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57 -이름 : 강하나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108정령의 가호], [리더십]
고유 스킬에도 [리더십]이라는 스킬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사람 다루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듯했으니, 강하나는 클랜을 이끄는데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저 [108정령의 가호]는 어떤 스킬 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강하나의 빠름이 저 스킬과 관련이 있는 걸까?
일행은 한동안 계속해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순조롭게 앞으로 나아갔다.
몬스터는 돼지 형상의 몬스터인 오크 외에도 강아지 형상의 몬스터인 코볼트, 두더지같이 생긴 두트리 등 다양한 몬스터가 등장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다 들 무언가에 감염되어 행동 자체가 일반적인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조금굼떴다.
나는 [플라스마 링]으로 후방에서 적당히 전투에 기여하며 일행을 관찰해 나갔다.
전투력이 약한 최약체 3인방이 워낙 약해서 [플라스마 링]만으로도 충분히 생색은 낼 수 있었다.
일행을 관찰한 결과 이지스 클랜의 전투 전위 포지션은 대부분 김치우가 맡는 듯했다.
'듯했다'라고 표현한 것은,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앞으로 튀어나가려던 김치우는 매번
"멈춰!"
라는 강하나의 일갈에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비쭉거리기 일쑤였다.
"너 변신한 데다 [아드레날린 러시]까지 사용했잖아! 몸이 말이 아닐 텐데, 미쳤어?"
강하나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김치우를 바라보았다.
"그치만 싸울 수 있다구요!"
"시끄럽고, 넌 무조건 하루 동안전투 금지야. 근육이 가닥가닥 끊어졌던 주제에."
"쳇, 소유가 많이 치료해 줘서 괜찮은데……."
"말이 많다!!"
김치우는 중얼중얼 작게 구시렁거리긴 했지만 결국 강하나의 말대로 뒤에 빠져서 가만히 구경하는 것을 택했다.
'끈끈하네.'
[확실히 끈끈합니다.]
저 투닥거림 속에서나는 이지스 클랜의 결속력을 느낄 수 있었다.
심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여도 강하나는 김치우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고, 김치우 또한 투덜대면서도 강하나의 말을 잘 따르고 있었다.
[아, 끈끈하다는 게 그런 의미였군요.]
'그럼 무슨 의미인 줄 알았는데?'
[땀이 많이 나서 더럽다는 의미인 줄 알았습니다. 참고로 마스터는 그런 의미로 끈끈합니다.]
이곳이 밀림이라 덥고 습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모두는 땀을 무진장 흘렸었다. 지금은 비교적 서늘한 동굴로 들어와서 땀이 식고 있는 상태 였지만, 온몸을 덮은 배틀 슈트를 입고 있는 관계로 아직은 땀이 다 식지 않아서 끈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였다.
아무튼 결국 전위 포지션은 전투후유증에 시달리는 김치우 대신 강하나와 한서후가 도맡게 되었다.
둘 다 검을 쓰는 검사였는데, 강하나는 빠른 스피드를, 한서후는 기교를 위주로 한 검술로 몬스터들을 쉽게 저지했다.
그러는 동안 천재령은 간간이 마법을 써서, 김소유는 버프와 힐 종류의 스킬을 써서 그런 강하나와 한서후를 지원했다.
나는 [플라스마 링]을 조종하며 허공에 대고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김소유의 정보를 다시 확인해 봤다.
-이름 : 김소유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소망의 노래]
아마 [소망의 노래]란 스킬 이름에서 볼 수 있듯 뭔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 소리는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소리의 방향을 원하는 쪽으로 집중 할 수 있는 듯했다.
근데 그렇게 플라스마 링을 조종하며 한눈을 파는 내게 김소유 옆에서 있던 김치우가 물어왔다.
"이봐……요, 보니까 아주 가끔씩만 그 양파링 같은 걸 날리는데, 왜 그렇게 찔끔찔끔 날리는 거야…… 요?"
나는 애써 요 자를 뒤에 붙이는 김치우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냥 형이라 부르고 반말로 하는 게 어때?"
"아, 나 아무한테나 형이라고 안 하는데. 그래도 성격이 시원해서 콜!"
김치우가 마음에 든다는 듯 씨익 웃었다.
"이거 왜 이렇게 아껴 쓰냐고 물었지?"
나는 [플라스마 링] 한쪽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응."
"너 현대 무기의 단점이 뭔 줄 알아?"
김치우가 떠오르는 대로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약한 거?"
"이 무기가 약해 보여?"
나는 약간 어이가 없어서 김치우를 바라봤다.
내가 쓰는 빈도가 낮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사출되면 손쉽게 몬스터 한두 마리씩을 처리하고 오는 이 무기는, 결코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약 하다고 할 만한 무기가 아니었다.
"……음, 아니, 그건 꽤 강해 보인다."
김치우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물론 각성자들이 직접 전투를 벌이는 것에 비해선 화력이 달리는 무기들이 많긴 하지만, 던전에서 비롯 된 기술로 만들어진 현대 무기들은 결코 그에 뒤떨어진다고 볼 수 없어. 다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지."
"뭔데, 그게?"
"사용 시간이나 횟수에 한계가 있다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이야? 좀 쉽게 말해 줘."
김치우가 투덜거렸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보통 여기까지 말하면 눈치채던데, 이 녀석은 확실히 생각이랑은 담쌓은 녀석 같다.
"총을 생각하면 가장 쉬울 거야. 들고 다닐 수 있는 총알의 양에는 한계가 있지?"
"아!"
"총은 가장 쉬운 예로든 거고, 총과 마찬가지로 모든 현대화기들은 제3의 동력을 필요로 해. 이 플라스마 링도 배터리가 있거든. 즉 사용 할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야."
"그렇군!"
김치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형도 그거 다 쓰면 완전 나가리 되는 거네?"
'이 자식은 꼭 말을 해도.'
"……뭐, 그렇다고 봐야지."
"헤에, 역시 약해빠졌군!"
저 좋을 대로 해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별로 틀린 얘기는 아니었지만…… 이 [플라스마 링]이 저런 자잘한 몬스터 처리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별로 많은 에너지를 먹지 않을뿐더러, 구동에 필요한 배터리는 무리하지 않으면 이 던전에서 일주일 내내 사용해도 충분하다는 얘기는 굳이해 주지 않았다. 괜히 해봤자 나만 더 피곤해질 테니까.
그렇게 김치우와 대화하며 간간이 [플라스마 링]을 날려 전투를 돕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흐음?'
[유가선공]을 익힌 이후로 감각이 예민해진 덕인지 누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를 보는 시선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천재령과 눈이 딱 마주 치고 말았다.
'저 사람 시선인가?'
내가 바라보자마자 천재령이 마치 스치는 시선이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시선을 거두었다.
'아닌가?'
워낙 자연스럽게 내게서 시선을 떼는 바람에 헷갈린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려 몬스터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동굴 속 몬스터들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개체수와 종류가 다양해졌다. 도대체이 많은 몬스터가 왜 이 동굴 속에 있나 싶을 정도로.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우리는 미로같이 얽힌 동굴 속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는데, 마치 개미 굴처럼 얽힌 이곳은 사실 수 많은 거미들이 머물고 있는 거미굴이었다. 그리고 몬스터들은 그 거미들에게 감염된 거미의 먹이들이었다.
거미들은 지상에서 몬스터를 잡아 감염시킨 뒤 이 동굴 속에 풀어놓는다. 그렇게 동굴에 풀린 몬스터들은 거미들의 명령에 따라 노예처럼 일을 하거나 외부에서 침입하는 침입자들을 방어하는 일을 한다.
대신 이들은 원래의 몬스터들이 지닌 이성과 본능, 그리고 흉폭성을 일부 빼앗겨 원래의 전투력을 잃게 된다.
이게 바로 이 동굴 속이 좋은 이유다.
전투력이 급감했는데 이 몬스터들이 주는 꿈의 조각은 감염되기 전의 몬스터가 주는 개수와 같다.
즉 여기서는 밖의 몬스터들을 사냥 하는 것보다 더 쉽게 더 많은 꿈의 조각을 모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일행은 그 많은 몬스터들에도 불구하고 꽤 의욕인 자세로 사냥에 몰두했다.
근데 먹이들의 수가 줄어가자 드디어 주인님이 납신 모양이다.
'왔군.'
일행이 몬스터들과의 전투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천장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우고 있었다.
* * * 전투 중에도 가끔 천장을 살폈기 때문에,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거의 3m는 되는 크기의 거대한 거미가 소리 없이 내려오는 모습을.
크기는 컸지만, 높디높은 천장의 어둠과 비슷한 거미의 어두운 몸체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은밀했다.
거미가 열심히 버프를 주느라 정신이 팔린 김소유의 머리 위로 천천히 내려앉으며 서서히 다리를 벌렸다. 이대로 무사히 거미의 계획이 이루어진다면 김소유는 곧 거미의 여덟 다리에 낚아채여 천장으로 끌려갈 터였다.
하지만 거미에게는 불행하게도, 그 때 김치우가 천장으로 고개를 들었다.
"뭐야, 이 새끼는?"
"뭐가…… 까악!!"
김치우의 말에 그를 쳐다봤다가, 다시 그의 시선을 따라간 김소유는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 웬 끔찍하고 징그러운 몬스터가 8개의 다리를 쫙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 엉덩방아를 찧은 김소유에게 거미가 내리꽂혔다.
들킨 이상 빠르게 먹이를 낚아채 가자는 심산.
그러나 김치우가 냅다 점프하더니 거미의 몸통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콰직!
거미는 몸통이 찌그러지며 동굴 한 쪽 벽에 처박힌 후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김치우가 김소유의 곁으로 바짝 붙어 동굴 천장을 살폈다. 혹시나 다른 거미가 다가오나 경계하는 거였다.
김소유는 김치우의 옷깃을 붙잡고 오들오들 떨었다.
그러는 사이후방 지원을 맡고 있던 한국 클랜 사람들은 몸통한쪽이 푹 꺼져 비틀거리는 거미를 처리했다.
잠시 후 일행이 몬스터들을 모두 정리하고 거미 곁으로 모여들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군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천재령이 먼저 나서서 거미 몬스터의 시체를 이리 저리 뒤집어보며 관찰했다.
"아무래도 이 몬스터가 다른 몬스터를 감염시킨 감염원인 것 같습니다."
"이 거미가요?"
"예, 여기 이 독침과 다른 몬스터들에게 난 상처의 모양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천재령이 거미의 입 부근에 난 독침을 가리켜 보였다.
"그럼 여기서 더 안으로 들어가면 저 거미 같은 녀석들이 또 나온다는 소리네요?"
한국 클랜의 김송호가 약간 질린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죽어 널브러진 거대한 거미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당히 징그럽게 생기긴 했다.
"누나."
김치우도 이 거미가 꺼림칙한 듯 강하나를 바라보았다.
"왜? 이 안쪽, 느낌이 안 좋아?"
강하나는 그런 김치우의 낌새에서 뭔가를 느낀 듯 그를 보며 물었다.
"네, 조금 느낌이 이상하네요."
"으음……."
강하나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