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96
"……뭘 나타내고자 한 거지? 교회랑 뭔가 관계된 걸까?"
"글쎄…… 근데 이거 여기 사람하고 십자가하고 뭔가 연결돼 있네?"
"어, 정말."
그렇게 나와 은하수가 그림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의미 없게 켜져 있던 TV에서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응?'
나는 잠깐 멈칫했다.
"하수 형, 방금 TV에서 지나간 장면 다시 볼 수 있어?"
"잠깐만."
은하수가 TV 리모컨을 조작해 화면을 되돌려 주었다.
"스톱."
내가 신호하자 은하수가 화면을 멈추었다.
"형, 이 화면, 두 번째 페이지 그림이랑 비슷하지 않아?"
나는 애니의 그림일기장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길-쭉한 동그라미 하나와 그 주변을 멋대로 장식한 색색깔의 세모와 네모들.
"아하하, 에이, 설마~"
은하수가 손을 저으며 도리질을 했다.
나는 은하수에게 리모콘을 넘겨받고, 화면을 약간 조정했다.
"여기다. 이 부분 잘 봐봐. 색 배열도 은근 비슷해."
내가 다시 한 번 은하수에게 그림을 들이밀어 보았다.
은하수가 다시 한 번 그림과 화면을 번갈아 자세히 살폈다.
"……어?"
그러면서 실시간으로 눈이 커져 갔다.
"그렇지? 다른 그림들을 봤을 때, 애니가 그림은 못 그려도 색은 정확하게 칠했잖아."
"…… 진짜네? 색이 완전 똑같아."
TV 화면에는 동그랗고 거대한 원에, 색색깔의 네모가 잔뜩 달려 있고, 중심부로 이어지는 세모……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구조물.
'슈리, 넌 어떻게 생각해?'
[……일치을 5.4%. 저에게 인간의 그림에 대해 묻지 말아주십시오.]
슈리의 우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확신이 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당장 출발해야겠어. 월미도로."
"그래, 나도 지원 병력 당장 출동시킬게."
그렇게 나는 애니가 남긴 힌트를 타고 출발했다.
TV에서 나오고 있는 장면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물든 월미도의 대관람차였다.
* * *
"……송애니 그 꼬맹이를, 아직 못 찾았다고?"
수조 안에 담겨 있는 인간의 뇌에 손을 얹고 있는 한 남자가, 짜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목소리로 으르렁 거렸다.
"……대체 며칠이나 꼬맹이 하나 제대로 못 찾아서 그 난리인 거냐?"
독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남자는 분명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도 월미도에 있다고 하잖아!!"
남자가 짜증에 가득 찬 포효를 내 질렀다.
주위 공기가 혹 밀려날 정도로 엄청난 마력폭풍이 일었다.
뇌의 고통 그래프가 치솟았다가 낮아졌다.
"후우."
남자가 성질을 가라앉히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알았다, 기다려라. 나도 스케줄이 하나 끝났으니 거기로 가도록 하지."
그로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후우, 그래, 오러클의 뇌라면 움직 일 가치가 있지."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가자, 암괴."
"예."
남자가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무결이 월미도로 출발하기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 * * 부르르…….
바이크가 멈춰 섰다.
"도착했군."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월미도에 도착했다.
월미도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바글바글.
외국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몬스터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세상 이었지만 아직까지 서울 근교는 안전한 편이었기 때문에, 아니, 사실 세계에서 서울 근교만큼 안전한 곳을 찾기 힘들었던 만큼 평소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세상 근심 걱정을 잊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마음은 평화시나 몬스터가 나타난 세상에서나 똑같았다. 나는 바이크를 세워놓고 저 멀리보이는 대관람차를 찾아갔다.
"헤이, 선글라스! 선글라스 아메리칸! 여자친구 있어요?"
월미도의 유명한 놀이기구, 디스코 팡팡의 DJ 목소리가 들려왔다.
"없어요? 반대쪽에 앉으신 여성분 이랑 만나시면 되겠네! 만나게 해드릴게요!"
미가 외국인을 신나게 흔들어댔다.
나는 그 외국인을 일별하고 지나쳤다.
금발을 한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머릿속에 담고 있었는데, 애니가 남긴 그림 '하얀 빛'과 관련된 금발인이 이 중에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사람은 머리가 좀 길어 보이긴 했지만, 그게 애니의 그림인 이상 정말 머리가 긴 사람을 그린 건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마침내 대관람차를 눈앞에 두었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으나, 겉으로 살펴보기에는 특별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뭘 하라는 거냐, 애니야.'
나는 일단 대관람차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자, 표를 끊어 대관람차에 탑승했다.
대관람차는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 했다.
저 멀리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꽤나 대규모의 불꽃놀이여서 하늘이 환한 빛으로 점점이 물들었다.
펑- 펑- 불꽃 터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나는 잠깐 그 광경을 보다가, 밤이 되었음에도 개미처럼 바글바글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비록 사위가 깜깜했지만 밝은 조명등과 상승된 시력 덕택에 사람들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역시 별다른 특이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탄 대관람차의 좌석이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였다.
펑- 또 다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미미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나는 마력 파동이 느껴진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저기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못 보았겠지만, 관람차 꼭대기에 있던 나는 볼 수 있었다.
나무들로 울창한 공원 한쪽에서 아주 잠깐 번쩍인 새하얀 마력의 빛을.
'이래서 대관람차로 오라고 한 거 였군.'
나도 지상에 있었더라면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력의 파동 덕에 대략적인 방향은 파악할 수 있있겠지만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는 것과 방향만 아는 것은 천지 차이.
나는 곧바로 대관람차의 문을 열어 젖히고 뛰어내렸다.
"꺄악!"
"각성자다!!"
사람들의 비명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목적 장소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얼마 안 있어 그 장소에 도착했지만, 남은 거라고는 땅이 뒤집히고 나무가 부러진 전투의 흔적뿐, 사람은 없었다.
나는 전투 흔적을 살폈다.
'여러 명이 공격한 흔적. 방어한 자는 마법을 썼군.'
공격의 흔적은 CCTV에서 보았던 침입자들의 스킬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였다.
반면 방어의 흔적은 처음 보는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마법이야. 그것도 지금으로서는 꽤 고위의 마법. 시전자를 포함한 다른 누군가를 함께 지키기 위한 마법이 펼쳐졌어.'
그리고 나는 그 지켜지는 사람이 있던 자리에서 족적(足跡)을 발견했다.
'슈리, 이 발자국, 애니의 신발 아니야?'
[……일치율 99.7%. 송애니 양의 족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역시.'
애니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도움 덕에 무사히 도망다닌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하지만…… 붙잡혔어.'
강력한 스킬에 의해 애니를 지켜주던 인물의 방어막이 한 방에 날아갔다.
그놈이 분명했다 CCTV에서 뒷짐 지고 있던 가장 강해 보이던 놈.
그전에는 못 보았던 강력한 스킬의 흔적이 녀석이 움직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녀석에 의해방어가 무력화된 애니의 조력자는 결국 애니와 함께 녀석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그리고 끌려간 흔적은…….
'저쪽이야.'
도보를 따라 이동했지만 격한 전투 로 발바닥에 묻은 흙이 미세하게 공원 도로에 묻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움직인 흔적을 따라 달렸다.
'……젠장.'
흔적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결국 끊겨 버렸다.
흔적이 끊긴 이곳은 부듯가로, 사람이 비교적 적은 곳이긴 했지만 그래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이대로라면 점점 더 잡기 어려워 질 텐데.'
슬슬 애니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추적 장치만 제대로 달려 있었더라도.'
인형 티버와 애니의 옷에 장거리 추적 장치를 붙여놨지만, 달리다 떨어진 건지 놈들이 떼어낸 건지 은하 그룹 인근에서 추적기만 덜렁 발견 되었다.
나는 갑갑한 심정으로 주위를 돌아 다니는 사람들을 살폈다.
'슈리, 수상한 사람들 있으면 바로 알려줘.'
[네, 마스터.]
연인 한 쌍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바닷바람 쐬러 온 일가족들과 혼자서 밤바다의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창고가 근처인지 작업복 입은 인부들도 보였고, 화물차들이 종종 눈앞을 지나갔다.
[하늘의 눈]은 발동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 의심되는 몇몇을 우선으로 살펴보고 있었지만, 수상한 사람은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탐색을 계속 해 나갔다.
탐색하던 시야를 막으며, 화물차 한 대가 지나갔다.
담배를 피우는 운전자가 밖으로 타 다만 담배를 툭 내던진다.
그런데.
'응?'
왠지 모를 기시감이 스쳐 지나갔다.
당장 [하늘의 눈]을 발동시켜,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름 : 진 웨이슈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광학은신(光뿌隱身)]
'……찾았다!'
저 녀석, 은하그룹에 침입했던 놈 중 하나였다.
나는 트럭을 부수기에 앞서 마력을 넓게 퍼뜨려 트럭 내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트럭 내부에서 애니의 마력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콰앙!!
차 뒷문이 부서지며 세 사람이 튀어나왔다.
셋 다 낯이 익은 녀석들이었다.
무인과 마법사, 그리고 뒷짐 지고 있던, 가장 강력할 걸로 예상되는 녀석.
"네놈, 뭔데 우릴 탐색한 거지?"
중국어로 지껄이는 녀석의 말이 그대로 통역되어 들려왔다.
마력 감지력이 좋은 녀석이었다.
'내가 마력으로 탐색하고 있다는 것을 저 녀석들이 못 알아챘다면, 내 기습으로 한순간에 상황이 끝났을 텐데.'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하늘의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