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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48 베히모스. (48/215)

  기계신과 함께 048 베히모스.

  성경에 등장하는 신화 속 괴수의 이름을 딴 거대한 몬스터. 그 크기는 로키산맥을 내려다보는 사이클롭스보다도 클 정도였다.

  사이클롭스를 인간으로 치면 이놈은 코끼리였다.

  '베히모스, 오랜만에 보는군.'

  나는 바이크를 타고 달리며 멀리 보이는 베히모스에게 인사했다. 여전히 몸이 떨릴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니는 무지막지한 크기의 괴물.

  전생에서 이 녀석이 날뛰며 용인과 수원 일대가 초토화되던 광경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 때문에 죽어간 헌터며 민간인의 수가 자그마치 십 만 단위였으니.

  이번에는 어떻게든 그런 참사는 막아야 했다.

  멀리 임시 집결지가 보였다. 헌터 협회 측에서 이 사태를 해결할 헌터들이 쉽게 모일 수 있도록 베히모스가 잘 보이는 위치에 임의로 집결지를 지정해 둔 것이다.

  집결지에는 이미 다른 헌터들이 도착해 있었으며, 아직도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베히모스는 아직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헌터들은 비교적 차분한 기색이었다.

  실제로 베히모스가 움직이기까지는 아직 한참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놈은 한번 움직이면 사이클롭스 보다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는 대신, 움직이기까지의 유예기간이 좀 있는 놈이었다.

  나는 느긋하게 모여 있는 헌터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한서후.

  이 자리에 없길 바랐지만, 역시나 이 자리에 왔다.

  '이곳이 자기 죽을 무덤인지는 그도 몰랐겠지.'

  그 정의롭고 이타적인 성격답게, 그는 전생에서도 남을 돕다가 죽음을 맞았다.

  나는 내 계획 안에서 가급적 그가 목숨을 잃지 않게 도와줄 생각이었다. 전에 도움받은 것도 있고, 실력과 인성 둘 모두를 갖춘 헌터를 이런데서 잃는다는 것은 크나큰 손해였다.

  그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우리나라3대 클랜 소속의 헌터들. 우리나라 헌터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대한 세 세력의 엠블렘을 단 헌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세 클랜 모두 수장은 이 자리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이곳에 있는 3대 클랜의 인원수만 보아도 세 클랜이 지금 이 사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호오, 저 양반도 있네?'

  박용식 헌터.

  무공 사용자들을 위한 길드 '무림 연맹'의 설립자이자 무림 계열 헌터들의 마당발이라 할 수 있는 아저씨였다.

  그 외에도 주목할 만한 곳으로 불꽃의 마탑과 에스지 그룹 소속 헌터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들 가운데 서 있는 한서후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한서후 씨."

  "누구신지……?"

  한서후는 당연히 내 얼굴을 못 알아봤다.

  그는 내 맨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은인……이라고 하면 알아들으시려나요?"

  내가 싱긋 웃었다.

  "아! 물론입니다. 여기서 또 뵙는 군요!"

  한서후가 놀라며 반갑게 나를 맞았다.

  그의 기도는 예전보다 더 날카롭게 정련되어 있었다.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그 던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어요."

  "별말씀을요 그 정도로는 빚의 반 의반도 갚았다고 볼 수 없죠."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서 약소하지만 감사의 선물을 준비했어요. 한서후 씨 다시 만나면 드리려고 가지고 다녔으니, 자, 받아주세요."

  "선물이요? 이거 참……."

  한서후가 손사래를 치며 약간 난감한 얼굴을 했다.

  "정말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어디 까지나 제가 은혜 갚고 싶어서 한 일인데."

  "저도 드리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렇습니다. 이번 던전에서도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이번…… 던전이요?"

  한서후가 내 모호한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 자신이 들어갈 던전을 내가 알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그가 들어갈 던전은 사실 바로 지척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줄 선물은 그의 목숨을 구해줄 선물이기도 했고.

  "일단 받아두세요. 그렇게 거창한 선물은 아니고, 야외생활용도구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감사히 받아두겠습니다. 헌터 생활을 하다 보니 야외에서 생활할 일이 많아지더군요, 하하."

  야외생활용도구라 하니 그다지 부담스러운 선물 같지는 않았는지, 그는 내가 내미는 지갑 크기의 작은 선물을 받아 들었다.

  사실 은하그룹의 첨단과학 기술이 들어간 취침용 텐트였다. 그 속에 침낭과 가재도구들이 들어 있는.

  금속을 초고밀도로 압축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은하수가 내 부탁으로 여기에 내가 감지할 수 있는 실시간 위치 파악 기능을 넣어놨다는 것이다.

  "근데 그게 실제 얼굴이신가요? 생각보다 잘생기셨군요!"

  "국민 엄친아 한서후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닙니다만."

  "아니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잘생기셨는데요?"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난 그다지 잘생긴 얼굴이라 할 수 없었다. '이 전까지만'이라는 수식이 붙은 것은, [의기활신유가선공]을 익힌 이후로 얼굴 양쪽의 균형이 잡히고 이목구비가 더욱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덕분인지 그전보다 아는 사람들로 부터 '잘생겨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물론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라고 해 봐야 은하수 일가밖에 없지만.

  우리 둘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누군가가 다가왔다.

  "오, 이게 누구신가? 국민 스타 한서후 씨 아니신가?"

  "아, 김종덕 헌터님, 안녕하세요."

  "서후 씨, 아직도 정부 소속이야? 거기 때려치우고 우리 클랜 들어오라니까."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그래도 아직 여기가 좋습니다."

  "나 원, 보수도 박하고 일은 뺑이 치게 많은 거기가 뭐가 그렇게 좋다고."

  "그래도 가장 국민들을 위하는 곳 아닙니까."

  "그것도 이젠 옛말이지……에잉, 이 답답한 양반. 뭐, 아무튼 생각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예."

  한서후가 약간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김종덕 헌터를 떠나보냈다.

  "방금……?"

  김종덕 헌터가 누군지는 알고 있지만 예의상 물어줘야 할 것 같아서 한서후에게 물었다.

  "북두클랜의 김종덕 헌터라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입니다."

  나도 기억난다.

  우리나라 최고의 그룹인 북두그룹이 직접 만든 헌터 클랜 '북두클랜'의 수뇌부 중 한 명. 아마 클랜 로드의 왼팔 격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러브콜이 꽤 대단하네요?"

  내가 슬쩍 놀리듯이 묻자 한서후가 헛기침을 했다.

  "정부가 비록 박봉에 헌터들을 부려먹기로 유명하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부 쪽에 있는 편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요."

  그가 쑥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던전시대가 열리고 각성자들이 너도나도 클랜과 길드를 세울 때, 대한민국 정부 또한 자금과 인력을 투자해서 '한국 헌터 클랜'을 창설했다.

  처음에는 정부 차원의 많은 지원과 그 공익성에 대한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관심으로 많은 각성자들이 '한국 클랜'이라 불리는 그곳에 지원했다.

  처음에는 명분도, 실리도 있었다. 세금과정부 기관의 안정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한 던전 클리어 보상. 그리고 국민들이 가장 불안을 느끼는 도심한복판의 던전에 대한 즉각적인 출동.

  더 안정적이고 이득이 큰 던전만을 공략하는 타 클랜들과는 달리 한국 클랜은 어떤 어려운 던전도 마다하지 않고 국민들이 원하는 곳이라면 찾아가는, '국민 클랜'이란 소리를 듣던 곳이었다.

  그러나 던전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헌터들의 수로는 늘어나는 던전들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자 이 시스템에도 한계가 오고 말았다.

  던전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며 한국 클랜이 감당해야 하는 던전의 수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익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밤낮없이 던전에 투입되었다.

  그러다가 곧 육체적, 정신적인 한계에 다다랐다. 한국 클랜이 출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늘어갈수록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은 쌓여만 갔다. 그리고 국민들의 원망이 향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민들이 원하는 던전에 발빠르게 달려가던 한국 헌터 클랜이었다.

  세금을 받아먹으면서 제때 출동도 안 한다는 것이 원망의 이유였다.

  몸은 한 개여도 한계점까지 열심히 뛰던 헌터들도, 결국 계속되는 국민들의 질타에 지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부도 예산 지원에 한계가 있었던 만큼 한국 클랜은 봉급도 다른 민간의 클랜들에 비해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쉽고 보상 좋은 던전만 골라 전략적으로 공략하던 다른 클랜들은 높은 가치를 지닌 스킬과 아이템들을 더욱 쉽게 획득함으로써 한국 클랜과의 격차를 더욱 벌려나갔다.

  그들은 지쳐 있던 한국 클랜 헌터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헌터들은 결국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클랜이었던 한국 클랜은 그렇게 이름만 남은 호랑이로 전락해 버렸다.

  지금 한국 클랜에 남아 있는 자들은 딱 두 부류였다.

  실력도 있고 애국심도 강한 자. 또는 어느 클랜에서도 탐내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형편없는 자.

  물론 한서후는 전자였지만 대부분은 후자였다.

  "흥, 한국 클랜에 남은 사람이라면 뻔한 거 아닌가? 실력 없는 쭉정이 만남은 자들."

  그 덕분에 이처럼 한서후도 한 묶음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꽤나 어린 목소리라 돌아보니,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이쪽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난처한 표정으로 녀석의 입을 막으려는 듯했으나, 남자 아이의 입이 재차 열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 왜 자꾸 말려? 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니잖아! 옆에 있는 사람만 봐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쭉정이잖아? 한서후라고 저 사람이랑 크게 다르겠어?"

  아마 그 쭉정이라는 게 나를 가리키는 듯했다.

  좁은 한국 헌터계에서 아직 얼굴이 안 알려졌다는 건 대부분의 경우 그 만큼 실력이 없다는 뜻이긴 했다.

  물론 나는 은하그룹의 협력과 지원하에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꿀던전들을 혼자 먹고 다녔던지라 별로 다른 헌터들하고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게다가 옷 꼬라지 좀 보라고. 저게 무슨 헌터야?"

  녀석이 날 보며 또 다시 비웃음을 날렸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방탄복이나 따로 제작한 배틀 슈트에 더해 총화기와 도검 등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비해, 나는 아무것도 안 들고 있는 산책 나온 일반인 복장이었다. 청바지에 흰 프린트 티.

  그것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었다.

  "뭐야, 저 사람도 헌터였어?"

  그런 내 모습에 일부 다른 헌터들 까지 비웃음을 띠었다.

  '음, 평소에 눈에 안 띄게 다니는 게 버릇이 돼서 오히려 눈에 띄어버렸군.'

  최근 다른 헌터들의 복장을 볼 일이 없어서 평소처럼 다녔는데, 생각 해 보니 이 무렵의 헌터들은 뭔가를 바리바리 두르고 나오는 게 표준이었다.

  내가 나의 안일함을 탓하며 반성하는데 외려나 대신 한서후가 발끈해서 그 꼬마에게 다가가려 했다. 자신보다는 나를 쭉정이 취급한 것에 대해 열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그 꼬마 놈의 뒤통수를 매섭게 후려치는 손길이 있었다.

  뻑!!!

  그 바람에 싸가지 없는 꼬마가 앞으로 철푸덕 엎어졌다.

  "누구야! 아…… 로드 누나?"

  자연스럽게 주변의 눈길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다들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헉! 강하나다."

  "강하나가 왔다!"

  강하나 헌터.

  [최초의 던전] 최후의 5인 출신이자 우리나라 10강에 속한 초강자였다.

  아름다운 외모와 [최초의 던전]으로 일찍이 이름을 알린 덕에 한국 10강 중 인지도 면에서는 수위를 다툰다 할 수 있었다. 지금은 3대 클랜 중 하나인 이지스 클랜을 이끌고 있는 걸로도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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