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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67 '다들 정신이 없구만.' (67/215)

  기계신과 함께 067 '다들 정신이 없구만.'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김치우의 다리를 집고 오며, 강하나에게 입을 열었다.

  "하나 씨, 소독 좀 부탁해요."

  "아."

  강하나가 정신을 차리고 물의 정령을 불러 김치우의 다리를 소독했다.

  "저쪽도요.

  "네."

  그녀는 내가 하려는 일을 알아채고 누워 있는 김치우의 잘린 다리 또한 물의 정령을 이용해 소독했다.

  물의 정령은 정화와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만큼 생리식염수나 알코올 보다 훨씬 안전하면서도 깨끗한 소독약(?)이었다.

  내가 다리를 들고 다가가자 김소유가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천재령은 살짝 뒤로 물러나며 눈을 떴다.

  의아함이 깃들어 있는 그의 눈을 보며 나는 대답 대신 다리의 절단면을 맞추며 마력을 일으켰다.

  우웅- '뼈와 뼈를 가장 먼저 맞추고.'

  나는 마력을 이용해 김치우의 양다리를 투시하듯 관조했다.

  뼈의 모양, 큰 혈관과 근육, 힘줄 가닥이 눈에 보일 듯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부분들을 최대한 알맞게 이은 후 마력을 이용해 단단히 고정했다.

  이미 2시간이나 지난 뒤였지만 천재령이 치료를 계속해 온 덕분에 외부 조직이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물어가는 부분을 마력을 주입해 다시 터트려 버렸다.

  그리고 재빨리 마력을 주입해 피가 흐르지 않게 지혈을 한 다음 서서히 [천옥보주]의 치유력을 이용해 양 혈관을 봉합했다.

  큰 혈관들을 먼저 봉합한 후, 근육을 이었다.

  그다음은 힘줄, 그리고 작은 혈관들 순으로 치료를 마쳤다.

  "후우."

  [마스터, 저쪽 혈관 조금 틀어졌습니다.]

  슈리 또한 내가 제대로 치료를 진행하는지 모니터링하며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었다.

  큰 치료들을 대강 마치고 눈을 뜨자 사람들이 날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어, 어때요?"

  "수술 잘됐어요?"

  마치 수술 마치고 나온 의사를 보는 느낌이라서 이상한 감정이 들었지만, 나는 일단 저들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기로 했다.

  "예, 수술 잘 끝났습니다."

  "휴우~"

  "감사합니다."

  김소유와 강하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실제로 저 정도 치료면 나름 잘된 치료라 생각했다.

  [의가선공]과 [천옥보주]를 잘 활용 하기 위해 틈틈이 의학 지식에 관해서도 공부했는데, 그게 빛을 발한 것 같았다.

  김치우 또한 회복력이 좋은 녀석이니까 금방 나을 것이다.

  "여러모로 신세 많이 집니다."

  강하나가 웃는 얼굴로 다시 한번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중에 크게 청구할 테니 각오하십시오."

  나 또한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 * * 내 말을 농담으로 알아들은 강하나가 피식 웃었다.

  '제2스테이지에서 개고생할 테니, 그때 가서 원망이나 맙시다.'

  내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그나저나 대체 어떤 공격에 당했길래 치우 씨가 이렇게 다리까지 잘린 겁니까?"

  나는 한서후와 천재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를 장악하고 있던 놈들이 쪽수가 많긴 했지만, 김치우가 이 정도 치명상을 입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도 전투 중이라 자세히는 못 봤습니다만, 맨몸격투를 벌이던 각성자와 싸우던 도중에 갑자기 이렇게 됐습니다."

  '맨몸격투?'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네. 김치우의 다리 상처는 찢긴 게 아니라…… 베인 거였어.'

  힘으로 뜯어진 게 아니라 날카로운 칼붙이로 베인 흔적.

  "혹시 저놈들 중에 어떤 놈들입니까, 치우 씨가 싸우던 사람이?"

  내가 한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분명……."

  한서후가 쓰러져 있는 삼일그룹 녀석들에게로 다가갔다.

  아직 내가 퍼뜨린 연막탄의 연기가 흐릿하게 남아 있는 가운데, 한서후는 하나씩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이 사람도 아니고, 이 사람도 아니고…… 이야, 근데 손을 깔끔하게 쓰셨네요."

  한서후가 감탄하며 말했다.

  "저희가 이 사람들, 가급적 안 죽이며 제압하려고 애 좀 썼죠."

  강하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네?"

  한서후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강하나를 쳐다보았다.

  "왜요? 내가 뭐 잘못 말했어요?"

  강하나 또한 그런 한서후를 의아한 눈초리로 마주 보았다.

  "아니…… 안 죽이고 제압하셨다고요?"

  "네, 뭔가 잘못된 거라도?"

  "다…… 죽어 있는데요?"

  "……네?"

  "다들 심장이나 머리에 치명상이……."

  한서후가 말을 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심각한 눈빛을 주고받는 나와 강하나의 표정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생체 신호 추적어플을 이용해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생체 신호를 감지해 봤다.

  모두 죽어 있었다.

  우리가 마혈을 제압해 두었던 15 명이.

  심지어 방금 전까지 우리에게 공갈을 치던 이대욱이라는 녀석까지 죽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

  '잠깐 시선을 땐 사이에…….'

  나와 강하나는 죽은 자들의 시신을 살폈다.

  한서후의 말대로, 모두 심장과 머리에 날카로운 상처가 생겨 있었다.

  단 일격에 사람을 황천길로 보낼 만한 치명상들.

  '도대체 누가?'

  누군가가 나와 강하나의 감각을 완전히 속이고 쓰러져 있는 열다섯의 목숨을 모조리 앗아갔다.

  만약 그 칼날이 우리를 향했다 '막아낼 수 있었을까?'

  등골을 훑는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직접적으로 나를 향한 칼날은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옆의 사람을 노리는 것에 비해 나를 노리는 위험은 훨씬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그늘아래 들어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것이란 내 믿음에 금이 갔다.

  '어떤 놈인지 알아내야 해.'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생각을 깊게 하다 보니 방금 전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부분들이 생각났다.

  '먼저 이들의 무력.'

  한서후와 김치우, 그리고 깨어난 천재령 정도라면 이들의 공격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어쩌면 반대로 이들을 물리칠 수도 있을 만큼 막강한 전력이다.

  그런데 결과는?

  김치우의 다리가 잘리고, 나머지가 천재령의 [마력 결계] 속으로 도망쳐 목숨을 연명하는 것으로 끝났다.

  우리가 기습을 해서 15명을 제압 했다고는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의아했다.

  "한서후 씨, 혹시 여기 있는 이자들 말고 적들이 더 있었습니까?"

  내가 한서후를 보며 물었다.

  "으음…… 정확한 숫자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만 얼추 맞는 것 같은데요?"

  "그럼 아까 김치우 씨랑 싸웠다던 그 맨몸격투가, 이 중에 있습니까?"

  "잠시만요."

  한서후가 시체들을 하나하나 모두 확인해 봤다.

  모든 시체를 확인한 그가 내게 말했다.

  "이상하군요. 없습니다."

  "흐음……."

  "그자가…… 자기 동료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말을 흐리며 아까 무심히 흘렸던 말하나를 더 떠올렸다.

  '분명 '조장'이라 그랬어.'

  "다만 일단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시체들이 이렇게 많으니……."

  한서후가 주위를 둘러보며 꺼림칙 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낸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놈이 지원군을 끌고올지도 몰라서요."

  "지원군이요?"

  "예. 아까 듣기로, 이놈들 자기대장을 '조장'이라 부르더군요."

  "……아! '조장'이면 조 단위로 움직인다는 뜻이니, 말씀대로 지원군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강하나가 금세 내 말뜻을 알아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빠져나간 사람이 지원군을 부른다면 피곤할 수 있으니, 얼른 자리를 옮기죠."

  내 말에 일행이 서둘러 일어나며 자리를 옮길 준비를 했다.

  "치우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강하나가 치우를 한 손으로 들어 어깨에 짊어졌다.

  김치우는 마치 짐짝처럼 강하나의 어깨에 매달려 버렸다.

  나는 간이 텐트를 철거한 후 한서후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나저나 이 텐트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런 환경에서는 생각지도 못하게 편히 쉴 수 있었어요."

  한서후가 내가 내민 지갑 크기로 축소된 텐트를 보물이라도 되는 양 소중히 품속에 넣으며 말했다.

  나는 씨익 웃었다.

  "제 말대로 던전에서 도움이 많이 되죠?"

  "네, 넘칠 만큼요."

  한서후가 밝게 대답했다.

  역시선물은 인간관계의 윤활유.

  '흐음, 던져봐?'

  나는 분위기가 좋아진 김에 슬쩍 심중의 생각을 꺼내보기로 했다.

  "한서후 씨, 혹시…… 그런 아이템들 더 받고 싶은 생각 없으세요?"

  "네? 아하하, 감사하지만 선물은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더 주신다면 부담스러울 겁니다."

  한서후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일하는 곳에서 같이 일하신다면 이 정도 아이템은 얼마든지 지원받을 수 있거든요."

  내 말에 한서후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저 스카우트하시는 겁니까?"

  나는 말없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긍정의 표시였다.

  "허어, 지금 바로 옆에 사람들 두고 뭐 하는 건가요? 러브콜이 너무 뜨거운 거 아닙니까? 남사스럽게."

  강하나가 그런 우리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럼 저도 한마디만 하지요! 두 분, 저희 클랜에 오실 생각은 없나요?"

  강하나가 지그시 나와 한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저까지요?"

  내가 약간 어안이 벙벙해서 물어보았다.

  "네, 저희는…… 천 실장님, 홍보실 실장님답게 우리 클랜 PR 좀 해봐요."

  "전에는 정보실 실장이시라면서요?"

  "홍보실 실장님도 겸임하고 계세요."

  들어보니 왠지 천재령이 홍보실 실장만 겸임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저희는 스킬에 관한 여러 '노하우'들이 있습니다."

  그때 천재령이 별다른 표정 없이 말했다.

  "스킬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죠. 이에 대한 노하우를, 저희 클랜원이 된다면 아낌 없이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특히 신무결 씨."

  천재령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이라면 더욱 많은 것을 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꼭 한번 생각해 주세요."

  "와."

  강하나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우리 영업실 실장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건 처음 들어요."

  나는 대체 이 강하나라는 클랜의 로드가 천재령이란 천재 클랜원을 얼마나 부려먹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나저나 스킬 활용법이라. 혹시 비밀이 거기에 있나?'

  '천재령'이 '신지혜'라는 이름을 숨길 수 있었던 이유.

  나는 [하늘의 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계 스킬'은 처음 얻었기 때문에 그 활용법에 있어 아직 미진한 것은 사실이었다.

  혹시 천재령이 자신의 본명을 숨길 수 있었던 것도 이 정보계 스킬에 어떤 특이점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되었다.

  "천 실장님이 무결 씨가 많이 탐나시나 보네요. 아, 한서후 씨, 그렇다고 당신이 탐나지 않는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진지한 제안이니 꼭 신중히 고려해 주세요."

  강하나가 나와 한서후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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