고 있었다.

  '그 시작이 바티칸이었구나.'

  서서히 바티칸 멸망에 대한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음……."

  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엘리스를 한번 쳐다봤다.

  비록 한 도시가 멸망에 이른 처절 하고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저 악령종 몬스터들을 사람에게서 분리하는 방법을 찾아낸 자들이 있었다.

  그 방법이 분명…….

  "왜요? 알아내셨나요?"

  "……네. 엘리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충격받으시면 안 됩니다."

  "이미 추기경과 주교님들의 이상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들을 각오 되었으니, 말씀하세요."

  엘리스가 절대충격받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양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신 대로 저분은 몬스터에 의해 몸을 빼앗긴 상태입니다. 그리고……."

  나는 엘리스의 눈치를 슬쩍 보고 말을 이었다.

  "저분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면, 오랜 시간 동안 인간들로부터 축복되고 신성시되어온 유물, 혹은 신성력이 깃든 성물들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까 내가 감탄하며 감상했던 성상 피에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런 성물들이요."

  엘리스가 살짝 얼었다.

  내 말에서 뭔가 심상잖은 뉘앙스를 느낀 듯, 그녀가 침을 꼴깍 삼키고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뭐…… 성물을 저분들 몸에 닿게 하거나 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아니요, 성물의 기운을 뽑아내어 특별한 방법으로 응축해야 합니다. 그 응축된 기운을 몸에 심어야 비로소 몬스터가 쫓겨납니다."

  "그…… 기운을 어떻게 뽑아내는데요?"

  "가루를 내야 합니다. 성물을요."

  절대충격받지 않기로 굳은 각오를 다졌던 엘리스의 얼굴이 얼음처럼 얼어버렸다.

  누가 봐도 매우매우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꼭…… 꼭 가루를 내어야 하나요?"

  그녀가 절박한 얼굴로, 내 소매를 붙잡고 물어왔다.

  "네, 가루를 내어야 합니다. 반드시."

  나는 안타까운 얼굴로 내 소매를 붙잡은 그녀의 손을 떼어내려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소매가 무슨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절대 놓지 않고 다시 한 번 물어왔다.

  "꼭 성물이어야 하나요?"

  "꼭 성물일 필요는 없지만 신성력이 깃든 물건일수록 효과가 좋습니다. 아니면 사람들의 의념(疑念)이 깃든 유물들도 괜찮습니다. 되도록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귀히 여겨져 온 유물일수록 좋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요?"

  "저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잘모릅니다만, 감염된 사람 수에 비례 해 필요한 양이 늘어날 겁니다. 물론 유물의 질도 영향이 있겠지요."

  이는 전생에 저 추기경을 잠식하고 있는 종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며 헌터들이 개발해낸 방법이었다.

  놈들이 개체수를 많이 늘리기 전에 발견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 내 소중한 유물들이……."

  엘리스의 어깨가 축 처진다.

  "하지만 추기경님들과 교황 성하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 다시 주먹을 꼭 쥐었다.

  "그렇지만 유물들이……."

  무수한 내적 갈등이 짧은 시간 동안 그녀를 수없이 들었다 놨다 했다.

  "……일단 시험 삼아 한 개만 만들어보도록 하죠."

  내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잠시 동안 10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얼굴로 애처롭게 나를 올려다봤다.

  "시험 삼아서요? 그러려면……."

  "예."

  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훔쳐야죠, 유물을."

  오늘 밤, 나는 바티칸 박물관을 털기로 했다.

  * * * 나는 은하그룹에서 마련해 준 안가에서 박물관을 털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장비 점검.

  "코일 건 20정 OK. 레일 건 5정 OK. 반중력 디바이스 OK, 펄스……."

  나는 [공간주머니] 속의 물품을 종류별로 꺼냈다 집어넣으며 장비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여기 있어요!"

  그다음은 침입할 곳의 상황.

  "여기가 바로 피오 클래멘티노 박물관이에요. 여기에 있는 이 유물들이랑 이걸……."

  이미 박물관에 대해 훤히 꿰고 있는 엘리스가 직접 만든 박물관 구조도.

  그녀는 박물관 어디에 무슨 유물이 있는지까지 훤히 꿰고 있을 정도로 열렬한 유물 마니아였다.

  나는 슈리의 도움을 받아 그녀가 말해주는 정보를 스캔하여 3D로 매핑하였다.

  "아마 경비들은 이쪽 이쪽 루트를 타고 순찰을 돌 겁니다. 시간은 3시 45분부터……."

  엘리스가 경비들이 순찰을 도는 코스까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이쯤 되면 유물 덕후가 아니라 유물 스토커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순찰자 정보까지 3D 매핑 앱에 완벽하게 입력했다.

  박물관이 입체적인 구조로 눈앞에 드러나자 엘리스가 와~ 하는 탄성을 터뜨렸다.

  구조도에는 엘리스가 설명한 유물들의 위치가 붉은 점으로 정확하게 찍혀 있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란 점으로 경비의 움직임까지 나타나 있었다.

  "대단하군요. 그런 건 처음 봅니다."

  "그럴 수밖에요. 개발된 지 얼마안 된 따끈따끈한 기술이거든요."

  내가 조금 자랑스럽게 말했더니 엘리스가 웃었다.

  "하지만 저희도 비슷한 게 있긴 하지요."

  이번엔 내가 놀랄 차례였다.

  "오."

  엘리스가 손바닥에 작은 글씨로 마법 문자들을 몇 개 새겨 넣었다. 그러자.

  위잉- 마치 입체 영상처럼 그녀의 손바닥에서 박물관 내부 정경이 드러났다.

  실제로 동영상을 찍은 것처럼 선명한 정경.

  "제 기억 속의 박물관을 실체화한 거예요."

  "이게 엘리스의 기억이라고요?"

  나는 경악했다.

  이게 엘리스의 기억이라면 엘리스는 눈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을 '사진 찍듯 기억한다'는 순간기억 능력자임에 분명했다.

  "네, 제가 기억력이 좀 좋아서 말 입니다."

  엘리스가 입을 가리고 미소 짓는다.

  왠지 승리에 찬 표정이었다.

  "그래요, 그럼 필요할 때 엘리스의 능력을 빌리도록 하죠."

  "얼마든지 좋습니다."

  엘리스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나는 엘리스가 마음껏 의기양양하도록 놔두었다.

  그녀는 지금, 조금 많이 의기양양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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