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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51 (51/215)

  기계신과 함께 051

  "미안해요, 서후 씨. 이 녀석들은 어떻게 어떻게 잡았지만…… 조금 더 강한 녀석이 나오면 우리는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곳에 있기엔 능력이 모자라요."

  "집에서 마누라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 여기서 죽을 수 없어요."

  그런 네 명의 헌터를 황망히 바라보며 한서후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여기만큼 포인트와 아이템이 후한 던전은 없어요! 여기에서 다른 헌터들과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요!"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나오는 후한 포인트, 그리고 노력만 한다면 몇 개의 아이템이든 가지고 나을 수 있는 던전은 이제까지 없었다.

  그 유명한 [최초의 던전]조차도 아이템 1개, 스킬북 1개가 끝이었다.

  반면 이곳은 노력만만큼 꿈의 조각 카탈로그를 통해 그보다 많은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었다.

  심지어 레어 아이템을!

  그러나 다른 헌터들의 멸시와 패배감에 찌들어 있던 이들의 귀에는 그런 기회조차도 그저 귀찮고 무섭기만 했다.

  "우리는 됐어요. 서후 씨, 탈출권 얻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몫까지 힘내주세요."

  그런 소리들을 끝으로, 네 사람은 빛이 되어 사라졌다.

  "이……런……."

  한서후는 망연자실하게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저들이 있어서 그래도 이 던전이 든든했건만…… 이렇게 도망치듯 떠나 버리다니.

  '어휴, 불쌍해라.'

  나는 멀리서 그런 한서후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국 클랜 한국 클랜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로 패배감에 찌든 자들일 줄은 몰랐다.

  그런 헌터들 사이에서 홀로 고군분투했을 한서후를 생각하니 연민의 감정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응?'

  그런데 그런 한서후의 주변으로 다가드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움직임을 보니 결코 호의로 다가서는 이들이 아니었다.

  나는 한서후에게 빠르게 다가가려다가 생각을 바꾸고, 저격을 준비했다. 이 기회에 한서후의 실력을 봐 두기로 했다.

  어차피 한서후는 이 일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이다. 전생에서 그의 죽음은 누군가를 지키다 죽는 죽음이었다. 그런 만큼 홀로 적들과 맞서는 이 자리에서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조심해야겠지.'

  미래가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 위험한 순간에는 나설 수 있도록 저격 준비를 한 채 지켜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네 명으로 이루어진 녀석들이었다.

  풍기는 마력량과 [하늘의 눈]을 파악했을 때, 아까 싸운 녀석들보다 한 단계정도 강한 놈들이었다.

  소속 문양이 없는 건지 지운 건지 모르겠지만, 이놈들 정도면 헌터들의 평균보다도 더 강한 놈들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그중 한 녀석은 거대 클랜에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괜찮아 보였다.

  -이름 : 관상융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은밀한 움직임]

  전직이 의심스러운 고유 스킬을 가진 그는, 다른 헌터들과는 다르게 멀리서 나무에 오른 다음 나뭇가지를 타고 한서후에게 접근했다. 그가 지나감에도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의 이동은 은밀했다. 한서후가 과연 그의 움직임을 감지 할 수 있을까?

  다른 세 명은 세 방향에서 한서후를 둘러싸며 접근했다. 그리고 조준이 가능한 거리에 들어서자 그들끼리 통신으로 뭐라고 얘기하고는 한 서후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 직후- 타타탕!!

  총알 세 발이 거의 동시에 한서후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러나 총성이 들린다 싶은 순간 한서후가 번개처럼 등 뒤의 검을 잡아갔다.

  한서후는 방탄 슈트가 둘러쳐진 왼팔을 들어두 발의 총알을 막아내고, 남은 한 발은 검을 등에서 살짝 뽑아내는 것만으로 튕겨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쉬익 - 머리 위에서 내려쳐 오는 비수 공격은 옆으로 물 흐르듯 한 발짝 내딛는 것만으로 피해냈다.

  비수를 든 암살자는 한서후의 옆으로 떨어져 내리며 두 번의 칼질을 더 내지르고는 한서후의 그림자 속으로 스르륵 들어가 버렸다.

  한서후는 어느새 뽑아든 검으로 손쉽게 그 공격 또한 흘려버렸다.

  '그림자로 들어갔어?'

  다른 놈들은 몰라도 암살자 녀석만큼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암살자를 제외한 세 놈은 총을 이용한 기습이 실패하자마자 포메이션을 갖추고 전투 준비를 했다.

  총이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만큼 기습에 적절하기는 했지만, 웬만큼 강력한 총화기가 아니고서는 한서후에게 충격을 입힐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한 사람은 마법사인 듯 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다른 두 사람은 각각 검과 도끼를 꺼내 들고 한서후에게 달려들었다.

  '응?'

  총의 스코프에 눈을 대고 놈들의 상태를 보던 나는 한서후의 상태가 약간 이상한 것을 알아챘다. 횐자위의 색이 조금 붉은색을 띤 것 같았다.

  '설마 울었나?'

  조금 더 눈에 마력을 집중해서 보니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운 건 아닌데.'

  울어서 눈이 벌게진 건 아니고…….마치 이성을 잃어가는 느낌이랄까?

  '재 왜 저래?'

  그사이 한서후와 두 명의 빌런이 격돌했다.

  검과 도끼를 든 빌런들이 양쪽에서 공격해 들어갔다. 둘 다 마력이 실려 있어서 일반인은 스치기만 해도 살과 뼈가 분리될 공격.

  그러나 한서후는 붉은 눈으로 그 공격을 응시하기만 할 뿐이었다.

  '왜 안 움직여?'

  나는 약간 초조하게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여차하면 한서후를 공격하는 놈들을 쏴버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놈들의 검과 도끼가 한서후의 몸에 닿을 때쯤, 한서후가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억!"

  "크억!"

  눈 깜짝할 사이에 검과 도끼가 부드립게 반원을 그리며 도끼는 검의 주인에게, 검은 도끼의 주인에게 틀어박힌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무공을 익혀 안력(眼方)이 강화된 나는 볼 수 있었다.

  한서후가 마치 팽이처럼 회전하며 가까이 다가온 무기들을 검과 왼손으로 흡착(吸者)하듯 끌어당겼다가, 빌런들을 향해 되쏘아낸 것이다.

  한서후가 무기를 끌어당기자 균형을 잃은 빌런들은 꼼짝없이 무기를 얼굴로 되받고 말았다.

  털썩털썩.

  두 구의 시체가 생겨났다.

  한서후는 두 놈을 죽이자마자 바로 바닥을 박차며 캐스팅을 하던 마법사에게 돌진했다.

  마법사는 캐스팅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완성되지 않은 마법을 다급하게 펼쳐냈다.

  "파, 파이어 볼!"

  쉬이익- 세 덩이의 농구공만한 불덩이가 한서후에게 날아들었지만, 한서후의 검이 다시 원을 그리자, 쉬이익- 농구공들이 마술처럼 방향을 틀어 마법사에게 다시 날아갔다.

  퍼퍼펑!

  화르륵- 마법사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불길에 휩싸여 죽어갔다.

  이제 한 놈 남았다.

  그림자를 타 넘는 암살자 타입의 빌런.

  나는 집중해서 녀석이 어디서 한서후를 노리고 있는지 보고 있었다.

  그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도망치고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신중하게 녀석을 조준했다.

  녀석과 나의 거리는 대략 500미터. 게다가 녀석은 나무 사이사이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태.

  바람도 강하게 불고 있지만, 실패해서는 안 된다.

  첫발이 실패한다면 녀석이 그림자를 타고 모습을 감출 것 같다.

  나는 신중하게 타이밍을 재다가, 마침내 녀석이 점프하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탕!

  뾰족한 저격용 총알이 500미터를 순식간에 가르고 지나갔다.

  "컥."

  녀석이 머리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꿈의 조각 78개를 획득했습니다.]

  나는 스코프를 돌려 다시 한서후 쪽으로 향했다.

  한서후가 다른 사람을 죽인 후 어떤 상태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응?'

  그런데 한서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투 장소 인근 어디에서도 한서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나는 다시 3D 지도 앱을 켜서 한서후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흡!"

  갑자기 폭발적으로 느껴지는 살기 (殺氣)에, 나는 헛바람을 삼키며 재빨리 뒤로 점프했다.

  검 한 자루가 내가 있던 곳을 가르고 지나갔다. 내 블랙미슈릴 슈트의 일부가 잘렸다가 다시 재생되는 것이 보였다.

  나를 베려고 했던 자는, 바로 한서후였다.

  '뭐야, 이 폭발적인 살기는?'

  한서후가 내지척에 오는 동안 감추고 있던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농밀한 살기였다.

  점프하며 나무 사이사이로 도망가는 나를, 한서후가 쫓아왔다.

  탁 트인 평야지대가 아니라 나무가 울창한 숲속이라서 달리는데 나무가 자꾸 길을 가로막았다.

  반면 한서후는 경공술을 사용하는 지 요상한 발걸음을 하며 쫓아오는데 방향 전환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나무가 마치 한서후의 옆으로 비켜 주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분명 속도는 내가 더 빨랐지만, 한서후와 나의 거리는 가까워져 왔다.

  그리고 한서후가 나를 베어왔다.

  "잠깐, 잠깐!"

  내 외침에도 한서후는 전혀 검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캉!

  다급하게 손에 든 총에 마력을 넣어 검을 막아냈다.

  "나 신무결이에요, 한서후 씨!"

  나는 다시 한서후의 검을 피해내며 이번에는 머리를 감싸고 있던 슈트를 해제했다.

  내 얼굴이 드러났다.

  아마 나를 자기를 공격하려 했던 빌런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쯤이면 오해가 풀렸겠지.

  "한서후 씨, 이제 그만 진정하고…… 아앗!"

  하지만 나를 알아보고 공격을 멈추 리란 기대와 달리, 한서후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서후 씨, 저 서후 씨 공격한 거 아닙니다!"

  나는 요리조리 공격을 피해 다니며 한서후에게 소리쳤지만, 한서후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기계적으로 계속 나를 공격할 따름이었다.

  "흐음……."

  나는 공격을 계속해서 피해내며 한서후를 관찰했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과 이제는 완전히 붉어진 흰자위.

  어떤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듯한 모습.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모습이었다.

  공격의 상태를 봐도 그랬다. 아까의 빌런들올 쓰러뜨릴 때의 부드럽고 현묘한 공격이 아닌, 단순히 찌르고 내려치는 공격.

  도저히 동일 인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안 되겠다.'

  나는 한서후를 기절시키기 위해 그의 공격을 피해 옆으로 돌아간 다음, 수도로 그의 뒷목을 가격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한서후의 검이 부드립게 원을 그리며 내 손을 베려 했다.

  아까 봤던 것과 같은 신묘한 움직임!

  나는 빠르게 손을 회수하여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이번에는 한서후가 내 몸통을 노리고 검을 내질러 왔다.

  역시 아까와 같은 현묘함은 없었다.

  '그렇군.'

  나는 가볍게 그의 공격을 피하며 다시 그의 몸통 쪽으로 주먹을 찔러 들어갔다.

  한서후의 검이 다시 부드럽게 움직여 내 손을 베어가려 했다.

  '놀라울 정도로 방어적인 검술이야.'

  한서후는 극단적이라고 할 정도로 방어에 특화된 검술을 보이고 있었다.

  남을 공격하는데 있어서는 단순히 검을 찌르고 베는 동작밖에 할 줄 모르지만,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공격하는데 있어서는 그 힘을 역이용 하여 상대를 처단하는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다.

  '대체 어떻게 검술을 익히면 이런 방식이 되는 거지?'

  나는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빠르게 내공을 끌어 올렸다. 단전에서 시작 된 움직임이 질풍과 같이 온몸을 내 달렸다.

  그리고 나는 일순 바람이 되어 한서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서후가 당황하는 사이 그의 뒤에 나타난 나는 간단하게 그의 뒷목을 수도로 가격할 수 있었다. 한서후는 방어고 뭐고 반응할 새도 없이 내게 수도를 얻어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기술에 있어서는 한서후가 나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나는 그 차이를 뛰어넘는 내공과 스텟의 힘으로 한서후를 압도한 것이다.

  '이 정도면 2스테이지에 가서도 괜찮겠어.'

  나는 한서후의 실력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업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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