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91 '슈리, 고유 파동기억해 놔.'
[네, 마스터. 고유 식별 파동, 기억 완료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녀석의 심장의 위치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레일 건을 꺼내 든 나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기계 변환].
공간주머니에서 튀어나온 파편들이 기계들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동안 다른 안배가 완성되었다.
츠르르- 사방에서 내리던 빗방울들이 잦아 들었다.
레비아탄의 신경을 끄는 사이, 어스 팽귄들이 일으킨 흙의 막이 하늘을 온전히 메워버린 것이다.
구우우웅-- 레비아탄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물의 권능]을 통해 하늘을 유영하는 것은, 비가 내릴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능력.
퍼붓던 비가 멈추자 녀석이 공중에서부터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떨어져 내리던 빗물로 구성되던 녀석의 방어막 또한 급속하게 출링거리며 엷어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기계변환]이 완성되었다.
내 키의 네 배쯤 되는 기다란 길이와 내 키쯤 되는 두께를 가진 총신.
평범한 인간이라면 성인 남성 열 명이 짊어져도 들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대물저격총이 완성되었다. 총의 이름은 [몬스터 드라이브].
후일 레비아탄과 베히모스급의 몬스터를 잡기 위해 고안될 거대 저격 총.
인간이 들기 위해 발명된 물건이 아니었지만, 저놈의 두꺼운 피부를 뚫고 소울 스톤을 저격하기 위해선 이것만한 게 없었다.
그리고 화룡점정.
[몬스터 드라이브]에 베히모스의 소울 스톤이 장착되며, 총신이 붉은 빛으로 작열하기 시작했다.
꾸드드득- 팔근육 전체가 수축되며 총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폭발저긴 마력이 뿜어져 나오다가 응집되었다.
꾸우우우웅- 레비아탄이 추락하는 와증에 비명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나는 녀석의 몸속을 떠도는 소울 스톤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아앙-- 저격총의 총구가 폭탄 터지듯이 불을 뿜었다.
"커억."
온몸에 내공을 둘러 충격에 대비했음에도, 몸이 박살 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총에서 튕겨져 나와 허공 한 쪽으로 날아갔다.
하늘을 날아가며, 던전에서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비록 몸은 고통스러웠지만 정신은 후련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해,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최강의 일격을 날렸다.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하는 가정 따위 하지 않았다.
무조건 성공할 것이다.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
그런데 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일까?
갑작스레 등장한 아라크네의 모습이.
기록과는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추웠던 제2스테이지의 온도가.
우리를 상대하는데 있어 어딘지 한결 여유로운 것 같던 레비아탄의 모습이.
콰아아아앙-- 붉은 혜성 같은 잔상을 남기며 날아간 총탄이 레비아탄의 몸을 뚫고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촤아아아아- 그리고 힘을 잃고 떨어져 내린 레비아탄의 몸이 호수 물 속에 잠겨들며 해일과 같은 파도가 일었다.
나는 튕겨져 나가던 몸을 수습해 세 산 중 강하나와 가장 먼 산의 정상 부근에 내려섰다.
-무결 씨, 해냈나요?
강하나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슈리, 레비아탄의 소울 스톤은? 파괴됐나?'
[아직 모릅니다. 총탄에 담긴 소울 스톤의 힘이 터져 나와 측정을 방해 하고 있습니다.]
나는 강하나에게 아직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며 초조하게 호수 속을 바라보았다.
강하나 일행도 궁금한 듯 한껏 집중한 채 호수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쩌적, 쩌적.
호수 중앙에서부터 얼음이 번져갔다.
레비아탄이 빠진 곳이었다.
"모두……"
나는 이를 악물며, 신음처럼 중얼 거렸다.
-네?
강하나가 되묻는 소리.
나는 그대로 외쳤다.
"모두 호수에서 물러나요!!"
촤아악!
호수에서부터 뾰족한 얼음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그 기둥은 하늘을 뚫을 기세로 날아가, 실제로 하늘을 뒤덮고 있던 흙의 장막을 뚫고 나가 버렸다.
뚫린 흙의 장막에서 빗물이 쏟아져 내렸다.
쏟아져 내리던 빗물이 호수에 다다르기 전, 천천히 얼어붙었다.
그리고 다시 하늘로 되돌아 날아갔다.
촤촤촤촤촤- 호수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얼음기둥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 모든 기둥들이 솟구치며 하늘을 막은 흙의 장막들을 커튼 찢듯 찢어 발겼다.
쏴아아악- 하늘에서 절망이 쏟아져 내린다.
기분 탓인지 내리는 비의 양이 아까보다 많은 것 같다.
-아…….
모두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촤아아- 호수를 가르며 거대한 동체가 다시 그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야디하얀 얼음을 갑옷처럼 그 거대한 몸 전체에 둘둘 두른 이 던전의 왕.
레비아탄이었다.
녀석의 눈동자가 호선을 그렸다.
-이럴 줄은 몰랐겠지?
그 눈동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다 잡은 토끼를 먹기 전에 가지고 논 포식자처럼, 레비아탄은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스멀스멀 절망이 피어올랐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강한 거지?'
레비아탄이 떠오르며, 동시에 호수의 물도 얼음이 되어 함께 떠오르고 있었다.
데이터베이스의 기록에는 전혀 없던 현상.
녀석이 [냉기 브레스]와 [물의 권능]으로 간간이 얼음을 만들어냈다는 기록은 있었다.
그러나 저렇게 대규모로 얼음을 다룰 수 있다는 얘기는, 전혀 없었다.
어느새 하늘을 가리고 있던 흙의 장막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없었다.
얼음조각들에 의해 말끔하게 치워진 것이다.
그리고 새하얀 얼음폭풍이 녀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들이 얼음이 되어 마치 암기처럼 비산했다.
그중 대부분이 내 쪽으로 날아왔고, 나머지는 드레이크들을 지휘하는 강하나, 그리고 멀리서 고르곤들을 지휘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구자운을 향했다.
암기 같은 얼음과 기둥 같은 얼음 들이 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와서 박혔다.
-꺄악!!
-소유야!!
무전기로부터 강하나 일행의 난리가 전해져 왔다.
-제길, 천 실장님, 소유 치유해 주세요! 모두 내 뒤로 모여!!
강하나의 비명과 같은 명령.
-젠장, 방어선 뚫렸다! 조금 있으면 몬스터들이 그쪽으로 들이닥칠거야!
구자운의 다급한 전언.
저 멀리서 구자운이 막지 못한 몬스터들이 강하나 일행 쪽으로 돌진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산을 달려 내려가면서 레비아탄 쪽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얼음에 둘러싸인 채로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녀석과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날 바라보는 놈의 눈가가 반달처럼 휘었다.
웃고 있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좋지?"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장난감들이 발악하는 게 재밌나? 네 눈에는 우리가 개미처럼 보이지?"
꿈틀거리는 개미들 위에 물을 붓는 것처럼 우리를 가지고 놀려는 녀석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더더욱 열이 받았다.
나는 그런 놈의 모습을 보며, 결정을 내렸다.
"개미가 죽음을 각오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 한번 봐라."
나는 품속에서 핵 연료구슬을 꺼냈다.
"이거 잘못하면 방사능이 무지막지하게 나오니까, 웬만하면 쓰지 마. 어쩌면 핵반응이 일어나서 다 뒤지는 수도 있고."
은하수가 이 구슬을 주며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엔 이 방법을 쓰게 되는구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최후까지 이 방법만은 쓰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제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모두 전속력으로 이곳을 이탈하세요!"
내가 모든 일행에게 무전으로 소리 쳤다.
-무결 씨는요?
강하나가 소리쳐 왔다.
"이곳에서 도박수를 감행할 겁니다."
-저도 도울게요!
"안 됩니다! 오히려 방해만 될 겁니다!"
-하지만……!
"제 말 들으십시오!"
-……알았어요. 꼭 살아서 봐요!
"걱정 마세요."
그 말을 끝으로 멀리서 일행이 전장을 이탈하는 것이 보였다.
레비아탄이 얼음공격을 퍼부어댔지만 드레이크들이 화염과 강하나, 한서후, 김치우 등이 굳건하게 방어망을 유지하며 차근차근 퇴각해 나갔다.
구자운 또한 그들이 퇴각할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나는 핸드건 하나를 주머니에서 끄집어내 거기에 핵연료구슬을 집어넣으며 슈리에게 말을 걸었다.
'슈리, 나 죽을지도 모르겠다.'
[가시는 길은 외롭지 않게 같이가 드리겠습니다.]
'못 본 드라마, 영화가 많아서 어떡하냐?'
[정 미안하면 죽지 않으시면 됩니다만.]
'……큭큭, 그래, 아직 죽은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설레발쳤다.'
죽을 위험이 큰 도박수임에 분명했지만, 꼭 죽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제까지 열심히 쌓아온 게 있는데, 아직 죽기는 아깝지.'
절대 호락호락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유가선공]의 기를 격렬하게 휘돌렸다.
인간이 몸에 축적할 수 있는 기로는 두 종류의 기(氣)가 있다.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내공심법을 통해 쌓을 수 있는 후천지기(後天之氣), 즉 내공이다.
이것은 설령 소모하더라도 다시 운기조식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기라고 할 수 있다.
후천진기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는 않다.
오직 내공심법을 익히고 무공을 배운 자만이 그것을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남녀노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 또한 가지고 있는 기가 있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기 (氣)인 선천진기(先大K氣)가 바로 그것이었다.
달리 생명력(牛命方)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선천진기는 한번 사용하게 되면 웬만한 방법으로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함부로 끄집어 사용할 수가 없었다.
생명 본연이 가진 방어기제가 선천진기의 사용을 극도로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 구제와 치료에 목적을 둔 [의기활신유가선공]은 그 특성상이 선천진기를 다루는 방법이 세밀하게 발달되어 있었다.
[하문 개방(下問 開放)].
유전(油田)이 터진 것처럼 몸에서 끈끈하고 진한 기가 용솟음쳤다.
용솟음친 기는 피부를 뚫고 나와 내 온몸을 가늘게 감쌌는데, 레비아탄이 날려 보내는 얼음들이 그 기에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날아온 거대한 얼음 기둥이 나를 후려치려는 순간, 나는 땅을 박찼다.
팟- 내 신형이 순식간에 산아래에 다다탔다.
무려 수백 미터가 넘는 공간을 순간이동하듯 이동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레비아탄이 내 모습을 놓친 듯 나를 찾아 당황한 눈깔을 굴리는 게 보였다.
나는 핵연료구슬을 장전한 핸드건을 녀석에게 겨누었다.
그 순간 녀석이 나를 발견했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피융- 총이 발사되는 순간, 레비아탄의 앞으로 얼음조각들이 모여들어 총알의 경로를 막았다.
이미 [기기변신]으로 구현한 [몬스터 드라이브]로 몸에 구멍이 나봤던 녀석이라 그런지 총에는 과민스러울 정도로 철저히 대응하고 있었다.
나는 총탄이 발사되는 순간, 그대로 온몸의 진기를 방출해 내 몸을 둥글게 감쌌다.
[꼬맹아, 지금이야!]
그리고 꼬맹이 어스 팽귄에게 외쳤다.
누가 내 몸을 잡아채 끌고 가듯 내 몸이 땅속으로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