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60 마침내 나를 따라온 한서후와 강하나, 김치우가 우리 주변의 거미줄로 내려앉았다.
김치우가 김소유를 보며 눈에 띄게 안심하는 가운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와 두 사람은 괜찮지만 구하지 못한 두 사람은 죽었습니다."
"아……."
세 사람이 신음을 흘렸다.
"그보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십시오."
티티티티티틱- 사방의 벽에서 무언가 기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야광봉의 광원을 최대로 키운 뒤 허공으로 힘껏 던졌다. 밝아진 야광봉이 위로 솟아오르며 천장과 양옆의 벽을 비추었다.
수없이 많은 거미가 기어오고 있었다.
야광봉은 어느 정도 허공으로 떠오르다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다시 낙하를 시작했다.
탁, 탁.
야광봉이 우리를 지나쳐 떨어져 내리며 이번엔 아래쪽을 비추었다.
도중에 거미줄에 두어 번 걸렸지만 이 근처에 걸린 거미줄은 대부분 접착성이 없는 거미들의 이동용 거미 줄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티티티티틱- 야광봉은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향해 기어오는 수많은 거미 떼의 모습을 비추며 떨어졌다. 그리고 야광봉이 마지막으로 땅바닥에 진을 치고 있는 좀비 떼 같은 몬스터들의 모습을 비추며 모습을 감추었다.
"저희는 유인당했습니다."
저놈들은 우리를 여기로 유인한 것이다. 더 따라갔으면 저놈들이 파놓은 함정으로 딸려 들어갔을 테지만, 중간에 잡혀 있던 이들을 구한 덕에 아직 기회가 있었다.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나는 일행의 얼굴을 살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스테이지 탈출권]은 1분의 안전을 필요로 합니다."
"……선발대에게 들었어요."
"여러분은 안전한 곳으로 가서 탈출권을 사용하세요."
"무결 씨는요?"
강하나가 물어왔다.
"저는 여기서 시간을 끌겠습니다."
"말도 안돼! 혼자서 어떻게 시간을 끌겠다고!"
김치우의 반발에 나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아래로 흩뿌렸다.
손에 쥐었던 뭔가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나 혼자면……."
쾅!
폭음이 들려왔다.
구슬이 폭발하는 소리였다.
[꿈의 조각 5개를 획득했습니다.]
[2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충분해."
"흥! 저 정도는 우리 누나도……."
김치우가 뭐라 말하려던 때였다.
콰콰콰콰쾅!!
발아래에서 연쇄적인 폭음이 들려왔다.
끼에에에엑!!
벽에 달라붙어 기어오던 거미들과 바닥에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던 몬스터들이 그 난데없는 폭발에 온 몸이 터져 나가며 비명을 질러대었다.
꿈의 조각과 카르마 포인트를 얻었음을 알리는 알림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
김치우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때 강하나가 입을 열었다.
"……치우야, 넌 천 실장님을 맡아 줘. 서후 씨는 송호 씨를 부탁합니다. 두 사람은 지금 바로 네 사람을 데리고 아까 우리가 들어왔던 통로를 찾아 대피해 주세요."
* * *
"강하나 씨?"
나는 강하나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느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하나가 그런 나를 보며 씽긋 웃었다.
"한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낫잖아요? 저랑 소유는 충분히 도움이 될 거예요. 그치, 소유야?"
"네, 언니."
내 뒤에 매달려 있던 김소유도 굳은 각오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누나! 그럼 제가 남고 소유가 가게 해주세요!"
"시끄러. 넌 아직 몸도 다 안 나았을뿐더러, 그럼 천 실장님은 누가 업고 가게? 소유한테 시키게?"
"윽."
김치우는 강하나의 반박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무력을 써서라도 이들을 여기 남겨 놓는 게 좋을지, 아니면 이들을 데리고 저 위의 존재와 싸우는 게 좋을지.
그러나 곧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저어 훌훌 털어버렸다.
저들 또한 목숨을 칼날 위에 얹고 다니는 헌터다. 여기서 내가 강하나와 김소유를 되돌려 보내기 위해 힘을 쓰는 것도 웃기는 간섭이 될 것이다.
나는 저들의 보모가 아니다. 만약 저놈과 싸우다 이곳에서 죽는다 한 들, 그것이 비록 내 운명에 휘말린 것이라 할지라도 저들의 운명인 것이다.
이곳에 나를 따라온 것도, 아까 던전을 되돌아 나가지 않은 것도, 지금 이곳에 남는 것도 모두 저들의 선택이었다.
나는 저들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소유 씨는 어떻게 합니까?"
"계속 등에 메고 계시는 게 어떠세요? 소유가 버프를 주면 메고 다녀도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질걸요? 싫으시면 제가 업고 다니죠."
"버프를 받아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소유가 입을 열어 내게 버프를 주었다.
오빠! 힘내세요~ 소유가~ 있잖아요~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노랫가락이 또렷이 들려왔다.
'대상자에게는 목소리가 들리는구나.'
항상 다른 사람에게 시전하며 입을 뼝긋뻥긋하는 것만 보았지, 김소유의 노랫소리를 제대로 들어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녀의 발랄하고 꾀꼬리 같은 노랫 소리를 듣고 있으니, 온몸에 힘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뭐?'
나는 조금 놀라며 [나의 상태] 앱을 확인했다. 그리고 모든 스텟 수치가 10 정도씩 상승해 있는 걸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치유에 비해 버프의 효과가 굉장히 훌륭했다. 이 정도면 보호하며 업고 다녀도 그다지 손해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빨리 출발하세요! 지체 할 시간 없습니다!"
내가 한서후와 김치우를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위쪽에서 내려오던 강대한 기운이 근처로 육박하고 있었다.
"꼭 무사하십시오."
한서후가 굳은 눈으로 우리를, 특히 나를 돌아보고는 먼저 김송호를 업고 떠나갔다.
"칫, 다들 살아서 와요!"
그 뒤를 따라 김치우가 어쩔 수 없이 신지혜를 업고 거미줄 위를 달려 떠나갔다.
"그럼 우리도 시작하죠."
"예."
나는 아까처럼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아래로 흩뿌렸다.
그것은 구슬 형태의 폭탄들이었다.
콰콰과쾅!
다시 한번 밑에서 요란한 폭음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그럼 저는 위쪽을 맡겠어요."
강하나가 거미줄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하나 씨, 저 위에는 이 던전의 보스로 추정되는 놈이 오고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나는 다급하게 그녀에게 저 위의 존재에 대해 말했다.
"아,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더라. 알았어요!"
강하나가 자신 있게 위로 뛰어올라갔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저렇게 여리여리해 보여도 10강의 하나니까 잘하겠지.'
그녀는 몸에 불길을 휘감으며 높이 높이 도약해 갔다.
치익- 치익 - 그럴 때마다 사방에서 쏘아져 오는 거미줄들이 그녀의 불길에 닿아 불타올랐다.
[108정령의 가호]
강하나의 고유 스킬의 이름.
이 스킬로 봤을 때 그녀를 비호하는 불의 정령의 힘이 분명했다.
그녀가 거미줄을 박차 한 번 더 공중을 도약했다.
'저건 바람의 정령의 힘.'
그녀의 주위를 흐릿하게 날아다니는 정령들이 보였다.
불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
호호호호호- 마치 유령의 웃음처럼 스산하게 들리기도 하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곁을 스쳐 갔다.
그녀가 어디선가 검을 빼 들어 자신에게 점프해 달려드는 거미들을 베어 넘겼다.
사실 이곳의 거미들 자체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거미가 오랜 시간 동안 함정과 독으로 잡아 풀어놓은 트윈 헤드 오거 같은 몬스터들이 위협적이지, 그에 비해 한 마리씩 나오는데다 껍질이 무른 거미들은 사실 꽤 처리하기 쉬운 몬스터에 속했다.
덕분에 그녀도 쉽게 자신을 향해 점프해 오는 거미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떼거리로 발사해 대는 거미줄에 있었다.
거미들은 그녀가 손쉽게 자신들을 베어내자 일시적으로 거미줄을 뿜는 것을 멈추었다.
강하나가 일시적으로 멈춘 거미줄공격에 의아함을 느낄 때.
촤아아악-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거미들이 거미줄을 발사했다.
"이런."
강하나가 기성올 지르며 온몸에 화염을 둘렀으나, 치이이이이이- 거 미줄이 기어이 그녀의 몸을 둘러 쌌다.
거미줄에 마치고치처럼 감싸인 강하나가 추락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퍼엉- 고치가 터져 나가며 강하나가 고치 속을 튀어나와 다시 위쪽을 향했다.
'저게 10강이구나.'
나는 솔직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검을 한 번 휘저을 때마다 수십 마리의 거미가 불타고 있었다. 마치 전설 속의 경공 허공답보를 펼치듯 허공을 박차며 불의 검을 휘두르는 그녀는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불새[火爲]같았다.
또 다시 거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거미줄을 발사했다.
피할 곳조차 막힌 정밀한 발사.
고치에 감싸인 나비처럼 다시 한번 거미줄에 휘감긴 그녀는 또 다시 펑! 하며 그 속을 뛰쳐나왔다.
이곳에 있는 그 어떤 몬스터도 그녀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렇게 고치에서 한 번씩 튀어나올 때마다 그녀가 가진 마력의 양을 줄어들고 있었다.
저 거미들의 불가사의한 단체행동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다.
'군체의식인가, 아니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시에 거미줄을 발사하려면 저놈들의 의식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거나, 놈들을 지휘하는 개체가 있을 터였다.
나는 매의 눈으로 거미들을 훑었다.
-이름 : $%#$ -상태 : 군단장, 강화된 개체 -설명 :동굴거미족의 지휘관 '찾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코일 건을 꺼내놈을 저격했다.
퀴잉- 코일 건이 기성을 내며 놈을 꿰뚫었다.
그러자 지휘관을 잃은 거미들이 일시에 우왕좌왕하는 것이 느껴졌다. 퀴잉- 퀴잉-코일 건이 불을 뿜을 때마다 한 무리의 거미들이 어미 잃은 새끼처럼 갈팡질팡했고, 그럴수록 위로 솟구쳐 올라가는 강하나의 움직임은 편해졌다.
강하나와 나는 미친 듯이 거미들을 학살했다.
덕분에 한서후와 김치우가 향한 곳으로는 거미들이 몰려들지 않고, 우리에게 집중해서 달려들고 있었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
하지만 우리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닥쳐왔다.
[어디 내 새끼들을 죽이는 자들의 얼굴 좀 볼까?]
그때 매혹적이면서도 끈끈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치명적인 독기가 스며 들어 있는 언령이 심혼을 뒤흔들었다.
나는 경악해서 위쪽을 올려다봤다.
지금까지도 계속 커다란 존재감에 놈을 경계해 왔지만, 가까이서 드러 난 놈의 힘은 생각보다 더욱 거대했다.
마치 먹이가 너무 놀라 지레 달아 나버릴 것을 염려한 포식자처럼, 놈은 우리에게 접근해서야 그 본색을 드러내었다.
'이 정도면 제2스테이지의 준보스 보다 강해……!'
결코 지금 나을 리가 없는, 나을 수가 없는 강대한 몬스터의 출현.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들려왔다.
[신성개입으로 인한 이벤트 몬스터 '감시자 아라크네'가 출현하였습니다.]
[외부 요인의 개입으로 '감시자 아라크네'의 힘에 페널티가 작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