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082 도플갱어들과의 전투마다 남는 것은 약간의 [악몽의 조각]과 몸 곳곳에 생긴 부상이었다. (82/215)

  기계신과 함께 082 도플갱어들과의 전투마다 남는 것은 약간의 [악몽의 조각]과 몸 곳곳에 생긴 부상이었다.

  신무결의 설명에 다르면 이놈들은 바로 제1스테이지에서 베히모스가 직접 눈으로 보았던 헌터들이었다.

  강하나 일행은 이놈들과 맞닥뜨림으로써 '이 던전을 지금 당장 클리어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해서 클리어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라는 신무결의 말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헌터들이 계속해서 제1스테이지로 입장할수록 제2스테이지에 생겨나는 도플갱어 또한 무한히 늘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른 각성자들의 공격을 제외하면, 그다지 위험하다고 볼 수 없는데다 열심히 사냥만 해도 좋은 레어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제1스테이지를 떠나이 위험한 제2스테이지로 올 이유가 없었다.

  제2스테이지의 화페인 [악몽의 조각]을 사용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매우 좋았더라면 위험을 무릅쓴 각성자들이제2스테이지로 몰려들었겠지만, 제1스테이지의 [꿈의 조각]으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과 성능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도 않았다.

  아무튼 강하나 일행은 수많은 도플갱어들에게 쫓겨 다니면서도 그들이 '물방울 벙커'라 부르는 벙커를 만들어 휴식을 취하곤 했다.

  이 '물방울 벙커'는 바닥이 물기가 가득한 땅에만 생성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것이 무결이 강하나에게 건네준 '벙커 생성기'의 기능이었다.

  일전에 무결은 아라크네가 출현한 동굴 속에서 강하나에게 이것을 선물로 준 바 있었다. 제2스테이지에서 이 벙커가 필요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물방울 벙커'는 무결이 데이터 베이스에서 한수경의 고려 클랜이 제2스테이지에서 살아남은 방법을 보고 자신은 따라 하기 힘들겠다 싶어서 대안책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전생에서 제2스테이지를 클리어한 고려 클랜은 헌터 협회의 대대적인 협조를 받아가며 총대를 맨 클랜이었다.

  당시에는 베히모스가 나타난 지 6 개월이 지나, 베히모스가 날뛰기 시작한 때라서 온 국민의 원망을 등에 업은 정부와 헌터 협회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베히모스의 꿈'을 클리어 하고자 혈안이 된 상태였다.

  이미 다른 유력 클랜들은 '베히모스의 꿈'에 들어갔다가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베히모스의 꿈]으로는 진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려 클랜만은 오로지 무협 관련 던전에만 집중한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베히모스가 잠에서 깨어 날뛰기 시작한 때까지도 [베히모스의 꿈]에 입장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대형 클랜이라 할 수 있었다.

  헌터 협회의 요청을 받은 고려 클랜은 이백여 명의 정예 클랜원과 클리어 지원자들을 합쳐서 약 400명 규모의 '제2스테이지 공략대'를 결성했다. 그리고 헌터 협회와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하에 이들을 전부 제2 스테이지에 입장시키는 쾌거를 달성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고난이라 평가받는 것은 그때부터였다.

  모두가 고개를 내젓는 제2스테이지를 돌파하기 위해 고려 클랜이 둔 강수는 이것이었다.

  -우리는 전진기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던전 데이터베이스에 쓰인 이 말대로, 고려 클랜이 제2스테이지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베이스캠프 구축이었다.

  몬스터가 끊임없이 몰려드는 환경에서 베이스캠프를 구축한다는 것은 자칫 자살행위가 될 수도 있었다. 몬스터 입장에서 목표물이 너무나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려 클랜은 그런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작전을 강행시켰고, 결국은 전진기지를 구축하는데 성공 했다.

  이들이 구축한 것은 말이 베이스캠프지, 사실 이들이 만들어낸 것은 대공방어와 대지방어 능력을 갖춘 일종의 포격요새였다.

  수만의 몬스터와 수천의 도플갱어들을 막을 수 있게 설비된 최고의 전진기지.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결국 이들은 전진기지를 바탕으로 레비아탄 공략의 전초를 열 수 있었다.

  이들은 발달한 기계공학과 마법공학의 힘을 빌린 요새로 몬스터들을 끌어들였고, 섬 전체의 몬스터가 이들에게 몰려드는 사이 베이스캠프를 몰래 빠져나온 다른 팀이 정보와 아이템을 모으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제2스테이지를 공략해 나갔다.

  하지만 당연히 무결로서는 그 많은 인원과 장비를 도입할 방법이 없었고, 때문에 몬스터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피해 다니는 방법들을 고안해 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글루건같이 생긴 모양의 [물방울 벙커 생성기].

  무결이 은하그룹에게 부탁해 만들어낸 아티팩트로, 여기에는 마법의 힘 또한 일부 들어가 있었다. 이것은 습지나 늪지대같이 땅이 습기를 가득 머금고 물렁물렁한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제2스테이지의 특성상 대부분이 이런 곳이었다.

  이 아이템을 땅에 대고 처음 사용 하면 땅에 스며든 물이 한곳으로 응집된다. 그리고 다시 특정 버튼을 조작하면 응집된 물이 점점 땅속으로 퍼지며 속이 비고 단단한 물방울을 땅속에 만들어낸다.

  이 물방울은 제법 단단한 데다가 사용자의 의지에 의해 땅속을 꽤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덕분에 이들의 위치를 특정하고 쫓아오는 몬스터라 할지라도 이들을 쉽사리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강하나 일행은 이미 무결의 당부대로 땅속에서 움직이는 몬스터들의 구역은 철저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땅속 깊은 곳으로만 물방울을 움직이고, 물방울이 움직이는 동안은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다만 아쉽게도 물방울의 유지 시간은 길지 않았고, 아이템 사용에는 구하기 쉽지도 않은 마력석이 들어 갔기 때문에 일행은 꼭 필요한 순간에만 이것을 사용했다.

  '감사합니다, 무결 씨.'

  강하나 일행은 이미 제2스테이지에 들어서 수도 없이 무결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었지만,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근데 좀 빨리 오세요.'

  이번에는 원망을 건넬 차례였다.

  약속한 시간이 무려 15시간이나 지나가고 있는데, 그는 아직도 자신들을 안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무결의 설명대로라면 이 [레인 소드]와 같은 이벤트 아이템은 제2스테이지에 3개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얻어야 비로소 제2스테이지의 보스를 공략할 시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 [레인 소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템을 얻자마자 모든 몬스터가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되므로, 가급적 세 개를 동시에 얻고 바로 보스 공략에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물방울 벙커 생성기]가 있었던 덕분에 15시간이나 버렸지만, 강하나 일행은 몬스터와 도플갱어들에게 쫓겨 다니느라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시간이 지나 도플갱어가 제2스테이지에 더 존재했다면 절대 못 깼을 거야.'

  일행의 뇌리에 공통적으로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다.

  결국 이번 물방울도 시간이 다 되어 일행은 땅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누, 누나!"

  "제길, 안 그래도 보고 있어."

  난감한 상대들과 마주쳐 버렸다.

  새파란 눈이 아닌 자들.

  이곳에서 그런 자들은 자신들과 같은 각성자들밖에 없었다. 몬스터나 도플갱어가 아닌, 진짜 인간들. 그러나 전혀 반갑지 않았다.

  탐욕에 물들어 자신들에게 무기를 들이대는 이 녀석들이 반가울리가.

  "그래,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죠? 얌전히 내놓으면 살려는 드릴게요."

  강하나 일행을 둘러싼 것은 약 30 명가량 되는 헌터였다.

  그들은 강하나 일행이 모습을 드러낸 자리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차라리 빌런들을 만났더라면 덜 껄끄러웠을걸.'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악성 각성자들을 나타내는 빌런.

  이들은 제멋대로인 성향이 강해서 단결력이 약한 약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30명가량 뭉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뭉치더라도 쉽사리 협력하지 못했다.

  반면 눈앞에 나타난 녀석들은 그런 약점이 없는 놈들이었다.

  얄궂게도 이들은 자신들과의 계약을 해지한 북두그룹에서 돈을 쏟아 부어 만들었다는 북두 클랜의 헌터들이었다.

  각성자와 던전이 생겨나는 시대인 지금도 돈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돈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북두그룹에서 만든 클랜 답게, 이들은 다른 유수의 클랜을 빠르게 제치며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지스 클랜을 지원할 때와는 달리 북두그룹은 장비, 인력, 그리고 스킬에 이르기까지 북두 클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인원수면에서 이미 북두 클랜은 강하나의 이지스 클랜을 넘어서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인원수의 차이는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북두그룹과 이지스 클랜은 평화롭게 헤어졌다는 세간의 소문과 달리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상당히 지저분하게 헤어졌다는 것에 있었다.

  북두그룹은 그들의 치부를 알고 있는 이지스 클랜을 항상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고, 그런 그룹의 영향을 받은 북두 클랜은 호시탐탐 이지스 클랜과 부딪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지스 클랜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어서 가급적 북두 클랜과 마주치지 않으려 했으나, 공교롭게도 지금 이 순간 다른 각성자들의 눈이 없는 곳에서 이들과 마주쳐 버린 것이다.

  30 대 5라는 쪽수 차이를 본 북두 클랜의 헌터들은 굳이 강하나 일행에 대한 살심을 감추지 않았다.

  '이길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우리도 피해를 입을 거야.'

  강하나가 암울하게 주위를 둘러싼 이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네임드 몬스터로부터 아이템을 획득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메시지가 갈 겁니다. 몬스터들처럼 실시간 위치 정보를 알 수는 없겠지만, 대신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거예요."

  무결이 한 말이었다.

  북두 클랜의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자신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텐데 아이템까지 얻을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 아니겠는가.

  놈들이 필사의 추적 끝에 자신들을 찾아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었다.

  "어휴, 찾는데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혹시나 그 아이템 들고 던전 밖으로 도망가나 걱정했고요. 다행이란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아니면 멍청하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던전 밖으로 도망가지 않아 줘서 고마워요."

  북두 클랜의 선두에서 올백머리를 한 녀석이 이죽이듯 말했다.

  "뭐, 별로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뜰 거면 빨리 뜨지? 어차피 너희는 우리를 이길 수 없어."

  강하나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녀는 이들도 걱정이었지만, 곧 [레인 소드]의 냄새를 맡고 몰려을 몬스터와 도플갱어들도 만만잖게 걱정되었다.

  "당신네들이 이긴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당신들을 잡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당신들은 모를 거예요."

  올백머리가 후후 웃었다.

  강하나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무래도 불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꽤나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 이지스 클랜이 우리 그룹을 탈퇴할 때…… 우리 비밀 실험실의 실험체 하나가 사라졌거든요."

  그가 강하나를 보며 씰룩 입고리를 들어 올렸다.

  마치 신나서 미치겠다는 듯한 표정.

  "그런데 우리 회장님은 아무래도 그 실험체를 이지스 클랜에서 훔쳐 간 것 같다고 생각하신다는 말이에요."

  그가 강하나 일행을 독사 같은 눈으로 둘러보았다.

  '이런, 눈치채고 있었군.'

  강하나가 속으로 탄식했다.

  모를 줄 알았다. 알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임을 보였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자신들을 방심하게 한 다음 기회를 봐서 제거하기 위해 철저히 숨기고 있었던 거였다.

  "그 실험체와 아이템을 얌전히 내 놓으면, 살려서 보내 드릴 테니까 어서 내놓으세요."

  올백머리의 시선이 천재령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천재령은 아무 색깔 없는 눈으로 그런 올백머리를 마주 바라 보았다.

  "흠…… 아닌가?"

  올백머리가 머리를 갸웃했다.

  "뭐, 일단 잡아놓고 심문하면 알겠지요. 어때요? 제 말대로 할래요? 이건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이득이 되는 거래라고요. 저는 승진을 하고, 당신들은 목숨을 얻고. 완전 이런 윈-윈 거래가 어디 있어요?"

  강하나는 하하 웃는 녀석의 얼굴을 후려쳐 주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누나, 그냥 한판 붙죠!"

  김치우가 그런 자신의 옆에서 자신 보다 더 씩씩거리고 있었다.

  원래 성질이 급한 녀석이니.

  '붙을 수밖에 없겠군.'

  절대 아이템과 천재령을 넘겨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넘겨주면 살려주겠다는 것도 개수작이 분명했다.

  보는 눈도 없으니 눈엣가시 같은 자신들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아이템과 천재령 자체가 강하나 일행에게 있어서 만만치 않은 전력이니, 혹시라도 속아 넘어가 준다면 이득이라는 계산속이 분명했다. 결국에는 전투밖에 없었다.

  저들의 자신감을 봤을 때 숨겨 둔 수가 있을 테니 불시에 기습하는 게 최고였다.

  강하나가 얌전히 타이밍을 재며 전투 개시하려던 그때.

  부스럭.

  새파란 눈을 가진 한 마리의 몬스터, 아니, 도플갱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헉."

  "흡."

  강하나 일행사이에서 헛바람 들이 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하나 또한 몸을 빳빳이 긴장시켰다. 눈앞에서 이죽이는 북두 클랜 놈들이 난감한 녀석이라면, 모습을 드러낸 도플갱어는 최악의 상대였다.

  강하나 일행이 그 도플갱어를 보며 빳빳이 긴장하자, 올백머리를 비롯한 북두 클랜의 헌터들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더니 저마다 낄낄 웃었다.

  "큭큭, 하긴, 다섯 명뿐이니 도플갱어 한 마리에도 긴장하는 게 이해가 되네요. 그동안 얼마나 시달렸으면, 쯧쯧. 생각할 동안 서비스로 저놈들은 저희가 처리하죠."

  그가 낄낄 웃으며 다른 클랜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가죠."

  그가 포위망의 일부를 남겨둔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새로이 나타난 도플갱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파란 눈을 빛내며 그런 북두 클랜 일행에게로 다가가는 도플갱어의 모습은, 신무결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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