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076 나는 나뭇가지를 타고 쭉쭉 하늘로 점프해 올라갔다. 그리고 드레이크들이 하늘나무의 푹 파인 옹이 안쪽에 만들어놓은 공터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76/215)

  기계신과 함께 076 나는 나뭇가지를 타고 쭉쭉 하늘로 점프해 올라갔다. 그리고 드레이크들이 하늘나무의 푹 파인 옹이 안쪽에 만들어놓은 공터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안쪽에서 아까 보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군.'

  옹이 공터 한쪽에는 마치 새장 같은 나무 우리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작은 어스 팽귄이 한 마리 갇혀 있었다.

  -이름 : 어스 팽귄 -상태 : 삶의 의지를 잃음 -설명 : [대지의 가호]를 받는 어스 팽귄족의 새끼 어스 팽귄은 '땅의 임프'라고도 불리는 종족으로 전체적인 생김새는 우리가 아는 팽귄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성체는 성인 인간의 키를 넘어서까지 성장하며, 털의 색깔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어서 그 색이 형형색색이었다.

  이 녀석들에게 '땅의 임프'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이 녀석들이 땅 위에 있을 때 마치 마법과 같은 일을 벌이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종족 전체가 [대지의 가호]를 받는 모양이네. 개사기잖아.'

  [하늘의 눈]으로 봤을 때 앞선 두 수호종은 알파고르곤만이 [암석의 가호]를, 알파 드레이크만이 [불의 가호]를 받았는데, 어스 팽귄은 알 파가 아닌 모든 종족이 [대지의 가호]를 받는다고 나온다.

  아마 신체 능력이 그냥 팽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른 두 종에 비해 굉장히 약한 데 비해 더 많은 특수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어스 팽귄은 우리가 아는 팽귄이 물속을 헤엄치듯 땅속을 헤엄쳐다닐 수 있었는데, 그뿐만 아니라 땅을 마치 물처럼 만들어 적들을 빠뜨 린다든가, 땅을 일으켜 원하는 구조물을 만드는 등, 땅과 발을 붙이고 있을 때는 그렇게 다재다능할 수가 없는 종족이었다.

  다만 땅에서 발을 떼는 순간 땅을 부릴 수 있는 힘을 상실하고, 특히 땅에서 멀어질수록 비실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우리에 갇힌 저 어스 팽귄도 우리 속에 쓰러져 누운 채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지금 이 옹이는 지상으로부터 족히 수백 미터 높이는 되는 곳이었으니까.

  녀석은 크기가 내 허벅지까지밖에 안 오는 것으로 보아 태어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새끼였다.

  '어쩌다 버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잘됐군.'

  어스 팽귄은 생포하기가 굉장히 힘든 반면 동족애가 강하기로 유명한 놈들이기 때문에 이 녀석을 인질로 삼는다면 알파 어스 팽귄의 눈물과 종족석을 얻어내기가 한결 쉬워질 듯했다.

  나는 우리의 문을 부수고 쓰러져 있는 어스 팽귄을 안아 들었다.

  '이 녀석…….'

  이 새끼 어스 팽귄은 몸 곳곳에 자잘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아까 드레이크들의 대화에서 알파 드레이크가 이 녀석을 괴롭히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녀석에게 학대당하고 있던 듯했다.

  내가 녀석을 안아 들자 녀석의 힘없는 눈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유가선공]과 [천옥보주]를 이용해 녀석에게 치유의 힘을 보태주었다.

  따스한 빛과 함께 녀석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나는 그에 그치지 않고 주머니 속에 비축해 둔 거미 속살들을 꺼내 녀석의 입에 갖다 대었다.

  "먹어."

  녀석은 작은 부리로 새우 살처럼 연한 거미의 속살들을 남남 씹어 먹었다.

  나는 대충 손가락 하나 정도의 분량을 먹이고 나서 [아라크네의 거미 실샘]으로 거미줄을 뿜어내 이 녀석을 내 상체 앞쪽으로 고정했다.

  [꼭 아이 생긴 젊은 아빠 같네요, 마스터.]

  내 꼴이 꼭 포대기로 아이를 안아든 아빠 같은 모양새긴 했다.

  팽귄 녀석이 내 가슴깨에서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입은 계속 오물거리는 게 아직까지 거미 속살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너, 내 인질이니까 얌전히 매달려 있어라."

  나는 새끼 팽귄에게 엄포를 놓고는 옹이 밖으로 몸을 날렸다.

  * * * 이미 알파 드레이크를 타고 고르곤과 드레이크들과는 거리를 많이 벌려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어스 팽귄의 영역에 도달하기 전에 그들에게 따라잡히는 불상사는 없었다.

  어스 팽귄의 영역은 작은 산들이 동산처럼 울룩불룩 펼쳐져 있는 저 산지대였다.

  이 산에 있는 나무들은 지금까지 이 던전에서 봤던 나무들보다는 비교적 작은 편에 속했다.

  나는 품에 안고 있던 어스 팽귄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미 줄로 몸통을 칭칭 감은 다음에 내 손에 연결시켜 두었다. 여차하면 바로 들어올려 녀석을 땅바닥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서였다.

  "자, 너희 가족에게로 찾아가 봐."

  나는 애써 차갑게 말했다.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상처 입고 지친 새끼를 이렇게 이용하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니 이용할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어차피 꿈의 조각도 충분했으니 눈물과 종족석만 얻는다면 이 녀석을 그냥 풀어줄 생각이기도 했고.

  나도 연속으로 고르곤과 드레이크를 상대하느라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이제 전투는 가급적 피할 생각이었다.

  '일단 이 녀석을 인질로 하여 이 녀석의 가족들로부터 눈물을 받아낸 뒤에 종족석을 가진 알파를 찾아 나서야지.'

  이놈들은 가진 능력이 너무 세서 굳이 알파의 눈물을 얻으려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종족석을 얻으려면 알파와 싸우는 것을 피할 수 없겠지만 차라리 싸워서 쓰러뜨리는 것이 나았지, 알파의 감정을 담은 눈물까지 얻으려면 엄청난 생고생이 될 것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너 왜 안 가냐? 빨리 가라니까."

  나는 산속 경계에 내가 내려놓은 상태로 가만히 서 있는 아기 팽귄을 내려다보며 녀석을 재촉했다.

  내가 다리로 녀석을 재촉할 겸 살짝 밀었는데, 녀석은 숲 안으로 들어가기는 커녕 오히려 그런 내 다리를 양팔로 안으며 찰싹 달라붙었다.

  "뭐, 뭐야? 이거 안 놔?"

  나는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었으나 녀석은 내 다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내려다보니 녀석이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들어가기 싫다고?"

  그렇게 묻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게도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군요.]

  '그러게.'

  어스 팽귄들이 똑똑하다고 듣긴 했는데 사람 말까지 알아들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자기 영역으로 들어가라는 건데 도대체 왜 싫다는 건지 모르겠다. 무리에서 한참 떨어져 있던 녀석이라 가족들을 보러 당장 달려갈 줄 알았는데.

  아무튼 내 계획을 위해서라면 이 녀석은 나를 자기 가족에게 안내해야 했다. 하다못해 다른 어스 팽귄에게라도.

  "안돼. 넌 들어가야 돼."

  내가 녀석을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하자 녀석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내 다리에서 양팔을 떼더니, 거미줄을 쥔 내 오른손을 양팔로 잡았다. 녀석의 키가 내 허벅지 까지밖에 안 오다 보니 양손을 머리 높이까지 든 꼴이었다.

  그렇게 내 손을 잡더니 작은 다리를 아장아장 놀리며 나를 끌고 들어갔다.

  "옳지, 잘한다."

  나는 왼손으로 주머니에서 거미 살을 조금 더 꺼내 녀석에게 주었다. 녀석은 입으로 그것을 받아먹고는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와, 귀엽군요. 마스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이 녀석, 착각하지 마. 네가 지쳐서 쓰러지면 나를 안내해 주지 못할 테니까 주는 거다. 네가 이삐서 주는 게 아니라고. 알겠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남은 거미 살을 내 입으로 가져갔다.

  내가 남은 거미 살을 입속에 집어 넣자 팽귄 녀석이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거미 살을 씹어 삼켰다.

  "아까우니까 넌 이제 그만 먹어."

  그렇게 말하며 나는 차갑게 고개를 돌렸다.

  아기 팽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나를 잡아끌기 시작했다.

  근데 슈리가 자꾸 헛소리를 했다.

  [마스터, 이 녀석 배탈 날까 봐 걱정해서 안 주시는 거면서 왜 아깝다고 거짓말하십니까?]

  나는 속으로 흠칫했다.

  '……헛소리하긴.'

  [헛소리 아닙니다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습니다.]

  내 퉁명스러운 말에 슈리가 조용히 입을 닫았다.

  하지만 슈리의 그 말이 내 마음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역시 사람 마음,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솔직히 이 녀석 귀여우니까. 하지만 이 녀석은 몬스터야. 필요하면 나는 이 녀석을 주저 없이 죽일 거야. 나는 헌터고, 그래야만 해.'

  나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그러고 싶은 마음'과 '그래야 하는 것'의 경계를 구분 지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그리고 헌터로서의 일종의 다짐이기도 했다.

  명확한 행동 지침을 정해두고 행동 하지 않으면 위급한 순간에 제대로 행동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한순간의 망설임이 생사를 가른다.

  그런 경우를 내가 겪지 않기 위해나는 상황에 대한 가정과 내 자신에 대한 고찰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는 게 참 쉽지가 않군요.]

  슈리가 그런 내 마음을 읽고는 위로 아닌 위로를 전해왔다.

  '그러게 말이야. 아까는 짜증 내서 미안해, 슈리. 앞으로도 내가 행동과 상반되는 생각을 한다면 잘 지적해 줘. 네 말은 새겨들을 테니까.'

  [마스터가 짜증 내셔 봤자 저는 인간들처럼 상처받거나 하지 않으니 괜찮습니다.]

  '그래도. 아무튼 고맙다.'

  그렇게 슈리와 대화를 나누며 숲속을 걷다가 문득 이 팽귄이 나를 제대로 데려가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이봐, 팽귄."

  내가 녀석을 내려다보자 녀석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냐?"

  "끽!!"

  분명 뭐라 말한 것 같기는 한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너희 가족에게 가는 것 맞아?"

  "끽, 끽!!"

  녀석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 알아듣고 끄덕이는 것 맞겠지?'

  조금 의심이 들었지만 그냥 잠자코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두 마리의 어스 팽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녀석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뭐라 뭐라 끽끽거리며 수다를 떠는 듯 보였는데, 한 녀석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팔로 옆의 팽귄을 툭툭 쳤다.

  근데 두 녀석은 서로 속닥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내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동료들을 부르러 갔나?'

  나는 혹시나 다가올 공격에 주의하며, 특히 땅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며 아기 팽귄이 이끄는 대로 나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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