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78 알파와 꼬맹이의 격돌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아아아! 쿠우웅!!
땅이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폭풍우 몰아치는 바닷물처럼 온 사방의 땅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알파를 제외한 다른 어스 팽귄들은 땅 밖으로 나오려다 데 굴데굴 구르며 땅속으로 다시 빠져 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알파와 꼬맹이만은 그 와중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땅을 조종했다. 두 개체 모두 다른 어스 팽귄들은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땅의 파도 중 일부가 마치 이무기 처럼 꿈틀거리며 솟아올랐다. 이무기는 나와 꼬맹이가 서 있는 기둥을 집어삼키고자 했다.
그러자 내 품에 안겨 있는 꼬맹이가 손짓했다.
거대한 파도가 우리의 정면으로 솟아올라 이무기를 덮쳐 집어삼켰다. 다시 알파가 손짓하자 거대한 꼬챙이가 나를 중심으로 세 방향의 땅으로부터 솟아올라 우리를 뚫어버릴 것처럼 길게 뻗어 왔다.
꼬맹이가 다시 손짓했다.
그러자 날카롭게 뻗어 오던 대지의 꼬챙이들이 우리를 크게 지나쳐 꽈배기처럼 배배 꼬이며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나는 우리 주변을 둘러싸 버린 꽈배기 속에서 나무와 돌덩이, 그리고 미처 피하지 못하고 휘말려든 동물 과 몬스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들이 터져 나가는 꼴.
나는 그 고래 중 하나가 내 품에 안긴 채로 이리저리 열심히 손짓하고 있는 광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스 팽귄들은 땅과 발이 떨어지는 순간 그 능력을 쓸 수 없다는 데이터베이스의 정보와는 달리, 녀석은 내 품에 안겨 있기 때문에 발과 땅이 어느 정도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땅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녀석이 개체 중 제1 강자라는 알파를 상대로도 거의 박빙의 능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녀석을 보며 치솟는 궁금함을 뒤로하고 얼른 이 기회를 잡기로 했다.
지금은 어떻게 쓰러뜨려야 할지 가장 난감했던 어스 팽귄의 알파를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꼬맹이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플라스마 링에 거미줄로 붙인 뒤 조용하고 은밀하게 날려 보냈다.
알파 어스 팽귄의 모습은 전투를 시작하고부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전투 개시와 동시에 몸 전체를 땅속으로 가라앉힌 채로 전투를 지속하고 있었다 것이다.
이것이 어스 팽귄들의 일반적인 방어 태세였다. 꼬맹이가 제대로 된 공세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알파는 방심하지 않고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녀석들은 땅속에서도 지상의 상황을 환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저런 상태에서도 공격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나는 레일 건을 꺼내어 녀석이 있는 위치를 겨누었다.
땅속에 있는 녀석의 위치를 어떻게 특정할 수 있느냐면, 아까 녀석과 조우하고 있는 동안 슈리가 녀석의 생체신호를 스마트워치에 인식시켜 둔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레일 건에 조준경을 대자 조준경의 시야로 빨간 점이 하나 표시되었다. 그곳이 바로 알파가 있는 곳.
나는 그곳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앙---!!
어깨가 빠질 것 같은 강한 반동과 함께 폭음이 울려 퍼졌다.
자욱한 흙먼지가 날리며 시야가 뿌옇게 되었지만 나는 조준경에 계속 눈을 대고 시야를 살폈다.
'역시.'
빨간 점이 그 자리 그대로 조준경의 시야에 남아 있었다.
알파가 죽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땅바닥을 향해 레일 건을 몇 방 더 쏴준 뒤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고 전방을 살폈다.
그동안 계속해서 나와 꼬맹이를 죽이려는 알파의 공격과 그것을 방어 하는 꼬맹이의 교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꼬맹이에게 불리해지고 있었다.
5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꼬맹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힘들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알파 쪽이 얼마나 지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도 꼬맹이만큼 힘들어하고 있지 않다면 얼마 안가 꼬맹이 쪽이 먼저 백기를 들 것 같았다.
"꼬맹아, 조금만 더 버려봐라."
나는 꼬맹이를 응원하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녀석을 안고 될 준비를 했다.
시간 싸움이었다.
꼬맹이가 버티느냐, 아니면 내가 깔아놓은 함정이 먼저 먹히느냐.
그리고 그 결과가 드디어 드러났다.
풀썩.
꼬맹이가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꼬맹이를 안아 들었다. 나와 꼬맹이가 서 있던 흙의 기둥이 점점 땅바닥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 어떤 공격도 우리에게 행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공격이 갑자기 멈췄고, 공격이 멈춰 버리자 지쳐 있던 꼬맹이가 땅바닥에 주저앉은 것이다.
'이겼다.'
나는 불안정하게 깜빡이는 알파의 생체신호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물속에서 먹이를 구하는 팽귄도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몇 분에 한 번씩은 물 밖으로 나와서 호흡을 해야 한다.
이는 어스 팽귄 또한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은 무한정 땅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끔 땅 밖으로 나와 호흡을 보충해 주어야 했다.
그 때문에 나는 한 가지 꾀를 내기로 했다.
이 공기 속에 독을 섞는 것이다.
언제고 녀석이 땅 밖으로 몸을 드러내 공기를 흡입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란 것을 예상하고, 공기중에 시안화포타슘, 즉 청산가리를 은밀히 살포했다.
그냥 내가 있던 자리에서 청산가리를 살포해 버리면 나와 꼬맹이도 그것을 뒤집어쓸 위험이 있는데다가 알파가 있는 곳까지 가면 농도가 옅어질 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플라스마 링을 이용했다.
플라스마 링은 청산가리 포대를 달고 청산가리를 알파가 숨어 있는 쪽의 땅 쪽으로 은밀하게 향했다.
하지만 육안으로 이상한 가루가 뿌려지는 게 뻔히 보이면 알파가 아무리 조류의 머리를 갖고 있다 해도 그쪽 땅으로는 머리를 디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레일 건으로 먼지를 일으켜 청산가리가 살포되는 장면을 감추었다.
자욱한 흙먼지가 내 의도대로 청산 가리가 살포되는 현장을 훌륭하게 은폐해서 결국 청산가리를 흡입한 알파는,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쓰러져 혈떡대는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대신 거미줄을 만들어 멀리서 그것을 녀석의 몸에 부착 시킨 다음, 끌어당겼다.
청산가리는 공기중에서 흡입했을 때가 특히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다가가는 대신 녀석을 끌고 온 것이다.
녀석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거미줄에 이끌려 내 앞으로 왔다.
[역시 진작에 죽였어야 했는데.]
내 앞에서 고통으로 헐떡거리면서도 녀석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쿡쿡 웃었다.
[이게 운명인가 보군. 축하한다.]
녀석이 잠깐 숨을 헐떡이더니, 말을 이었다.
[알파여.]
"…… 알파?"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건지 슈리에게 물어보고 말았다.
[네, 저도 분명 알파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내 앞에 주저앉아 있는 꼬맹이를 내려다보았다.
"얘가 알파라고?"
알파란, 종족 중에서도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짐과 동시에 종족을 통솔 하는 종족석을 가진 개체를 이르는 말이다.
가장 강한 무력이야 그렇다 쳐도 이 녀석에게는 종족석이 없는데.
"종족식을 이 녀석에게 계승하겠다는 뜻인가?"
[크, 크큭.]
알파가 비웃는다.
[그 녀석의 종족석이 안 보인다고 없는 줄 아나 보군.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지혜는 없는 건가?]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한번 [하늘의 눈]으로 꼬맹이를 살펴보았다.
-이름 : 어스 팽귄 -상태 : 의지할 곳을 찾음 -설명 : [대지의 가호]를 받는 어스 팽귄족의 새끼 바뀐 부분이라고는 '상태' 정보뿐 나머지는 이전에 봤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의지할 곳이라니.'
나는 바뀐 상태 정보를 보고 잠시 머리를 짚었다.
'그건 그렇고…… 이거 말곤 바뀐 게 없는데.'
아무래도 돌아가서 [하늘의 눈]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해봐야겠다.
생각보다 놓치는 정보가 종종 생기는 것을 보니 스킬에 대한 내 이해가 부족했거나, 내가 모르는 다른 변수가 스킬에 작용하는 모양이었다.
[눈치를 보니 무슨 말인지 모르나 보네.]
알파가 말했다.
[하긴, 종족도 다른 녀석인데 알 턱이 없지. 저 녀석의 안에는 이미 종족석이 잠재하고 있다. 아직 저 녀석 아래 종속된 동족이 없어서 그게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지.]
"……넌 이 꼬맹이가 알파라서, 네 자리를 위협할 존재라서 일찌감치 무리에서 배척시킨 거군."
[그렇다. 저 녀석이 계속 동족들과 함께하게 된다면 언젠가 우리 종족은 반으로 양분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파벌과 저 녀석의 파벌로. 나는 그렇게 우리 동족이 쪼개지기 전에 저 녀석을 내쫓은 것뿐이다.]
"왜 네 녀석이 나가지 않고?"
[나는 오랜 기간 무리를 안정적으로 다스린 왕이다. 이런 나보다 저 어린 녀석이 지도자로서 나으리란 보장이 대체 어디 있지? 나는 동족 전체를 위한 선택을 한 것뿐이다.]
"……어떻게 알파가 이번 대에 두 마리나 나왔지? 그리고 너희 종족의 베타는 뭐고?"
[하하,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알파가 기분 나쁘게 비웃었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니까 빨리 얘기해 봐."
[베타는 베타고 알파는 알파다. 베타가 알파가 될 수도, 알파가 베타가 될 수도 없다.]
"한번 베타로 태어나면 영원히 베타라는 건가?"
[그렇다. 알파는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존재하는 한 우리 종족의 새로운 알파는 태어나지 않았겠지.]
"네가 죽어야 다음 알파가 태어난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그렇다.]
"뭐야, 그럼 이 녀석은 어떻게 태어난 거야?"
내가 꼬맹이를 가리키며 말하자 알 파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모르겠다. 간혹 우리 종족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에서도 종족적 특성 또는 연속성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존재들이 태어나는데, 이 녀석도 그런 녀석이지 싶다.]
"돌연변이로군."
[돌연변이?]
"너도 모르는 게 다 있군. 큭큭."
나는 계속 잘난 척하는 알파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에 기회를 만나 실컷 비웃어주었다.
[마스터, 쪼잔합니다.]
'시끄럽다.'
대충 궁금한 게 다 풀렸으니 이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나는 녀석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시간을 끌며 독성이 풀리길 바랐겠지만, 미안하군. 내가 요즘 이런 경우를 통 많이 겪어서."
[……젠장.]
그리고 마무리 일격을 위해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던데다가 앞서와 같이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도 한 적이 없었다.
총구에 걸린 손가락이 움직였다.
"끼익!!"
그때 바닥에서 비실거리던 꼬맹이가 벌떡 일어나 총구 앞을 양팔을 활짝 벌려 막아서며 애처로운 울음 소리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