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99 -이름 : 엘리스 이브레아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마법적성 A], [전투 적성 B], [???]
은하그룹에서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파견한 차 속.
"저는 엘리스라고 합니다."
단정하게 앉은 백금발의 여인이 나에게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청소년기의 귀여운 인상이 조금은 남아 있는 미인이었다.
"신무결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든 애니를 바라보다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애니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도리 도리 저었다.
"아닙니다. 다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순간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더 고마워 해 달라고 해야 하는 건가?"
약간 엉뚱한 매력이 있는 여인이었다.
"어떤 의도가 있으셨길래 그런 강력한 각성자들을 상대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애니를 구해주신 건가요?"
지금은 내게 붙잡혀 은하그룹으로 이송되고 있었지만, 사실 이놈들은 나로서도 마냥 방심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각성자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놈들을 그렇게 꼭두각시처럼 부리는지.'
다시 한 번 카이란 놈에 대한 경각심이 들었다.
'어떻게든 조만간 처리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스의 대답을 들었다.
"음, 실은……."
엘리스가 말을 고르는 듯 잠시 말 끝을 흐렸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응?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제 도움이요? 애니를 구해주시면 제가 도움드릴 걸 염두에 두고 애니를 구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애니를 구해준 게 고맙긴 한데, 미안하지만 나는 이득이 안 되면 별로 움직이지 않는 타입이다.
내게 부탁하는 엘리스도 꽤나 강력한 각성자인 것 같은데, 그녀가 내게 도움을 청할 정도라면 그 부탁이라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벌써부터 부정적인 생각이 피어난다, 피어나.
"저…… 그게, 어려운 부탁이긴 하지만 당신이라면 도와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어렵게 말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반드시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지, 어려운 태도와는 달리 표정에 이상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흐음.'
저 정도로 확신하는 것을 보면 부탁이 내게 매우 쉽거나, 제시할 수 있는 보상이 좋거나 둘 중 하나인데…….
'어려운 부탁이라고 말했으니 보상이 좋은 쪽이려나?'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어디 들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떤 부탁이신가요?"
"실은…… 제가 모시는 분들을 한 번 살펴봐 주셨으면 합니다."
"살펴……봐요?"
의사도 아닌데 내가 살펴본다고 뭔가 달라지…….
'잠깐.'
내가 살펴보면 뭐가 좀 다르긴 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내게는 상대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하늘의 눈]이라는 스킬과, 전생을 경험하며 얻은 지식이 있으니까.
근데 그것을 이 여자가 알고 있을 리가 없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왜 굳이 저를 필요로 하시는 건데요?"
"그건……."
그 여자가 다시 한 번 망설인다.
"그냥 감입니다만……."
조금은 자신 없는 목소리.
살짝 내 눈치를 살피는 게 보인다.
여기에서 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이 여자도…….'
그 대답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일단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단순히 살펴보는 거라면 어렵지 않을 것 같긴 하군요."
그 말을 들은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분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바티칸……입니다."
'아.'
바티칸.
얼마 후 의문의 멸망을 당할, 현시점 최고의 마법 국가.
그녀의 부탁에서.
위험한 냄새가 났다.
"제 생각에는, 굉장히 위험한 부탁 같은데요."
내가 솔직한 생각을 말하자 그녀가 '아'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역시 그런가요."
상당히 기묘한 반응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부탁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친 거라, 그에 대해 실망한 반응 같기도 했다.
하지만 [유가선공]으로 보는 느낌 상, 그녀는 내 거절에 대해 '역시'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의 '역시 그런가요'라는 말은 '위험한 부탁 같다'는 내 말의 속뜻을 제대로 읽고, 그에 동의하는 반응인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내 대답을 듣고 바티칸의 '위험'을 확신한 것이다.
그 전까지는 그 위험에 대한 확신이 없던 반면, 내가 바티칸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대답을 함으로써 상황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그 증거로 그녀의 눈은 불안한 떨림과…… 슬픔을 담고 있었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사실 그녀의 생각대로 나는 그녀의 부탁을 웬만해서는 거절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최고의 마법사용 국가.
그것이 과학기술 분야 최고의 요람인 은하그룹에 이어 내가 필요로 하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를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여자, 오라클이야.'
애니와 같이 오직 '감'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녀의 이상하리만치 확고한 확신은 그런 그녀의 능력에서 비롯된 게 분명했다.
아마 ???로 표시된 그녀의 또 다른 능력에는, 오라클 관련 능력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가 오라클이 정말 맞다면, 바티칸에는 내가 필요한 게 맞아.'
오라클은 최선을 찾아 움직이는 자들.
그들에게 있어 지금 최선의 선택은 바로 나였다.
전생에서도 오라클 능력자인 엘리스를 보유하고 있었을 바티칸이 결국 멸망한 것을 보면…….
전생에 없던 존재, 없던 사람.
오직 나만이 그들의 멸망을 막을 가능성이 있었다.
"최근 들어 교황 성하와 추기경들 께서 예전 같지가 않으십니다."
그렇게 말을 시작한 그녀는 차근차근 자신이 느꼈던 이상한 점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바티칸을 수호하는 성당기사단의 단원입니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소위 각성자죠. 주 임무는 교황 성하와 추기경님들을 암중에서 호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그분들을 지켜볼 일이 많았죠."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요 몇 주간 던전 클리어 임무를 맡아 외부에 파견되었다가 다시 호위 임무에 복귀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본 이상한 것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별것 아닌, 사소한 징후였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추기경께서는 잠시 멍하니 하늘을 쳐다 본다든가 열심히 미사를 보시다가 잠깐 말없이 딴생각을 하신다든가. 평소에는 하지 않으실 만한 행동이었지만, 피곤하신가보다 하고 넘어 갈 수 있는 행동들이었죠. 하지만……."
그녀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 행동을 한 분만한 게 아니라 점점 다른 추기경님들도 그분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여기에서 저는 처음으로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약간 오한이 드는지 그녀는 자신의 팔을 감쌌다.
"이상함을 느낀 저는 몸을 숨긴 채 추기경님들을 더욱 자세하게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저는 성당기사단 중에서도 특수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숨어서 추기경님들을 호위하는 것이 무례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내가 오해를 할까 봐 첨언을 덧붙이는 그녀였다.
"그렇게 관찰을 시작하자 그 전에는 못 보던 광경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어떤 추기경님은 미사를 드리러 온 분들이나, 관광을 온 분들을 아주 끈끈한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이런 말씀드리면 불경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꼭 맛있는 무언가를 보는…… 그래요, 짐승의 눈빛 같았습니다. 심지어……심지어 그들을 바라볼 때, 침을 흘리는 듯했습니다."
그녀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평소 믿고 따르던 이들의 추태에 관해 말하는 게 그녀로서도 상당히 고통스러운 듯했다.
"어떤 추기경께서는 혼자 계실 때, 갑자기 자신의 팔을 들어 입으로 무셨습니다. 그것도 이빨 자국이 꽤나 많이 날 만큼요."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금세 정신을 차리신 듯 퍼뜩 고개를 들며 다시 팔소매를 내리긴 하셨지만, 저는 지금도 그때 느꼈던 충격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확실히 말을 들어보면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고백하건대, 저는 독실한 신자는 아닙니다. 교단에 봉사했던 것도 어디까지나 제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각성자가 된 다음 성당기사단에 들어가게된 것도 제가 진행해 오던 연구를 보다 편안한 위치에서 진척시키기 위해서 였죠."
그녀가 마치 고해하듯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저를 아껴주시던 분들, 믿고 지지해 주시던 분들이 이렇게 변한 것을 보며……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말을 삼켰다.
그리고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무결 님을 찾아온 거예요."
중간 과정이 쏙 빠진 도약이었지만, 대충 전말은 알 수 있었다.
'감'으로 자신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풀 차례였는데,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조금 곤란한 거겠지.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배려를 못해줄 것도 없는 부분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군요. 대충 알았습니다."
"그럼……?"
"일단 결정은, 은하그룹에 돌아가서 하겠습니다. 상의할 사람도 있고 해서요."
"아…… 네. 알겠습니다."
엘리스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그룹에 도착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애니야!!"
은하수가 헐레벌떡 애니를 찾으며 뛰어나왔다.
나는 아직 잠에 빠져 있는 애니의 귀를 마력으로 막아주며, 은하수에게 주의를 줬다.
은하수가 헙하며 입을 막는 게 보였다.
"언제 그렇게 친해지셨대?"
"그게, 네 부탁 때문에 한동안 연구실에도 데리고 다녔잖아. 그때 많이 친해졌지. 어휴, 내가 저 녀석 납치되고 얼마나 잠을 설쳤는지."
아닌 게 아니라 은하수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와 있었다.
"형, 일단 들어가자. 할 얘기가 있어."
"그렇지! 너 던전 다녀온 것도 얼른 얘기하고!"
은하수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 내게 들러붙어 왔다.
아까는 미처 애니 납치 사건 때문에 얘기할 시간이 없었지만, 내가 [베히모스의 꿈] 던전에 다녀온 것은 사실은 하수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래그래, 일단 들어가자고."
은하수는 신이 나서 나와 함께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은하수는 그날 내게 많은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