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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68 (68/215)

  기계신과 함께 068

  "두 분 다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강하나가 다시 한 번 나와 한서후를 은근한 눈으로 바라본 후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물론 나는 은하그룹을 떠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재고의 여지도 없이 강하나의 제안을 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서후는 혼들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흘깃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속해 있는 한국 클랜에 대한 마음이 진작 떠났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클랜을 찾아볼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아직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은하그룹보다는 이지스 클랜의 손을 잡지 않을까 싶었다.

  '뭐, 그쪽으로 가도 상관은 없지만.'

  사실 나는 한서후가 이지스 클랜 쪽으로 가도 큰 상관은 없었다.

  강하나라면 '천살성'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거 같고, 무엇보다 이지스 클랜은 곧 커다란 위기를 맞이할 터였다.

  그때가 되면 이지스 클랜까지 한꺼번에 흡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계획대로만 된다면 한서후도 어차피 '내 식구'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거기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강하나에게 은근히 뭘 좀 물어 보기로 했다.

  "강하나 씨."

  "네, 무결 씨."

  "얼마 전에 '북두그룹'에서 '새강그룹'으로 스폰서를 바꾸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예. 그랬죠."

  강하나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북두그룹이 갑작스럽게 기존에 계약돼 있던 이지스 클랜을 버리고 그룹 산하로 '북두클랜'을 결성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지스 클랜이 버려졌다는 소문이 한동안 돌았었다.

  하지만 이지스 클랜의 이름은 강하나로 인해 아직 꽤나 높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지스 클랜은 다른 믿을 만한 스폰 그룹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새강그룹.

  우리나라 최고라는 북두그룹보다는 한참 급이 딸리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나름 알아주는 재벌그룹이었다.

  하지만…… 새강그룹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이지스 클랜은 조만간 또 다시 '후원자'를 잃는다.

  그때 나는 이지스 쪽에도 손을 벌려볼 생각이었다.

  '뭐,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가능성은 꽤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강하나 씨, 선물입니다."

  나는 또 다시 관계에 대한 기름칠을 시작했다.

  "네? 갑자기 웬걸요?"

  강하나가 의아한 얼굴로 내가 건넨 것을 받아 들었다.

  "이건……?!"

  "'벙커'예요."

  "벙커요……?"

  그것은 꼭 글루건처럼 생긴 작은 총이었다.

  "이게 벙커라고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강하나가 되물었다.

  "네, 사용법은……."

  나는 간단하게 그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그것을 들은 강하나가 깔깔 웃었다.

  "참 재미있는 사용법이네요. 고맙습니다, 잘 쓰도록 할게요. 근데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조만간 쓰시게 될 겁니다."

  "조만간이요? 무결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왜 이렇게 불길하게 들리는 걸까요?"

  강하나가 살짝 진저리를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감이 좋긴 하네.'

  곧 강하나는 저 '벙커'를 수도 없이 사용하며 내게 감사를 표할 터였다.

  "그런데 이런 걸 선물로 막 주셔도 괜찮아요? 들어보니까 이거 꽤 비싼 거 같은데."

  "투자라고 생각하죠."

  "투자라…… 그것 참 부담스러운 말이네요. 하지만 탐이 많이 나니까 감사히 받아두겠습니다."

  그녀는 텐트를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으며 웃었다.

  '살림력 좋군.'

  기름이 제대로 스며든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이로써 강하나 또한 한서후처럼 꽤 먼 거리에서 추적되는 추적기를 달아놓을 수 있게 되었다. 저 아이템 또한 내가 추적하기 좋게 표지를 하나 달아두었기 때문이다.

  '좋은 의미로 달아두는 거니까 실례를 용서하시길.'

  나는 강하나에게 마음속으로 짧게 용서를 구했다.

  * * *

  "하아, 햇빛이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어요."

  마침내 우리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헌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동굴 밖으로 나오기까지 강행군을 했기 때문에 다들 지쳐 있었다.

  특히 부상당한 김치우와 약한 김소유를 지키면서 돌파를 강행한 강하나와 한서후는 더욱더 기진맥진해했다.

  헌터라고는 하지만 고작 3개월 전 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던 사람들이다. 거기다 김치우와 김소유, 김송호는 아직 미성년자.

  당연히 어두침침한 동굴 속에서 겪은 목숨을 넘나드는 상황이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동굴 밖의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햇빛을 만나자마자 맥이 탁 풀려 버린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긴장을 푼 것은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동굴을 둘러싼 숲속을 둘러봤다.

  숲속은 고요했다.

  '고요라…….'

  지금 우리가 나온 동굴 입구는 들어갈 때의 그곳이었다.

  즉, 오크 부족의 영역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오크 부족이라 함은, 고요와는 거리가 먼 족속이었다.

  나는 슬쩍 강하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플라스마 링을 천천히 앞으로 사출했다.

  "전원 경계."

  나지막한 강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한마디에 들뜬 일행의 분위기가 단숨에 가라앉았다.

  "지금부터 천천히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당황하면서도 천천히 동굴 속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쾅! 과과쾅!!!

  동굴 입구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리더니.

  쿠쿵, 쿠쿠쿵.

  동굴이 무너져 내렸다.

  "이런. 어떻게 눈치챘지?"

  그리고 숲속에서부터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큰 키에 다부진 몸.

  팔에 있는 문신과 껄렁껄렁한 태도 까지.

  사람을 인상만으로 평가하는 게 좋은 버릇은 아니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영락없는 조폭행동대장이었다.

  -이름 : 관성택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광폭화], [거인의주먹]

  "그렇게 냄새 풀풀 날리는데 어떻게 눈치를 안챌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하늘의 눈]으로 녀석을 살피면서도 짐짓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보기보다 눈치가 빠른 놈들이구만. 얘기는 들었다. 니들이 우리 애들을 죽였다지?"

  "저희는 제압만 해뒀습니다만 어느 순간 죽어 있더군요."

  지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

  관성택이 코웃음을 쳤다.

  "못 믿으면 어쩔 수 없지만……."

  나 또한 피식 웃었다.

  "그래서 어쩔 겁니까."

  내 말에 그가 흠칫하는 게 보였다.

  "……야, 이두용."

  "네, 팀장님."

  그의 옆에서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각성자 한 명이 나타났다.

  "저놈들 맞지?"

  "네, 맞습니다."

  이두용이라 불린 각성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인가?'

  나는 그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이름 : 이두용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천의 얼굴]

  '천의 얼굴?'

  고유 스킬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저놈이 15명의 삼일그룹 각성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 그놈인지.

  "봐봐, 네놈들이 죽였다잖아!"

  이두용…… 저자는 우리가 동료들을 생포했기 때문에 우리가 죽였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죽이지 않은 것을 알지만 살인 누명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걸까?

  어찌 되었든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거라는 것.

  녀석의 눈에 깃든 살심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은 우리가 자기 동료들을 죽였든, 아니든 어차피 우리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포인트를 벌기 위해.

  "우리가 안 죽였다는 증거가 있으면 우릴 곱게 보내줄 거냐?"

  "증거? 그런 게 있어?"

  물론 없다.

  "있어도 없게 될걸? 낄낄."

  아마도 그것이 저 녀석에게는 필요 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그가 히죽 웃으며 귀를 후비적거렸다.

  '역시.'

  "근데 여기 강하나 씨도 있는데. 그래도 공격할 건가?"

  "응? 이지스 클랜 강하나 씨?"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강한 헌터시니 포인트 많이 버셨겠구나. 더군다나 지치기까지 하셨네. 이럴 수가!"

  그러면서 히죽 웃는 모습이 역겹기 까지 했다. 쪽수가 많다 보니 두려운 게 없는 듯했다.

  하긴 쌩쌩한 40명 대 부상당하고 지친 7명이니 그렇게 생각할밖에.

  "됐고, 빨리 끝내지. 피곤하니까."

  내가 목을 뚜둑 꺾으며 앞으로 나섰다.

  한서후와 김치우 또한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강하나가 손짓으로 막아 섰다.

  이 또한 나와 얘기가 된 바였다.

  "참 나, 혼자 덤비겠다고?"

  그 꼴을 보고 있던 관성택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말없이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나섰다.

  "다들 나와."

  관성택이 주위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자 하나둘씩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나와!!"

  "에이, 형님, 아니, 팀장님. 저놈 하나 상대로 우리 다 나가야 합니까?"

  "자식아, 호랭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댔어요. 저놈 뭔가 한 방이 있는 모양이니까 방심하다 골로 가지 말자! 그니까 빨리 나와라!"

  '나와라.'

  나 또한 관성택의 말에 따라 속으로 중얼거렸다. 비록 찾는 대상이 그와는 달랐지만.

  비로소 나무 뒤에 숨었던 거의 모든 인원이 나왔다.

  그 수가 대략 40명이었다.

  [많이도 들어왔네요.]

  '그러게. 그 짧은 시간에 50명이 넘는 대인원을 들여보냈어. 삼일그룹, 여기에서 뭘 봤길래 이렇게 큰 출혈을 한 걸까?'

  삼일그룹이 아무리 재계 순위권의 그룹이라 해도 헌터 50명은 절대 가벼운 인원수가 아니었다.

  더더욱 불행한 일은 지금부터 시작 이겠지만…….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건을 손에서 놓았다. 몬스터를 잡느라 들고 있던 코일 건이었다.

  코일 건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다른 총을 꺼내 들었다.

  지금 잡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총이었다. 그 또한 주머니에서 꺼내 자마자 허공에 띄워 올렸다.

  그리고 또 한 정을 꺼내 띄웠다.

  그리고 또 한 정.

  또 한 정…….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공에 떠오르는 총의 수가 늘어갔다.

  그렇게 허공에 떠오른 총기의 수가 10개가 넘어갔을 때, 관성택이 소리 쳤다.

  "공격해!!"

  어딘지 다급함이 느껴지는 음성.

  내 퍼포먼스가 위협적으로 느껴진 모양이다.

  그에 따라 놈들에게서 내게로 총탄이 날아들었다.

  타타타타탕!!

  여전히 총은 많은 각성자에게 있어 위협적인 도구였다. 그래서 스킬을 쓸 수 있음에도 먼저 견제차 총탄을 사용해 공격하는 게 최근의 일반적인 전투 순서였다.

  하지만 어떤 각성자들에게는 총탄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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