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66 다음 날.
[마스터, 일어나시지요.]
자고 있던 나는 슈리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왜 그래, 슈리?'
보통 내가 자고 있을 때는 웬만해선 깨우지 않는 슈리이므로, 지금 그녀가 나를 깨웠다는 건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빨간 점들이 사라졌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전, 한서후와 김치우, 신지혜와 김송호를 가리키던 점 네 개가 거의 동시에 사라졌어요.]
……뭐?
'그 얘기는 네 명이 죽었다는 건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곤히 자고 있는 다른 두 명을 깨웠다.
"……뭐라고요!?"
잠시 잠결에 취해 있던 강하나가 내 이어진 설명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치우가 죽었다는 거예요?"
김소유가 울먹거리며 물었다.
"아직은 모릅니다. 가봐야 알아요."
우리는 급하게 네 사람을 찾아 출발했다.
'슈리, 그들이 있던 위치 정보는 저장되어 있지?'
[네, 3D 맵에 표시해 놓겠습니다.]
많은 몬스터들이 여전히 우리를 막아섰지만 아라크네가 사라진 뒤로 단합력이 사라진 거미들은 처리하기 쉬웠다.
목적지 표시기능과 우리가 지나가는 주변 지리를 자동으로 표시해 주는 3D 맵 덕분에 우리는 나선 지 겨우 2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니, 목적지가 보이는 바위 뒤에 숨어서, 목적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내가 건네준 텐트가 보였다.
그런데 그 텐트를 사용하고 있는 자들은 김치우 일행이 아니라, 못 보던 자들이었다.
"저놈들…… 뭐야?"
강하나가 이를 으득 갈며 물었다.
텐트 주변으로는 10명가량의 각성자가 북적거리고 있었다.
물론, 김치우와 한서후, 신지혜와 김송호는 모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치우는…… 어디 간 걸까요?"
김소유가 속삭였다.
강하나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심각하게 마주 보았다.
어제 못 본 사람들.
즉 저들은 베히모스 임시 지휘소에서 같이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라, 그 이후에 유입된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정말 많이도 왔군.'
이곳이 꿀던전 중의 꿀던전으로 알려진 이상,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헌터가 이 던전을 들어오기 위해 몰려들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꿀이 흐르는 제1스테이지만큼이나 제2스테이지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도 치열한 상태였다.
그 말은 즉 인간들끼리의 살의 또한 치열하게 커진 상태라는 뜻이었다.
'핏자국이 있어.'
이 두 사람에겐 잘 안 보이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내공을 눈에 집중 해서 본 결과 텐트 주변에 피가 된 흔적이 잔뜩 있었다.
다 합치면 사람 한 명분의 피는 될 것 같았다.
'설마…… 다 당했나?'
김치우 일행과 이들이 전투를 벌였던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빨간 점이 모두 사라졌다.
즉 그 전투 결과 김치우 일행이 모두 당했다…….
지금 보이는 것으로는 그렇게밖에 추측할 수 없었다.
"야, 이 텐트 진짜 좋네. 어떻게 가져갈 방법이 없을까요?"
"글쎄, 방법을 알았다면 대장도 여기서 죽치고 있지 않았을걸? 그나저나 침대가 그렇게 좋나? 조장 지금 두 시간째 누워서 자고 있잖아?"
두 각성자가 투덜거리는 게 들렸다.
텐트는 침대 아래 있는 버튼을 조작하면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온다. 그것을 모르는 게 저들이 이곳에 남은 원인인 듯했다.
우리는 잠자코 이야기를 더 들어보았다.
그러나 놈들은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눌 뿐 어디에서도 김치우 일행에 대한 정보는 알아낼 수 없었다.
'답답하군.'
김치우 일행은 진짜 저놈들에게 당한 걸까?
기절한 신지혜과 김송호를 보호해야 했으니 한서후와 김치우로서도 쉽게 전투를 벌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했다고?
그때 김소유가 뭘 발견했는지 숨을 들이켜는 게 보였다.
"어, 언니."
"왜 그래, 소유야?"
"저거.. 우리 오빠....."
김소유가 말을 잇지 못하는 가운 데, 나와 강하나가 김소유가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움직이기 편하게 제작된 검은 전투화가 보였다. 그리고, 그 전투화가 신겨진다리도. 그 무릎에서부터 잘린다리의 단면에서부터 흘러나온 피도.
일부러 멀리던져놓은 듯 저놈들 일행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나와 강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자식들……."
강하나가 이를 으득 갈았다.
이로써 명백해졌다.
저놈들은, 우리의 적이었다.
"어떻게 하실 거죠?"
내가 강하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쳐야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시죠."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저놈들 쪽으로 던졌다.
"자, 잠깐만요."
강하나가 황당하다는 듯 날 보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조차 듣지 않고 튀어나갔다. 그러면서 강하나에게 고글을 던져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던진 두 개의 연막탄으로부터 연기가 솟아올랐다.
시작은 내 총이었다.
탕!!
"으악!"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것을 시작으로 전투가 재개되었다. [마법강탄].
[윈드 이레이저].
[검기발현].
녀석들이 다양한 스킬을 쓰며 대항해 왔으나, 기습으로 이미 세 명이나 처치한 데다가 시야의 유리함마저 차지한 우리를 당할 수는 없었다.
이 연기는 마력으로 상대를 감지하는 것조차 차단할 수 있는 특별한 것으로, 내가 강하나에게 던져준 고글은 이 연기 속에서도 피아를 식별 할 수 있는 특수장치였다.
물론 둘 다 은하그룹에서 개발한 디바이스였다.
"뭐…… 뭐얏!"
그때 텐트에서 자고 있다던 조장이 튀어나왔다.
녀석은 그래도 조장이란 이름을 괜히 단 게 아니라는 듯, 연기 속에서도 빠르게 우리의 위치를 파악해 총격을 가해왔다.
그러나 명중률이 형편없는데다 내 슈트를 뚫을 만한 위력도 안 나와서, 내 대응사격에 팔과 어깨를 두드려 맞고 무기를 놓치고 말았다. 녀석들은 금방 정리되었다.
"후우."
강하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각성들끼리의 전투라는 게 변수덩어리라 어떤 위험한 게 언제 튀어나올지 잘 몰랐다.
그래서 어떤 자들과의 싸움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놈들은 전부 전투불능이 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우리는 그런 놈들을 하나씩 제압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놓았다.
각성자들이니만큼 단순한 끈 같은 걸로는 묶을 수가 없어서 그냥 간단하게 마혈을 짚어버렸다.
나는 사로잡은 조장 녀석의 정보를 확인해 봤다.
-이름 : 이대욱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위협]
그는 심문을 위해 마혈을 짚지 않았다.
그런데 뭘 믿고 있는 건지 녀석은 사로잡힌 상태에서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봐."
어디서 건달 짓을 좀 해봤는지 놈이 목소리를 쫙 깔고 얘기하자 제법 분위기가 있었다.
"몸 성히 돌아가고 싶으면 지금 이거 풀지?"
그러면서 그가 큭큭 웃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따귀들인지는 몰라도 삼일그룹 정도는 들어봤겠지? 지금 보내주면 없었던 일로 해줄 테니까, 가라."
'삼일그룹?'
꽤 들어본 적 있는 우리나라 재벌 그룹이었다.
'전생에서는 소문이 꽤 안 좋았지.'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지만 기회가 오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악질적인 놈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래부터가 조폭들을 끼고 불법적인 일들을 자행하던 건설그룹이라서 그런지, 헌터계에 뛰어들어서도 뒤에서 사람들을 등쳐먹는 방식으로 헌터계에 악명이 자자했다.
그 악명은 지금도 헌터들 사이에서 조금씩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었다.
['위협' 스킬이 시전되었습니다.]
배경을 등에 업은 놈의 위협.
['하늘의 눈'이 '위협' 스킬을 무효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내 스킬에 의해 간단히 무효화되었다.
녀석도 그 메시지를 듣더니 흠칫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는 모르는 척 다시 우리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봐, 강하나 씨.. 동료들 목숨이 아까우면 이거 좀 풀지?"
그가 피식 웃으며 강하나를 올려다 보았다.
강하나를 바로 알아본 걸로 보아, 아무래도 놈들은 김치우 일행이 강하나의 동료들이란 것을 알고도 공격한 것 같았다.
강하나가 그 말에 이를 악물며 손을 꾹 쥐었다.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떨어져 있는 김치우의 다리를 보았으니 동요할 만도 하다.
김치우 일행이 납치된 것으로 생각 될 테니.
하지만 난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비단 [위협] 스킬이 통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 안 나오지?'
내 눈에는 [하늘의 눈]으로만 보이는 마력의 특이점이 보였다.
거기에는 이런 이름이 붙어 있었다.
[마력 결계].
바로 신지혜가 가진 4개의 고유 스킬 중 하나였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거기에 손을 올려보았다.
'이거 어떻게 풀지.'
그렇게 고심하고 있을 때.
[마스터, 제가 해킹해 보겠습니다.]
'해킹?'
[네, 이 마력결계,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잠시 그렇게 손을 얹고 있어 주십시오.]
나는 슈리가 시키는 대로 마력의 특이점에 손을 얹고 있었다.
몸에서부터 내 마력이 일부 빠져나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마력이 마력의 특이점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수 초 후.
쨍- 귀가 아닌 몸으로 느껴지는 짧은 진동과 함께 눈앞에 네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리가 잘린 김치우와 그의 다리에 손을 얹은 채로 눈을 감고 마력을 내뿜고 있는 신지혜, 아니, 천재령의 모습을 한 그녀와 그 옆에서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 한서후와 김송호였다.
'저래서 밖의 상황에도 나오지 못한 거군.'
결계 밖을 살펴야 할 천재령이 치료에 집중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결계 밖의 상황을 몰랐던 것이리라.
"치우야! 천 실장님!"
드러난 서로의 모습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강하나였다.
그러나 그녀가 부른 둘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대답한 것은 한서후였다.
"강하나 씨? 무결 씨?"
그와 김송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치우야!!"
김소유가 입술을 깨물며 피로 물든 김치우를 향해 달려갔다.
"큭."
뒤에서 이대욱이 입술을 짓씹는 소리가 들렸다.
공갈 협박이 실패했으니.
"어머, 어떡해. 어떡해."
김소유가 눈물을 흘리며 김치우의 다리에 손을 올리며 치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