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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80 두두두두. (80/215)

  기계신과 함께 080 두두두두.

  때아닌 지진과 함께 햇빛 쨍쌩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지상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하늘에 떠 있던 비눗방울들이 펑펑 터져 사라져 버렸다.

  쩌적 쩌적.

  바닥이 갈라지며 붉은 기운이 그 아래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거대한 존재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쿵- '베히모스.'

  이 섬의 지배자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서 있기도 힘들게 흔들리고 갈라지는 대지.

  먹구름 낀 하늘.

  터져 버린 비눗방울.

  이 모든 것이 이곳으로 달려오는 베히모스의 기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섬의 날씨는 곧 베히모스의 기분을 나타내는 지표였기 때문이다.

  녀석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녀석이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 하지 않았던 금지에 침입자가 들어 선 것이다.

  콰콰쾅!!

  심지어, 화산의 정상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젠장. 직접 보니 살 떨리네."

  마치 온천에서 물 솟아나듯, 화산의 정상에서 대량의 화산재와 함께 마그마가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마그마는 처음에는 화산의 분화구안에서만 들끓다가, 이내 분화구 밖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땅은 흔들리고 갈라지지, 위에서는 화산이 쏟아져 내려오지, 뒤에서는 베히모스가 쫓아오지.

  이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바로 다시 배리어 밖으로 나가 베히모스의 분노를 가라 앉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런 살 떨리는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화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분명 저기 어디쯤에 있을 텐데.'

  나는 산중턱으로 달려 올라가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 어떤 특이한 지물을 찾아 헤맸다.

  쿠구구구.

  내 앞으로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졌다.

  "웃차!"

  옆으로 점프해 바위를 피하자, 이번엔 머리 위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불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앞으로 굴러 불덩이를 피하자 이번에는 발을 디딘 자리가 푹 무너져 내렸다.

  크윽.

  갈라진 땅바닥 틈으로 빠져들던 나는 간신히 옆 벽면의 돌출부를 잡아 속도를 늦춘 후, 점프를 통해 균열을 빠져나왔다.

  위에서는 화산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고, 베히모스의 울음 또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갈수록 기분이 초조해졌다. 이러다 못 찾으면 죽지는 않겠지만 다음번 시도 때는 경계심이 강해진 베히모스 때문에 더욱 찾기 힘들게 자명 했다.

  그때.

  '저기 있다!'

  화산이라는 지형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구조물.

  산 중턱에 웬 동그란 석문이 나 있었다.

  나는 그 문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 갔다.

  "휴우."

  한숨을 내쉬며 그 석문에 손을 대어 보았다.

  스윽- 내 손은 석문이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그 속으로 스윽 들어갔다. 석문이 배리어때와 마찬가지로 종족석을 지닌 나를 그대로 통과시킨 것이다.

  뿌우우우!!

  저 멀리서 베히모스의 다급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 속으로 들어가면 녀석으로서는 나를 막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석문 속의 미로는 제1스테이지를 통틀어서 가장 위험한 곳 이었지만, 저 녀석도 이렇게 쉽게 이곳까지 도달한 내게서 뭔가를 느낀 거겠지.

  "뭐가 그렇게 급해서 헐레벌떡 쫓아오냐. 인생 좀 느긋하게 살아라."

  나는 아직 한참 멀리서 나를 향해 쫓아오고 있는 베히모스를 향해 혀를 쯧쯧 차주고는, 석문 속으로 쏙 들어갔다.

  * * * 석문 속의 미로는 가히 미궁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위험했다.

  가는 길목 길목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만한 함정들이 가득했고, 심지어 제대로 된 길은 숨겨진 암호를 풀거나 지형지물을 자세히 관찰 해야 드러나는 비밀통로 속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

  미로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곳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존재하는데, 잘못된 길의 끝에는 항상 상대 하기 까다로운 네임드 몬스터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함정과 갈림 길과 비밀통로를 마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헤쳐 나갔다.

  사실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저 앞의 붉은 발판 보이십니까?]

  "밟으면 당장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저 위험해 보이는 발판?"

  [네, 저걸 밟으셔야 다음 길이 나타납니다.]

  "저걸 꼭 밟아야 한대?"

  [네, 저 발판을 밟으면 발판을 제외한 반경 10미터가량의 바닥이 모조리 가라앉고, 가라앉은 바닥 밑에서부터 용암이 차오를 겁니다.]

  "어…… 따듯하겠네."

  [바닥이 가라앉고 드러난 벽면에 세 개의 통로가 생겨날 텐데, 그중에 가장 오른쪽에 있는 통로가 옳은 길입니다. 아마 사방의 벽에서 기둥들이 튀어나오며 마스터를 밀어내려고 하고, 위에서는 창이 쏟아져 내릴 텐데 그것들을 잘 피하시면서 튀어나오는 기둥들을 발판 삼아 가장 오른쪽 통로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어…… 그래. 안 떨어지게 잘 피하면서 가면 되는구나. 별거 아니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함정을 통과하면 다시 새롭고 기상천외한 함정들이 나를 반겼다.

  그래도 정확한 답안지를 들고 있는 덕분에 미로 속을 헤매거나 예상치 도 못한 상황에 갑자기 함정들을 맞닥뜨리는 일은 없었다.

  함정들도 정신만 바짝 차린다면 어렵게나마 돌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아니, 실제로 일부는 죽어가면서까지 이 던전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남겼을 다른 헌터들에게 경건하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한 헌터들은 종족석을 획득하고, 그것을 이용해 중앙화산을 개척할 정도의 정예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이 위험한 미로를 탐사한 끝에 얻은 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고, 또 그 정보를 바탕으로 더욱 깊은 곳까지 탐사된 정보가 기록되고.

  그러한 노력이 쌓이고 쌓인 끝에 생겨난 게 바로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던전 데이터베이스상의 지도였다.

  나는 이미로의 종착점까지 가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지도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던전 [베히모스의 꿈]에 대한 데이터베이스에는 지금까지 생겨난다른 어떤 던전의 데이터베이스보다도 많고 상세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유독 이 [베히모스의 꿈]이란 던전에 대한 정보가 상세한 것은, 그만큼 헌터들이 갑자기 등장한 이 거대한 던전에 큰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단 반증이었다.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큰 합의하에 각자가 지닌 던전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며 가능한 한 빨리 이 던전을 클리어하기를 원했고, 그런 대합의가 늦게나마 끝내 한국의 헌터들이 '베히모스의 꿈'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할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전 클리어가 늦어진 것은 그만큼 제2스테이지가 인간의 혼을 갉아먹을 정도로 까다롭고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제1스테이지에 이토록 오래 머무르며 많은 준비를 한 것이기도 했고.

  '그래도 이번엔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거의 다 했다.

  이 미로의 중앙에 있는 '소을 웨폰'까지 얻는다면, 제1스테이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아오, 죽을 뻔했네."

  나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입고 있는 블랙미슈릴 슈트는 여기저기가 불타고 헤져 모락모락 김을 내뿜고 있었다. 자가수복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열손상을 입은 것이다.

  내 앞쪽으로는 새빨간 용암이 덩이 진 채로 쌓여 있었다.

  미로의 마지막 관문인 용암 속성의 엘리멘탈 골렘이 쓰러지며 만들어낸 용암 덩어리였다.

  그 너머로 이글이글 타오르며 흐르는 용암의 호수가 보였다.

  그리고 그 용암의 호수 한가운데, 제2스테이지로 향하기 위한 내 마지막 준비물이 보였다.

  -이름 : 소울 스톤 -등급 : 이벤트 -설명 : 베히모스의 힘이 담겨 있는 강력한 돌. 특정 아이템을 강화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이 소울 스톤이었구나.'

  내 머리통만한 돌덩이가 부글부글 끓으며 거품을 터뜨리는 용암 위에 둥실둥실 떠 있었다. 저것이 전생에서는 '소을 웨폰'으로 불리던, 제1스테이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이것도 이벤트 등급이네.'

  [영혼이 담긴 병]들처럼 이 무기 또한 이벤트 등급이었다.

  처음에는 이 '이벤트'라는 등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여러 던전을 겪으며 이 이벤트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벤트 등급이란 던전 내에서만 통용되는 등급으로, 이 물건이 던전 내에서만 지금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었다.

  즉 이 [소울 스톤]이 지금 이 던전 안에서 100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던전 밖에서는 50의 능력, 혹은 200의 능력을 발휘할지도 몰랐다.

  한마디로 던전 내에서의 능력과 던전 밖에서의 능력이 다른 아이템을 나타내는 특수 조건하에 있는 아이템에 이 '이벤트'라는 등급이 붙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능력치가 늘어나기는 커녕 왕창 깎이거나 심지어 제 기능을 상실했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이 무기는 레비아탄을 쓰러뜨릴 때만 제 역할을 다 하면 되니까.'

  데이터베이스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소울 스톤이 없었더라면, 공략은 백 프로 실패했을 것이다.

  전생에서 이것을 차지한 사람은 베히모스를 봉인시켰던 고려 클랜의 로드 한수경이었다.

  그는 이것으로 자신의 검을 강화시켜 제2스테이지의 보스이자 이 던전의 실질적인 왕, 레비아탄을 봉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소울 스톤]은 마치 생명체의 심장 처럼 일정한 박자를 띄고 맥동하고 있었는데, 그 맥동에 따라 미미한 마나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라크네의 거미실샘] 토시에서 천천히 거미줄을 내뿜었다.

  모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거미줄을 막 발사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했다. 거미줄은 천천히 분사되어 용암 호수의 상승 기류를 타고 [소울 스톤]을 향해 날아갔다.

  거미줄이 [소울 스톤]을 단단히 둘러쌌다.

  나는 천천히 거미줄을 끌어당겼다.

  나는 마침내 내 코앞으로 끌려온 소울 스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소울 스톤이 손바닥에 닿자마자 내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서서히 줄어 들었다.

  "죽이네."

  소울 스톤을 들자마자 뜨겁고 단단한 기운이 내 몸으로 훅 퍼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단지 잡는 것만으로 모든 스텟이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거…… 아무래도 유니크는 아닌 것 같은데?"

  버프 효과부터가 이미 유니크 버프 아이템을 상회하는 능력치 상승 효과를 주고 있었다.

  이것이 무기로서의 능력 또한 갖추고 있음을 감안하면…….

  '유니크 그 이상.'

  세상에 퍼진 아이템 중 유니크를 넘어선 등급이 없어서 그 등급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아이템이 이능력을 그대로 갖춘 채 던전 밖으로 나간다면 세상에는 유니크 위에 또 다른 아이템 등급이 생겨나리란 것이었다.

  '뭐, 그래 봤자 던전 밖으로 나가면 능력치가 떨어지겠지.'

  나는 괜한 김칫국은 마시지 않기로 하고 [소울 스톤]을 주머니 속에 쑤셔 박았다. 그리고 카탈로그를 열어 [제2스테이지 입장권]을 꺼내 들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는 부수든 부서지든 부딪치는 일만 남았다.

  "후우, 가자."

  단단한 마음의 준비와 함께, 나는 환한 빛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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