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086 쿠르르르- 또 다시 유령처럼 솟아올라 각성자들을 지나친 그것은, 몸체 또한 마치 유령 혹은 해파리처럼 반투명했다. (86/215)

  기계신과 함께 086 쿠르르르- 또 다시 유령처럼 솟아올라 각성자들을 지나친 그것은, 몸체 또한 마치 유령 혹은 해파리처럼 반투명했다.

  "젠장! 저것에 닿지 마!!"

  그렇게 소리치며 각성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쿠르르, 쿠르르-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발밑에서부터 솟구치는 녀석들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우리를 따라오는 각성자들 또한 다른 각성자들을 사냥하고 올 만큼의 강자들이었다.

  그러나 사방에서 솟구치기 시작한 몬스터들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어떤 물리/마법 공격도 놈들을 그대로 통과해 버렸기 때문이다.

  저놈들은 일명 '작은 레비아탄.'

  생명체들의 영혼을 잡아먹는 레비아탄이 풀어놓은 놈의 분신들이었다.

  사방은 곧 각성자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끼리 공격을 주고받는 사이 '작은 레비아탄'이 이성이 있는 자들의 몸을 지나쳐다니며 그들의 영혼을 빨아먹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의 각성자들은 영혼이 빨려 눈이 새파랗게 변해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자들을 공격하는 몬스터가 되어버렸다.

  이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불'과 '대지' 속성의 물리 타격 만이 유효하다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밝혀지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쉬운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마침 내 발밑이 꿈틀거리며 내 앞에서 작은 레비아탄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대로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끼에에에에엑~"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지르며, 놈이 다시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내 손에 들린 이벤트 아이템 [윈드 블레스터]가 바람의 폭탄을 뿜어내었다.

  푸우웅- 끼에에에엑-!!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레비아탄이 비명을 지르며 땅속으로 숨어들었다.

  작은 레비아탄이 설치는 중앙화산 주변 지대.

  그곳을 뚫는 열쇠는 바로 이 '이벤트 아이템'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구자운과 강하나도 각각 자신의 이벤트 아이템을 꺼내 들고 다가오는 작은 레비아탄들을 상대했다.

  내 [윈드 블레스터]뿐만 아니라 다른 두 이벤트 아이템도 원거리 타격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작은 레비아탄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

  -우리는 작은 레비아탄들의 지대를 뚫기 위해 이벤트 아이템들을 모아야 했다.

  이것이 던전 데이터베이스에 적혀 있던 팁이었다.

  데이터베이스에는 제2스테이지에서 여섯 가지 종류의 이벤트 아이템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네 개는 고려 클랜이, 나머지 두 개는 고려 클랜 이전에 던전을 다녀 간 다른 헌터들이 적어놓은 것이었다.

  분명 이곳에는 여섯 개보다 더 많은 종류의 이벤트 아이템들이 숨어 있을 테지만, 내가 여러 조건을 고려해 고른 세 개를 얻는 것만 해도 상당히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더 욕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늪지대를 달렸다.

  작은 레비아탄들이 수없이 달려들었지만, 이벤트 아이템의 작은 공격에도 움츠러들며 물러날 뿐이었다.

  그렇게 셋으로 갈라진 중앙화산이 점점 코앞에 다가와 가는데.

  쿠루룩, 쿠룩- 이런 강추위에도 얼지 않은 늪지대가 요동치더니, 마치 강물처럼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우리가 당황하는 와중에도 늪은 더욱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발밑의 늪지가 갑자기 거세게 움직이는 바람에 나는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요!"

  내가 일행에게 주의를 주며 옆에서 달리던 김소유를 데리고 높게 점프했다.

  나머지 일행 또한 각자의 방법으로 몸을 띄웠다.

  높은 허공에서 전방을 바라보았다.

  격렬하게 앞으로 흐르는 늪은, 어느 지점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있었다.

  '뭐야, 이게?'

  데이터베이스에는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던 현상.

  나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끼며 우리가 달려가던 전방 쪽에서 블랙홀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소용돌이를 바라보았다.

  소용돌이는 주변의 늪을 모조리 빨아들이며 그 기세를 넓혀가다가-뚝어느 순간 갑자기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를 비롯한 일행은 천천히 허공에서 아래로 활공해 내려갔다.

  그리고 어느 지점쯤 내려왔을 때.

  콰아아아아- 무언가가 소용돌이치던 곳에서 튀어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라는 흰수염고래를 백 마리쯤 합쳐놓으면 저런 크기가 될까?

  도대체 생명체가 어느 정도 크기가 되어야 저렇게 크고 공포스러운 입을 가지게 될까?

  우리의 눈앞에는 무저갱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어둠만이 보였다.

  그것은 한 생명체의 입이 자아내는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자연의 거대한 늪지도, 늪지에 살던 몬스터들도, 특별한 힘을 얻었다는 우리 각성자들도 그 입 앞에서는 한낱 작은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 초라한 존재였다.

  나는 몸이 굳어오는 공포 속에서도 가까스로 팔을 움직여 들고 있던 [윈드 블레스터]를 앞으로 내밀었다.

  콰앙- 윈드 블레스터가 격렬한 바람을 뿜어 내었다.

  하지만 그 바람 또한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는지, 입속의 어둠 속에서 초라하게 소멸해 버렸다.

  강하나와 구자운이 순간적으로 내 뻗은 [레인 소드]와 [아이스 클로]의 물과 얼음 또한 마찬가지의 운명을 맞았다.

  극한의 위기 속에서 인지능력이 급속도로 비대해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이 천천히 눈 앞을 스쳐 내려간다.

  그리고 전방에서는 결코 느리지 않았던 거대한 입이, 이제는 천천히 다가온다.

  저 거대한 입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했다.

  레비아탄.

  이곳의 마지막 보스이자 우리가 넘어서야 할 마지막 산.

  나는 문득 죽음을 느꼈다.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이런 언급은 없었는데.'

  데이터베이스에는 전혀 말이 없었다. 레비아탄이 이런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는.

  레비아탄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단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단계를 뛰어넘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레비아탄 앞에서, 내 모든 고려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말기에는 내가 여기로 데리고 온 목숨들에게, 내게 그 존재를 맡기고 있는 슈리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한심한 말로 지금 이 상황을 때우기에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은 내 자신에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미안했다.

  나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통하지 않으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는 걸 넘어 어쩌면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품에서 달걀 크기의 붉은색 돌을 꺼내 들었다.

  [소울 스톤.]

  제1스테이지를 나오기 직전에 중앙 화산에서 얻은, 베히모스의 힘이 봉인되어 있는 돌이었다.

  '도와다오.'

  나는 기도하듯 염원하며 소울 스톤을 [윈드 블레스터]에 끼워 넣었다.

  건틀릿 형태의 블레스터 박힌 소울 스톤이 내 대답에 화답하듯 두근, 고동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화르륵!

  불길 번지는 소리와 함께 윈드 블레스터로부터 새빨간 화염폭풍이 솟구쳤다.

  화염폭풍은 순식간에 그 크기를 확장해 나와 내 동료들의 몸을 둘러쌌다.

  콰아아아아- 주변이 폭풍에 휩싸인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동료들의 주위는 그 어떠한 바람도 불어오지 않았다. 폭풍의 핵.

  그 한가운데 선 나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소울 스톤의 장막 바깥쪽을 보았다.

  화염폭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덮쳐오는 검은 심연과 화염폭풍이 부딪쳤다.

  콰아아아- 어마어마한 열기가 쏟아져 내리며, 레비아탄이 비명을 질렀다.

  바야흐로 두 대마수가 충돌한 것이다.

  구우우우웅- 뱃고동 소리 같은, 혹은 고래 울음 소리 같은 크나큰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잠시 동안 소울 스톤과 레비아탄의 대치가 지속되는가 싶더니, 레비아탄이 몸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스스스- 순식간에 늪지에 잠겨든 레비아탄이, 언제 나타났었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늪지는 원래의 질척거리는 상태로 되돌아와 있었다.

  레비아탄이 사라지자 화염의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바람이 서서히 사라짐에 따라 일행은 늪지 위로 떨어져 내렸다.

  "……."

  일행은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주저앉았다.

  김치우와 김소유는 남매 아니랄까 봐 둘 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한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있었으며, 구자운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방금 뭐였죠?"

  강하나가 나를 보고 물었다.

  "방금 본 게 우리가 최종적으로 맞서 싸워야 할 보스, '레비아탄'입니다."

  "무결 씨 건틀릿에서 나온 게 말씀 하신 [소울 스톤]의 힘인가요?"

  "예."

  "무결 씨 말씀대로 대단하네요. 근데……."

  강하나가 머뭇거렸다.

  "아니에요."

  그녀가 뭐라 말하려다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녀의 말을 이은 것은 구자운이었다.

  "……저거랑 맞서 싸워야 한다고? 우리끼리?"

  구자운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거'라 함은 레비아탄을 이르는 게 분명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차마 뭐라 하지 못한 강하나의 심정을 대변하듯이, 구자운이 강한 부정의 말을 건네왔다.

  웬일로 둘이 뜻이 통한 듯했다.

  "당신이 강한 건 알아. 아주 잘 알지. 내가 여기서 제일 잘 알 거야. 그런데 당신이 열 명이 있다 해도 저건 못 잡아. 당신도 저놈과 당신의 힘의 차이는 가늠할 수 있을 텐데?"

  구자운이 열변을 토해냈다.

  "그 소울 스톤이란 걸 쓴다 해서 과연 그 격차가 좁혀질까? 그래, 그 속에 담긴 게 레비아탄과 같은 대마수의 힘이라 쳐. 그런데 당신은 대마수가 아니잖아. 그 힘을 저놈과 싸울 만큼 온전히 끌어낼 수 있겠어?"

  구자운의 간절한 표정이 내게 와 닿았다.

  그는 내가 이 레이드를 포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레비아탄을 사냥하다 죽기라도 하면 자신 또한 죽을 테니까.

  부정하고 싶었지만 사실…… 그의 말대로였다.

  '기록과 너무 달라.'

  기록에서 본 레비아탄의 수준은 제1스테이지의 베히모스와 비슷하다 했다.

  이미 제1스테이지에서 베히모스를 겪어봤기 때문에, 모든 준비를 마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 했다.

  그러나 막상 지금 마주친 레비아탄의 모습은 기록에서의 모습보다 훨씬 강한 느낌을 풍겼다.

  '뭔가가 잘못됐어.'

  내가 회귀를 해서든, 아니면 원래 지금 시기의 레비아탄이 강했던 것이든 일단 내 생각보다 레비아탄이 강하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어쩌면 내가 준비한 안배만으로도 힘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해내야 해. 아니, 그래도 아직까지는 해낼 수 있어.'

  구자운이 대체로 맞는 말을 하긴 했지만, 잘못 생각한 것도 있었다.

  '열 명의 나라면 저놈, 충분히 잡는다.'

  그리고 지금 내가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 구자운은 모른다. 내가 지닌 것들을 잘만 활용한다면 어쩌면 이 위기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승산, 있어.'

  이 모든 생각이 찰나에 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가장 불만스러워 보이는 구자운과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다음도 포기해야 할 겁니다. 지금 한 발짝 후퇴하면 곧 두 발짝 후퇴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후퇴의 대가로 많은 것을 잃겠죠."

  나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를.

  "우리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클리어 해 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뇨."

  강하나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구자운이 강하나의 말을 이어받았다.

  "저 도플갱어들이 당신 말대로 '베히모스가 본 각성자들'이라면, 승산이 없겠지. 다들 좋은 아이템을 얻기 쉬운 제1스테이지의 맛만 보고 나갈 테니까. 제1스테이지도 오래 있으면 위험해. 포인트를 많이 모을 수록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늘어날 테니까, 원하는 아이템만 얻고들 바로 나가 버리겠지. 이런 개같은 제2 스테이지는 들어오려고도 안 할 테고."

  역시 상황 판단이 빨랐다.

  "맞습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클리어하지 못하면, 수개월 내에 이 던전은 폭주하게 될 겁니다."

  "……무결 씨는 아까 그놈을 잡을 계획이 있다는 거죠?"

  강하나가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틀림없이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기록에서 본 것보다 훨씬 강대한 듯한 레비아탄의 모습을 본 지금에 와서는 나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됐지만, 이들에게 확신을 심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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