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79 내가 팽귄어를 아는 게 아니라서 그 끽끽 소리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그렁그렁한 눈망울과 애처로운 몸짓이 말하는 소리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쏘지 마세요!
"널 죽이려 했던 녀석이야."
"끼익!"
녀석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도 부모라 이거냐?"
끄덕끄덕.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는 저 녀석에게 달린 종족석이 밀요해. 이 녀석이 죽으면 슬퍼할 놈들이 많으니까 눈물도 한 방울쯤은 얻을 수 있겠지."
그러면서 생각난 김에 [영혼을 담는 병]을 꺼내 손에 쥐있다. 혹시라도 암파 녀석이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그 또한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탕탕!
나는 북시에 총음 발사래 일파문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총을 발사하기 직전에 알파의 앞에 단단한 흙의 벽이 솟아올라 내 총격을 막아내었다.
힘을 잃은 알파의 짓은 아니었다.
"비켜. 안 그러면 너부터 죽이는 수밖에 없어."
내가 새끼 팽귄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떠나라 할 때는 떠나지 않아 놓고 이제 와서 날 도와주는 척하는 거냐? 날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꺼져라.]
알파 또한 그런 새끼 팽귄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다.
새끼 팽귄은 앞뒤로부터 들려오는 날카로운 언어에도 말없이 팔을 벌리고 내 손에 들려 있는 [영혼을 담는 병]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선택의 연속이야. 지금의 너에겐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어. 네 어미가 죽는 걸 보든지, 아니면 네 어미와 함께 죽든지.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거냐?"
나는 암울한 눈으로 새끼 팽귄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이 죽는 것을 눈감을 수 있어야 하는 시대.
삶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을 이야기 하기엔 이미 나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나 불친절했다.
특히 몬스터의 생명 따위.
"끼익."
흔들리는 새끼 팽귄의 눈이 나와 알파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양자택일의 순간.
녀석은 어떤 선택을 할까.
하지만 녀석은 내가 제시한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거부했다.
"끼엑."
피잉- 녀석의 이마로부터 동심원을 그리 듯 특별한 파장이 퍼져 나갔다. 그러면서 내 발아래로부터 흙이 거칠 게 솟아오르면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큭 "
나는 급히 그 흙을 피하며 하늘로 튀어 올랐다.
[응? 네 녀석 설마? 하하하하!]
동심원이 퍼져 나간 직후.
우리를 둘러싼 땅 위에 무언가가 불쑥불쑥 솟아났다.
이제까지 두 알파의 싸움에 땅속으로 피해 있던 어스 팽귄들이었다.
[네 녀석이 주도권 싸움을 걸어올까 봐 언제나 전전긍긍했건만. 설마 내가 네 녀석에게 동족들을 넘겨주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날이 올 줄이야. 하하하하!]
알파의 말을 들어보니 이 꼬맹이 녀석이 알파로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양이었다.
……그 말인즉슨.
[차기 알파여, 내 모든 영향력을 포기하겠다. 우리의 왕이 되어 동족의 적을 물리쳐라!!]
새끼 팽귄의 이마에 노란빛이 몰려들며, 작은 보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어스 팽귄의 수가 많아질수록 새끼 팽귄의 이마에 자리한 노란 보석의 크기가 점점 커져갔다.
나는 허공에 체류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싸우기를 택한 거냐?"
지상에 수백 마리의 어스 팽귄이 등장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꼬맹이가 짧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지상에 올라와 있던 팽귄들이 순식간에 땅속으로 다이빙하며 사라졌다.
'전투태세에 들어가는군.'
어스 팽귄들은 비전투 시에는 웬만 해서는 땅 위에 있는 반면 전투 시에는 땅 위에서 싸우는 법이 없다.
나는 땅에 발에 닿지 않도록 비눗 방울을 옮겨 뛰어다니며 땅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러나 5초가 지나고, 10초가 지나도록 그 어떤 이상이 감지되지 않았다.
그 대신 소음이 들려온 것은 저 멀리 지평선 너머였다.
"으윽, 팽귄 놈들! 비켜라!! 우리의 종족석을 찾으러 왔단 말이다!!"
쿠와아앙!
쿠쿠쿠쿠쿠!!
내가 그쪽으로 시력을 집중시켜 보니 고르곤들과 드레이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늪처럼 변해 자신들을 빨아들이거나, 높이 솟아올라 자신들의 진로를 가로막거나, 혹은 땅에서부터 창처럼 쏘아져 오는 공격들을 막고 피하는 등 부산을 떨며 소란을 벌이고 있었다.
사라진 어스 팽귄들은 나를 공격하는 대신 나를 추격해 오는 녀석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알파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뭐 하는 거냐!!]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아래를 다시 내려다봤다.
경악한 표정으로 새끼 팽귄을 바라 보는 알파와 그 앞에서 나를 올려다 보며 이마에 양손을 가져가는 새끼 팽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딸깍.
실제로는 아무런 소리도 안 났지만, 내 머릿속에 '딸깍' 하는 효과음이 연상되었다.
새끼 팽귄이 자기 이마에서 종족석을 떼어낸 것이다.
[너, 너……!]
알파가 신음을 내뱉었다.
[종족석을 떼어내면 죽는다고, 이 멍청아!!]
"끼익."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알파를 잃은 우리 종족은 어떡한단 말이냐!!]
"끼엑."
[내가 하면 된다고? 바보 같은. 저 인간이 나를 살려둘 것 같으냐?]
"끼익."
[살려줄 거라고?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끼에엑……."
새끼 팽귄이 뒤돌아보며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쓰러져 있는 알파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끼엑……."
녀석의 품에 폭 파묻혀 얼굴을 부볐다.
[……고맙다니…….]
알파로부터 힘없는 염파가 들려왔다.
[동족들로부터 널 내쫓은 내가 대체 뭐가 고맙단 말이냐…….]
"끼엑."
[……죽이지 않고 내쫓아줘서? 나 원 참 별 그지 같은 이유로……. 그게 그렇게 고마웠으면 나가서 잘 살 것이지 왜 다시 기어 들어와서 …….]
"끼익."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고? 아니, 네가 무슨 수로 저 인간의 계획을 알고……?]
"끼엑……."
[뭐, 뭐?!]
녀석이 경악했다.
대체 무슨 말은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깜짝 놀란 녀석의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
[그렇군. 그게 네 알파로서의 능력이었군…….]
"끼엑끼엑……."
새끼 팽귄이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종족석을 빼낸 뒤 급격하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왜, 왜 네가 날 위로 하는 거냐…….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더라면 잘 살아갈 것이지, 왜 위로 따위를 건네고 앉아 있는 거냐…….]
"끼엑……."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마. 잘…… 가거라.]
알파가 그렇게 말을 마침과 동시에, 새끼 팽권이 편안히 눈을 감았다.
[……내 자식아.]
마지막 날숨을 내뱉는 새끼 팽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 이 새끼 팽귄의 턱을 타고 다리에 떨어지는 순간.
스르륵- 새끼 팽귄의 몸이 마치 흙처럼 부서져 내리더니 가루가 되어 눈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물은 잠시 허공에 멈췄다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땅바닥 속으로 스며들어 내렸다.
특 그 옆으로 새끼 팽귄이 쥐고 있던 종족석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직후에.
출렁.
눈물이 떨어진 땅이 한차례 출렁이더니, 쭈욱 하늘을 향해 솟아났다.
늘어난 땅은 내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 위에는 종족석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말없이 내 앞에 멈춰선 그 종족석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무런 동작을 취하지 않자 종족석은 저절로 날아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홁 속에서 작은 물방울이 튀어나와 내가 들고 있는 [영혼을 담는 병] 속으로 들어갔다.
병이 환하게 빛났다.
-이름 : 알파 어스 팽귄의 영혼이 담긴 병 -등급 : 이벤트 -설명 : 알파 어스 팽귄이 자신의 생명을 다해 뽑아낸 온전한 영혼이 담겨 있다 나는 물끄러미 손에 든 병을 바라 보았다.
[……마스터.]
슈리가 말을 걸어오자 나는 그제서야 병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어서 가라.]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알파가 내가 병을 주머니에 넣자마자 말했다.
[내 자식의 유언이다. 널 쫓아오는 녀석들을 막아달란다. 그러니까 어서 가라. 저쪽 방향으로 가면 될 거다.]
"……그래, 사양하지 않지."
나는 몸을 날려 알파가 가리킨 숲의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을 게 또 뭐 있다고."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십니다.]
"……젠장, 그래, 짜증 나고 우울해 죽겠다. 됐냐? 그 꼬맹이 녀석 때문에!"
내가 짜증을 사방에 발산하며 투덜 댔다.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그게 온전히 '그' 녀석일까?"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그러지는 못할 것 같긴 합니다만…….]
"여기에 온전한 영혼이 들어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보면 안 되려나."
나는 다시 주머니에서 [알파 어스 팽귄의 영혼이 담긴 병]을 꺼내 바라보았다.
"에이, 그것도 일단 제2스테이지 가서야 가능할까 말까 한 일이지. 일단 빨리 가보자고."
[예, 마스터.]
이제 마지막 한 가지만 더 얻으면 된다.
나는 어스 팽귄들이 고르곤과 드레이크들을 잘 막아준 덕분에 아무런 추격이나 방해도 받지 않고 시원하게 두어 시간을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어스 팽귄들의 영역을 벗어나, 중앙화산의 영역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이곳에 바로 내가 얻고자 하는 마지막 아이템이 존재했다.
나는 천천히 손을 앞으로 내밀어봤다. 내 손은 천천히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턱 막혀 버렸다.
'배리어.'
이 중앙화산은 사실 보이지 않는 배리어에 둘러싸여 있었다.
중앙화산을 전부 둘러쌀 정도로 거대하다 해서 배리어가 약하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이 배리어는 수십의 헌터가 수십 분간 모든 공격 스킬을 동원해도 뚫리지 않았던 엄청나게 단단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배리어를 통과할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내가 모은 세 개의 종족석 중 하나를 꺼내 손에 들었다.
여러 개도 필요 없었다. 종족석 중에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됐다.
세 수호종의 종족석을 획득하는 것이 중앙화산에 발을 들여놓기 위한 조건이었다.
나는 빨간색 종족석을 들고 천천히 앞으로 손을 뻗어보았다. 방금까지 배리어가 느껴지던 곳에 곧 손끝이 다다랐다.
그리고…….
스윽- 꿀에 손가락을 찔러 넣는 게 이런 느낌일까?
뭔가 물보다는 진~한 액체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방금 전과는 달리 꿀처럼 부드러워진 배리어를 통과해, 중앙화산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내가 배리어를 중앙화산 영역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뿌우우우응~~!!!!
섬을 뒤흔드는 거대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