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89 레비아탄의 세 가지 특기 중 마지막은, '물을 다루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물을 다루는 능력'은 냉기와 물, 그리고 몬스터를 다루는 녀석의 세 능력 중 가장 강력한 능력이었다.
녀석은, 물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이든 '유영'할 수 있었다.
녀석은 비가 내리는 하늘을 헤엄 쳐,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섬광탄이 녀석을 스치며 녀석의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보는 녀석의 모습이었다.
녀석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녀석은 제1스테이지에서 보았던 새끼 베히모스보다도 거대했다.
수백 미터, 어쩌면 킬로미터 단위로 재야 할지도 모르는 체장(體長).
그리고 체장보다 더욱 눈에 띄는 두꺼운 몸뚱이.
특이한 것은 몸뚱이가 머리 쪽으로 갈수록 두꺼워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몸체의 다른 어느 부위보다 머리가 제일 두꺼운 기형적인 구조였다.
녀석의 전체적인 형상은 미꾸라지 와 같았는데, 머리 쪽이 가장 두껍다 보니 꼭 복어처럼 보이기도 했다.
녀석은 입을 쩍 벌리고 하늘 위를 유영하며 거대한 한쪽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무시무시한 점은 쩍 벌린 입의 크기가 놈의 그 커다란 머리둘레와 같다는 것이었다.
그곳으로부터 수십 줄기의 새하얀 기운이 뻗어나오고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녀석의 브레스였다.
대부분의 줄기는 강하나 일행 쪽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일부는 줄기는 구자운과 내 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까 저 속으로 삼켜질 뻔했단 말이지.'
나는 아까 보았던 블랙홀 같았던 녀석의 입속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그때 소울 스톤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지.'
나는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소울 스톤을 떠올렸다.
아까 우리가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레비아탄에게 먹힐 뻔했을 때 소울 스톤을 사용해 기사회생한 후로, 나는 소울 스톤의 사용을 자제해 왔다.
레비아탄에게 결정타를 가하는데 쓸 소울 스톤의 에너지가 많이 사라진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녀석을 죽이는데 꼭 필요한 소울 스톤의 에너지가 그렇게 뭉텅이로 사라졌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아직까지는 녀석에게 치명타를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더 이상은 사용하지 않고 그 순간을 위해 아껴 두기로 했다.
'어디 한번.'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레비아탄을 향해 레일 건을 발사했다.
콰아아아앙!!
일순 주위의 빗줄기들이 밀려날 정도의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레일 건의 총알이 빗물을 가르고 레비아탄을 향해 날아갔다.
'으, 역시 추워.'
하지만 잠시 열린 플라스마 막 사이로 스며드는 냉기는 여전했다.
나는 냉기를 몰아내며 레비아탄의 대응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내가 녀석을 겨누는 순간부터 녀석 주위의 빗방울이 운집하더니.
콰아아아앙- 녀석의 몸체 한 부분이 터져 나갔다.
'응?'
관찰을 위해 아직 하늘을 가로지르는 중인 섬광탄의 불빛이 비추고 있는 곳을 쏘았기 때문에, 녀석의 몸이 터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몸이 아니군.'
하지만 나는 내가 착각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것은 녀석의 몸이 아니라, 녀석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물'이었다. 아니, 저것을 '물'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내가 뒤늦게 발견했을 정도로 얇은 물의 막이 내 '레일 건'의 총탄을 막아내었다.
저게 물이 아니라 얼음이라 해도 불가능했을 텐데, 그렇다는 말은 저 물이 보통의 물이 아니란 뜻이었다.
'저게 바로 레비아탄의 [물의 권능을 이용한 방어막]이군.'
-녀석을 쓰러뜨리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녀석의 [물의 권능]이었다. 권능을 담은 물로 온몸을 감싼 녀석에게 자그마한 생채기라도 입히기 위해서는 백 명이 넘는 헌터가 스킬을 쏟아부어야 했다.
저 물은 이를테면 얼음보다도 질기 고 단단한 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의 '변형력'이라는 장점만 갖춘.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각성자들도 [스킬]이라는 괴상망측한 게 있는데 이 끔찍한 '재앙형 던전'의 '보스'라는 몬스터가 저 정도도 못 할까.
물론 아마 몬스터들에게도 스킬이란 게 있다면 저것은 유니크 혹은 그 이상의 스킬이겠지.
레비아탄의 저 [물의 권능]은 방어 뿐만 아니라 녀석의 이동을 돕는 스킬이기도 했다.
비 내리는 하늘에서 저 녀석이 날아다닐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저것 덕분이었으니.
-녀석을 지상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우리는 하늘에서 빗물을 뿌려대는 이 일대의 구름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구름을 날리는데만 70명이 넘는 3클래스 이상의 마법사가 모든 마력을 소진했다.
그것이 고려 클랜이 레비아탄을 공격하기 위해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고려 클랜의 공략대에 속해 있던 마법사들의 수는 80명.
그중 10명을 뺀 마법사가 모조리 동원되었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순간적으로 가장 강력한 화력을 뿜어낼 수 있는 마법사들을 거의 모조리 투입 하다시피해서 베히모스를 땅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나는 그 방법을 쓸 수 없지. 대신…….'
나는 드레이크를 타고 세 조각 화산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호수를 가로질렀다.
중앙호수로 향하는 세 통로 중 하나는 우리 일행이 차지해 레비아탄의 공격을 막고 있었고, 다른 하나의 통로에는…….
크워어어어!
호수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호숫가에서 나를 보며 울부짖으며 때때로 원거리 공격을 가해오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내게 유효한 공격타는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향하는 곳은 몬스터들이 없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이곳에 몬스터들이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화아아악--!!
저공으로 비행하던 나와 드레이크를 노리고, 호수 표면의 물길이 솟구쳐 날아왔다.
예상하고 있던 나는 드레이크를 조종해 가볍게 그것을 피해냈다.
그러자 물 전체가 출렁거리기 시작 했다.
그것은 얼마 전에 보았던 광경과 유사했다. 대지가 요동치며 춤을 추던 광경과 눈앞의 광경이 겹쳐 보였다.
지금 눈앞에서 물이 요동치는 광경은 두 강력한 어스 팽귄들의 대결에서 대지가 요동치는 광경과 판박이로 흡사했다.
스스스스- 호수 곳곳에서 물의 기둥이 솟아오르며 나와 드레이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몬스터들 중 가장 성가셨던 것들은 세 수호종이었다.
다시 한번 데이터베이스의 글귀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중 가장 골치 아팠던 것은 냉기의 불꽃을 내뿜는 드레이크도, 땅에서 얼음가시를 일으키던 고르곤도 아니었다. 호수 전체에 걸쳐 우리를 따라다니며 갖가지 물 공격을 해대던 팽귄 놈들이었다.
팽귄 놈들.
제1스테이지에서 어스 팽귄이라 불렸지만, 물속에 숨어 있는 지금은 그냥 팽귄 혹은 워터 팽귄으로 불러야 할 놈들이었다.
처음엔 단순한 물줄기로 시작된 공격이, 몇 번 곡예비행으로 피하며 날자 훨씬 다채롭게 날아들기 시작 했다.
물의 화살이 날아오기도 하고, 호숫물이 통째로 일어나 덮치기도 했고, 빗줄기가 물의 그물이 되어 우리를 옥죄려고도 했다.
내가 타고 있는 이 녀석은 이래 봬도 드레이크 중에 가장 날렵하고 빠른 녀석이었다.
녀석은 알파가 추천해 준 녀석답게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 물의 공격들을 피해 갔다.
카가각-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레비아탄이 아직까지 내게 내뿜고 있는 냉기가 팽귄들이 내게 날려대는 물들을 얼려서 공격을 막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레비아탄이 상황을 알아채고 냉기를 거둔 순간부터 팽귄들이 공격이 내 플라스마 방어막을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치이익- 점점 플라스마 링에 부하가 걸려왔다.
나는 타이밍을 쟀다.
"후우."
그리고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드레이크, 충격에 대비해!"
드레이크에게 외쳤다.
그 순간.
쾅!!
호숫가에서 폭발이 일었다.
아까 저공으로 날며 몰래 호숫가에 떨어뜨린 수류탄이 터진 것이다.
뒤쪽에서 날아오던 물 공격 몇 개가 형태를 잃고 그대로 물이 되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공격을 해오던 팽귄들이 타격을 받은 것.
수류탄을 더 많이 까 넣을까 생각 했지만, 이 녀석들은 곧 훌륭한 아군이 될 터라 가능한다치지 않게 할 작정으로 단 한 개의 수류탄만을 까넣었다.
호숫가에 죽거나 기절한 팽귄들이 등둥 뜨기 시작했다.
물은 훌륭한 매질이라 수류탄의 폭발 충격을 공기 중에서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반면 수류탄 파편은 물의 저항 때문에 멀리 날아가지 못하므로, 떠오른 펭귄들에게 이렇다 할 상처가 있지는 않았다.
나는 드레이크를 조종해 잠시 고삐가 늦춰진 팽귄들의 공격을 피해내며, 호수위에 기절한 팽귄을 하나 집어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쩌저적.
팽귄이 순식간에 얼어붙더니.
챙 - 얼음이 되어깨져 버렸다.
"뭐야, 이거……?"
나는 잠깐 당황하다가 다시 드레이크를 조종해 다른 팽귄을 건져내었다.
챙- 그러나 그 녀석도 마찬가지로 온몸이 깨져 나가며 죽어버렸다.
"젠장, 설마?"
나는 머리를 들어 저 상공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레비아탄을 올려다보았다.
비록 녀석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나를 비웃고 있을 녀석이 그려졌다.
"자살 코드를 심어놓은 거냐?"
내가 수호종들을 포획하는 것을 지켜보던 레비아탄이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닿는 순간 죽어라' 같은 자살 명령을 심어놓은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손에 닿는 족족 팽귄들이 이리 깨져 나갈 리가 없으니.
'어떡하지.'
어스 팽귄은 레비아탄을 공격하는데 필요한 핵심 전력이었다. 이대로 포획하지 못한다면 당장 레비아탄을 상대할 좋은 방법이 없었다.
나는 물 위에 떠오른 팽귄 세 마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건져봤으나, 모두 유리처럼 깨져나갈 뿐이었다.
심지어 내가 직접 손으로 만지지 않은 녀석조차 그렇게 죽어버렸다.
팽귄들을 건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공격들이 날아들었다.
피한다고 피하기는 했는데, 드레이크 위이니만큼 회피에 제약이 있었다.
결국 플라스마 링의 에너지가 거의 바닥에 다다랐다.
'안 되겠다. 일단 여기 있는 놈들 전부 기절이라도 시켜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수류탄을 호수위로 던졌다.
그렇게 날아가며 한 구역에 하나씩 떨굴 생각이었다.
하지만.
출렁- 이미 수류탄에 대해 학습한 팽귄들이 물을 조종해 수류탄을 다시 허공으로 띄웠다. 쾅!!
수류탄이 오히려 근처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잠시 중심을 잃었다.
나야 마력 짱짱한 각성자인데다 좋은 장비로 몸을 둘둘 말고 있던 덕분에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드레이크는 얘기가 다른 듯 상당히 많이 휘청거렸다.
'음, 곤란한데.'
한 번 당한 녀석들은 내 수류탄의 위력을 알아채고 그에 대한 대응을 철저히 하기 시작했다.
내가 머릿속을 팽팽 굴리며 녀석들을 산 채로 포획할 방도를 찾아내고 있는데, 설상가상의 상황이 닥쳤다.
-무결 씨!
무전으로 다급한 강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무슨 일입니까?"
내가 대답하자 강하나의 숨찬 목소리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