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81 미끈미끈하고 거대한 혀가, 김치우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으아아악!!"
질퍽질퍽한 진흙탕을 달리던 김치우가 악을 쓰며 그것을 피해냈다.
그것은 거대한 두꺼비의 혀로, 김치우를 추적하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 중 한 마리의 것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해 햇빛이라고는 한 점도 들지 않는 짙은 어둠 속.
강하나 일행은 수십 종류, 수백 마리의 몬스터로부터 거의 15시간째 끊임없는 추격을 받고 있었다.
그중에는 그래이 트롤과 트윈헤드 오거 등 제1스테이지에서 보았던 몬스터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제1스테이지에서와 달리 이놈들은 자기 영역 구분 없이, 그냥 각성자가 보였다 하면 땅끝까지라도 쫓아 왔다.
공통점이 있다면 눈동자가 새파랗게 변해 있다는 것이었는데, 눈동자가 파랗지 않은 다른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는 무한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눈동자가 파랗다면 다른 종족이라 해도 절대 공격하는 법이 없었다. 아니, 자신들을 발견하면 종족 불문하고 엄청나게 몰려오는 것으로 보아 다른 종족끼리도 정보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치우 씨, 벙커 완성되었습니다.
'아싸.'
천재령으로부터 김치우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통신이 들어왔다.
강하나 일행 중 몬스터를 유인하는 역할을 맡았던 김치우는 일행이 벙커를 만들기로 한 구역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벙커 가까이 다다르니 멀리서 다른 한 무리의 몬스터로부터 도망쳐서 달려오는 강하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 역시 몬스터를 유인하여 다른 일행이 벙커를 완성할 시간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여깁니다!"
"여기예요!"
빗물이 고여 있는 땅 한가운데가 쩍 입을 벌리며 김소유와 천재령이 상체를 드러냈다. 그들은 달려오는 이들을 향해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며 열심히 손짓했다.
"오케이, 비켜요!"
그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강하나와 김치우가 구덩이 속으로 들어서자, 구덩이가 순식간에 닫히며 그들의 모습을 감추었다.
그 자리로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놈들은 강하나 일행이 들어간 땅속을 미친 듯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덩이 속으로 사라진 강하나 일행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드러 나지 않았다.
* * * ['제2스테이지 입장권'을 사용하셨습니다. 제1스테이지 '꿈의 옅은 곳'을 벗어납니다.]
[제2스테이지 '꿈의 깊은 곳']
[던전 퇴장까지 3일의 시간이 추가 되었습니다.]
[몬스터를 사냥하면 악몽의 조각 1~50개를, 인간을 사냥하면 악몽의 조각 50개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조각의 50%를 획득합니다.]
[주머니 속에 카탈로그가 생성됩니다. 카탈로그의 아이템들은 일정 개수의 악몽의 조각을 사용하면 구매 할 수 있습니다.]
[습득한 모든 아이템은 던전 퇴장 시 소유권이 인정됩니다.]
[제2스테이지의 악몽 '레비아탄'을 처치하십시오.]
강하나 일행은 제2스테이지에 들어서자마자 이러한 메시지들을 보았다.
제2스테이지의 배경이 되는 무대는 제1스테이지와 똑같은, 아니, 비슷한 화산섬이었다.
똑같다는 표현 대신 비슷하다는 표현이 사용된 이유는 꽤나 많은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이라면 중앙화산이 케이크로 자른 것처럼 삼등분되어 벌어져 있고, 그 중앙에 거대한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기상환경과 지형 또한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늘에는 24시간 짙은 비구름이 끼어 비를 뿌리고 있었다. 그 덕에 대지는 거의 습지화되어 걷는 것만으로도 많은 체력 소모를 야기했다.
비구름은 섬 전체에서 빛을 거두어 갔다.
섬은 24시간 내내 밤과 같이 깜깜한 환경을 유지해 강하나 일행은 불과 몇 미터 앞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결코 인간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환경들.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보자마자 새파란 눈을 빛내며 앞뒤 안 가리며 공격해 들어오는, 어딘지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 몬스터들.
비가 내리는데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운 환경에서 기척을 죽이고 자신들을 노리는 몬스터들을 찾아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눈이 새파란 몬스터들은 공격성이 늘어난 데 비해 지능이 조금 떨어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기척을 숨기고 오는 놈들이 존재했다.
만약 불빛을 밝히기라도 하면 그 불빛을 본 몬스터들이 더욱 포악하게 몰려들 거라는 신무결의 경고에 일행은 이틀간 불빛 없는 생활을 계속했다.
"으, 불빛이 없으니까 너무너무 답답하다."
"저도 계속 기분이 우울해요, 언니."
나이가 어린 김치우와 김소유가 불빛이 없는 환경을 제일 힘들어했다. 일행은 어둠 속에서 지내면서야 비로소 평소 그들의 곁에 있어준 불빛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평소에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거의 70%나 되는 비율을 시각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불빛이 없어서 제대로 앞을 볼 수 없게 된 상황이 지속되자, 일행은 답답함과 불안함에 시달리게된 것이다.
결국 불빛 없이 이틀을 버틴 그들은 신무결의 경고를 저버리고 불빛을 밝혀보았다. 설마 신무결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큰일이 일어나겠나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마터면 일행이 몰살할 뻔 했다.
그 불빛을 본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강하나 일행에게로,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몰려든 것이다. 빛이 없는 환경에서 오히려 빛에 더욱 민감 해지게 된 몬스터들은 강하나가 밝힌 작은 불빛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추적해 왔다.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난 강하나 일행은 다시는 신무결의 금과옥조 같은 조언을 어기지 않기로 다짐했다.
위험천만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일행은 신무결이 알려준 팁들 덕에 어렵게나마 제2스테이지를 탐험해 갈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제2스테이지 진입 사흘째 되는 날부터 일행은 어둠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신무결이 해준 조언 중에 어둠 속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주는 방법 또한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일행이 그토록 오랫동안 빛이 없이 버텨본 것은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무결이 알려준 방법은 꺼림칙한 정도를 넘어서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꼭 그 방법을 써야 하나요?"
"안 쓰셔도 지내시는데 괜찮으시 다면 굳이 안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하게 짓는 신무결의 그 웃음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었다.
하지만 어둠에 된통 당한 강하나 일행은 결국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신무결이 제시한 방법을 이행했다.
그 방법이란 바로 [어둠나무 벌레] 라는, 어둠으로 이루어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나무에 서식하는 벌레를 먹는 것이었다.
일단 이 나무는 찾아내는 것부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개체수도 굉장히 적을뿐더러 안 그래도 어두운 환경인지라 눈에도 잘 안 띄었던 것이다.
일행이 진저리를 친 것은 나무를 찾아내고 난 다음이었다.
나무는 어둠에 싸여 있어서 그 형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이 나무에 붙어 사는 벌레는 제대로 벌레의 형체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모습 또한 상당히 그로테스크 한 게 먹었다가는 꼭 배탈에 시달릴 것처럼 생겼었다.
하지만 일행은 결국 이를 악물고 그 벌레를 씹어 삼켰다.
강하나는 그 벌레를 씹어 먹을 당시의 기억을 무의식 저 깊은 곳으로 봉인해 버렸다. 그것을 기억해 냈다 가는 간신히 다시 접붙인 인간으로서의 무언가가 다시 한번 부서져 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천신만고 끝에 벌레를 씹어 삼킨 일행은 밤눈이 마치 낮의 눈처럼 밝아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불안증과 신경쇠약에 걸려 가던 일행은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신무결이 알려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빛이 들지 않고 계속 비가 내려 늪지화되어 버린 섬에서 숨을 곳과 식량을 구하는 법, 그리고 몬스터들을 따돌리고 사냥하는 법 등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일행은 한 마리의 네임드 몬스터를 잡기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해 갔다.
무결의 말에 따르면 아라크네만큼 이나 강력하다던 그 몬스터를 잡기 위해 강하나 일행은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했다.
강하나 일행이 목표로 한 [거대 늪 독두꺼비]라 불리는 그 네임드 몬스터는 수많은 종류의 몬스터를 수하로 부리고 있었다.
강하나 일행은 놈을 잡기 위해 그 근처의 모든 몬스터의 습성을 몸으로 익히고, 전투 예상 지역을 철저하게 학습하고, 신무결이 꼭 필요하다 말한 모든 아이템을 준비했다.
그리고 모든 기상과 주변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때를 골라 그 몬스터와의 격전에 들어갔다.
거대 독두거비는 바닥이 순식간에 푹푹 꺼지는 늪지대에 서식했는데, 강하나 일행은 일단 늪올 걷기 위해 [악마의 부레옥잠]이라는 특이한 식물의 씨앗을 얻어 늪지 위에 뿌렸다.
이 부레옥잠은 늪지 위로 순식간에 증식해 나가며 강하나 일행이 디디고 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늪지에서 싸울 환경을 마련한 강하나 일행은 놈을 끌어내기 위해 놈이 좋아한다는 [대왕 갈색파리]를 잡아 와서 늪지 위에 흔들어대었다.
무결의 장담대로 [거대 늪 독두꺼비]는 매혹적인 음식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이후부터는 비교적 전투가 쉽게 진행되었다.
무결은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그 독두꺼비가 내뿜는 공격의 종류와 패턴, 그리고 약점까지 모조리 알려 주었던 것이다.
무결의 조언대로 준비해 놓은 아이템을 섞어가며 전투를 하자 [거대 늪 독두꺼비]는 결국 맥을 못 추고 무너지고 말았다.
강하나는 신무결의 장담대로 거의 아라크네만큼이나 강했던 녀석을 이렇게 쉽게 쓰러뜨리자 살짝 얼떨떨 하기까지 했다.
강하나는 쓰러진 녀석이 앞발의 발목에 감고 있던 이벤트 아이템을 탈취했다.
이벤트 아이템은 팔찌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두꺼비 녀석의 앞발에 달려 있을 때는 허리띠처럼 크기가 컸는데, 강하나의 손에 들어 오자 크기가 그녀의 손목 크기에 맞춰 줄어들었다.
[레인 소드].
무결은 그 아이템을 그렇게 불렀다.
팔찌 주제에 '소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 팔찌가 바로 물의 검을 생성하는 아티펙트였기 때문이다.
"무결 형 말대로 두꺼비가 생성한 물의 검들이 바로 그 아이템의 능력이었군요."
"그래, 하지만 무결 씨가 말한 아이템의 진가는 칼날 생성 능력이 아니랬지, 아마?"
"네, 그리고 그 아이템을 얻자마자 더욱 많은 몬스터들이 우리를 노릴 거라고도 했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아니나 다를까. 아이템을 얻은 직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몬스터들이 추격해 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포악한 놈들은 [레인 소드]의 위치를 어떻게 아는지 아무리 숨어도 곧잘 추적해 오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꽤나 익숙해졌기 때문에 몬스터들은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일행을 가장 힘들게 한 놈들은 따로 있었다.
그놈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전투 방식 또한 갖추고 있었다. 또한 인간들처럼 온갖 무기와 방어구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초월적인 힘과 속도를 냈고, 심지어 [스킬]마저도 쓸 수 있었다.
겉으로 보아서 각성자와 하등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놈들.
사실 이들은 각성자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놈들이 맞았다.
다만 각성자들과 구별되는 뚜렷한 점이 존재했다. 눈이 온통 새파랬으며 장비를 비롯한 온몸이 잿빛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무결은 이들을 '도플갱어'라 불렸다.
강하나 일행은 놈들 중에 익히 안면이 있는 각성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클랜에 소속되어 자신들과 교류한 적이 있는 각성자들이었다.
더욱 가관인 점은 이놈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던 그 각성자들과 똑같은 스킬과 능력으로 자신들을 공격해 왔다는 것이었다.
스킬과 무기의 활용 능력 면에서는 조금 딸리긴 했지만, 이들은 충분히 위협적인데다가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꽤나 자주 만날 수 있어서 강하나 일행을 매우 힘들게 했다.
가장 황당하면서도 위험했던 순간은, 강하나와 김치우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를 마주쳤을 때였다.
진짜 강하나와 김치우에 비해 무기와 스킬의 활용 능력이 딸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타 몬스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위협적이었다.
신무결은 이들을 만나면 가급적 도망가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어차피 이놈들은 죽여도 나중에 다시 살아 난다는 설명과 함께.
그 조언대로 강하나 일행은 도플갱어들과 마주치는 족족 도주했다.
"제길, 또 어떻게 알고!"
"하는 수 없다. 붙어!!"
하지만 [레인 소드]를 얻은 후부터 놈들은 쉽사리 강하나 일행을 추적 해 왔다.
강하나 일행은 놈들을 떼어낼 수가 없어서 결국 계속해서 놈들과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