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62 '겨우 최대 사정거리에서 나를 잡으려고?'
거미줄은 사방에서 빠르게 나를 죄여왔지만, 기계룡의 미사일 탄막군도 피했던 나다.
저런 거미줄 뭉치쯤 못 피할쏘냐.
나는 이미 공간을 점유하고 있던 거미줄과 양쪽 벽을 박차고 아래로 내려가며 어렵지 않게 거미줄들을 피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레일건을 갈겼다.
콰아아아앙!! 쿠와아아앙!!
쏠 때마다 팔이 떨어질 것처럼 거센 반동이 되돌아왔다.
레일 건은 위력이 굉장히 좋았지만, 솔직히 지금처럼 배틀 슈트와 내공으로 온몸을 강화하지 않았더라면 개인 화기로 쓸 무기는 아니었다.
[최초의 던전]에서 [총기 변신]으로 단 한 번 사용했을 당시의 레일 건은 지금보다 더 먼 미래의 무기였기 때문에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거였지, 그때의 내가 지금의 이 레일 건을 사용했더라면 반동만으로 팔이 찢겨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강한 레일 건도 달려드는 아라크네를 주춤하게 하는 선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
녀석이 내뿜는 질기고 강력한 거미 줄이 보호막 역할을 해준 덕에 위력이 경감되었고, 아라크네의 강철같이 딱딱한 몸체에 막혀 튕겨 나갔기 때문이다.
[호오, 아이야. 너 꽤 성깔이 있구나? 그런 아이는 싫어하지 않아요~]
아라크네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그러나 행동만큼은 그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기괴하게 빨랐다.
샤샤샤샥-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아라크네는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거미 줄을 끊어내며 미친 듯이 벽을 타고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거미줄이 끊어진다기보다 녀석의 몸이 닿으면 그대로 그 몸에 흡수되듯 사라지고 있었다.
"이거 어쩌나. 나는 성질 사나운 아줌마는 싫어하는데."
[호호호, 입담도 꽤나 앙칼지구나? 내 인형이 되어서도 그 입담을 유지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플라스마 링을 사용해서 녀석을 베어보려 했지만, 플라스마는 녀석의 단단한 갑피를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오히려 녀석의 몸에 부딪혀 당장에라도 박살이 날 것 같아서 재빨리 회수했다.
저처럼 질량이 거대한 녀석을 상대 하기에는 플라스마 링은 그다지 좋은 무기는 아니다.
지금 상황은 당연한 말이지만, 별로 좋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난 뜻밖의 대적은, 공략법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2스테이지의 녀석들보다 훨씬 까다롭게 느껴졌다.
더더욱 악질적인 것은, 상대해야 할 적이 아라크네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크에에엑!!
아래쪽에서 올라온 거미들이 기어이 내 주위를 포위했다.
거미들은 미친 듯이 몸을 날려 나를 뒤덮으려 들었고, 일부는 벽에 남아 거미줄을 쏴대고 있었다.
나는 아라크네를 견제하면서도 끊임없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사방으로 던져대었다.
콰콰콰콰쾅!!
[공간주머니]를 이용한 물량공세.
얼마 전에 얻은 유니크 아이템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는 중이었다.
'제길, 좀 아까운걸?'
하지만 이 상황이 호재라 할 수만은 없는 게, 이 모든 게 제2스테이지에서 사용하기 위해 준비한 군수 물자라 할 수 있었다.
그걸 여기서 사용해야 하다니.
'제2스테이지는 좀 더 피곤해지겠구나.'
한숨을 쉬면서도 계속해서 폭탄을 비롯한 물자들을 물 쓰듯이 쓰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일단 이 위기를 넘기지 못한다면 제2스테이지고 뭐고 목숨이 아웃되게 생겼으니.
* * * [그따위 잔기술밖에 없느냐? 다른 걸 꺼내 보아라!]
아라크네가 광기에 가득찬 움직임으로 나를 따라붙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바닥에 내려앉았다.
바닥에서 위를 올려다보던 몬스터들은 이미 거의 폭사해 버린 덕에 거치적거리는 놈들은 없었다.
하지만 양쪽에서 계속 몬스터들이 몰려들고 있었고, 나는 아라크네를 견제하는 동시에 놈들도 레일 건으로 쏴 쓸어버리고 있었다.
한 방에 십수 마리의 몬스터들이 쓸려나갔다.
나는 한 발을 벽으로 쏴 커다란 구멍을 내고는, 업고 있던 김소유에게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쥐여주고 동굴 안으로 대피해 있게 시켰다.
김소유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정신없이 몬스터들을 쏴 재꼈다.
이제 더 이상 아라크네로부터 도망 갈 곳이 없었다.
동굴 양쪽으로는 몬스터들이 몰려 오고, 저 위에서부터는 아라크네가 나를 쫓아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안 아라크네는 여덟 개에서 두 개가 잘려 여섯 개뿐인 다리를 놀리며 의욕적으로 나를 쫓아내려왔다.
나는 말없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호호호, 표정을 보아하니 이제 더 이상 꺼낼 패가 없는 모양이구나.]
이제 10초 정도면 아라크네의 공격이 닿을 거리.
9.
8.
[음?]
그때 아라크네가 덜컥 움직임을 멈추었다.
[뭐, 뭐냐! 왜, 몸이!]
아라크네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입에서 하얀 거품을 내뱉기 시작했다. 끄에엑!
꿀럭꿀력.
"음, 효과가 있나 보군."
동굴을 수직으로 내려오며, 몬스터들을 처리한 것 외에도 내가 한 것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함정 설치.
지금 그 결과물이 드러나고 있었다.
[도, 독이냐? 이 나에게 독을 썼다고?]
내가 내려오며 설치한 것은 아라크 네의 말대로 독이었다.
사이안화포타슘.
청산가리라고도 불리는 신경독.
만약을 대비해 [공간주머니] 속에 넣어놨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쓸 줄은 몰랐다.
나는 가루로 된 청산가리를 동굴 여기저기 쳐진 거미줄에 퍼부으며 아래로 내려왔다.
애초에 시안화포타슘은 살충제에도 쓰는 물질이니 거미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에 골랐던 것인데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아라크네가 독으로 몸을 꿈틀거리는 동안, 나는 다시 레일 건을 꺼내 아라크네에게 퍼부어댔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아까와는 달리 총알에 맞을 때마다 아라크네의 껍질이 움푹움푹 파였다.
관절과 몸통과 머리 연결부 등 약점으로 짐작되는 곳을 노렸으나, 아라크네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런 곳은 잘 방어했다.
쾅!!!!
나는 집중해서 아라크네에게 정신 없이 총알을 퍼부어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아라크네가 너무 허무하게 맞고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차.'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경계했으나, 한발 늦었다.
"크윽."
어느새 슬그미니 다가온 거미줄 하나가 내 발목을 낚아채 나를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쾅!!!
재빨리 레일 건으로 그 거미줄을 끊어냈으나, 그사이 거미줄이 한 개, 두 개 몸에 들러붙더니 곧 내 몸은 십수 개의 거미줄에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
[호호호호호호. 걸렸구나, 이 쥐새끼 같은 녀석!!]
아라크네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절뚝거리는 것이 녀석도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모양.
[감히 이 몸에게 독을 사용해? 발칙한 것.]
코끼리 10마리는 죽일 분량의 독 이었는데, 그걸 다 먹고도 움직일 수 있다니.
이미 거리는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기 때문에 놈이 내게 닿는 것은 금방이었다.
내 복부를 향해 천천히 내려오는 커다란 송곳 같은 다리.
[어디 너도 한번 그 끔찍한 고통을 느껴 보거라.]
아라크네가 잔인하게 웃으며 내 복부를 후벼 파려던 그때.
덜컥.
아라크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뭐, 뭐냐! 이번엔 왜 몸이 안 음 직이는 거냐……!!]
거미줄에 꼼짝없이 묶여 아라크네를 올려다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언제 함정이 하나라 그랬냐?"
[뭐??]
내가 동굴을 내려오며 흩뿌린 것은 청산가리만이 아니었다.
지이이잉 - 동굴 양쪽 벽에서부터 기이한 공명음이 들리며 내가 설치한 두 번째 함정이자 은하그룹에서 개발한 최신 아이템이 작동을 시작했다.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
이 기기는 여러 개의 설치형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사이를 지나는 물체의 움직임을 극도로 느려지게 만드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은하수의 말로는 기계 사이의 분자 움직임을 절대영도 상태에 한없이 가까운 수준으로 낮추는 기술이라는데, 이것을 사용하면 내 공격 또한 통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설치만 해두고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다.
[으윽, 아이야, 너 정말 끝까지 성가시게 하는구나?]
아라크네가 짜증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깟 장난감이 내 움직임을 잡아둘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라크네가 강하게 힘을 주자 조금 씩 놈의 앞다리가 움직였다.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는 말 그대로 물질을 절대영도에 '가깝게' 잡아두는 것이라,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성능의 한계상 아라크네같이 거대하고 강한 힘을 가진 존재일수록 기계의 제어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라크네의 앞다리가 조금씩 가까워져 내 복부와 가까워져 갔다.
아라크네가 하려는 짓은 명백했다.
내 복부에 다리를 처박아 고통을 가하고, 종래에는 이 동굴의 거미가 으레 그러하듯 먹잇감을 꼭두각시로 만들겠다는 수작이었다.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 입술을 달 싹였다. 그리고 그 중얼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아라크네의 다리가 내 배에 와 닿았다.
푹 조금씩, 조금씩 고통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작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곧 복부로부터 찢어지는 통증이 일어나더니,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고통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끄윽"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오며 입에서 울컥 피가 쏟아져 나왔다.
아라크네의 거대한 다리가 천천히, 천천히 내 뱃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마스터!!]
슈리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욕심이었나?'
아라크네로부터 도망쳐 이 동굴 밖으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나는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강하나와 다른 헌터들은 몰살을 면치 못할 터.
그들이 모두 살아 나갈 수 있게 시간을 끌어주는 김에 차라리 한번 놈을 잡아보자고 생각한 것인데, 그것이 오만이었던 것일까?
[호호호, 아무래도 내가 이긴 것 같구나. 내가 마음껏 귀여워해 줄게, 내 인형아.]
복부로부터 무언가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따라 감각이 마비되어 갔다.
주변 가득한 몬스터들의 악취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슈트에 둘러싸여 땀으로 축축해진 전신의 촉감도 사라지고 있었다.
촉각이, 후각이, 시각과 청각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종래에는 이성마저 마비되어 갔다.
이대로 끝인 걸까?
[마스터,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어.'
갑자기 서늘한 동굴에 어울리지 않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쾅! 콰콰과과콰콰쾅!!!
연속적으로 귀를 찢을 것 같은 굉음과 후끈한 열기들이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