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058 '[육감] 스킬이군.' (58/215)

  기계신과 함께 058 '[육감] 스킬이군.'

  김치우에게는 고유 스킬로 [육감] 이란 것이 있었다. 그것이 이 경계를 넘어서면 더 위험한 전장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준 모양이었다.

  '감이 좋아.'

  나는 속으로 살짝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조금 더 위험한 지역으로 끌고 들어가서 관찰하려 그랬는데 위험을 느낀 이상 이지스 클랜은 여기서 발을 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때 생각에서 빠져나온 강하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빠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저희는 전적으로 무결 씨를 따라온 거니만큼 저희만 발을 빼기도 그러네요. 일단 무결 씨의 생각을 듣고 결정하고 싶어요. 무결 씨는 안쪽으로 더 들어가실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는 여러분들이 돌아가셔도 더 들어갈 생각입니다."

  솔직히 내게 이 안쪽은 별로 위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냥의 효율이 높아지는 좋은 사냥터였다.

  한서후와 한국 클랜 사람들에게 위험해서 그렇지.

  그래도 함께 들어가면 죽지 않을 정도로는 지켜줄 생각이었다. 이들도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정 거치적거리면 동굴 밖으로 나가라고 하면 되고.

  "음…… 잠시만요."

  이지스 클랜원들은 한자리에 둥글게 모여 논의를 했다.

  주제는 나를 더 따라갈지, 말지. 쑥덕쑥덕.

  무슨 방법을 쓴 건지 그들 딴에는 음성이 새어나가지 않게 바람의 막 까지 두르고 얘기했지만, 스마트 워치의 감청 기능을 켠 나는 그들의 대화를 생생히 다 들을 수 있었다. 동굴 벽을 통해 오는 진동까지는 그들도 막지 못한 것이다.

  "누나, 내가 잘못 생각했나 봐요. 하나도 안 위험한 것 같아요. 우리도 들어가죠!"

  "시끄러. 너 지금 자존심 상해서 그러는 거지? 너보다 약한 사람들이 들어가는데 네가 안 들어가면 약해 보일까 봐?"

  "아, 아니거든요!"

  "맞거든요? 넌 입 좀 다물고 있어 봐. 천 실장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주어진 정보가 너무 없긴 합니다. 그런데 [육감] 스킬을 맹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전력도 그렇게 약하진 않고, 저기 저 신무결이란 헌터도 정보에 따르면 실력이 매우 뛰어날 겁니다. 믿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지만요."

  "말도 안돼! 천 실장님, 저 사람이 그렇게 세다고요? 저보다요?"

  "네, 아마 김치우 씨보다 강할 겁니다."

  "에이, 그건 좀 아니다."

  "아, 좀 입 좀 다물고 있으라니까! 소유야, 넌 어떻니?"

  "저, 전 사실 좀 무섭긴 한데…… 그냥 언니 결정에 맡길래요."

  "그래? 흠……."

  잠시 침묵이 감돌더니 결국 강하나의 입에서 결정문이 나왔다.

  "그럼 따라가자."

  강하나가 곧 내게 다가왔다.

  "저희도 계속 따라가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죠?"

  "네, 괜찮습니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강하나가 살짝 눈을 치켜떴다.

  "네, 이 앞은 더 위험하니만큼 명령 체계를 통일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결 씨의 명령을 따랐으면 한다는 건가요?"

  강하나가 조금 불만스럽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자신의 클랜의 생사가 아직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내게 맡겨진다는 게 불안한 거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지휘권을 넘긴다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하겠고.

  클랜 로드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 넘겨짚었다.

  "아니요, 강하나 씨가 지휘권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솔직히 나도 지휘에 자신이 있긴 하지만 그러다가 자칫 나만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이들에게 들킬 염려도 있었다.

  가령 강하나가 꼭꼭 숨기고 있는 정령의 힘이라든지, 거미 몬스터들의 생태에 관한 거라든지. 내가 얼마만큼 많은 걸 알고 있는지를 가능하면 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 이들의 능력을 극한까지 보려면 내가 아닌 강하나가 지휘를 맡는 게 옳았다. 그녀야말로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능력을 한계 까지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그거라면, 좋습니다."

  강하나가 미끼를 물었다.

  "네, 그럼 됐습니다."

  일행은 그렇게 다시 동굴 안쪽 거미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번 보자.'

  내 입가의 미소가 짙어졌다.

  * * *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다.

  트롤과 오우거에 이어 더욱 상위 포식자인 그래이 트롤과 트윈헤드 오거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놈들을 사냥할 능력을 지닌 더 강력한 거미종들이 나타나 일행을 위협했다.

  강하나의 지휘에 따라 몬스터들을 잘 소탕해 가던 일행들도 점점 지쳐 갔다.

  특히 한국 클랜의 세 헌터는 갈수록 힘겨워했다. 자신의 능력이 닿지 않는 몬스터들을 공격할 때면 혹시 라도 자신에게 몬스터의 주의가 쏠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조종당하는 몬스터들의 지능이 여전히 형편없었다는 점과 거미들이 한 마리씩만 출몰 했다는 점이었다.

  이 동굴의 거미들은 개체 간의 영역 구분이 철저해서 다른 거미의 구역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혹시라도 그 구역의 주인인 거미와 마주친다면 이긴 쪽이 진 쪽을 잡아먹는 혈투를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살았다."

  "후우."

  4미터가 넘는 트윈헤드 오거와의 혈투 후, 모두는 지쳐 제자리에 주저 앉았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김치우는 물론 지휘에 집중하느라 전투 일선에선 빠져 있던 강하나도 지휘권을 천재령에게 넘기고 직접 전투에 참여해야 했을 정도로 힘겨운 전투였다.

  "휴우, 살았다."

  트윈헤드 오거가 쓰러지자 모두 일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멀리서 버프를 지원하던 김소유와 지휘를 맡던 천재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재령은 간간이 마법을 사용해 전투원들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도와 줬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힘겨워했다.

  그는 전생에서 세기를 앞서는 마법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사용하는 마법 발동 속도와 위력 모두 고작해야 다른 마법사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머리는 좋지만 마법 실력은 과대 평가였나 보군.'

  한국 클랜 헌터들과 한서우는 진작에 실력을 알고 있었고, 김치우와 천재령, 김소유의 한계실력은 이번 기회에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클랜 로드인 강하나의 실력.

  그녀는 아직까지 실력에 여유가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명색이 한국 10강이라 이건가.'

  * * * 우리는 짧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양옆의 동굴 벽이 사라졌다.

  "라이트."

  한서후가 간단한 스킬로 불빛을 밝혀 보았다.

  "헉."

  순간 일행은 잠시 온몸이 굳었다.

  동굴 양쪽 벽이 사라졌다 싶었는데, 벽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벽이 있어야 할 곳에 낭떠러지가 생긴것이다.

  사람 다섯 명 정도가 걸을 수 있는 길 양옆으로는 [라이트]의 불빛으로도 안 보이는 낭떠러지가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나온 곳 반대편에는 다시 동굴 입구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부터 약2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으음…….'

  일행은 긴장 어린 눈빛을 주고받고는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조심해야 돼.'

  나 또한 긴장했다.

  이렇게 사방이 뚫린 곳이야말로 거미가 동굴로 들어온 침입자를 사냥 하기 위한 가장 최적의 사냥터였다. 거미줄을 쳐놓고 공중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침입자들을 포획하는 것이다.

  이 구역에 있는 거미라면 최적의 사냥터인 이곳을 우리가 지나는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발한발.

  일행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길 한가운데 도착해서 최고조에 달했다.

  다시 한 발 한 발.

  일행은 사주경계를 펼치며 앞으로 나아갔으나…….

  "도착했다, 휴."

  우리가 반대편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가자!"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른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으음……. 이 구역엔 거미가 없나?'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여전히 사방은 어둠에 휩싸여 고요 했다.

  이렇게 거미가 없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무언가가 꺼림칙했다.

  '더 들어가 보면 알겠지.'

  여기서 고민해 봤자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으니.

  나는 찜찜한 기분을 떨쳐내고 다시 일행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도 우리는 나타나는 몬스터들올 사냥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낭떠러지 길을 두어 번 더 지나쳤다. 그에 따라 낭떠러지 길을 지나던 일행의 불안감도 많이 풀렸다.

  하지만 내 괴리감은 반대로 조금 더 심해졌다.

  '뭐지?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지금까지 거미가 나타나지 않은 걸로 보아 이 구역의 거미는 우리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한 세 구역 정도 거미가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껏 우리를 습격할 기회라면 충분히 있었고, 절호의 기회라고도 할 수 있는 낭떠러지가 세 번이나 나타 났었는데…… 습격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일행을 멈춰 세울까 고민하는 와중에 다시 낭떠러지 길이 나타났다.

  이제 사방이 뚫린 데서 오는 공포 로부터 대부분 벗어난 일행은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역시 사방은 고요하니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었다.

  근데 낭떠러지 길을 1/3 정도 온 순간, 길 반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모두 멈춰보세요."

  내가 그 소리를 포착하고 일행을 멈춰 세웠다.

  "조용."

  그리고 귀를 기울여보았다.

  내 뜬금없는 행동을 본 일행 또한 뭔가를 알아첸 듯 앞쪽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도……."

  "사람 목소리 같아요."

  김치우가 말했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앞에서 뭐라 중얼거리는 듯했지만, 너무 작아서 그 목소리가 무슨 의미를 나타내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걸으며 목소리의 의미를 파악해 나갔다.

  "도……와……."

  "도와달라는 것 같은데요?"

  "사람인가 봐요!"

  강하나와 김치우가 목소리의 의미를 알아내더니 걸음을 빨리했다. 그 바람에 그들과 우리 일행의 사이가 약간 벌어졌다.

  우리 또한 그들을 빨리 따라갔다.

  우리의 앞쪽에는 목소리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도와……주세……요……."

  그곳에는 남성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배를 부여잡고 주저앉아 있었다.

  "부상자다!"

  강하나가 외치는 순간이었다.

  찍─

  "응?"

  종종거리며 김치우와 강하나를 따라가던 김소유는 발목에 뭔가가 들러붙는 느낌에 발아래를 바라보았다.

  새하얗고 굵은 밧줄 같은 것이 오른쪽 발목에 달라붙어 있었다. 거미줄이었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는 순간.

  촤아아악!

  새하얀 거미줄이 무서운 힘으로 그녀를 잡아당겼다.

  "꺄아아아악!"

  그녀가 순식간에 절벽의 어둠 속으로 빨려들려 했다.

  파앗- 이 찰나의 순간 반응한 것은 두 사람이었다.

  나와 강하나.

  그녀가 다급한 표정으로 이미 절벽 가까이 끌려가 있는 김소유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서 초록색의 바람이 일며 김소유에게 뻗어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김소유와 10 미터는 넘게 떨어져 있었다. 줄이 잡아당기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

  그 사실을 느끼고 강하나가 입을 벌렸다.

  "아안---!!"

  '안돼'라는 말이 나오기에도 짧은 시간.

  파앗- 내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김소유를 따라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두개의 플라스마 링이 허공을 갈랐다.

  스윽- 플라스마 링은 거미줄을 잘라내었다.

  김소유가 거미줄의 구속에서 풀려나는 순간, 나는 그녀의 몸을 낚아 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낭떠러지 아래 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왼손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뻤다.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내 손에는 끝에 갈고리가 달린 '갈고리 총'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우리 일행이 있던 곳을 향해 발사했다.

  '설마 여기에 맞아 죽지는 않겠지.'

  다급한 와중에도 그런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갈고리가 저 멀리 날아가 시야에서 사라진 무렵.

  턱!

  갈고리에 연결된 밧줄이 떨어지던 우리 몸을 멈춰 세웠다.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김소유를 바라보았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을 보니 기절한 것 같지는 않은데, 신음 한 마디 없는 것이 충격을 많이 받은 듯 했다.

  나는 그런 김소유를 안고 가볍게 밧줄을 올라갔다.

  턱.

  김소유를 내려놓고 올라온 나는 곧 욕지기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개 같은……."

  위에는, 어지러이 널려진 거미줄 쪼가리만 보일 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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