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50 기본적으로 전생에 한 번 경험했던 던전이기도 하고, 슈리의 데이터베이스에도 [베히모스의 꿈]에 대한 정보가 꽤 자세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비교적 쉽게 처리하며 한서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흥흥~ 흥흥~"
타탕! 타탕!
콧노래를 부르며 양손의 방아쇠를 리드미컬하게 당겼다.
끼엑! 끼에엑!
그럴 때마다 땅바닥에서 튀어나와 나를 덮치려던 두더지 같은 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땅속으로 숨어 들었다.
일반 두더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크기가 거의 내 세 배에 달한다는 점이었지만.
이곳의 몬스터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같이 엄청나게 컸다. 몬스터뿐만 아니라 나무도 마치 거인족의 나라에 온 것처럼 큼직큼직해서 난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두더지 놈들은 내 총알에도 그렇게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있었다.
지금 내가 쏘고 있는 총은 일반 권총이 아니라, [최초의 던전]에서 썼던 코일 건 정도의 위력을 가진, 뛰어난 관통 병기였는데도 그랬다.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내게 박치기를 하려는 놈들을 쏴 재꼈다.
그리고 드디어 한 녀석이 열이 받았다.
크아아아악!!
녀석은 얼굴 곳곳이 벌에 쏘인 것 처럼 부어 있었는데, 내 총알에 맞은 흔적이었다.
놈이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짜증 섞인 비명을 지르며 내게 박치기를 해왔다. 입을 쩍 벌리며.
"빙고~"
나는 멍청한 녀석의 입속으로 총알을 선사해 주었다.
끄에에엑!
놈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당연하다. 내가 방금 쏜 건 파열탄이거든. 놈의 뱃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수류탄처럼 폭발하는 탄.
놈은 내장이 갈기갈기 찢긴 채 땅 위에 쓰러졌다.
[꿈의 조각 1개를 획득했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꿈의 조각에 카르마 포인트까지 후하게 주는 너란 던전, 멋진 던전!
그렇게 하나하나 두더지를 잡으며 전진하는데, 멀리서 인간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하, 하…… 마!! 끄아아아악!"
"슈리, 뭐라는 거냐?"
[하, 하지 마, 끄악! 이라고 했습니다.]
워낙 소리가 작게 들려와서 잘 안 들렸는데, 슈리가 정확한 음성을 분석해 주었다.
나는 총을 집어넣고 빠르게 달려서 두더지들의 영역을 벗어났다.
그렇게 잠시 달리자 '녀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억, 컥!"
세 명의 각성자가 시체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세 명 모두 총화기와 방탄복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검과 마법이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까지 총은 강력하고 효과적인 무기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헌터들이 가지고 다녔다.
포위한 자들 중 한 명이 피 묻은 검을 닦아내고 있었다. 총으로 위협 하고 마무리는 검으로 한 듯 보였다.
"미안, 우리도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이거, 몬스터 사냥은 효율이 너무 안 좋더라고."
"또 한 건 했군. 이거 혼자 다니는 놈들은 만만해서 좋단 말이야?"
포위한 각성자들이 실실 웃으며 가슴으로부터 장비를 갈무리했다.
'한발 늦었군.'
다른 게 아니라 저런 놈들이 바로 빌런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이용하는 살인마 놈들.
나는 죽은 녀석의 명복을 빌며 [하늘의 눈]으로 빌런들을 살펴봤다.
-이름 : 김종두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염화구]
-이름 : 서대길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신속]
-이름 : 곽문주 -상태 : 각성자, 사이코패스 -고유 스킬 : [착취의 손길]
셋 다 별 볼 일 없는 스킬을 갖고 있었다.
물론 고유 스킬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느껴지는 마력의 기운으로 봐도 뛰어난 녀석들은 아니었다.
곽문주라는 빌런이 시체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시체가 부스스 부서지더니 곽문주의 손으로 흡수되었다.
"음, 좋아."
그가 만족한 듯한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능력의 상승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벨트의 한 부분을 눌렀다.
양어깨에서, 무릎에서, 팔꿈치와 배 한복판에서부터 검은색이 번지더니, 머리를 제외한 내 온몸이 곧 검은색 일색으로 변했다. 매끄럽고 부드럽지만 살짝 금속 느낌의 재질을 한 슈트가 내 몸을 두른 것이다.
은하그룹에서 내가 가져온 아이템을 기반으로 개발한 형상기억합금 블랙미슈릴 슈트였다.
"카모플라주 모드."
나직이 중얼거리자 슈트가 머리까지 전부 덮은 후, 검은색이 사라지며 슈트의 색이 주변과 동화되었다.
바로 옆에서 봐도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은신.
나는 그 상태로 슈트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플을 꺼냈다.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길고 커다란 라이플.
"소음기 모드."
내 명령어와 함께 라이플의 총구 부분이 짧아지며 살짝 두꺼워졌다.
이게 사거리가 짧아지는 대신 소리가 거의 안 나는 소음기 모드였다. 만만해 보이게 혼자 다녀도 걸려드는 놈이 없더라니, 다른 사람을 죽이는 녀석들로 개시를 할 줄이야.
나는 라이플로 신중히 곽문주라는 사이코패스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피육-
"컥!"
짧은 단말마의 비명.
그리고 즉사.
[꿈의 조각 65.8개를 획득했습니다.]
머릿속에 메시지가 지나갔다.
"뭐, 뭐야!"
옆에 있던 두 명이 양옆으로 흩어 지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사방으로 총을 갈겨대었다.
"어떤 새끼야아아!!"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염구]라는 고유 스킬을 가진 녀석을 조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피육- 총알의 각도를 파악하지 못한 듯, 녀석 또한 일격에 머리가 꿰뚫렸다.
[꿈의 조각 67개를 획득했습니다.]
마지막 한 놈은 그새 총알의 궤도를 파악했는지, 두꺼운 나무 뒤로 몸을 숨겨 버렸다. 나무의 크기가 크기인지라 굉장히 두꺼워 보였다.
"흠."
나는 조금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관통 모드."
총구가 아까의 두 배로 늘어나며 나선형으로 꼬였다.
철컥.
그리고 아까와는 다른 총알이 자동으로 장전되었다.
관통을 위한 특수 총알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신중히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방금 두 번과는 달리 시끄러운 총성이 밀림에 울려 퍼졌다.
까라라라라라락!
까울! 까울!
사방에서 놀란 몬스터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한 차례 소란이 지나가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죽었나?'
그렇게 생각할 때, 나무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으, 으하하하하하! 야, 이 개자식아!! 각도가 안 되지?!! 나 안 죽어! 안 죽는다고, 이 개-새까!!"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녀석은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크게 웃어젖혔다. 총알이 두꺼운 나무를 관통하지 못한 것이다.
"흠."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고 총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었다.
"하하하하하! 개시끼! 하하하하하! 뷰웅신시끼!"
계속해서 비웃음에 가득 찬 조롱이 들려왔다.
그때 나는 총 대신 다른 걸 꺼내 들었다.
딸깍.
입으로 그것에 달린 '안전핀'을 제거하고, 그대로 녀석이 숨어 있는 나무 옆으로 던졌다.
"크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쾅----!!
끼투루루루룩!
끄엑- 끄엑- 크라라라라라!!
다시 한번 숲속이 소란스러워졌다.
[꿈의 조각 69.7개를 획득했습니다.]
"거 사람이 못 맞힐 수도 있지, 되게 비웃네."
나는 들려오는 메시지를 들으며 한 차례 투덜대었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갈무리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 * *
"서, 서후 씨, 감사합니다."
한 헌터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금의 싸움으로 탈진한 것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타조처럼 보이기도 하고, 공룡처럼 보이기도 하는 커다란 몬스터가 열 마리나 쓰러져 있었다. 한서후를 비롯한 다섯 명의 한국 헌터 클랜의 클랜원들이 사냥한 사냥감이었다.
"휴우, 이로써 모두 [스테이지 탈출권]을 획득했네요."
한서후가 미소 지으며 그들을 둘러 보았다.
"모두 한서후 씨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모두 힘을 합쳤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사냥한 것이지요."
한서후가 부드럽게 고개를 저으며 겸양의 말을 건넸다.
사실 그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한서후는 분명 이들이 있기 때문에 몬스터를 쉽게 잡았다. 다른 이들이 몬스터들의 주의를 끄는 사이 손쉽게 몬스터를 요리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서후가 없었다면 다른 네 명은 이 몬스터들을 결코 잡지 못했을 것이다. 공격의 주축인 한서후가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정리 할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를 서포트함으로써 손쉬운 몬스터 사냥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만약 공헌도로 따지면 거의 80%가 한서후의 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다른 네 명과 한서후의 격차는 컸다.
다른 네 명도 그것을 알고 있었는 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서후 씨."
그중 한 명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 말씀하세요."
한서후의 부드러운 얼굴에 입을 연 헌터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서후 씨,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제 던전을 나가려 합니다."
"예……?"
한서후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었다.
스테이지 탈출권을 얻자마자 던전을 나가겠다니.
이제부터가 시작아니었던가?
한서후가 다급한 눈길로 다른 세 명을 바라봤다.
그러나 나머지 세 명의 헌터 또한 그의 눈길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