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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92 번쩍- 강하나는 달려가다 뒤를 돌아보았다. (92/215)

  기계신과 함께 092 번쩍- 강하나는 달려가다 뒤를 돌아보았다.

  어마어마한 빛이 뒤쪽 화산지대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화산에 막혀 빛을 정면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력한 빛이었다.

  강하나는 본능적으로 강력한 물의 방어막을 전개하며 뒤를 가렸다.

  그리고 이어 자신들을 덮칠 열기와 후폭풍을 대비했다.

  이 정도의 빛이라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폭발이 일었다는 뜻이었으니까.

  역시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온몸이 익을 것 같은 열기와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폭음이 온몸을 때리……는 듯했으나.

  슈우욱- 빛과 열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무슨 일이지? 설마 폭발이 아니었나?'

  그녀의 눈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아니, 그건 아니야. 분명 열기가 있었어. 근데 갑자기 사라진 거야. 왜…….'

  그녀는 궁금해하다가 문득한 사람에 생각이 미쳤다.

  "무결 씨!!"

  그녀가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이제야 그가 하려던 짓이 뭐였는지 짐작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소리쳤음에도 신무결로부터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자폭할 계획이었군요.'

  잠깐이라도 저토록 어마어마한 폭발의 중심지에 있었다면 무사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당신이라면…….'

  그래도 신무결이라면, 그가 이제까지 보여줬던 엄청난 능력이라면 지금 저 상황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아 다시 얼굴을 보여줄 것 같았다.

  '꼭…… 돌아오세요.'

  강하나는 그가 다만 아까 말했던 대로 무사히 살아 돌아오길 빌며, 일행을 추슬렀다.

  * * * 어스 팽귄의 도움으로 땅속에 재빨리 몸을 묻었음에도, 핵폭발의 무지막지한 빛과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끄윽."

  눈앞에 새하얘졌다.

  [유가선공]으로 뽑아낸 선천진기가 총동원되어 몸으로 침투하려는 열기와 맞서 싸웠다.

  온몸을 빈틈없이 둘러싼 블랙미슈릴 슈트조차 쏟아지는 열기를 이겨 내지 못하고 표면 일부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결국 열기가 몸에 까지 스며들었다.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끄으읍."

  몸이 열과 방사선으로 인해 붕괴되기 시작했다.

  -무결 씨!!

  무전으로 강하나의 목소리가 들려 왔지만,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모든 정신을 방어와 치유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가선공]의 내기가 몸을 재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기는 더욱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채 2초도 지나기 전에 몸이 붕괴될 것이다.

  나는 이 지옥 같은 고통의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어떻게든 이 순간을 견디고 견뎌, 실낱같은 생의 동아줄을 잡아채길 원했다.

  '나는…… 죽지 않아!!'

  죽음의 순간에서도, 삶을 갈구했다.

  끝까지 생을 놓지 않는 처절함 속에서…….

  반짝.

  기적이 일어났다.

  품속에서 황금빛과 에메랄드빛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어머, 역시 너였구나."

  속삭이는 듯한, 어쩌면 환청 같기도 한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이고 지나갔다.

  "니케의 나뭇가지…….덕분에……."

  뭐라 이어지는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을 떠올려……."

  목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끝말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특별 했던 기억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잊고 있던 중요한 약속이 퍼뜩 떠오르듯, 그 기억은 섬광처럼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직감, '직관', 혹은 '영감'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감각이 아우성쳤다. 발견한 것이다.

  이 순간을 헤쳐 나갈 방법을!

  모든 정보와 논리적 추론 과정을 뛰어넘어, 내 속의 모든 것이 한가 지 광경을 재현해 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열기로 불타오르는 내 손이 스르르 움직여, 내 목에 달려 있는, 찬란한 에메랄드빛을 뿌려대고 있는 펜던트를 집어 들었다.

  풀빛을 닮은 아름다운 날개 문양의 펜던트가, 내 손에서 빛나고 있었다. 슈리가 들어 있는 목걸이.

  그 빛나는 펜던트를 보자마자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에메랄드의 서……!'

  그 순간, 내 마음속 중얼거림올 들은 슈리가 묻는다.

  [에메랄드의 서 발동에 필요한 충분한 에너지가 감지되었습니다. 개방하시겠습니까?]

  '어! 지금 당장.'

  내 대답과 동시에, 주변을 둘러싼 막대한 빛과 열 에너지가 펜던트 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 무시무시한 속도.

  일시적으로 주변이 에너지 진공상태에 빠져 버렸다.

  온몸이 빠르게 식어가며, 붕괴되었던 세포들이 급속도로 재생된다.

  주변의 모든 에너지가 펜던트 속으로 스며들기까지는, 그야말로 '찰나(刺邪)'.

  핵폭발로 인한 모든 빛과 열기가 꿈이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온 세상이 멈추어 버렸다.

  […… 에너지 흡수 완료. 에메랄드의 서가 개방되었습니다. 현재 에너지로 개방 가능한 단계는 1단계입니다. 에너지가 모두 소모되면 에메랄드의 서는 자동으로 발동이 종료됨니다.]

  펜던트로부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눈을 뜬 나는 눈앞에 펼쳐진 황홀경에 넋을 잃었다.

  내 몸이 초록색의 공간에 한가운데 둥둥 떠 있었다.

  몇 평안 되어 보이는 초록의 공간 속에는 금색의 문양, 아니, 글자가 공간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이 광경, 어디서…….'

  순간 기시감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 어디서 본 듯한…….

  나는 의문을 가지는 순간 그 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그래…….'

  떠올랐다.

  '회귀 직전에…….'

  이 광경, 기계룡과 자폭할 때, 하얀 섬광에 휘말릴 때 언뜻 본 광경과 같았다.

  내가 재현하려던, 그리고 지금 재현해낸 광경은 바로 그때의 광경이었다.

  그때도 분명 기계룡과 자폭하며 생긴 에너지가 목걸이 속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기억.

  그때의 기억이 살아나자마자 내 영혼은 그게 '정답'임을 직감하고 나를 다시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나는 당시 이 공간에서 한 가지 지식을 얻어내었다.

  무슨 지식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근거 없는 확신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회귀에 대한 단서.'

  여기에서 얻은 회귀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금 이 시대로 되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한 가지는 분명해.'

  여기에서 얻은 지식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면 깨끗하게 잊어버린다는 것.

  회귀에 대한 지식도 그래서 잊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대신.'

  이곳에는 무한한 지식, 세계의 모든 비밀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회귀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내게 필요한 지식을 얻어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사방에서 떠돌던 금빛의 글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한 수많은 금빛의 글자들이 아무 것도 없던 초록빛 공간에서 무더기로 생성되었다.

  글자들이 더욱 많이 만들어질수록, 움직이는 속도 또한 빨라져 갔다.

  사방에서 생성되는 금빛 글자들이 마치 수챗구멍에 빨려드는 물처럼 휘몰아치며 내 몸속으로 빨려들었다.

  새로운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샘솟아났다.

  나조차도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수준의 기술이 머릿속에서 이론적으로 재구성되어 갔다.

  주륵.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은은한 열감으로 온몸이 달뜬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정보량을 받아 들이는 내 머리가 과부하가 걸리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고 황홀한 '앎'의 시간.

  그리고.

  '알았다……!'

  마침내 머릿속에 한 기계의 도면이, 그 모든 작동 원리가 정확하게 입력되었다.

  [아르카시아의 공간주머니]

  속에서 수많은 아이템들이 빠져나와 저절로 움직였다.

  아직 쿨타임인 [기계변환]이 어째서인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템이 해체되고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더러는 해체된 파편의 일부가, 더러는 전체가 움직여 새로이 만들어지는 아이템의 파츠를 이루어갔다.

  [모든 에너지가 소모되었습니다.]

  슈리의 목소리와 함께, 나를 감싼 기적이 사그라들었다.

  금빛 글자와 초록빛 세상이 다시 펜던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비 내리는 어둠이 다시 내 주변을 장악했다.

  그리고 멈춰 있던 현실이, 제 속도를 되찾았다.

  갑작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현실이 들이 닥쳤다.

  방금 있었던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내 손에 완성되어 들려 있는 이 아이템이, 마치 올림픽 성화 봉을 네 배정도로 확대한 것 같은 모양의 이 기계가 그것이 꿈이 아니었단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아이템에서 레비아탄에게로 옮겼다.

  눈앞에는 레비아탄이, 몸의 일부가 사라진 모습으로 떠 있었다.

  핵폭발에 의해 얼굴을 비롯한 몸의 일부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날아가 버린 몸의 단면에서 경악스러운 속도로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소울 스톤은 손상을 입지 않았나 보군.'

  애초에 엄청난 양의 얼음으로 몸을 감싸고 있던데다, 슈리가 '에메랄드의 서'라 부른 이 목걸이가 폭발 에너지의 대부분을 흡수한 덕에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레비아탄의 거대한 눈이 다시 나를 향했다.

  녀석과 나는 동시에 움직였다.

  레비아탄이 거대한 얼음 무더기를 만들어 내게 내리꽂는 순간,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아이템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내가 손에 든, 올림픽 성화봉처럼 생긴 거대한 막대기의 끝에서, 거대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순식간에 하늘의 구름을 뚫고 솟아올랐다.

  그리고 솟아 오른 형상 그대로 내 손끝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그것은, 빛으로 된 거대한 검이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빛의 검.

  내가 그 검으로 만들어낸 동작은 단순했다.

  나는 이미 내 머리 위의 하늘을 뚫고 올라가 있는 그 검을, 그대로 앞으로 내리그었다.

  레비아탄의 두 눈이 경악과 공포로 물들었다.

  소리 없이.

  거대한 빛의 궤적을 따라.

  구름이.

  산이.

  그리고 레비아탄이.

  자신의 소울 스톤과 함께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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