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071 강하나 일행에게 되돌아오는 길은 멀지 않았다. 구자운이 그림자를 타고 이동한 곳은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71/215)

  기계신과 함께 071 강하나 일행에게 되돌아오는 길은 멀지 않았다. 구자운이 그림자를 타고 이동한 곳은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걱정했잖아요."

  혼자 돌아온 나를 보더니 강하나가 가볍게 타박했다.

  "잘 처리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여기도 다 끝난 것 같군요."

  이미 삼일그룹의 나머지는 강하나 일행이 정리한 듯했다.

  하지만 부상이 없지 않았던지 다들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특히 한서후는 갈비뼈가 부러져서 김소유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이제 신경 쓰이는 일도 다 풀렸으니, 본격적으로 사냥에 들어가 볼까요?"

  "네, 모두 치료가 끝나는 대로 들어가도록 하죠. 아, 그리고……."

  강하나가 나를 으슥한 곳으로 잡아 끌었다.

  "천 실장님 말인데요."

  "천재령 씨요?"

  "네, 소유에게 들었어요. 본모습을 보셨다고……."

  "아…… 예, 봤습니다."

  거미들에게 기습을 당해 잡혀가던 김송호와 천재령을 구출했을 때, 천재령은 남자가 아닌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이름이 '신지혜'였다.

  남자의 모습을 한 지금은 또 다시 '천재령'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와서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부탁드립니다. 반드시 비밀로 해 주세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그에 대해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안 와서 물어보지를 못했었다.

  다시 이들을 만났을 때부터 꽤나 급박하게 상황이 흘러갔던데다, 지금은 구자운으로 밝혀진 정체불명의 상대가 우리 쪽을 엿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언급하는 것을 자제했기 때문이다.

  "쫓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거거든요."

  "천재령 씨를요?"

  "네."

  "도대체 누가……?"

  강하나의 이지스 클랜은 아직 우리 나라 3대 클랜 중 하나로, 비록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그룹인 북두그룹과 결별했다고는 하나 아직 그 이름 값이 드높았다.

  특히 강하나는 한국 헌터계에서 영향력이 꽤나 큰 인물로, 그녀의 수하인 신지혜를 쫓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가 강적이란 것을 시사했다. 그녀가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괜한 걸 물었군요. 그런데 김송호 씨도 천재령 씨의 본모습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겨우 이틀 함께한 사람한테 알려줄 수 있어서야 이미 비밀이 아니다.

  나는 강하나가 곤란해하는 것 같아서 말을 돌려주었다.

  "다행히 김송호 씨보다 천 실장님이 먼저 깨어나서 들키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강하나가 여전히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북두그룹이에요."

  "……설마, 북두그룹이 쫓고 있단 말씀이십니까?"

  "네."

  북두그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지스 클랜을 뒤에서 받쳐주었던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그룹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지스 클랜과 결별하고 자신들만의 헌터 클랜을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어떤 드러나지 않은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내 쪽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하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얘기할 것이 있으면 적절한 선만큼 알아서 얘기하란 뜻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천 실장님은 북두그룹에 납치된 상태였어요. 그걸 저희가 몰래 구출한 거고요."

  납치라니.

  재벌가와 관련된 괴소문은 많았지만, 실제로 납치까지 하는 그룹이었던가, 북두그룹이?

  "그럼 북두그룹하고 결별한 건……?"

  "아, 그건 사실 천 실장님 때문에 라도 그쪽이랑 거리를 두려고 하고 있었고, 그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그쪽에서 먼저 저희를 까줬죠. 안 그래도 북두그룹과는 예전부터 트러블이 많았거든요."

  강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예전 일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일의 심각성을 알려드리기 위해 무결 씨한테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비밀을 저한테 쉽게 알려주셔도 되는 겁니까? 제가 북두그룹에 가서 찌르면 어쩌려고요?"

  "어머, 그럼 뭐……."

  강하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싸우면 되죠."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싸우겠다는 대상에 북두그룹뿐만 아니라 나 또한 포함될 것이라는 암시를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하나가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툭 던졌다.

  "믿으니까요. 무결 씨를요."

  왠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가 쓱스러워 보였다.

  "어떤 근거로요?"

  "음, 사실 클랜 로드로서 그래서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그냥 무결 씨는 믿어도 될 것 같아요. 제 느낌이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솔직히 무결 씨처럼 강한 사람을 적으로 두고 싶진 않아요. 그러니 제 믿음에 잘 부응해 주세요."

  강하나가 나를 보며 눈가를 찡긋했다.

  "저도 하나 씨처럼 강한 사람과는 적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강하나가 잠시 놀란 눈을 뜨더니, 먼 곳으로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네."

  그녀가 눈을 돌린 곳에서는, 해가 부드럽게 노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그녀의 볼도 살짝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 * * 강하나 일행과는 며칠 더 사냥을 함께했다.

  운 좋게도 아라크네 덕분에 폭탄으로 몬스터들을 쓸어담은 경험이 있어서 [제2스테이지 입장권]을 구매 하기 위한 꿈의 조각 500개는 다 모은 상태였지만, 그 외에도 구매해야 할 아이템들이 몇 개 있어서 포인트를 더 모았다.

  한국 클랜의 김송호는 강하나가 페인으로 만들다시피해서 제압해 둔 삼일그룹의 사람들을 데리고 일찌감치 던전 밖으로 나갔다.

  사실 김송호는 이때까지 일행의 전력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자신의 실력에 심적으로 많이 괴로워했다.

  그래서 우리가 던전 밖으로 삼일그룹 녀석들을 인솔할 사람들을 필요로 하자마자 자원해서 스스로 나가겠다고 자처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어깨를 짚어주며…… 추적기를 달아놓았다. 아무래도 김송호에게는 조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서.

  그건 강하나가 잡아놓은 삼일그룹의 [천의 얼굴]이란 스킬을 가진 이두용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던전을 나가는 이 둘에게 추적기를 붙여놓고, 강하나 일행과 함께 사냥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틀 후.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다른 볼일을 보러 일행과 헤어져야 할 때였다.

  근데 한서후가 갑자기 말을 꺼내며 다가왔다.

  "저기, 무결 씨."

  "네, 서후 씨."

  "전에 했던 말씀…… 아직 유효합니까?"

  '전에 했던 말?'

  그렇게 말하면 뭘 말하는지 헷갈리는데. 하도 한 말이 많아서.

  [영입 제의한 거 얘기하는 게 아닐까요?]

  살짝 고민하니 슈리가 대답해 준다.

  그게 맞는 것 같다.

  "아, 물론이죠. 혹시 결정하셨습니까?"

  내가 묻자 한서후가 예의 바르게 웃는다.

  "은혜를 입고도 갚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라 했습니다. 하물며 세 번 이나 무결 씨에게 목숨을 빚졌는데요. 제가 군자는 아니지만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한이 되기는 싫습니다."

  "제가요? 세 번이나 구해 드렸던가요?"

  "예, 처음 뵈었을 때 도심에서 한 번, 그리고 [천살성]으로 이성을 잃었을 때 한 번, 그리고 거미굴에서도 한 번이요."

  "처음이야 그렇다 쳐도 나머지 두 번은 목숨을 구해 드렸다기엔 너무 공치사 같은데요."

  "아닙니다. 두 번 다 무결 씨가 없었으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니다. 아무튼 데려다 써주시면 온 힘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그가 믿음직스럽게 웃었다.

  "아, 아쉽네요. 하긴 사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쪽보다야 지원 빵빵한 은하그룹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강하나가 그렇게 말하며 깔깔 웃었다.

  "로드."

  천재령이 그런 강하나를 짧게 나무랐다.

  강하나는 뜨끔하더니 목소리를가 다듬었다.

  "흠흠, 아무튼 서후 씨 말씀대로라면 우리도 전부 무결 씨에게 목숨을 빚졌네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으셔도……."

  "아뇨, 저희 이지스 클랜은 분명 신무결 씨에게 빚이 있습니다. 차차 갚아나갈 테니 후에 필요한 일 있으시면 얼마든지 연락 주세요. 아, 물론 이번 제2스테이지에서는 당연히 도와드릴 거고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강하나 찬스', 잘 킵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정말 가보겠습니다.

  제2스테이지에서는 조심하시고요.

  "

  "걱정하지 마세요. 조언 많이 해주셨잖아요. 그럼 며칠 후 될게요."

  강하나와 인사를 마치려니 김치우가 끼어들었다.

  "아, 저기…… 형님, 이제까지 감사 했어요."

  "답지 않게 갑자기 웬 존댓말?"

  "그동안 워낙 신세 진 게 많아서 지금이라도 존경의 의미를 담으려고요."

  "닭살 돋으니까 하던 대로 해."

  "헤헤, 알았어, 형."

  또 반말하란다고 바로 한다.

  이런 단순함이 김치우의 매력이긴 하지만.

  "오, 오빠, 감사했습니다."

  김소유도 내게 꾸벅 인사한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슥숙 쓰다듬어 줬다.

  "곧 보자."

  천재령은 내게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는 일행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발걸음을 돌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 * * 던전 '베히모스의 꿈.'

  그 제1스테이지 '꿈의 옅은 곳'은 서울시보다 배정도 클 것으로 추측 되는 크기의 섬이었다. 그리고 이 섬의 중앙에는 커다란 화산이 존재 했다.

  이 화산은 황폐한 돌산으로 거의 민둥산이나 다름없었는데, 이곳은 보기와는 달리지난 생에서도 모든 헌터가 들어가길 꺼리는 험지(險地)였다.

  이곳 자체가 위험하다기보다는 이땅을 지키는 녀석들이 워낙에 흉험한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화산은 세 종류의 수호종이 둘러싸고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 세 종족은 각각 고르곤, 드레이크, 어스 팽귄이라는 놈들이었다.

  나는 그중 고르곤이라는 녀석의 영역부터 찾아갔다.

  '저기 보이는군.'

  다른 헌터나 몬스터들과의 조우는 될 수 있으면 피하며 반나절가량 이동한 결과 마침내 나는 고르곤의 영역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녀석들의 영역은 온통 암석으로 가득한 황무지였다.

  나는 울퉁불퉁한 암석지대의 초입에서 바로 고르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르곤은 마치 코뿔소를 연상시키는 몬스터로, 코뿔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뿔이 거의 몸집에 버금 가는 크기로 자라 있다는 점과 온몸이 단단해 보이는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이놈들은 특기로 [둔화 광선]이란 스킬을 갖고 있었는데, 눈에서 [둔화 광선]을 내뿜어느려진 상대를 거대한 뿔로 치어 죽이는 게 이놈들의 일반적인 전투 방식이었다.

  이놈들이 돌진하는 동안 눈에서 뿜어내는 [둔화 광선]을 맞은 자는 온 몸이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느려 지며 전차처럼 달려오는 놈들에 의해 온몸이 으스러지고는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