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77 점점 더 많은 어스 팽귄이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녀석들이 계속 나를 발견하자마자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리를 피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인질이 있으니 공격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아예 나를 역병 보듯하며 피해 버릴 줄은 몰랐다.
'이거 은근 자존심 상하는데?'
어스 팽귄들의 무신경한 행위에 치를 떨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아기 팽귄 녀석이 축 처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녀석을 따돌리는 거였나?'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이 녀석…… 무리에서 겉돌던 놈인 듯했다. 어쩐지 혼자 드레이크에게 잡혀 있을 때도 구하러 오려는 어스 팽귄이 없다 했다.
'대체 아직 새끼인 놈한테 무슨 짓들인지.'
나는 짜증이 일었으나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은 채 묵묵히 아기 팽귄의 뒤를 따라 걸었다.
갑자기 아기 팽귄이 내 손을 놓치고 앞으로 넘어졌다.
내가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아기 팽귄이 딛던 자리의 흙이 내려앉아 있었다. 흙이 내려앉은 자리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정확히 반구형이었다.
어떤 놈이 이 녀석을 넘어뜨리려고 일부러 판 것이다.
아기 팽귄이 영차 다시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내 손을 양팔로 감싸 쥔 채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또 똑같은 장난이 들어왔다.
팟.
나는 바닥에 구멍이 생기는 것을 보자마자 아기 팽귄에게 연결된 거미줄을 당겨 올렸다. 그리고 내 어깨 위에 앉혔다.
아기 팽귄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방향이나 안내해."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아기 팽귄이 끽! 소리를 내더니 자세를 고쳐 앉더니 팔을 척 한쪽 방향을 향해 내 뻗었다.
하지만 다른 팽귄들의 못된 장난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나를 넘어뜨리려는 시도나, 땅에서 벽을 세워 앞길을 막는 등 상당히 치졸한 방법으로 우리를 괴롭히려 했다.
내가 이 짜증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녀석들의 행위가 장난의 범주를 넘지 않는다는 것과 아기 팽귄이 생각 외로 조금 신나 보였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여기로 들어가라고?"
"끽!"
아기 팽귄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게 분명해 보이는 작은 동굴이 보였다. 아니, 동굴이라기에는 통로가 너무 아치형으로 반듯하게 나 있었다.
"여기가 네 집이냐?"
그렇게 묻자 아기 팽귄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네 집이'었'었냐?"
녀석이 아무 소리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이 왕따 팽귄의 부모님 면상 좀 봐야겠다.
* * * 통로는 그다지 깊지 않았다.
나는 가는 도중에 슬쩍 꿈의 조각 카탈로그를 열어 아이템을 하나 구매했다. 만약을 대비한 비상용품이었다.
통로는 채 50미터를 가기도 전에 끝이 났는데 거기서부터 운동장처럼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산 안쪽에 광장을 만들어놨군?'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존재와 조우했다.
광장에 모인 수십 마리의 팽귄 가운데서도 눈에 확연히 띄는 커다란 몸집.
머리 위에 마치 왕관처럼 나 있는 노란색 털.
그리고 무엇보다 이마 한가운데 박혀 있는 파란색의 보석.
"…… 알파?"
알파 어스 팽귄이었다.
-이름 : 알파 어스 팽귄 -상태 : 감정 통제 중 -설명 : [대지의 가호]를 받는 어스 팽귄족의 우두머리. 종족 제1의 강자 아기 팽귄은 내가 발을 멈춰 서자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려 내 옆에 섰다.
나는 녀석의 몸통과 연결된 거미줄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잘 잡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돌아왔느냐.]
중저음의 염파가 울려 퍼졌다.
알파가 내는 소리였다.
[내가 떠나라고 하지 않았더냐.]
"끽끽……."
아기 팽귄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알 파를 올려다보았다.
"설마 저게 네 부모냐?"
"끼익……."
아기 팽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알파가 이 녀석의 부모일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이봐."
내가 알파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인지 아빠인지는 모르겠지만, 넌 부모라는 녀석이 자기 새끼를 내 쫓고 죄책감 같은 것도 없냐?"
없으면 곤란했다.
저 녀석이 죄책감을 안 느낀다면 이 녀석은 인질로서의 효용이 없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눈물은 누구한테 뽑아낸단 말인가? 그렇다고 이 꼬맹이 팽귄한테 뽑아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마음이 아파서가 아니라 영혼의 질 문제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전투가 가능한 성체의 영혼이어야지, 이렇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녀석의 영혼을 가져가 봤자 제2스테이지에서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죄책감? 후후.]
알파가 작게 웃었다. 어딘지 비웃음이 담겨 있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에 따라 주변의 땅이 울렁 거렸다. 단지 알파가 감정을 드러낸 것만으로 대지가 그에 감응하여 일링이는 것이다.
[말은 참 쉽게 하는구나. 네놈이 내 처지였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 나는 네 녀석들의 사정을 몰라. 하지만 적어도 나 같으면 무슨 사정이 있든 자기 새끼를 경쟁 상대 무리에 던져두지는 않았을 거다!"
[……경쟁 상대?]
"그래! 이 녀석, 내가 처음 발견했을 때 드레이크 무리에게 잡혀서 장난감처럼 괴롭혀지고 있었다. 몰랐나?"
[후우.]
알파가 한숨을 쉬는 게 보였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나는 그 녀석을 살려서 보내준 것만으로 충분히 자비를 베푼 거다!]
알파가 약간 격분에 차서 이런 소리를 늘어놓더니, 다시 한숨을 쉬었다.
[내가 왜 이런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는지 모르겠군. 어쨌거나 내가 너희를 이쪽으로 오도록 내버려 둔 건 늦게나마 내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다.]
"……의무?"
왠지 이 의무라는 말이 불길하게 느껴지는데.
특히나 주변에서 요동치는 흙들이 그 불길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쿠쿠쿠쿠- [내 의무란, 위험의 싹을 지우는 거지.]
"위험의 싹? 이 녀석이?"
내가 그렇게 반문하며 팽귄 꼬맹이를 가리켰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젠장, 실패인가.'
아무래도 아기 팽귄을 이용해 눈물을 얻어내겠단 작전은 실패한 것 같았다.
주변의 흙들이 노도와 같이 일어나 나를 향해 덮쳐들었다.
아찔한 점이라면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공동이 전부 흙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는 것이다.
바닥뿐 아니라 벽과 천장이 모두 나를 잡아먹기 위해 무너져 내렸다.
'저 녀석들, 자기들은 흙 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이 곳 전체가 무너져 내려도 상관없다는 거군.'
팽귄 녀석들이 요 아기 팽귄이 다치는 건 피하려고 여기까지 오는 걸 놔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쉽게 죽이려고 함정 속으로 유인한 것이다.
사방이 흙으로 둘러싸인 산속의 공동 전체가 바로 녀석들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전투지였다.
'예상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나는 주머니에서 병 하나를 꺼내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그 속에 들어 있던 노란 가루들이 날아와 내 몸을 감쌌다.
꿈의 조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 중 [요정의 가루]란 것이었다. 효과는 잠시 동안 모든 물리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을 포함한 내 몸 전체가 반투명하게 변하며 흙들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그 어떤 물리 공격도 내 몸을 건드릴 수 없었다.
반대로 나 또한 그 어떤 물리력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내 육체가 잠시 아스트랄 플레인으로 이동해 현상계의 간섭을 배제하게된 것이다.
바닥을 딛는 느낌마저 사라진 현재 내 육체를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정신뿐이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 내가 원하는 곳으로 몸이 날아가는 것을 상상했다. 그러자 내 몸이 나를 덮쳐오는 흙들을 통과해, 천장을 뚫고 들어갔다.
잠시 내 주위에는 암흑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곧 나는 빛이 가득한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허공에 등등 떠다니는 비눗방울을 대충 눈으로 훑었다. 다행히 베히모스의 기분이 좋은지 비눗방울은 충분히 내가 딛고 설 수 있을 정도로 튼실해 보였다.
나는 그중 가장 가까운 방울 위로 올라섰다.
마침 시간이 다 된 [요정의 가루]가 해제되었다.
둥실~ 몸이 비눗방울 위에 내려앉았다.
"끼이익!!"
아래쪽에서 소리가 들려와서 내려 다보았더니, 아기 팽귄이 날 올려다 보며 끽끽거리며 양팔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내 바로 옆에 있었던 덕분 인지 가장 먼저 나를 따라 올라온 것이다.
"너는 네 갈 길……."
거기까지 말한 나는 문득 말을 멈추었다.
[내 의무란, 위험의 싹을 지우는 거지.]
방금 알파가 한 말이었다.
'위험의 싹'이란 게 나를 가리키는 지, 저 녀석을 가리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상 아무래도 저 녀석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나는 비눗방울에서 발을 박차 녀석 앞으로 내려앉았다.
"……꼬맹아."
내가 아기 팽귄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방해하면 죽는다, 진짜."
나는 녀석을 다시 처음처럼 가슴깨에 둘러메었다.
녀석의 어딘지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기 팽귄이…… 하늘을 향해 손을 획! 휘둘렀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
내가 서 있던 땅이 갑자기 솟구치 더니 내 몸을 하늘 높이 띄워 올렸다.
내 발밑으로는 마치 전설에 나오는 용처럼 굵고 기다란 땅의 기둥이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기둥에 의해 띄워 올려진 직후, 내가 디딘 땅의 기둥에 또 다른 땅의 기둥이 와서 박혔다.
쿠우우우─!!
[……네 녀석, 인간의 편을 들 셈이냐!!]
알파의 염파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어느새 알파가 산 위로 그 거대한 몸체를 드러내며 나를 강하게 노려 보고 있었다.
그의 염파와 눈빛에서나는 분노와 동시에 당혹이라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끼익……."
내 품에 안긴 꼬맹이 팽귄이 그런 자신의 어미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젠장, 쫓아내는 게 아니라 일찌감치 죽였어야 하는데……!]
나 또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슈리, 내가 이해하기로 요 꼬맹이가 땅에 기둥을 만들어서 날 공격해 오는 알파의 공격을 피하게 해준 거같은데,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저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마스터.]
'그럼 알파의 공격을 간단하게 흘려버리는 이 꼬맹이는 도대체 정체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