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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95 (95/215)

  기계신과 함께 095

  "시, 신 헌터님! 소, 속도가……."

  도 비서가 덜덜 떨며 속도계를 가리켰다.

  "걱정 마세요. 사고 안 납니다."

  나는 힐끗 눈금 300을 넘어서고 있는 속도계를 바라보고는, 도 비서를 안심시켰다(?).

  300km/h라 말하면 별로 감이 안올지도 모르는데, 보통 운전자들은 100km/h의 속도도 긴장하며 운전한다.

  자칫 삐끗하면 황천길 가는 속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100km/h로 달리는 차를 100km/h로 주월하는 차를 또 다시 100km/h의 속도로 추월하는 속도이니, 도 비서가 공포에 질려 이를 딱딱거리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 비서님, 창밖은 신경 쓰지 마시고 보고 계속해 주세요."

  "네, 네!"

  도 비서는 여전히 덜덜 떨면서도 직업정신을 발휘해 보고를 계속했다.

  "그중 은신 계열은 중국계…… 남 외……"

  그런데.

  '응?'

  [배틀 센스]마저 발동해 운전 중인 나는 차의 경로에 돌멩이가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밟고 지나갔겠지만 지금은 시속 300킬로미터.

  저런 작은 장애물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이쿠, 이런. 웬 돌멩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디바이스 컨트롤]로 차를 작게 '점프'시켰다.

  차체가 살짝 허공을 날아 돌멩이를 지나쳤다.

  그렇게 돌멩이를 지나치고 나니 보고를 이어가던 도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백미러를 돌아보니 그가 거품 물기 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바, 방금 차, 차가 날았어……?"

  "차가 날듯이 빠르긴 하죠."

  나는 시치미를 떼었다.

  정말 날았다고 했다간 기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 돌멩이라고 하신 건……?"

  "잘못 들으신 겁니다."

  "……."

  "……."

  도 비서가 침묵했다.

  '이런, 내 선의의 거짓말을 눈치챘나?'

  나는 슬쩍 도 비서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데 도 비서가 백미러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어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도 비서님?"

  내가 불러보았지만 도 비서는 계속 해서 침묵을 이어갔다.

  "도 비서님? 도 비서님?"

  몇 번을 부르자, 대답이 들려왔다.

  슈리에게서.

  [기절했습니다.]

  "……그 철두철미한 도 비서에게 이런 나약한 면이 있을 줄이야. 쯧쯧."

  [그러게요. 사람이 보기보다 약하네요.]

  "그래도 중요한 건 다 들었으니까, 자게 내버려 둬도 되겠지."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손가락질할 만한 대화를 하며, 우리는 계속해서 도로 위를 질주했다.

  * * *

  "미안."

  은하수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사과한다.

  "아니, 형은 어쩔 수 없었지. A급 다섯 명을 형이 어떻게 막아?"

  현재 우리나라 전체를 뒤져도 A급 각성자는 30명이 채 안 된다.

  그런 A급 각성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5명이나 몰려왔다.

  은하그룹에서 막을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오래 시간을 끈 게 용하지."

  은하그룹은 다섯 각성자의 침입 사실을 발견한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 녀석들의 전진을 막았다.

  각종 자동화 공격 기기가 녀석들의 발을 묶을 동안 고용된 헌터들이 나서서 녀석들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생포는 커녕 한 놈을 죽일 수조차 없었다.

  A급이란 그런 놈들이었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CCTV도 거의 다 무력화돼서 건진 건 이 영상뿐이야. 녀석들을 추적한 드론들도 전부 놈들에 의해 망가졌고, 근처 CCTV를 조회해 봐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렇게 말하며 은하수가 건네준 영상은 당시 애니가 머물던 숙소를 멀리서 촬영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세 명의 헌터가 거대한 곰인형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저 곰인형은 티버……!'

  저 곰인형의 이름은 [곰돌이 가방 티버]였다.

  어떤 팔불출 마법사가 자식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을 거라 추측되는 가방으로, 헌터스 마켓에서 구입해 애니에게 선물한 곰돌이 가방이었다.

  주인이 위급할 시에 '화가 난 티버 모드'를 발동한다고 했는데, 저게 그 '화가 난 티버 모드'임에 분명했다.

  곰돌이 인형은 성인 두 배가 넘어서는 덩치를 하고서는 다른 각성자들도 쫓아가기 힘들어하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그리고- 콰앙!

  오러 피스트(Aura fist)를 내뿜었다.

  각성자 한 명이 피를 토하며 날아 가는 것이 보였다.

  "……."

  나는 황당함에 말을 잃었다.

  오러 피스트란, 말하자면 주먹으로 기(氣)를 내뿜는 초절기예였다. 검사에게 검기(劍氣)가 있다면 권사에게는 이 오러 피스트, 즉 권기 (聲氣)가 있었다.

  하지만 권기는 기술적으로 검기보다 훨씬 어려운 기예였다.

  기본적으로 파괴를 주목적으로 하는 기공무예는 몸에 흐르는 기(氣)를 파괴적으로 가공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컨트롤을 놓쳐도 자기 자신을 해하는 무기가 되고는 한다.

  검사가 처음 검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검에 검기를 주입하다가 검이 깨지는 것은 꽤나 흔한 일이다.

  정련되지 못한 기가 검을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이 기를 주먹에 형성하다 실패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한 인간의 육신은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오러 피스트를 사용 하는 권사, 혹은 무투사는 검사보다 훨씬 희귀했다.

  마력, 즉 기(氣)라는 것은 그것을 컨트롤할 때 극도의 주의를 요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흐트러진다면 그것이 담긴 그릇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검에 검기를 형성하는 경우, 자칫 잘못했다간 검이 폭발한다.

  그런데 만약 주먹에 기를 주입하다가 실패한다면?

  피떡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권기, 즉 오러 피스트를 형성하는 권사가 검사보다 희귀한 이유였다.

  그런데 그 희귀하다는 오러 피스트를 쓰는 권사가 지금 곰인형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런 제길!

  비전투원이라 추측되는 동료 한 명이 중태를 입자, 중국이 한 명이 욕을 했다.

  중국어가 귀에 꽂은 통역기를 통해 고스란히 번역되어 들려왔다.

  욕을 한 자는 무인이었는지 검기를 두르며 곰인형에게 돌진해 갔다.

  곰돌이 인형은 그것을 오러 피스트를 두른 한 손으로 막은 뒤- 펑!

  다른 한 손에도 오러 피스트를 둘러 그 각성자를 후려쳤다.

  무인인 각성자가 급히 검으로 그것을 막으며 물러났다.

  '저것이 바로 기를 형상화하는데 성공한 권사가 검사보다 강한 이유.'

  검에서만 기를 쁨을 수 있는 검사에 비해 몸 어디에서든 오러를 뽑아 낼 수 있는 권사가 강한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경지쯤 되면 검과 인간의 육신이 갖는 강도의 차이마저 사라진 상황이니까.

  저 곰인형을 [하늘의 눈]으로 바라 보고 싶다는 갈증이 일었다.

  저게 '레어' 등급의 아이템에서 나을 수 있는 위력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 속 존재는 [하늘의 눈]으로 봐봤자 정보가 뜨지 않았다.

  '화가 난 티버'는 전혀 화가 난 것 같지 않은 절도 있고 유려한 동작으로 시종일관 다섯 명의 각성자, 아니, 전투에 나선 두 명의 각성자를 몰아붙였다.

  '으음, 저 녀석은 왜 안 나서는 거지?'

  다른 둘이야 비전투원이니 그렇다치고, 나머지 한 녀석은 꽤 강해 뵈는데도 방관만 할 뿐이었다.

  '급할 거 없다는 태도네.'

  녀석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저 싸움에는 아직 안 끼어도 될 것 같다는 강자의 여유가.

  그리고 나는 곧 그 녀석이 왜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지 알게 되었다.

  곰인형의 움직임이 갈수록 느려지고 있었다.

  '축적된 에너지가 많지 않구나.'

  하긴, 저런 무위를 계속 보일 수 있다면 레어가 아니라 유니크 등급이어야 할 것이다.

  티버는 갈수록 움직임이 느려지다 가, 곧 녀석과 전투를 치르던 두 각성자에 의해 제압되었다.

  각성자들이 곰돌이 인형을 가르고 그 속에서 애니를 꺼낸 후 데려가는 게 보였다.

  나는 화면을 끄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번쩍- 일순 새하얀 빛이 화면을 가로질렀다.

  "이게 뭐야?"

  내가 은하수에게 물었지만 은하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뭔지 파악은 못했어. 녀석들이 능력을 쓰며 일어난 현상 아닐까?"

  "흐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하수가 내미는 다른 것을 받아 들었다.

  "이건 애니의 그림 일기장이야."

  나는 그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딱 펼쳐 든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저씨가 내가 아저찌라고 한다고 맨날 놀린다. 그래서 맨날아저씨라고 연습하고 있다!

  어린아이치고 꽤나 또박또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나야?"

  그 괴물체가 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글의 내용 덕분이었다.

  애니는 글과는 달리 그림 실력은 형편없는 모양이었다.

  [……일치율 7.6%. 그림의 어디가 마스터와 닮았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 그림이 나라는 사실을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여길 봐야 돼."

  은하수가 손으로 그림 일기장을 넘겼다.

  "이 마지막 세 페이지가 애니가 실종되기 전에 남겨놓은 거야."

  과연 애니가 남겨놓은 세 페이지는 다른 페이지들과 달리 날짜도 안 적혀 있었고, 글도 그다지 길게 적혀 있지 않았다.

  그림도 급하게 그린 티가 났다.

  그래도 앞에 그린 것들과 별로 다를 건 없었지만.

  "이건 사람 같지?"

  맨 처음 페이지에는 금발머리를 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로는 단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하얀 빛 '하얀 빛?'

  이 글자를 보는 순간, 방금 화면에서 보았던 새하얀 섬광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섬광의 주인이 이 인물이라는 걸까?'

  나는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이건 도저히 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커다란 동그라미 하나와 네모세모의 도형들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어지럽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와주세요!

  쓰여 있는 글귀를 보니 어떤 장소와 연관된 그림인 듯했다.

  '……나도 이게 어디를 나타내는지만 알면 바로 찾아갈 거다.'

  나는 고생하고 있을 애니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애니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니의 진정한 능력은 '생존'에 있었으니까.

  마지막 페이지를 펴봤다.

  "이것 역시 사람을 그린 것 같은데……."

  사람 옆에는 마치 십자가처럼 생긴 게 그려져 있었다.

  십자가는 거의 사람만큼 커다란 크기였는데, 특이한 것은 그 십자가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별표로 강조 표시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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