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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64 똑, 똑. (64/215)

  기계신과 함께 064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음……."

  "정신이 드세요?"

  내 신음 소리에 누군가가 반응했다.

  "김소유…… 씨?"

  "네, 네, 저예요!"

  김소유가 반색을 했다.

  "무, 물 좀 주세요."

  타는 듯한 갈증에 나는 물부터 찾았다.

  김소유가 바로 물병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물을 받아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아까 내가 레일 건으로 뚫어놓은 동굴이었다. 레일 건의 위력이 제법 강력했던 덕분에 동굴은 세 사람이 들어갈 만큼 제법 깊숙이 뚫려 있었다.

  다만 바닥이 매우 거칠었을 텐데, 누울 수 있게 편평하게 손질이 된 모양새였다.

  그 한쪽에는 강하나가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무결 오, 오빠가 쓰러진 뒤에 언니도 바로 쓰러졌어요."

  '.. 오빠?'

  "오, 오빠라 불러도 되죠?"

  ".. 그래요."

  갑자기 왜 오빠라 부르겠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러라고 했다.

  "오빠도…… 말씀 편하게 하세요."

  김소유가 수줍게 볼을 붉히며 말했다.

  "그래…… 크윽."

  나는 대답을 하다 말고 배를 움켜 쥐었다. 아직 통증이 심한 것을 보니 당분간 무리한 움직임은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후우, 그래도 다행이군.'

  나는 어느새 멀쩡하게 수복되어 있는 미슈릴 슈트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어찌 큰 피해 없이 아라크네를 해치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혼자였다면 더 많은 자원을 소모했을 것은 자명하고,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크게 다치고 나서야 싸움이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김소유의 버프와 강하나의 조력이 있어서 이 정도에서 아라크네를 퇴치할 수 있었다.

  '강하나, 생각보다 훨씬 강했어.'

  그래도 유니크 무공 [유가선공]과 [배틀센스]가 있어서 맨몸으로도 어느 정도 대적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했는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역시 10강의 이름은 이유가 있었다.

  '그나저나 정령과의 합체였나?'

  정신을 잃기 직전에 보았던,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 같던 그녀의 모습은 아마 불의 정령과 합체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게 [108정령의 가호]라는 스킬의 진정한 위력인가 싶었지만, 단일 스킬의 위력이라기엔 위력이 너무 셌다.

  '습득한 다른 스킬과 연계한 거겠군.'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킬은 동시에 여러 개를 사용할 수 있고, 사용자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스킬들이 맞물려 더 강력한 위력을 뽐내기도 한다.

  강하나가 사용한 스킬은 아마 지금 내가 [하늘의 눈]으로 보지 못한 다른 스킬과 그녀의 고유 스킬인 [108정령의 가호]가 연계된 것이라 추측되었다.

  이것을 사용하고 나서 그녀도 탈진 하다시피 한 것을 보면 소모값이 정말 큰 스킬인 듯했다.

  '쓰고 나서 상대를 못 죽이면 자신이 죽는 스킬, 비장의 수로군.'

  내가 아라크네를 죽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녀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

  '무모했어.'

  "무모했어요."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이 그대로 내 앞쪽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띠고 들려왔다.

  어느새 일어난 강하나가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원래 우리, 시간만 끌기로 한 것 아니었나요?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도박을 했어요?"

  강하나가 질책 어린 목소리로 물어 왔다.

  "도망가려면 도망갈 수 있었잖아요."

  그녀의 말이 옳았다.

  아라크네를 잡기로 결심한 건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네, 맞습니다. 도망갈 수 있었죠."

  "그런데 왜 도망가지 않은 거예요?"

  "그 상황에서 도망쳤으면, 희생자가 생겼겠죠."

  "……희생자요?"

  강하나가 의아한 듯 물어왔다.

  "지금 바로 김치우 씨한테 연락해보세요."

  "……알았어요."

  뭔가를 느낀 듯 강하나가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무전기 비슷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아니, 비슷해 보이는 게 아니라, 무전기인 모양이었다.

  곧 그 기기로부터 김치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나!!! 무사한 거예요?

  "치우야, 어떻게 된 거야? 너 왜 아직 남아 있어?"

  강하나가 던전을 탈출했을 것으로 예상한 치우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 물었다. 던전을 탈출 하면 무전기가 연결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탈출할 수 없었어요.

  도망가려면 도망갈 수 있었다.

  나 혼자서.

  -하지만 천 실장님과 김송호 씨가 깨어나지 않아요.

  나는 3D 맵으로 이들이 던전 밖으로 못 나가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 도망쳐 봤자 곧 아라크네에게 잡힐 게 뻔했고, 그때는 도망칠 기회조차 잡지 못할 것이란 걸 아까 싸우는 도중에 알아챘다.

  그래서 다소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아라크네를 잡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 핵연료구슬을 터뜨리려고까지 했었다.

  벨트에 꽂혀 있던 핵연료구슬은, 배를 꿰뚫은 아라크네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했다. 슈리가 적절한 때 위치를 옮겨주었기 때문이다.

  "……무결 씨는 치우가 못 나가고 있던 것을 파악하고 계셨나요?"

  "네."

  "하아…… 빚을 졌군요."

  강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도중에 살짝 비틀거리는 게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 같진 않았다.

  그녀는 일어서서 내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저희를 위해 목숨을 걸어주셔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헌터라면 모두 이렇게 했을 겁니다' 따위의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실제로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고 남을 도울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로서도 다소간의 위험을 감수한 게 맞았다. 배가 뚫려 버렸고, 하마 터면 저세상에 갈 뻔도 했다.

  대신 나는 속이 보이지만,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바라는 게 있어서 도와드린 겁니다. 강하나 씨에게도, 한서후 씨에게 도요."

  "그게…… 뭐죠?"

  강하나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네."

  "대신 지금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긴 합니다."

  "그게 뭐죠?"

  "이번 던전이 끝날 때까지 저에게 협력해 주실수 있겠습니까?"

  "협력……요?"

  물론 지금도 협력해서 사냥을 하고 있으니 협력이라면 협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강하나도 내가 말한 게 그런 의미가 아니란 것 쯤은 알아챘다.

  "네, 협력요. 이 던전이 끝날 때까지 협력을 맺고 싶습니다."

  "음……."

  강하나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내게 받은 은혜와 나의 저의, 그리고 나와 협력을 맺었을 때의 장단점을 간단하게 두드려 보는 것이다.

  "천 실장님과 상의해 보겠습니다만……."

  천재령은 이지스 클랜의 정보실을 맡고 있으니 그와 상의하겠다는 강하나의 대답은 당연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대답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이 대답을 시작으로 천천히 조금씩, 하지만 확실한 우호 관계를 만들어간다면, 내게 쓸만한 패가 하나 더 생기는 거였다.

  '일단은 제2스테이지에서 중간보스를 맡아줘야겠어.'

  이로써 제2스테이지 보스 공략에 필요한 세 자리 중 두 개는 채워졌으니…….

  '이제 한 그룹만 더 구하면 되는데.'

  머릿속으로 몇몇 후보군을 떠올리고 있을 때 다시 김치우로부터 무전이 왔다.

  * * * 우리는 김치우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내 3D 맵이 있었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다만 예기치 못한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동굴이 무너져 길이 아예 막혀 있었다. 지반 자체가 무너진 것이기 때문에 뚫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다른 길올 찾아야겠네요."

  강하나가 그렇게 말하며 김치우에게 사정을 말했다.

  -이런.

  김치우가 난감해했다.

  -여기 생각보다 온도가 너무 낮아요. 저희야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내공도 없는 천 실장님과 김송호 씨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식량도 없고.

  "아, 그거라면 한서후 씨에게 제가 전에 드린 선물을 사용해 보라고 하세요."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선물요?

  "네, 유용하게 쓰실 겁니다."

  내 말에 김치우가 한서후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우왓, 뭐야, 이거!

  김치우가 깜짝 놀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뭔가 위잉 찰칵 하는 소리가 계속 해서 울려 퍼졌다.

  -이거 대박이다!

  "왜, 뭔데?"

  강하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웬 지갑 같은 게 집이 됐어요.

  "뭐?"

  -지갑 같은 게 집이 됐다구요!

  "그게 무슨 헛소리야?"

  강하나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아,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데. 아무튼 우리는 여기 있을 테니까 좀 찾아와 주세요.

  "그래, 알았다. 어디 돌아다닐 생각 말고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

  강하나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무전을 끄려 했다.

  "잠깐만요."

  내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다시 길을 나서면 서로 만나기까지 한참이 걸릴 겁니다. 지금 다들 너무 지쳐 있으니, 쉬었다가 내일 만나죠."

  강하나가 우리의 몰골을 바라봤다.

  다들 몬스터들과 싸우느라 헤지고 피폐해진 모습이었다.

  "……그래요. 치우야,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수 있겠어?"

  -네, 여긴 몬스터가 없어서 괜찮아요.

  "그래, 그럼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내입 데리러 갈게."

  그녀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시간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쩐지 피곤하더라니."

  강하나가 중얼거렸다.

  "자, 그럼 이제 어쩌죠?"

  그녀가 날 보며 물어왔다.

  "저희도 체력이……. 이제 좀 쉬죠. 오늘 하루 고생했잖아요."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던전에 들어온 첫날부터 워낙 개고 생을 했던지라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이다.

  "근데 치우는 도대체 뭘 본 걸까요?"

  김소유가 궁금하다는 듯이 우리를 올려다봤다.

  "글쎄, 나도 궁금하네."

  강하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이걸 겁니다."

  내가 지갑 크기의 작은 직사각형 물건을 꺼냈다.

  "그게 뭔데요?"

  "우리의 오늘 밤을 책임져 줄 물건 이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거기에 달린 버튼을 조작했다.

  그러자 그 지갑 크기의 물건이 빠르게 부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땅바닥에 던져두고 뒤로 물러섰다.

  강하나와 김소유 또한 점점 커지는 그 물건으로부터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이내 그것은 사람 5명은 누울 수 있는 크기의 텐트가 되었다.

  "와~"

  김소유가 탄성을 질렀다.

  말이 텐트지, 안에는 푹신한 침대에 간단한 가재도구들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실내 온도 조절 장치까지 달려 있어서 텐트 밖에 비해 굉장히 아늑했다.

  "어…… 떻게 그 작은데서 이런 게 다 나와요?"

  김소유가 소심하게 물었다.

  "특수 금속이래요. 엄청나게 얇게 압축되는.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요."

  사실 주워들은 게 꽤 있어서 설명 하려면 할 수도 있었지만 귀찮아서 얼버무려 버렸다.

  "저, 저희도 여기서 쉬어도 돼요?"

  "네, 하지만 침대는 제 겁니다."

  "그것까지 뺏을 염치는 없어요. 그리고 반말 쓰시라니까."

  김소유가 헤헤 웃으며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신세 좀 지겠습니다."

  강하나도 꽤나 신기해하며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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